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튼 패츠 실종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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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79년 5월 25일 미국뉴욕 맨해튼의 소호 거리에서 6세 소년 이튼 패츠(Etan Patz)가 실종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은 미국 내에서 상당한 충격을 준 사건이었고 우유팩에 실종 아동들의 사진을 게재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 아이가 실종된 날인 5월 25일을 세계 실종 아동의 날로 제정되게 할 정도로 사회에 큰 영향력을 준 사건이었다. 그러나 30년이 넘도록 범인이 잡히지 않았고 끈질긴 노력 끝에 사건 발생 후 33년 만인 2012년에 유력한 용의자였던 이웃집 남성을 체포해 기소했으나 2015년에 피고인이 재판에서 심리 무효를 선고받았고 결국 이 사건은 무려 37년 째 미제 사건이 되고 말았다.

2 사건 경위

1979년 5월 25일, 당시 만 6세 소년이었던 이튼 패츠는 이 날 부모의 동행 없이 혼자서 등교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1] 이튼이 스쿨 버스를 타는 곳은 집에서 겨우 2블록 떨어진 곳이었는데 그곳에 위치한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미국 전역은 충격에 빠졌다. 왜냐하면 사건이 일어난 때가 어두컴컴한 밤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사건이 일어난 장소가 소위 말하는 슬럼 가도 아닌 곳에서 어린이가 실종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이 일어나자 당연히 뉴욕 경찰은 물론이고 FBI까지 수사에 동원되었으며 이튼 패츠를 찾기 위해 노력했으나 초등학생들이 등교하는 비교적 이른 아침에 실종되어 목격자가 없었고 사건의 단서조차 남아 있지 않아 도무지 사건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다만 이튼이 저항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면식범의 소행일 것이라는 추정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러한 노력과 함께 사건 발생 후 4년이 지난 1983년에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로널드 레이건은 이튼 패츠가 실종된 날이었던 5월 25일을 이른바 세계 실종 아동의 날로 지정함을 선포했다. 이 선포에 캐나다, 유럽 등 전 세계가 동참했다.

그리고 우유팩에도 이튼 패츠의 사진을 게재하면서 미국인들이 우유를 마시는 사소한 일을 할 때에도 이튼 패츠를 꼭 기억하고 이 아이를 찾는데 동참해줄 것을 호소했다. 한편, 이튼의 부모는 대부분의 실종 아동을 둔 가족들이 그러하듯이 아들은 살아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집에 돌아올 수 있도록 수십년 째 이사를 가지 않고 그곳에서 아들을 기다렸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건은 해결되지 못했으며 무려 30년이 넘도록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결국 이튼 패츠는 실종된지 22년 만인 2001년에 법적으로 사망 처리가 되고 말았다. 이튼이 법적으로 사망 처리 되면서 이 사건도 서서히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3 재수사와 범인 검거

그렇게 세간의 관심에서 잊혀졌던 이튼 패츠 실종사건을 다시 일깨운 사람은 사건 발생 후 31년이 지난 2010년에 맨해튼 검찰청으로 부임한 사일러스 밴스 검사였다. 사일러스 밴스 검사는 맨해튼 검찰청에 부임하자마자 이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면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튼 패츠가 자신의 집 근처 건물 지하 작업장에서 목수 일을 하던 오스닐 밀러라는 중년의 남성이 이튼과 친하게 지냈던 사이였다는 기록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사건이 면식범의 소행이라는 건 이미 30년 전 수사 당시에도 나왔던 추정이었다. 오스닐 밀러가 범인이라면 이튼은 평소 친하게 지냈던 아저씨였으니 아무 의심 없이 따라갔을 수 있고 밀러가 아파트 수리공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튼을 죽이고 자신의 작업장에다 시체를 암매장했기에 30년이 넘도록 어떠한 증거도 시체도 나오지 않은 게 아니냐는 게 밴스 검사의 생각이었다. 과연, 패츠가 실종되기 전날 밤에도 오스닐 밀러를 만났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사건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강력하게 의심되는 사항이었다. 사실 10여 년 전인 2000년대에도 밀러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복구 비용만 지급해 준다면 지하실 바닥을 뜯어도 좋다는 말을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미국 경찰들은 밀러가 용의자가 아니어서 전혀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밀러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이러한 수사 기록들을 검토한 밴스 검사는 마침내 오스닐 밀러를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정하고 2012년 재수사를 단행했다. 이번 수사에는 FBI와 경찰은 물론이고 고고학자들까지도 투입되었다. 시신 탐색견을 통한 1차 조사 결과 탐색견이 밀러의 지하실에 시신이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탐색견의 반응을 바탕으로 경찰, 고고학자 등은 2012년 4월 19일부터 밀러의 지하실 바닥을 파헤쳐 이튼 패츠의 유골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이 작업을 할 때만 해도 밴스 검사와 경찰들은 밀러가 범인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고 당연히 이튼의 뼈가 나올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이렇게 밴스 검사의 주장대로 오스닐 밀러가 범인으로 밝혀지는 듯했다. 그러나......

밀러의 지하실에서는 이튼의 뼈가 나오지 않았다! 2012년 4월 23일, 4일 간 밀러의 지하실을 뜯어내 이 잡듯이 뒤졌으나 인골로 보이는 그 어떠한 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오스닐 밀러는 이번 사건의 범인이 아니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수사는 다시 한 번 실패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한 달 후 사건은 다시 급반전되었다. 시민의 결정적인 제보를 받은 뉴욕 경찰이 마침내 5월 24일, 뉴저지 주에 사는 범인 페드로 에르난데스(51)를 체포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페드로로부터 1979년 5월 25일 그 날, 이튼에게 음료수를 사주겠다고 유인해 맨해튼의 브로드웨이 448번 가의 한 식료품점 지하실에서 이튼을 교살했고 그 시신을 비닐봉지에 담아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자백도 받아냈다. 사건 후 페드로는 모범적인 생활을 했으며 친절한 사람이었다고 이웃들이 밝혔다. 그러나 30여 년 전에 저지른 살인에 대해 죄책감이 컸던 모양인지 이튼이 실종된 그 날 이후 몇 년 동안 수시로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나쁜 일을 했다. 뉴욕에서 아이를 죽였다.'고 말하고 다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렇게 경찰 측의 끈질긴 수사와 시민의 제보로 사건이 발생하고 만 33년에서 하루가 모자란 날에 범인을 검거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런데.....

4 다시 미제 사건으로 돌아가다

불행하게도 이 사건은 다시 미제 사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2012년 5월 24일에 체포된 페드로 에르난데스는 돌연히 2015년 1월, 그 동안 해온 진술을 번복하고 무죄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2015년 5월에 열린 공판에서도 배심원단이 지난 18일 간 논의를 계속해왔지만 의견 불일치로 에르난데스를 유무죄로 단정짓는데 합의하지 못해 결국 심리 무효가 선언되고 말았다. 배심원단들이 페드로가 유죄라고 선언하지 못한 이유는 그가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자백의 신빙성이 의심된다는 이유를 들어 유죄라고 합의를 모으는데 실패한 것이다.

실제 페드로의 변호인은 그의 자백은 정신 이상에 따른 상상에 불과하다면서 그가 수년 동안 항정신병약을 복용했고 체포 후에도 환각을 수반한 인격장애로 판정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마음이 흔들린 배심원단들이 평결에 이르지 못하게 된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을 맡은 뉴욕 맨해튼연방법원 맥스웰 와일리 판사는 심리 무효를 선언하며 사건을 종결했다. 심리 무효 선언이 떨어지자 이튼 패츠의 부친인 스탠 패츠 씨는 여전히 페드로 에르난데스가 범인이라고 굳게 믿으며 "배심원단이 평결에 이르지 못한 것이 정말 실망스럽다. 우리의 오랜 시련이 끝나지 않았다."고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했다. 정말 안타깝게도 이 사건은 재판에서 피고인의 유죄를 단정하는데 실패하면서 다시 미제 사건이 되고 말았다. 그 결과 2016년 현재까지도 이 사건은 사건 발생 후 37년 째 미제 상태이다.
  1. 한국에서는 보통 어린이들이 부모의 동행 없이 혼자 등하교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미국이나 프랑스 등의 나라에서는 초등학생의 경우 반드시 부모와 함께 등교하고 부모와 함께 하교하는 걸 권장하고 있다. 그 이유는 등하교길에 아이들이 유괴당하는 사례가 빈번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