李剛
1878 ~ 1964
구한말 당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1867년생이며 호는 오산이다. 본명은 정래 또는 필래.
1867년 평안남도 용강에서 태어났으며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가 도산 안창호를 만나게 되었고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면서 독립운동을 위해 공립협회를 창설하고 공립신문을 발간하여 발행인으로 활동하였다.
1906년에 귀국하여 신민회에 가입하였고 1908년 해조신문을 창간하여 독립운동과 애국사상을 연재하였지만 운영난으로 폐간되고 이어서 대동공보사 편집인이 되었다가 대동공보사 폐간 이후 러시아 시베리아로 건너가서 정교보를 발행하여 편집인이 되었다.
1919년 강우규의 서울역 의거에 연루되어 일경에 의해 체포되었고 곧 석방되어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와 연계하여 독립운동을 지속하였다.
1945년 광복이 되면서 임정의 명령에 따라 대만 교포를 위한 선무단 단장이 되어서 대만으로 갔다가 이듬해 귀국하였으며 흥사단 간부, 한중협회 간부를 거쳐 남산고등학교 교장을 지냈고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가 1964년 사망하여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