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국의 역대 국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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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勝
(?~BCE 93)
한경제의 아들 중산정왕 유승
전한 경제와 가부인의 둘째아들. 전한의 제후국 중산국의 첫 왕[1]이다.
한무제 시절, 조조(삼국지의 조조와는 동명 이인이다.)의 정책에 따라 유비(역시 삼국지의 유비와는 동명 이인이다.)가 반발하여 발생했던 오초칠국의 난 이후 경제의 뒤를 이은 한무제는 제후왕을 탄압하는 정책을 펴고 있었는데 한무제가 즉위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가 제후왕들을 불러 연회를 열였다고 한다. 이때 중산정왕은 그 자리에서 울었고, 무제가 그 이유를 묻자 이 기회를 이용하여 제후왕에 대한 적극적인 탄압 정책을 중단해 줄 것을 요청했다. 무제는 중산왕의 의견을 받아들여 제후에 대한 예를 후하게 했고, 제후왕의 일을 상주하는 일은 줄어들었다. 뭐 이렇게 했어도 시대의 흐름은 군현제로 가고 있었고 무제는 이후에도 적극적으로 제후왕들의 힘을 약화시키는 정책을 편다.
43년 동안 중산왕의 지위에 있으면서 매우 놀기 좋아하고 여색을 밝혀서 자손이 합쳐서 120여명이 넘었다고 한다. 친형 조경숙왕 유팽조는 원래 관리들이 해야 할 일을 빼앗아 직접 자기 봉국을 다스리고 있어서 팽팽 노는 자신과는 양 극단에 있었는데, 그래서 서로 까고 다녔다. 그런데 둘 다 여색 밝히는 건 비슷해서 아들이 징그럽게 많다. 기록에 남은 아들만 유팽조는 26명이고 유승은 21명. 이렇게 보면 그냥 한나라 시기의 평범한 황족으로 보이지만 촉한 소열제 유비의 조상이 바로 이 사람이라 삼국지 덕후들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이름이기도 하다.
1968년 그의 무덤이 허베이성 만성현에서 발굴되었는데, 기록으로만 남아있던 수의인 금루옥의[2] 등 많은 부장품들이 쏟아져나왔다. 금루옥의를 사용하면 유해가 부패하지 않는다고 전해내려왔으나 막상 발굴했을 때는 뼛조각 몇 개만 남아 있었다.
이것이 바로 유승의 금루옥의.
- ↑ 중산국은 원래 조나라의 지군인 상산군의 일부였는데, 오초칠국의 난 직전에 상산군을 조나라에서 회수하고, 난 직후에는 상산군을 분할해 새로 왕국으로 세우고 유승에게 준 것이다.
- ↑ 옥 조각을 금실을 이용해 엮어 만든 일종의 찰갑, 황족만 쓸수 있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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