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몰년 | 1842년 ~ ?[1] |
고향 | 전라북도 고창군 |
1 소개
조선 최초의 여류 소리꾼. 사실 여러가지가 정확히 알려진 부분이 적은 인물이다.[2] 알려진 바로는, 고창의 관기(기생)었다고 한다. 관기였던 진채선은 조선 후기 신분제도가 약해진 때에 스승 신재효의 동리정사[3]에 들어가게 되며 소리를 배운다. 일종의 도제라고 이해하면 편하다.
이 후 스승이었던 신재효,김세종과 함께 한양에서 열린 소리 대회였던 낙성연에 참여하여 장원을 거둔다. 이 때 불렀다고 알려진 노래는 춘향가, 방아타령, 성조가 이다. 여담으로 이 공연때는 남장을 하고 소리를 했다고 한다. 이것을 계기로 흥선 대원군의 눈에 들어 대령기생에 임명된다. 운현궁의 음악을 담당하는, 즉 궁녀가 된 것. 이 후 6년동안 운현궁에 머물고 1873년에 대원군이 실각하자 운현궁을 떠나 자취를 감추었다.
2 여러가지 추측
워낙에 알려진 바가 잘 없는 인물이다보니, 여러 추측들이 많다. 사실 진채선의 이야기라고 알려진 이야기들이 거의 추측이라고 보면 된다. 특히나 스승인 신재효와의 관계나 대원군 실각 이후의 행적이 그렇다.
2.1 신재효와의 관계?
스물 네번 바람 불어 만화방창 돌아오니 귀경가세 귀경가세 도리화 귀경가세 도화는 곱게 붉고 흼도 흴샤 오얏꽃이 꽃 가운데 꽃이 피니 그 꽃이 무슨 꽃고. 웃음 웃고 말을 하니 수렴궁의 해어환가 해어화 거동 보소 아리답고 고을시고 찬란하고 황홀하니 채색채자 분명하다 도세장연 기이한일 신선선자 그 아닌가 |
신재효가 진채선을 그리며 지었다고 알려진 단가, 도리화가이다. 신재효가 이것을 지을 시점에는 이미 진채선이 대령기생에 임명된 이후라 쉽게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단가의 내용이 제자와 스승간의 노래라고만 보기에는 미묘해서 둘이 연인관계가 아니었을까하는 추측이 많다. 아내를 세번이나 잃은 신재효에게 진채선이 특별하게 느껴졌을 것이라는 것. 사실 저 마지막 두 줄만 봐도 확실히 신재효에게 진채선은 특별한 존재였던 것 같다. 참고로 신재효와 진채선은 30살 차이다.
3 대중매체에서의 진채선
도리화가에서는 미쓰에이의 수지가 맡아 연기했다. 그리고 결과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