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동서설

夷夏東西說.

1 내용

1930년대, 중국의 사학자인 푸쓰녠(傅斯年)이 주장한 학설. 하나라와 상나라가 서로 다른 근원에서 나왔다는 하상이원론(夏商二元論)의 초기 형태와 관련이 있으며, 고대 중국의 문화는 동쪽의 동이족(東夷族)과 서쪽의 화하족(華夏族)의 상호 관계에서 성립되었다는 주장이다.

고대 중국에 새 토템을 공통적인 요소로 하는 동방의 동이족, 그리고 하나라를 세운 건국집단으로 대표되는 화하족을 설정하고, 이를 고고학적으로 드러나는 중국 서부지역의 채도문화(양사오 문화)와 동부지역의 흑도문화(룽산문화)로 뒷받침하였다. 이 학설의 이해에 따르면 하나라와 주나라는 화하족에, 은나라는 동이족에 해당된다. 동이족이라는 말 하나에 낚여서 은나라=우리민족으로 보는 사람들도 제법 있는데, 이는 푸쓰녠이 한반도 고대 삼국의 건국신화가 은나라의 건국신화와 함께 새 토템이라는 공통적인 코드를 지니고 있음을 발견하고 고구려 등의 고대 한반도 나라까지를 고대 동이족의 범주에 넣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고학적 발굴의 진전에 따라 채도문화와 흑도문화가 지역적인 차이가 아닌 시대적인 차이였음이 드러났으며, 푸쓰녠이 상정한 동이족 또한 사실은 등질적이지 않은 여러 종족집단을 묶은 것임이 드러나면서 20세기 중반 이후로는 퇴조하였다.

발해를 둘러싼 3면은 모두 중국문화 발상지이며, 요동 일대는 영원토록 중국의 군현이었으며, 백산과 흑수 일대는 오랫동안 중국의 번병이었다. (중략) 2천년의 역사를 볼 때, 동북이 중국이라는 사실은 강소성이나 복건성이 중국이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 푸쓰녠(傅斯年), <동북사강> 서문. 이병호, <'東北工程' 前史 :傅斯年의 『東北史綱』 비판>, 동북아역사논총 제20호 (2008년 6월) 258쪽에서 재인용

반면 하상이원론 자체를 뒷받침하는 '하나라 문화'로 추정되는 유물들와 상나라 문물의 차이는 제법 뚜렷한 면이 있어서 이하동서설 퇴조 후에도 하상이원론은 건재하다. 허나 하나라를 실존한 나라로 확정하려는 노력이 여전히 헛물을 켜고 있으니... 게다가 하상이원론을 뒷받침하는 그 '차이'가 결정적이지 못하다는 반론도 건재하다.

2 기타

이우혁의 소설 퇴마록 말세편에서는 용봉문화설이라는 학설이 나오며, 퇴마록 말세편을 이끌어가는 주요 도구로 사용되는데 이 용봉문화설은 바로 이하동서설에 기반한 것이다. 즉 용을 토템으로 하는 화하족이 봉을 토템으로 하는 동이족의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세웠으며, 이 때 몰락한 동이족의 일부가 베링 해협을 건너 북미와 남미에 정착하여 인디언이 되었고, 그래서 남미의 아즈텍에는 새(봉)를 숭상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 주된 내용. 물론 용봉문화설 자체가 이우혁의 창작인 것은 아니고, 실제로도 존재하는 학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