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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종애(李宗愛) |
생년월일 | 1975년 3월 18일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학교 | 인성여자고등학교 |
포지션 | 센터 |
신체 사이즈 | 187Cm, 62Kg |
프로입단 | 1993년 SKC 여자농구단 입단 |
소속팀 | SKC-SK증권 여자농구단(1993~1998) 아산 우리은행 위비(1998~2005) 구리 금호생명 레드윙스(2004~2005) 용인 삼성생명 비추미(2006~2011) |
한국 여자 농구의 한 시대를 풍미한 센터. 별명은 블록슛의 여왕.
인성여고 출신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SK증권 여자농구단에 입단했다. 1993년부터 실업무대에 뛰어들어 SK증권의 전성기를 열었지만, 1997년 우승과 함께 팀이 해체되면서 그녀는 상업은행으로 팀을 옮기게 되었다.
WKBL 출범 이후, 타미카 캐칭과 함께 우리은행의 세 차례 우승에 공헌한 후, 2005년 금호생명으로 잠시 트레이드되었다가, 곧 FA 자격을 얻어 2006년 용인 삼성생명 비추미로 이적했다. 그리고 삼성생명에서 마지막 프로 우승을 노렸지만, 레알 신한의 위세에 가로막혀 우승에는 실패.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블록슛에 탁월한 실력을 보여줬다. 전성기에는 블록슛 기록을 다 가지고 있었을 정도. 다만 키에 비해서 몸무게가 나가지 않기 때문에 체력적인 면이나 몸싸움에서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1] 그래서 국제대회에서 1옵션 센터로서는 한계가 있었지만, 위치 선정과 블록슛 타이밍에서는 여타 센터들에 비해 월등히 나은 기량을 과시했다. WKBL에서 열린 22번 정규리그[2]에서 블록슛 타이틀만 무려 11번 수상했을 정도니, 블록슛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딱인 선수다.
국가대표로서 오래도록 뛰면서 많은 공헌을 했다.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역시 2000 시드니 올림픽. 당시 한국 여자농구가 올림픽 4강이라는 위업을 달성하는데 한 몫 크게 기여했던 선수다. 특히 조별 예선전에서 러시아 상대로 접전을 벌이던 도중 종료 직전에 결승골을 넣으면서 승리를 가져다 준 선수가 바로 이종애. 당시 1승 2패로 8강 진출이 불투명했던 상황에서 2승 2패로 균형을 맞추는데 성공했고, 나아가 조별 리그 순위까지 높아지면서 대진에서 크게 유리해 질 수 있었으며, 그랬기 때문에 4강까지 갈 수 있었다.
2011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사실 은퇴시즌인 2010-11 시즌 블록슛 부문 1위를 차지한 타이틀 홀더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은퇴할 정도로 기량이 쇠퇴한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결혼 생활 9년 동안 아이가 없어서,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은퇴 시점 기준으로 나이가 만 36세...) 아이를 가지려고 은퇴한다고.
2011-12 시즌 개막전에서 WKBL 김원길 총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은퇴경기를 가지며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삼성생명의 유소년 농구단 코치를 역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