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키츠

불면의 밤을 지새우고 완성한 시를 아침해를 바라보며 불태워 버려도 좋다. ( 밤에 쓴 시는 오글거린다는 의미를 가진것으로 추측 정말 무식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 문장의 의미는 시는 감정의 정리라는 기능을 다했으니 더 이상의 가치를 바라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누가 작성했는지는 몰라도 반성해라.)
들리는 멜로디는 아름답지만, 들리지 않는 멜로디는 더욱 아름답다 / 그러므로 부드러운 피리들아 계속 불어라 / 육체의 귀에다 불지 말고, 더욱 아름답게, / 영혼의 귀에다 불어라, 소리 없는 노래를.

- 존 키츠의 시 <그리스의 항아리에 바치는 송가>에서(강선구 역)

나는 불사(不死)를 믿고 싶다. 나는 영원히 살고 싶다.

1 개요

존 키츠
John Keats
1795년 10월 31일 ~ 1821년 2월 23일 (폐결핵으로 사망)

단 4년 동안 활동하고도 영국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천재 낭만주의 시인. 과학이 상상력을 파괴한다는 주장에 자주 인용되는 시인이기도 하다.

2 일생

그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1795년 10월 31일 런던에서 마부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어머니는 아버지가 일하는 운수업체 사장의 딸이었다. 당시의 운수업체는 여러 대의 마차를 운영하는 것이었다. 운수업체를 물려받은 키츠의 부모는 넉넉한 살림을 꾸려갈 수 있었다.그러나 그가 여덟 살 때 아버지가 낙마로 인해 떨어져 죽었고, 어머니 또한 키츠가 열네 살 때 결핵으로 죽고 말았다. 일찌감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소년의 감수성 또한 대단히 예민했다.

어머니가 죽은 후 외할머니와 함께 살게 됐지만 할머니마저도 연로하여 세상을 떠나면서 리처드 애비를 키츠의 후견인으로 지목했다. 키츠는 후견인에 의해 외과의사 토마스 해먼드의 제자가 되어 의학 공부를 하게 되었다.

1815년 가이스 병원으로 옮겨 의학 공부를 계속했고, 이듬해 약사 자격을 얻었다. 그러나 키츠는 당시로서는 평범한 직업이었던 의사에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학업을 계속 유지하지 않았다. 키츠는 학창시절부터 관심을 가졌던 의 세계에 다시 한번 파고들었다.

1816년 채프먼이 번역한 호메로스의 시를 읽고 감명받아 '채프먼이 번역한 호메로스를 처음 읽고'라는 시를 쓰게 된다.
이 시는 지금까지 쓴 시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힘있는 작품이었다.

“시인들이 아폴론을 모신 서방의 섬들도 / 두루 돌아보고 거기에 노닐었건만 / 소문으로 익히 들으면서도 여태껏 / 깊은 이마의 호메로스가 다스리는 나라 / 그 티 없는 맑음을 숨쉬지 못했더니 / 이제 채프먼의 우렁찬 소리로서”

호메로스의 시를 알게 된 키츠는 햇살에 봄 눈 녹듯 자연스럽게 싯구가 흘러나왔다.

1817년 3월 키츠는 첫 시집 <시집>(Poems)을 펴낸다. 첫 시집은 크게 주목 받지 못했지만, 출판업자 존 테일러와 제임스 헤시에게 다음 시집의 출판을 약속 받았다. 그렇게 하여 탄생한 시가 장시 <엔디미온>이다. 키츠가 그의 대부분의 시에서 의도한 핵심적인 원리는 고뇌와 고통의 인간을 기쁘게 하기 위한 ‘미의 추구’이다. 이러한 주제가 가장 환상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시가 바로 <엔디미온>이다. 젊은 목동 엔디미온이 달의 여신 셀레네(키츠의 시에서는 신시아)와 사랑했다는 그리스 신화를 원형으로 한 시이다. 이 시의 첫 행 “아름다움은 영원한 기쁨이다”라는 선언은 키츠 시의 핵심을 대변한다. 그러나 이 시가 혹독하게 비판 받게 되자 키츠는 깊은 시름에 빠진다. 혹독한 비판을 받지 않고 어찌 위대한 시인이 탄생할 수 있었겠는가? 키츠는 분발하여 1819년에는 창작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성 아그네스 축제 전야제> <그리스 항아리에 바치는 송가> <우울에 대한 송가> 등 키츠의 명시 대부분이 이 시기에 씌어졌으니, 시련을 오히려 에너지로 삼은 결과였다. 그러나 1820년 초 결핵의 징후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면서 젊은 시인의 행진은 사실상 멈추게 된다.

“어둠 속에서 나는 듣노라, 아주 여러 번 / 포근한 죽음에 절반쯤 빠져 있었느니, / 아름다운 가락으로 그의 이름을 부드럽게 부르네, / 내 고요한 숨결을 공기 중에 흩뿌려달라고 / 지금은 죽기에 딱 알맞은 시간 / 아, 고통도 없는 이 한밤중의 숨 멎음”

(존 키츠, <나이팅게일에게 바치는 송가>에서)

사랑도 꿈도 접은 1821년 2월. 키츠의 손에는 붉은색이 도는 하얀 타원형 홍옥수가 쥐어져 있었다. 런던에서 로마로 떠나올 때의 일이었다. 키츠는 사랑했으나 그녀가 전염될 걸 우려하던 연인 페니 브론에게 “당신 없이도 내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선물을 하나 줘!”라고 주문했다. 로마로 출발하는 배를 타던 날 페니 브론은 키츠에게 그 홍옥수를 주었다.

그리고 오래가지 않은 2월 23일 만 26살도 채우지 못하고 요절하고 만다. 병으로 죽어가던 키츠 곁에는 친한 친구 홀로 자리를 지켜줬는데 밤중에 혼수상태가 되어 "괜찮아…이제 잠들 수 있을거야… 하느님 고맙습니다…이제야 이제야… 편히 잠드는군요…." 라는 유언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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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츠가 사랑했던 페니 브론(1800~1865). 1833년에서야 다른 남성이랑 결혼했지만 키츠가 그녀에게 준 반지는 죽을때까지 소중하게 간직했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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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츠의 무덤에 있는 비석에 이런글이 새겨져 있다.

이 묘에는 영국의 젊은 시인의 유해가 묻혀 있다. 죽음의 자리에서 고국 사람들의 무심함에 극도로 고뇌하던 그는 묘비에 이런 말이 새겨지기를 원했다. ‘여기 물 위에 이름을 새긴 사람이 누워 있노라.

단 4년 동안 활동하고도 영국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천재 시인이 된 존 키츠를 위해 시를 읽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