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신

1 개요

遲受信
생몰년도 미상

마지막까지 저항한 백제부흥군 장수

백제 말기-백제부흥운동 시기의 인물. 660년 백제멸망 후 백제부흥운동은 한때 당나라군과 신라군을 위협하고 백제 복국을 이루는듯 했으나 지도층의 내분과 투항, 패전 등으로 인해 663년에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결국 백강구 전투에서 백제-왜 연합군은 나당 연합군에게 대패하면서 전세 역전의 기회도 잃게 되었다. 나당 연합군은 백제 부흥군의 주요성인 주류성, 두량윤성 등 주요 성들이 함락시켰으나, 임존성은 함락되지 않았다.

지수신은 음력 10월 21부터 시작된 신라군의 공세를 막아내고 11월 4일 스스로 물러나게 만들었지만, 신라군이 임존성 외의 백제부흥군 지역을 죄다 점령했기 때문에 임존성은 고립되었다. 결국 임존성은 당군에 투항한 흑치상지, 사타상여의 공격을 받고 함락되었고[1], 지수신은 처자를 버리고 고구려로 달아났다고 한다. 고구려 망명 이후 그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2]

2 기타

663년 9월 백촌강 전투 패배로 백제의 주요성이 투항하거나 항복한 것을 볼 때, 지수신은 최소 2달동안 농성한 것으로 보인다.

임존성 함락 이후, 백제부흥운동은 이듬해인 664년 4월 사비성에서 일어난 백제 유민 봉기도 있지만 실질적으로 임존성 함락으로 끊겼다과 봐도 무방하다. 이후 당나라부여융을 내세워 백제를 당의 위성국으로 부활해 신라를 견제하려 했으나 나당전쟁 초반인 672년 이후 당도 백제전역에서 광탈한다(...)

훗날 조선 조의 남효온, 안정복에게 절개를 지킨 충신으로 조명받았지만 크게 알려지지는 못했다. 여담으로 부여풍과 그가 대부분의 백제 유민들과 달리 고구려로 도피한 점, 백제부흥운동 시기에 고구려가 신라 변경을 친것을 들어 고구려-백제부흥군 간의 연계로 보는 설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설이라 확실치 않다.
  1. 흑치상지와 사타상여의 투항 시점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유인원 등의 대사로 보아 백강 전투 이후 백제부흥군이 기울자 당으로 투항했던 걸로 보인다.
  2. 고구려로 도망치는 것도 어려운게, 당시 한강 유역과 아산만 지역을 신라가 장악하고 있었고 웅진도독부도 존속하고 있던 시점이다. 뭐 해로를 통해 일본으로 도피가 성공한 인사들도 있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