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라

중국의 왕조 국가. 이 명칭을 쓰는 나라는 여럿이 있다.

1 중국 최초의 왕조라는 전설상의 국가

중국의 역사
삼황오제하나라상나라

중국의 문헌에서 기록된 최초의 왕조 국가. 전통적으로 중국 한족을 화하(華夏)족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바로 이곳의 국명에서 유래된 것이다. 다만 아직 관련 유적이 미미하여 실존이 인정받지는 못했다. 추정된 하나라 연대에 해당하는 고대 문화를 하 문화로 부르기도 하나 이를 지지하는 학자들 중에서도 하 문화는 인정해도 하나라라는 나라는 부정하기도 한다. 국성은 사(姒),[1], 씨는 하후(夏后).

건국자는 . 상서 등 문헌에 의하면, 요순시대 엄청난 홍수가 일어났는데, 우의 아버지 이 치수에 실패하여 추방 당하고 죽자, 그 뒤를 이은 우가 중국 전토에 이르는 치수 사업을 벌인다. 그리고 이를 성공한 공으로 임금에게 선양받아 중국 최초의 왕조인 하나라를 세웠다고 한다.그러면 그전의 요순은 중국사에서 뭐가 되나 우의 한자인 禹라는 글자의 형태는 으로 을 쥔 형상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는 우 임금이 뱀으로 상징되는 의 범람이라는 환란을 평정한 영웅으로 여겨졌음이 암시되었다.

상서 및 사기에서는 그의 사후 하나라의 왕위가 우의 아들에게 세습되면서 왕위 세습이 제도화되었다고 하는데, 죽서기년에서는 본디 백익에게 선양할 생각이었으나, 우의 아들이 백익을 죽이고 왕위에 올라서 세습이 고착되었다고 하는 이설도 전한다.

마지막 왕인 걸왕은 은나라주왕과 더불어 하걸은주라고 불리는 고대의 2대 폭군에 들어갈 정도로 엄청난 인간말종이었다. 말희라는 미녀에게 현혹되어 나라를 망치고 은나라 시조 성탕에 의해서 멸망되었다고 한다. 이후 은나라는 달기와 엮여서, 주나라는 포사와 엮여서 멸망했으니까, 연속해서 3대 왕조가 미녀에 의해 국가를 망치게 된 셈이다.경국지색 나라 멸망의 책임을 여자에게 떠넘기기

사마천은 사기에서 흉노를 하후의 후예라 하면서 하나라와 연관짓고 있지만 근거는 없다.

사실 멸망 패턴이 항상 똑같다는 점 국가 막장 테크은나라와 하나라의 존재가 주나라의 역사를 토대로 창작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한 이유가 되었다. 갑골문자의 발견으로 은나라의 존재는 더 이상 아무도 의심하지 않지만 하나라는 아직 이같은 의심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오히려 갑골문은 하나라의 존재를 부정하는 근거들 중 하나이다. 우선 갑골문에서 탕왕은 은왕조의 창시자가 아니라 은왕조를 중흥시킨 왕일 뿐이다. 갑골문에 따르면 은왕조의 시작은 탕왕이 아니라 삼황오제 중 하나인 제곡으로 거슬러 올러간다. 또한 갑골문에서 탕왕을 칭송하는 내용은 많이 보이지만 그 중에서 하왕조나 그에 해당되는 강한 적을 물리쳤다는 언급은 전혀 없는 등 갑골문에서 하왕조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더구나 갑골문에서는 하(夏)라는 글자조차 식별되지 않으며, 갑골문에서의 1년은 춘하추동이 아니라 단순히 춘추로 구별했다. #

자세한 왕계가 전하고 선진시대의 여러 문헌에서 언급이 되는 왕조라서 실존했을 가능성은 분명 존재하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고고학적으로 이렇다할 증거가 없다. 현재 하나라의 후보지로 뽑히는 곳이 뤄다먀오(洛達廟) 등의 지역이지만, 정확한 문자 자료가 없어 실증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중국에서는 2000년 사회과학원이 종료한 중국의 하상주단대공정에 의해 얼리터우 문화를 하나라 문화로 비정해서 하나라가 실존하는 국가로 확정되고 연대가 추산되었지만, 해당 결과는 국제 사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사학계 내에서도 하상주단대공정은 많은 비판과 논란을 갖고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공정에서 얼리터우 문화의 추산연대가 문헌상의 하나라의 연대와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억지로 끼워맞췄다고 본다. 사실 하상주단대공정의 결론은 죄다 이런 식의 비판을 받고 2000년에 약식 보고서라고 할 수 있는 간본을 발간한 이래 2015년까지도 정식 보고서를 발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중국에서는 하나라를 주변 지역에서 좀 잘나가는 조그마한 성읍국가였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만약 하나라가 실존했던 국가였다면 현 중국의 추측대로 조그마한 지역을 처지한 성읍국가였을 가능성이 높다. 추가적으로, 일각에서는 이 실존하고, 이들이 하나라가 건국되기 이전, 후일 하나라를 건국하는 집단을 이끌던 일종의 족장으로 보기도 한다.

크툴루 신화 세계관에서는 하나라 시대에 르뤼에 이본의 중국어판 번역인 나인성본전(螺湮城本傳)이 만들어졌다.

중국제 잠수함에 대한 NATO 코드명은 대개 중국의 역대 왕조 중에서 이름을 따오고 있는데, 이 왕조명 역시 SSBN 샤급의 이름으로 쓰였다. 갖다 붙이자면 이것도 실존하는 역사라고 인정해주는 꼴이니 중국에서는 훈훈하게 여길...까?

2 오호십육국시대의 왕조

중국의 역사
中國史
기원전 1600 ~ 기원전 206기원전 206 ~ 907년
907년 ~ 1644년1616년 ~ 현재
중국의 역사 기원전 206 ~ 907년
기원전 206 ~ 220한(漢)
초한전쟁(楚漢戰爭)
전한(前漢)
신(新)
현한(玄漢)
후한(後漢)
220 ~ 265삼국(三國)위(魏)촉한(蜀漢)오(吳)
265 ~ 436진(晉)서진(西晉)
동진(東晉)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
439 ~ 589남북조(南北朝)송(宋)북위(北魏)
제(齊)
양(梁)
한(漢)
후량(後梁)
서위(西魏)동위(東魏)
진(陳)북주(北周)북제(北齊)
581 ~ 619수(隋)
618 ~ 907당(唐)
무주(武周)
중국의 역사
위진남북조시대/육조시대
서진오호십육국시대남북조시대
북하(北夏)
16국(國)
전량(凉)전조(趙)성한(漢)후조(趙)전연(燕)전진(秦)후연(燕)후진(秦)서진(秦)후량(凉)
남량(凉)북량(凉)남연(燕)서량(凉)북하(夏)북연(燕)
기타 국가
단부등지서연선우조염위우문부적위전구지
후구지
탕창초촉환초


407 ~ 431. 남흉노족인 혁련발발(赫連勃勃)이 세운 나라로 북하(北夏), 호하(胡夏), 혹은 혁련하(赫連夏)라고도 부른다. 흉노의 선조가 고대 하나라 하후씨의 후손이라는 전설을 바탕으로 하여 하를 국호로 정하였다. 역사상 마지막 흉노 국가이다.

2.1 북하(北夏)의 황제

대수묘호시호성명연호재위기간능호
1대세조(世祖)무열황제(武烈皇帝)혁련발발(赫連勃勃)용승(龍昇) 407 ~ 413
봉상(鳳祥) 413 ~ 418
창무(昌武) 418 ~ 419
진흥(眞興) 419 ~ 425
407 ~ 425가평릉(嘉平陵)
2대--혁련창(赫連昌)승광(承光) 425 ~ 428425 ~ 428-
3대--혁련정(赫連定)승광(勝光) 428 ~ 431428 ~ 431-

3 서하

서하 문서 참고.

4 원말명초의 왕조

1363년 ~ 1371년 사이에 오늘날의 사천성 지방에서 건국된 왕조. 황제의 성씨를 따 명하(明夏), 혹은 (蜀)이라고도 한다.

1363년 원나라 말기의 군웅 명옥진(明玉珍)이 황제에 즉위하여 국호를 대하(大夏)라 하고 수도를 중경(重慶)에 두었다. 1366년 명옥진이 36세로 죽고, 아들 명승(明昇)이 즉위하였으나 1371년, 주원장의 공격을 받고 항복해, 8년만에 멸망했다.

명승은 항복 후 명나라 수도 응천부(남경)로 이송되어 귀의후에 봉해졌으나, 하나라의 유신들의 일부가 명나라에 저항하다가 진압되자 이듬해 남녀 28명을 데리고 고려로 망명하여 서촉 명씨의 시조가 되었다.

4.1 역대 황제

대수왕호(王號)성명재위기간
1대농촉왕(隴蜀王)명옥진(明玉珍)1362년 ~ 1366년
2대화촉군(華蜀君)명승(明昇)1366년
  1. 이 부분이 엄청난 떡밥 중 하나인데, 최초의 문자로 보여지고 있는 갑골문이나 홍도문들은 상나라 3기인 은허시기 이후를 중심으로 발굴되고 있다. 그런데, 그보다 600여 년이나 빠른 하나라 초기의 인물인 하나라 우의 후손들의 성씨를 사(姒)라고 사기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