任安
(124 ~ 202)
후한 말의 인물. 자는 정조(定祖).
광한군 면죽현 사람으로 젊은 시절부터 태학을 유학해 맹씨역을 배웠으며, 이에 더해서 여러 경전에 정통하게 되었다. 같은 군 출신의 양후에게 예언의 술법을 배워 그 술법에 정통하게 되었는데, 당시 사람들은 그를 칭송하면서 중환(仲桓, 양후의 자)을 알고 싶다면 임안에 물어라라고 하면서 지금 세상에 있어서 고법을 행하는 자는 임정조로다라고 했다.
공부를 마치고 귀향해 여러 사람에게 이를 전하자 멀리서부터 수많은 생도들이 그를 찾아왔으며, 당초에는 주, 군에 사관했으나 이후 태위가 거듭 그를 초빙해 박사의 관위를 내려 공거를 보냈지만 모두 병을 핑계로 취임하지 않았다. 그는 명리를 취하지 않아 임공자(任孔子)라 불렸고 건안 연간에는 노중련전을 읽다가 탄식했는데, 결백함을 다스리는 것과 뜻을 얻는 것으로 즐거움으로 삼아 근심하지 않았고 사람들이 버린 것을 자신이 취해 시류와 더불어 다툼이 없다고 했다.
동향 출신으로 임안과 친분이 있던 진밀이 주목 유언에게 인자하고 의로우면서 정직해 명성이 사방으로 퍼졌다면서 임안을 추천했다. 유언이 조정에 상표문을 올려 임안을 추천했지만 도성에 이르는 길이 막히자 결국 불러들일 것을 명하는 소칙을 내리지 못했으며, 202년에 79세의 나이로 집에서 사망했다.
죽을 때까지 벼슬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임징군(任徵君)이라고 불렀으며, 임안의 제자로는 촉한의 두미, 두경, 하종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