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수(권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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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 시절

1972년 8월 20일생.
1995년 WBA 슈퍼 페더급 챔피언 획득. 1998년 8차 방어 실패.
2003년 프로복싱 은퇴. 통산전적 34전 29승(19KO) 1무 4패.
2006년 K-1 데뷔.
2009년 파이트머니 미지급 문제로 불화, 사실상 K-1 은퇴. 통산전적 2승 1패.

대한민국의 권투 선수 및 킥복싱 선수. 1990년대 중후반 대한민국를 대표하는 복서였다. 1995년 WBA 슈퍼 페더급 챔피언 획득 이후 7차 방어까지 성공했다. 그러나 8차 방어 실패 후 타이틀 재탈환에 실패하며 2003년에 은퇴를 했다. 최용수 이후 대한민국의 간판 복서는 조인주최요삼으로 이어진다.

WBA 챔피언 경력으로 K-1에 참가해 큰 기대를 모았다. 한편으론 세계 챔피언이었던 그가 생활고를 단단히 겪으며 고생끝에 K-1에 참가한 사실이 알려져 한국 복싱계의 암울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은퇴 이후 사기를 당한 것(5억 정도를 날렸다고 한다) 역시 진출 이유이기도 했다.

또한 최용수가 복싱계를 떠날 때, 최요삼 선수는 못내 아쉬워하면서도 자기는 끝까지 복싱을 하겠다고 인터뷰를 했다. 그러나 몇달 후 시합이 끝나자 뇌출혈로 식물인간이 되었다가 끝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져 더욱 주변을 안타깝게 하였다.

그러나 현역 시절에도 컨디션이 고르지 못하고 어떨 때는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지만, 어떤 때는 저조한 식이라 챔피언으로 롱런하지 못했다. 복싱을 그만둔 뒤로는 사업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그 때문에 택배회사에서 운전수를 했다고도 한다.

K-1 최초 데뷔전과 2차전을 승리했지만, 하필이면 다음 상대는 당시 적수가 없다던 마사토였다. 복싱에서 은퇴한지 3년이나 지난데다가 고작 2전 경력의 선수를 단체 최고의 선수와 붙이는 어이없는 매치업으로 처음부터 마사토를 위해 준비한 떡밥 매치였다는게 정설. 게다가 최용수는 현역 때 슈퍼페더급(60kg이하)인 선수를 70kg급 선수와 붙이는것 자체가...

복싱과 K-1의 결정적 차이점인 의 유무로 인해, 마사토의 상단킥 준비동작을 펀치로 착각해 고개를 숙이면서 상단을 맞은 게 원인으로 다운이 되고 만다. 결국 3라운드에 세컨에서 타월을 던져 기권패를 한다.

격투기 팬들은 약점인 킥을 보강해 조금 더 활약해 주길 바랐지만, K-1이 조금씩 막장으로 흐르면서 계약 문제로 트러블이 생겼다. 당시 K-1의 계약금이 10억이니 하는 언플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던 터라 화제를 모으기도 했지만 결국 계약금은 제대로 받지 못한듯. 결국 더 이상 격투기 무대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사실상 나이도 현재 40대이기 때문에 전성기는 지났다는 평가다.

현재 경기도 시흥시 은행동에서 복싱관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2016년 현역 복귀를 선언 했다!!
영상 그리고 4월 13년만에 경기에 나서 8라운드에 TKO승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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