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명칭 | SK증권 여자농구단 | |
창단년도 | 1975년 | |
해체년도 | 1998년 |
여자농구 실업팀. (현재의) SK그룹 소속이었으나 지금은 사라진 팀이다. 과거 SKC 여자농구단으로 운영했던 적도 있었다.
1975년 당시 농구협회장이던 이병희의 권유를 당시 선경직물(現 SK네트웍스) 회장이던 최종현이 받아들여 만든 것이다. 선경의 창업 장소가 수원시인데, 농구협회장이던 이병희는 수원을 지역구로 한 국회의원이었다. 그리고 그냥 일개 국회의원이 아니라 집권당인 민주공화당 5선 국회의원을 지낸 인물이니, 말이 좋아 권유지, 사실상 권유 이상의 것이었다.
여하튼 창단 후, 총 10여 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종별선수권이나, 전국체육대회 우승으로 주가를 올렸지만, 1980년대 농구대잔치 등장 이후에는 아무래도 농구대잔치 우승이 가장 높은 권위를 가지면서 이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런데 1980년대에는 농구대잔치에서 별 재미를 못 봤다. 당시 농구대잔치를 주도하던 팀은 삼성생명이었고, 가끔 국민은행이 우승하던 정도.
1990년대 본격적으로 칼을 빼들어서, 특급 유망주였던 유영주, 정선민, 김지윤을 스카우트하면서 주가를 올리기 시작했다.[1] 그 결과 총 세 차례 농구대잔치 우승을 차지하면서 신흥 강호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특히 1997-1998 농구대잔치 결승은 여자 농구 역사에 손꼽히는 명승부였다. 그러나 그 명승부가 더 빛나게 하는 비극적인 일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바로 우승 다음 날 팀이 해체된 것이다. 1997년 외환 위기 직후, 경비 절감을 위해 전격적으로 팀이 해체되었는데, 당연히 모든 선수들 및 여자 농구 관계자들이 반발했다. 우승팀을 해체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고, SK그룹 자체가 딱히 경영난이 심각한 것도 아니었다. 팀 체육관도 마련하지 않았을 정도로 그다지 투자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조치는 SK그룹이 SK케미컬 여자배구단[2] 역시 해체한 것과 맞물리면서 엄청난 비난을 사게 되었다.
특히 당시 출범 직전이던 한국여자프로농구가 이 해체 파동으로 인해 출범을 연기하게 되었다. 원래 3월에 첫 시즌을 시작하려고 했던 WKBL은 SK증권의 해체로 인해 가맹 팀 수가 단 세 팀(삼성생명, 현대산업개발, 신세계)로 줄게 되었다. 세 팀으로 리그를 꾸려갈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출범 자체가 뒤로 늦춰진 것이다. 그리고 SK증권의 해체는 은행 팀들의 WKBL 참가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으로 이어져 결국 서울은행 농구팀의 해체로 이어졌다.
유영주의 경우, 우승 당일 신나게 놀고 다음날 신문을 보고서야 팀이 해체된 것을 알았다고 한다. 그 때 배신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고. 선수들은 드래프트 대상이 되어 뿔뿔이 흩어졌다. 유영주는 삼성생명으로, 정선민은 신세계로, 김지윤은 국민은행으로 이적하게 된다.
1997년 외환 위기 직후, 최악의 국면을 맞이했던 여자 농구의 흑역사. 아니, 여자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막장스러운 흑역사. 그래서 오랫동안 여자스포츠를 아껴온 팬들은 SK그룹하면 치를 떤다. 이후 스포츠에서 SK그룹은 여러가지 병크로 어그로를 쌓아오게 된다.
SKC시절 유니폼인데 깊은V넥 타입의 긴팔유니폼이었다 단순하고 펑퍼짐해보이지만 이 유니폼이 은근히 남성팬들에게 인기를 끈적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