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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시절
훌륭한 병사는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다. 묵묵히 승리를 향해 매진한다.
1 소개
Joe Frazier 미국의 복싱선수
1944년 1월 12일 ~2011년 11월 7일
182cm, 92kg , 통산전적은 37전32승4패[1]
별명은 스모킹 조(Smokin Joe) 펀치를 날리는 모습이 마치 총이 발사된 뒤 총구에서 나오는 연기와 비슷하다는 것에서 나왔다고 한다.
2 어린시절
1944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가난한 농가에서 12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조 프레이저는 필라델피아로 이사한 후 본격적으로 복싱을 하기 시작했다.1964년에 도쿄 올림픽에 예비선수로 참가했다가 주전선수가 부상을 당해 대신 출전해 금메달을 딴 후 이듬해 프로로 전향했다.
3 프로시절
파일:Attachment/조 프레이저/Eample.jpg
메디컬 스퀘어 가든에서의 알리와의 1차전.
프로데뷔 3년 만에 세계 정상의 위치에 오른 프레이저는 지미 엘리스를 상대로 5회 KO승을 거두며 헤비급 챔피언 벨트를 차지했다. 그 후 29전 29승 26전 KO 및, 3번의 챔피언 방어전 중 당대 최고의 테크니션이라 불렸던 무하마드 알리에게 판정승하는 등 승승장구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야 말로 최강이라 인식되고 있었다. 그가 나타나기 전까지만...
파일:Attachment/조 프레이저/Exple.jpg
조지 포먼 과의 대결(왼쪽이 프레이저, 오른쪽이 포먼이다.)
1973년 1월 22일 자메이카에서 둘이 붙을 당시 도박사들은 조지 포먼 보다는 조 프레이저의 우세를 점쳤는데 이것은 그 당시 조지 포먼이 펀치력이 막강하지만 수비나 테크니션이 밀리기 때문에 전적으로 프레이저가 이길거라고 보고 있었다.
그러나 스포츠는 해봐야 아는 것. 조 프레이저는 조지 포먼에게 6번 다운당한 끝에 2회 KO로 무너지고 만다.
패배의 원인은 프레이저는 당시 헤비급 권투선수치고는 작은 신장 때문에[2] 인파이팅으로 상대방에게 밀착공격을 해 사정없이 펀치공격을 하는 방식으로 이겼고, 이때 상체를 너무 숙이고 돌진하는 문제가 있었다.[3] 포먼은 신장도 프레이저보다 더 우월해 프레이저에게 밀착공격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대쉬하는 프레이저를 두손으로 밀어낸 뒤 상체를 숙이는 타이밍에 자신의 주무기인 강력한 라이트 어퍼컷을 먹여 프레이저를 다운시켰던 것. 프레이저 역시 초반부터 제법 많은 공격을 가드 사이로 꽂아넣었지만, 포먼이 똥맷집으로 버텨냈다. 그 후 무하마드 알리와의 2번의 재대결에서 패하고, 1976년 조지 포먼에게 두 번째로 패배한 후 은퇴를 선언한다.
4 말년
은퇴 후 프레이저는 고향인 필라델피아에서 권투체육관을 열고 말년까지 후배선수를 키워냈으며. 2011년 11월 7일 간암으로 인해 사망했다. 향년 67세였다.
5 무하마드 알리와의 대결
1971년 3월 8일 미국 뉴욕 메디슨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무하마드 알리와의 경기 때 15라운드까지 간 끝에 판정승으로 알리에게 첫 패배를 안긴 이 경기는 복싱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전설의 매치로 기록되었다.
그 뒤 74년 1월 28일 2차전에서 알리가 프레이저를 판정승으로 이겨 둘의 전적은 1승 1패가 되었다.
그리고 1975년 10월1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일명 마닐라의 전율이라 불리는 둘의 마지막 시합이 열렸다.
파일:Attachment/조 프레이저/pe.jpg
두 사람의 살벌한 싸움은 섭씨 38도의 더위 속에서 14라운드까지 진행됐다. 알리는 초반에 승세를 보였으나, 중반에 프레이저가 반격을 했고 알리는 ‘정글의 혈전’에 활용한 ‘로프 기대기’로 프레이저의 강공을 피했다. 후반 라운드에서는 알리가 주도권을 잡고 프레이저를 제압해 마지막 15라운드의 시작을 알리는 벨이 울렸으나 프레이저는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트레이너 에디 퍼치는 프레이저의 두 눈가가 크게 부풀어 올라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할 지경이 된 것을 보고 경기를 중단시켰고 알리는 프레이저의 3차전에서 이긴다.[4]
둘은 링 밖에서도 서로를 디스하는 관계였지만 알리와의 1차전 승리 40주년 파티에서 그는 알리를 용서한다고 말했다. 알리 또한 프레이저의 말기 간암 투병 소식을 듣고 그의 회복을 기원하는 등 말년에는 서로 화해했다.[5][6]
6 여담
-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당시 대체선수로 뛰게 된 그 역시 손가락 골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메달을 따다니....흠좀무
- 영화 록키에서 록키 발보아가 연출했던 냉동고기를 샌드백 삼아서 때리는 훈련은 조 프레이저의 실제 훈련 모습에서 따온 것이었다.
- 또한, 록키의 하이라이트 씬인 아폴로 크리드와의 타이틀 매치 장면 촬영을 위해 복싱계 인사들에게 초대장을 보냈을때 유일하게 초대에 응한 사람이었다. 100만달러짜리 듣보잡 영화를 촬영하는데 갑자기 거물급이자 필라델피아 시의 영웅이 제발로 찾아온 것때문에 제작진도 놀라서 막상 촬영 준비과정에서 프레이저를 5시간 가까이 기다리게 했었다고 한다. 그는 신경쓰지 않고 기다려줬고 프레이저는 경기 시작전 카메오로 등장해 양 선수를 격려한다. 여기서 아폴로 크리드 역의 칼 웨더스가 너무 흥분한 나머지 정말로 알리가 된 것처럼 프레이저에게 도발을 거는 돌발 상황이 연출되었다. 프레이저의 등장장면 보기.
-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아 오른팔이 왼팔보다 짧았으며. 또 백내장으로 왼쪽 시력이 거의 없었다.
- 펀치 아웃! 시리즈의 Mr. 샌드맨의 모티브가 되었다. 둘 다 필라델피아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 ↑ 이 4번의 패배는 무하마드 알리와 조지 포먼에게만 2번씩 당한 거다.
- ↑ 작은 키라고 하지만 181cm이다.
- ↑ 타이슨은 86년도에 조의 아들 마비스 프레이저와 경기를 치루게 되는데, 상체를 숙이는 버릇을 그대로 닮은 마비스에게 다가가 어퍼컷만 줄창 먹여서 30초만에 KO승을 따냈다.
- ↑ 참고로 승리한 알리 역시 링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 역시 탈진했던 것이다. 경기 이후 알리는 "프레이저를 때리다 지쳐 죽음의 공포까지 느꼈다. 그는 마치 짐승 같았다"고 털어놓았다.
- ↑ 사실 둘은 원래는 그렇게 나쁜 사이는 아니었지만 문제는 알리가 경기전에 하는 특유의 입담으로 프레이저에게 너무 멍청하게 생겼다.' '너무 못생겼다. 적어도 챔피언이 되려면 나 정도는 생겨야지.', '멍청한 백인의 장난감'이라고 하는 등의 도발을 너무 심하게 걸었고 프레이저가 그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둘의 사이가 나빠진 것이었다.
- ↑ 훗날 프레이저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개막식에서 애틀랜타 올림픽 성화의 최종 점화자로 알리가 나오는 것을 보고 성화대 위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알리를 밀어 떨어뜨리고 싶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