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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2월 20일 생.
경상북도 문경 출신.
현재 소속은 Fuerza Popular. [1]
2010년에 높은 지지율 [2] 로 시장에 당선되고, 2014년 재선에 성공해 현재까지 역임중이다.[3][4]남미 역사상 한국인이 시장이 된 예는 처음이라고 한다. 또한 찬차마요에서 재선에 성공한 시장도 그가 처음이라 한다.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다.2015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3선에 도전하는 시장을 이기고 당선되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재선에 나서기까지 우여곡절도 있었다. 첫 시장 당선 후 2012년 신장암이 발병하고, 6개월 후 폐로 전이되었다는 판정을 받아 재선에 나서지 않을 생각이었다.
시장이 되기까지
어릴 적 가난으로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했으나, 고생 끝에 스웨터 공장을 차리고, 1남 2녀의 자식도 두었다.
1980년 첫째 딸이 몸속에 구리가 쌓이는 희귀질환으로 세상을 떠나자, 1986년 아르헨티나로 사업이민을 떠나게 된다.
아르헨티나 이민 후 스웨터 공장으로 자본을 일구었으나, 막내아들마저 큰 딸과 같은 병으로 잃고, 아내가 신장병에 걸리면서 아르헨티나를 떠나 둘째 딸이 살고 있던 미국으로 떠나려던 중 휴가차 들른 찬차마요에 정착하게 되었다.
1986년 아르헨티나로 사업이민을 떠난 정흥원은 스웨터 사업을 시작으로 음식점 사업도 하였으나, 남미의 수질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생수 사업을 시작한다. 휴가차 들른 페루 찬차마요의 자연환경에 반하게 되고 2000년부터 찬차마요에 눌러 살게 된다. 찬차마요에 살면서 빈민들이 어렵게 생활하는것을 본 정흥원은 자비로 죽을 위기에 처한 주민들을 도와주면서 점점 마을주민들에게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5]
그렇게 시장선거 시기가 다가오고 찬차마요시의 주민들의 압도적인 지지속에 당선이 된다. 시장이 된 후 가난한 도시였던 찬차마요에 병원과 체육관을 건립하고 열악한 수도시설을 정비하고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정수시설을 설립한다. 커피농가들을 살리기 위해 직거래 라인을 만들고 한국에도 수출한다.[6]
아직도 그는 병원비가 없어 시장실을 찾는 주민들에게 자비로 병원비를 대납해주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