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야 키요노부

茶屋清延
(1545 ~ 1596. 7. 27)

전국시대 후기의 상인. 차야 시로지로의 초대 당주로 차야 키요타다, 차야 키요츠구의 아버지이며, 차야 아키노부의 아들.

이에야스 휘하에서 어용 상인, 밀정, 근시 등을 지낸 인물로 아버지인 아키노부 때부터 도쿠가와 가문의 어용상인인 아버지를 따라 어렸을 때부터 도쿠가와 가문에 방문하면서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겼으며, 아버지 사후에는 재산을 물려받아 도쿠가와의 어용상인이 되어 재산을 모았다. 또한 이에야스에게 성씨 사용과 도검 휴대를 허락받으면서 무사 신분의 대우를 받아 이에야스 휘하의 부장이자 근시로 1572년의 미타가하라 전투에 참전하여 공을 세워 이에야스로부터 타치바나 가문을 부여받았다고 하며, 1575년의 나가시노 전투에도 참전했다.

또한 1582년 6월에 혼노지의 변이 발생하자 혼노지 근처에 주택을 지으면서 이에야스의 숙박 준비를 담당했다가 카와치 국 카타노에 있던 이에야스에게 혼노지의 변에 대한 소식을 전하면서 이에야스를 핫토리 마사나리와 함께 호위했으며, 이에야스가 돌아가는 길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영주 지배 하에 있는 백성들을 매수하여 미카와까지 이에야스를 무사시 귀국시켰다.

1584년의 코마키 나가쿠테 전투 등에 참전해 전투에 필요한 물자 조달을 했으며, 1586년에는 이에야스가 히데요시와의 사이를 연결하도록 화해하도록 만들었다. 1588년에는 이에야스에게 고슈의 다이칸(대관)으로 임명되어 공물을 징수하는 역할을 맡았으며, 1590년에는 이에야스가 관동으로 이봉되면서 이에야스가 성의 도시를 건설하는 것에 도움을 주어 혼쵸 니죠메에 저택에 배치를 받은 것과 동시에 모리야마 5천 석을 받았다.

1591년에는 조정에 공작을 펼쳐 쿠게 카쥬지 하루토요와 친교를 가져 그를 통해 오오기마치 덴노의 어머니인 신조토 몬인에게 백조 2마리, 금 10매 등을 공물로 몰래 아첨하거나 히데요시에게도 아첨했으며, 1592년에 슈인센 무역이 시작되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허락을 받아 무역에 종사했으며, 또한 포목점을 하면서 1596년에는 이에야스 신변의 일상용품들을 구입하는 것에 중개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