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밀

촉서 「허미손간이진전(許糜孫簡伊秦傳)」
허정미축손건간옹이적진밀

秦宓[1] (? ~ 226년)

1 개요

삼국시대 촉한의 신하. 자는 자래(子勑).

한국에서는 '진복'이라고 표기하는는 경우가 많은데, 宓은 한국에서 '복'과 '밀' 두가지 발음으로 읽히고, 삼국지연의의 국내판에서는 주로 '복'으로 표기되었기 때문이다. 삼국지 시리즈의 한글판에서도 모두 '진복'으로 번역되어 있고, 국역 삼국지에도 '진복'으로 나온다. 그러나 후한서에서는 秦密로 표기하였고, 자치통감에서도 宓에 대한 주석에서 '宓,莫必翻,通作密。(宓의 반절ㅏㄱ+ㅍㅣㄹ이다. '밀(密)'이라고도 쓴다.)'[2]이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올바른 이름은 '진복'이 아닌 '진밀'이다.[3]

2 정사

광한군 면죽현 사람으로 젊을 때부터 어린 시절부터 재능과 학식이 있었으므로 주나 군에서 초빙되었지만 병을 핑계로 나서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당신은 자신을 소부, 허유, 사호에 비견하고자 하지만 어째서 문재를 발휘해 과시하고자 하냐고 물으니, 진밀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내가 쓴 문장은 모든 어휘를 다 써서 쓴 것도 아니며, 내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표현한 것도 아니라 문재를 과시한다는 말 따위를 말할 수 있겠소?, 호랑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름다운 겉모습을 가지고 봉황은 태어나면서부터 오색찬란한데, 이를 가지고 색채로 자신을 꾸민다고 할 수 있겠소?, 특성이라는 것은 태어나면서부터 딸려오는 것이오.

팽양 같이 남을 깔보기로 유명한 사람도 진밀을 칭찬하면서 자신의 태수 허정에게 추천할 정도였지만 그때마다 그는 병이 있다고 하며 나가지 않았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간섭했던 것은 주목인 유언에게 상서를 올려 유학자 임정조를 추천했던 일이다.

194년 유장이 주목이 되자 왕상유장을 섬기라고 설득하나 그는 유장은 바보라서 안 된다고 말하고 은거했으며, 왕상이 엄군평과 이홍의 사당을 세우자 편지를 보내 이것이 같은 고향 사람을 후대하는 것이라 하면서 익주 문사의 태두라 할 수 있는 사마상여를 위해 사당을 지으라고 했다. 이권이라는 사람이 전국책을 빌려 식견을 늘리고자 했는데, 전국책이 종횡가의 책이므로 좋지 못하다고 했다.

214년 유비가 익주를 평정하자 이번에는 광한태수 하후찬이 진밀을 초청하여 사우좨주로 삼아 오관연을 겸임하도록 했으며, 유비가 진밀을 중부라고 불렀으나 진밀은 이번에도 질병이 있다면서 집에 누워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하후찬은 공조인 고박과 주부 왕보를 데리고 요리사와 식품을 갖고 진밀의 집을 찾아 가는데, 이번에도 진밀은 누워서 문답을 할 뿐 결국 거절했다.

그러다가 결국 익주에서 진밀을 초빙하여 종사좨주로 삼아 그제서야 관직생활을 시작하여 좌중랑장, 장수교위에 임명되었다. 220년에 유비가 황제를 칭한 뒤에 오나라를 치려고 하자 천시에 따르면 지금 유리할 수가 없어 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데, 이에 유비는 화가 나 진밀을 옥에 가두었다가 풀어주었다.

224년에 제갈양이 익주목을 겸하면서 익주별가, 좌중랑장, 장수교위로 임명되었으며, 오나라에서 장온이 오자 그와 문답을 하는데 막힘이 없자 장온은 진밀을 존경하게 된다. 이후 대사농으로 승진했다가 226년에 세상을 떠난다.

이전에 제갈량동부임안의 장점을 묻자 임안에 대해서는 터럭같은 작은 선이라도 찬미하고 티끌만한 악이라도 비난했으며, 임안은 남의 선한 일을 기록했지만 과오에 대해서는 잊었다고 얘기했다.

3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처음에는 유장을 섬기고 있는 것으로 나오며, 유장이 항복할 때 유비의 사자로 온 간옹과는 예전부터 아는 사이라고 나오면서 간옹이 오만하게 구는 것을 꾸짖었다. 그 후 유비를 섬겨 제갈량과 함께 유비가 황제 지위에 오르도록 돕는다. 후에 오에 출병하려는 유비를 말리려다 투옥되었으며, 오의 사자 장온이 왔을 때는 그의 오만한 태도에 화가 나 취한 척하면서 그의 문제를 모두 논파하여 장온을 불쌍하게 여긴 제갈량이 중재를 하러 온다.

4 기타

성도에 있는 무후사에는 유물로 만들어진 문신랑과 무장랑이라 하는 흙으로 빚은 상이 있는데, 문신랑 중 방통, 간옹, 부융, 여개, 비의, 동화, 등지, 진진, 장완, 동윤, 마량, 양홍, 정기 등과 함께 진밀의 토용이 전시되어 있다.부융 항목에서 작성해야 말이지만, 부융은 무장인데, 문신랑에 있다? 우리중에 스파이가 있는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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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후사에 서 있는 진밀의 상.

5 미디어 믹스

드라마 삼국에서는 충언을 마다하지 않는 문관으로 등장한다. 관우에 이어 장비마저 죽자 유비는 복수심에 미쳐서 손권과 전쟁을 일으키려 하며, 진밀에게 격문을 쓰게 한다. 진밀이 유비를 만류하며 한나라를 멸망시킨 조비부터 처단해야지 손권과 전쟁을 하면 안된다고 간언하자, 유비는 격노하여 진밀을 참하라고 명하며, 제갈량이 대신 격문을 쓰겠다고 나서서 겨우 진밀은 목숨을 부지한다.[4] 한국어 더빙판에서도 제대로 진밀이라고 나온다.

삼국지 12,13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한자를 제대로 읽지 않았기 때문에 매번 '진복'이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사료는 많이 남아있으나 크게 임팩트 있는 일화가 없어서인지 몰라도 능력치는 고만고만하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15/6/71/78. 배반을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12/6/70/71/76에 특기는 기술, 반목, 항변 3개. 기술셔틀로 쓰라는 소리다.

삼국지 11에선 조금 상향되어 16/7/72/78/76의 능력치가 되었지만 특기가 없어서 안습...

삼국지 12에서는 통솔이 상향되어 31/7/73/78의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 특기는 무력저하.
  1. 후한서 권82하에는 秦密로 나온다.
  2. 출처
  3. 宓의 뜻, 발음 설명의 출처
  4. '저 놈을 끌고 가 참하라'는 대사는 조조의 전용대사로, 관우 장비가 죽기 전까지 유비는 함부로 사람을 죽이라고 명한 적이 없다. 관우 장비가 죽은 후, 광기로 물들어가는 유비를 묘사하는 명 에피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