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후한 말의 인물
鄭益[1]
(170? ~ 196?)
후한 말의 인물. 자는 익은(益恩). 정현의 아들이자 정소동의 아버지.
건안 연간[2]에 정현이 병에 걸리면서 정익에게 편지를 보내 유훈을 전했는데, 자신은 늙어서 조용하게 여생을 보낼 것이니 가업을 계승하라는 것과 군자의 길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충고를 하는 내용이었다.
정익이 23세 때 공융이 그를 효렴에 추천했는데, 후에 원담이 북해를 포위하자 정익은 위험을 돌보지 않고 달려들었다가 전사했고 이 때의 나이는 27세였다.
정현별전에서는 원문이 황건적으로 나와있는데, 정현이 건안 연간에 편지를 보냈기 때문에 공융이 싸운 상대가 황건적이 아니라고 추측되고 있다. 주수창의 삼국지주증유에 따르면 정익이 싸운 적은 원담이라고 언급하며, 공융이 유비, 태사자에게 구원을 요청한 것은 초평 연간인 191년으로 이 때 정현은 65세이지만 정현의 편지에서 곡례에 70세를 노인이라 해 가사를 잇게 한다는 것을 인용하고 있으므로 연령의 실수는 아니라고 했다.
공융전에서 건안 연간에 해당하는 196년에 공융이 원담에게 성을 공격받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정익이 죽은 것은 원담과 싸우던 때의 일로 범엽이 잘못 기록한 것이라고 했다.
2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鄭翼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안풍의 호군을 지냈고 255년에 관구검이 문흠과 함께 태후의 조서를 칭하면서 사마사의 죄상을 적어 여러 군국에 돌리고 거병했는데, 이 때 관구검이 문흠과 함께 표를 올릴 때 언급된다. 그 표문에서 사마사의 죄상으로 10가지를 언급하면서 관구검은 거병한 것에 대한 내용에서 정익은 여강의 호군 여선, 여강태수 장휴, 회남태수 정존, 독수합비호군 왕휴 등과 함께 언급된다.
관구검이 정익을 포함한 이들과 의논해 각기 누대에 걸쳐 은혜를 입었지만 천년의 병란을 만나 신명을 다할 것을 생각해 사직을 완전하게 하고 임금을 안정시키는 것에 힘쓰고자 했다고 나오는 것으로 볼 때 관구검의 거병에 가담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호군을 지낸 안풍은 220년에 여강군을 갈라서 안풍군을 신설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