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빈

蔡斌
(? ~ 1374)

명나라의 인물.

1374년 여름 4월에 자목대사를 지내다가 주원장의 명으로 임밀과 함께 고려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중서성의 공문을 보냈는데, 그 내용은 원나라를 정벌할 때 길이 험하고 멀어 많은 군마를 잃었고 다시 원정길에 오르기에 고려가 원나라 때 말 2, 3만 필을 탐라에 남겨 번식했을테니 그 중에서 말 2천 필을 가려보내라는 것이었다.

임밀과 함께 문묘를 참배했고 이 때 생도들이 읍을 하자 임밀과 달리 채빈은 일부러 답례하지 않았으며, 다시 읍하기를 기다렸지만 생도들이 모두 학사로 들어가 노했다. 이수산이 우리 나라에서는 존장에 대해 절을 올릴 때 감히 일시에 함께 읍하지 않는다고 둘러대자 채빈은 기뻐했다.

6월에는 고려에서 임밀과 함께 잔치를 참석했고 기녀가 자신의 모자에 꽃을 단정하지 못하게 꽂았다는 이유로 채빈은 화를 냈으며, 이로 인해 공민왕이 염제신을 광주로 유배보냈다. 또한 채빈은 기녀가 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고 화내면서 말을 달려 돌아가려고 했는데, 이 때문에 공민왕이 김흥경을 시켜 금교역까지 따라가 그를 달래서 데려오게 했다.

채빈은 천성이 포악해서 걸핏하면 사람들을 때리거나 욕을 퍼부어 모든 재상들이 모욕을 당했으며, 가을 7월에는 임밀과 함께 자신을 접대한 조민수, 홍상재를 발탁해 밀직으로 임명하게 하면서 자신을 모신 기생의 아버지에게 낭장 벼슬을 주도록 하게 했다.

9월에 임밀과 함께 귀국길에 올라 김의의 호송을 받아 말 3백 필을 수송하면서도 이르는 곳마다 지체해 머물렀는데, 채빈은 주정을 부려 매번 김의를 죽이려 했다가 개주참에서 채빈은 아들과 함께 김의에게 살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