킥복싱

700px

Kickboxing

キックボクシング

김화백은 킥봉식이라 한다
완득이가 하는 운동이라 카더라

1 개요

호주에서 캥거루 싸움을 보고 고안한 상형권
복싱과는 다르다. 복싱과는!!

주먹과 발,팔꿈치,무릎 등을 사용하여 상대를 타격하는 일본의 격투기.

기원은 일본의 복싱 프로모터 노구치 오사무(野口修)가 1960년대에 "무에타이vs가라테", "무에타이vs복싱" 등의 시합을 고안했고, 이것이 태국일본에서 흥행한 데 있다. 무에타이에 자극받은 오사무는 1966년에 킥복싱이라는 명칭을 고안하고 일본의 복싱이나 가라테 선수를 모아 "일본 킥복싱 협회"를 만들어서 시합을 시작한 것이 킥복싱의 시초.

일본에서는 ""이라고 줄여 부르기도 한다.

2 역사

1963년에 극진공수도의 선수였던 쿠로사와 켄지, 나카무라 타다시, 노보루 오자와가 룸피니 스타디움에 나가서 싸우게 된 것을 킥복싱이 만들어진 계기로 본다. 이 시합에서 나카무라와 노보루는 승리를 거두지만 정작 리더격이었던 쿠로사와 켄지는 참패를 당한다. 종합성적은 2-1로 극진측의 승리였지만, 시합 패배 후 무에타이의 강력함을 실감한 쿠로사와 켄지는 공수도의 스타일을 살리면서 복싱 펀치와 무에타이 시합룰을 응용해 킥복싱 체육관을 만들게 된다. 이것이 사실상 최초의 킥복싱 체육관이다. K-1을 즐겨보는 사람들이라면 명문 킥복싱 체육관으로 유명한 메지로, 챠쿠라키, 보스, 골든 글로리 등을 알고 있을텐데, 전부 일본에서 영향을 받았다.

60년대, 70년대 초에는 일본의 4개 전국 지상파 방송국에서 킥복싱을 방송할 정도로 크게 흥행했지만, 오일쇼크등의 영향으로 급격히 침체하였다. 딱히 "킥복싱"이라는 단어에 상표등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 킥복싱 협회를 추종해서 "킥복싱"이라는 이름을 붙인 단체가 여러개 난립한 것도 한 가지 원인이다.

낙무아이 쪽에서는 무에타이를 베낀 거나 다름 없는 이 종목이 Thai Boxing이 아니라 Kickboxing이라는 독자적인 이름을 쓰는 것이 상당히 불쾌한 듯 하지만, 일본에서는 킥복싱을 시작할 때 초창기 일본측 선수는 거의 복싱 아니면 풀컨택트 가라테 출신으로 무에타이와 아무 상관 없는 선수가 대부분이었다는 것을 이유로 들어 킥복싱과 무에타이는 일단 별개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현재는 일단 경기 형식의 기원은 무에타이, 인적 자원의 기원은 풀컨텍트 가라테와 복싱 정도로 정리한다. 이를 두고 어거지 실드질이라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킥복싱을 수련해 본 사람이라면 수련방식이나 여러가지 면에서 무에타이와는 제법 차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대략 복싱의 펀치에 가라테의 킥[1]을 조합한 다음 부족한 부분을 무에타이로 보완하는 스타일이 일반적. 일본의 킥복싱 체육관에서는 전직 프로복서를 펀치전담 코치로 고용하는 경우도 많다. 당연히 무에타이에 비해서 빰 클린치에서 상당히 약하다. 일본에서도 빰 클린치 보강책을 위해서 태국으로 무사수행을 갔다 오거나, 태국인 무에타이 선수를 코치로 영입하는 경우도 많다.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알게모르게 차이가 조금씩 있다보니 킥복싱과 무에타이의 양쪽 대회가 모두 활발한 일본의 경우 '킥복싱 강자'와 '무에타이 강자'가 나뉘는 경우도 많다.[2]

사실 킥복싱은 제대로 정의조차 되지 않은 마케팅 용어에 가깝고, 이 종목이 등장한 20세기 중반의 무에타이계는 폐쇄적이라 외국인이 쉽게 섞여들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물론 당시 일본으로 초청된 무에타이 선수들은 일본 무술인들에게 꽤나 개방적인 편이었으므로 도입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도입할 수 있었다. 킥복싱의 태생 자체가 '자기수련'이나 '정신수양'을 목적하는 무술이라기 보다는, '시합을 전제로 한 흥행'을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컨텐츠적인 측면이 강하므로 정통성보다는 시합 자체를 기준으로 발전하게 되고 그 시합이라는 게 무에타이의 시합 룰을 바탕으로 만들었으니 무에타이를 닮게 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비슷한 케이스로 약간 맥락은 다르지만 실전성을 위해 가라테에 온갖 타격기와 유술기를 넣어서 MMA와 비슷해져 버린 대도숙 공도가 있다.

다만 상술한 대로, 역사•기술적 관점이든 경기적 종목이라는 측면이든 무에타이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건 사실이다. 일본 내에서도 킥복싱과 무에타이를 딱히 차이를 인식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3] 킥복싱과 무에타이는 비슷한 부분이 많은만큼 교류도 활발하며, 킥복싱 단체를 자칭하다가 하루 아침에 무에타이 단체로 간판을 바꿔달기도 하고[4], 반대로 무에타이 단체끼리 연맹을 조직하려 할 때 킥복싱 단체가 끼어들기도 하는 판국으로[5] 상호 간에 아무런 차별 의식이 없이 그냥 간판만 하나 더 있는 수준이다.[6] 서양에서는 더해서 아예 무에타이를 킥복싱으로 부르기도 했다.[7]

킥복싱 단체의 분열이 너무 심해서 독자성을 주장하는게 의미가 있을 정도로 강력한 단체 조직을 형성하지 못하다보니, 무술 경기로서 가치를 높이기 위하여 '뿌리' 의식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서 킥복싱과 유사하면서도 조직 인프라, 기술적으로 훨씬 발달한 무에타이에 킥복싱의 정통성을 소급하는 모습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21세기 들어 종합격투기가 크게 성장하면서 주요 킥복싱 단체들이 종합격투기 단체들과 선수를 교환하거나 공동대회를 개최하기도 하고 체급체계도 종합격투기와 유사하게 구성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킥복싱 강자로 불리던 네덜란드만해도 아예 대회 자체를 금지하려고 하는 규제들이 있다 [1]

3 룰과 경기 진행

룰이나 선수의 복장 등 무에타이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8] 언뜻 보기에는 무에타이와 거의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룰을 이리저리 개정해왔고 지금은 단체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예를 들자면 격렬한 펀치와 킥 공방을 보기위해 팔꿈치와 클린치를 금지시킨다든지, 선수 보호를 위해 니킥을 아예 금지시킨다든지, 흥행을 위해 무에타이에서 금지하던 박치기 등도 허용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전체적으로 안전과 유혈사태를 피하기 위해 금지 기술이 많은 편이다. 같은 단체의 시합에서도 시합별로 엘보의 유무 등의 룰을 조정하기도 한다. 또, 빠르고 박진감 있는 시합을 위해 펀치와 킥 콤비네이션을 중점으로 운영한다.

아메리칸 풀컨택 룰은 일본식 킥복싱 룰(위에 열거된 대표적인 룰)과 상당히 다르다. 트렁크도 다리를 전부 가리는 롱 사이즈고 허리 아래의 공격, 그러니까 로우킥이 금지된다. 대신 화려한 킥과 다채로운 펀치 스킬을 감상할수 있지만...이제는 크게 쇠퇴해서 찾아보기 어렵다. 주로 복싱이나 전통 가라데 혹은 태권도 베이스 선수들이 충원되며, 비탈리 클리츠코가 이 룰로 시합을 가졌던 적도 있다. 장 클로드 반담의 킥복싱 영화 '어벤져'시리즈 역시 이 룰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한동안 유명했던 킥복싱 계열 단체로는 K-1이 있다. 때문에 사람들이 K-1룰이 킥복싱룰과 동일한것으로 착각하곤 하는데, 사실 K-1이 특이한 거였다. K-1룰은 무에타이와 킥복싱 양쪽과 다른 자체적인 색깔이 강했다. 굳이 따지자면 풀컨택트 가라테 파이터와 킥복싱 파이터 양쪽 모두에게 딱히 불리하지 않게 하려고 룰을 준비했더니, 무에타이 선수들이 약간 불리해진 경우(...). 자세한건 K-1항목에 설명이 되어있다.

하지만 원래 킥복싱은 단체마다 규칙이 조금씩 달랐고 K-1 역시 이러한 '광범위한 킥복싱'이라는 범주에서 보자면 크게 차이가 없다. 일본에서도 K-1은 '킥복싱 단체의 일종'으로 파악하고 있다. K-1 외의 킥복싱 계열 단체로는 해외에는 Glory, Superkombat, Kunlun Fight 등이, 국내에는 Max FC, MKF, TAS 등이 있으며, WKA, WAKO 등의 국제 기구도 존재한다.

4 킥복싱 관련 인물

순수 킥복서뿐 아니라 무에타이, 복싱, 가라테, 태권도, 종합격투기, 씨름, 스모 등 타 종목 출신으로 킥복싱 경기를 했던 선수들 또는 선수가 아닌 단체 관계자도 포함.

4.1 실존 인물

4.2 가상인물

  1. 가라테의 저변이 약한 한국에서는 태권도의 킥을 조합하는 체육관도 많다.
  2. WMF세계 무에타이 연맹 라이트 헤비급 세계 챔피언을 지냈던 가류 신고가 킥복싱에서는 그저 그런 중견밖에 안됐던 것이 대표적인 예. 쁘아까오처럼 양쪽 다 날고 기는 선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3. 킥복싱 단체와 무에타이 단체의 당사자는 그 구분에 대해 민감한 경우가 많으므로 매스컴이나 공식적인 부분에서는 확연히 구분한다.
  4. 물론 킥복싱 단체가 그 모습 그대로 무에타이 단체가 되어버리는 게 아니라, 킥복싱 체육관에서도 무에타이 대책을 위해서 무에타이 선수를 코치로 고용하기도 하고, 태국에 무에타이 유학을 보내는 등 무에타이의 요소를 많이 도입하다가 말 그대로 '전향'을 하는 것이다. 그 때는 당연히 이름만 바꾸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무에타이 선수를 영입해서 전체적인 개편을 실시하는 게 일반적이다.
  5. 이 부분은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를 무에타이로 본다기 보다는 태권도장에서 킥복싱 대회에 선수를 보내는 것 처럼 '무에타이계에 진출한 킥복서'라는 식의 인식으로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관계자가 아닌 일반인이 보기엔 그게 그걸로 보이기 딱 좋은 상황.
  6. 이 역시 상술한 대로 '킥복싱'이란 이름을 붙인 단체가 마구 난립했기 때문. 킥복싱 생성 초기 이후의 사람들이 보기엔 도저히 둘을 구별할 수 없기 때문에 단체나 도장을 세우는 사람들조차 헷갈려서 마구 이름을 붙인 결과다(...)
  7. 장 클로드 반담의 영화 Kickboxer(국내 개봉명:어벤저)에서도 "진정한 킥복싱 챔피언이라면 태국 챔피언에게 이겨야한다"라며 대놓고 같은 종목으로 취급한다.
  8. 초반에는 대놓고 무에타이의 룰을 참고로 룰을 만들었다. 킥복싱 업계에서도 공식적으로 초반에는 시합의 룰만큼은 무에타이의 룰을 차용했다고 인정하고 있으며 딱히 독자적이라고 주장하는 움직임은 없다. 다른 전통무술 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서 확립되어온 게 아니라 현대에 들어와서 만들어진 후발주자인만큼 효율적인 보급을 위해서 시합의 룰도 입식격투에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무에타이의 룰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9. 선수 커리어 거의 전부를 종합격투기 선수로 뛰었으나 2004년 딱 한번 K-1 서울대회에 참가했다가 카오클라이 카엔노르싱에게 실신 KO패를 당했다. 당시로서는 카오클라이가 무명이어서 굴욕 취급을 받았으나 카오클라이가 쌓았던 태국 본토 무에타이 무대에서의 전적이나 이후 K-1에서의 활약상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10. 링네임 '무사시'로 잘 알려진 선수.
  11. 종합격투기 선수이지만 하룻 그리고리안과 킥복싱 경기를 갖고 패배한 경력이 있다.
  12. 가라테 정도회관 관장이자 K-1의 창립자.
  13. 공식적으로 유파는 킥복싱이지만 무에타이 기술도 많이 도입되어 있다.
  14. 5부터는 후배 캐릭터인 브라이언과의 차별화를 위해 무에타이 스타일로 바뀐다.
  15. 이쪽은 에스크리마 킥복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