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휴

張文休
발해의 장수.

발해의 장수중 유일하게 군사적인 공이 알려진 장수.[1] 발해 조정과 계약을 한 해적이거나 고구려 귀족이라고 하는 경우, 또는 고구려 해상 세력의 잔당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남아있는 기록 자체가 희박하여 자세히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무왕의 명을 받아 산동반도의 등주를 기습하여 자사 위준을 죽였다. 이후 등주엔 실업자가 넘치는 등 발해군의 기습으로 인한 피해가 컸다고 한다. 등주는 당에서 발해를 해로로 공격하기에 있어서 최적의 군항으로 사용될 수 있는 지역이었다.

이 시기 육로는 거란과 돌궐 등으로 얽혀 있었기 때문에 신라로 하여금 발해의 후방을 치게 하고, 바다를 통해 수도를 직접 공격하는, 과거 백제 공격과 같은 형태를 노릴 수도 있었다.

때문에 발해의 입장에서는 목표점으로서 의미 부여는 된다. 등주 기습 사건 때문에 발해가 요동 반도를 무왕 때 이미 차지했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발해 수군은 요동반도가 아닌 압록강의 박작구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기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2] 계속 바다와 엮이는 이유는 등주가 산동반도의 상업항이고, 발해가 육로로 공격하기 위해서는 요동은 물론이고 요서 일부까지 점령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도 장성과 황하를 넘는 등 엄청난 고난의 행군이 이어진다.

  1. 발해 장수들이 야매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만큼 남아있는 발해 기록이 없다(...). 애초에 장문휴 개인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고 발해의 등주공격 내용이 본문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
  2. 실제로 남아있는 기록은 무왕이 장문휴로 하여금 등주를 공격하게 했고, 그 결과 등주자사를 죽였다로 끝이다. 그 과정은 전혀 알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