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Chico Mendes (1944.12.15~1988.12.22)
본명은 프란시스코 아우베스 멘데스 피유(Francisco Alves Mendes Filho).[1] 브라질의 환경운동가이며, 아마존 보전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2 생애
2.1 성장과 투쟁 운동의 시작
브라질 아크리 주 사푸리 시 외곽의 산타페 마을에서 프란시스코 멘데스와 이라체 멘데스 사이의 17형제 중 하나로 태어났다.치코는 브라질에서 '세렝구에이우'라고 불리는 고무농장 채취 노동자 집안의 2세로 그 또한 9세부터 고무 채취 일을 하기 시작했다.치코는 학교를 전혀 다니지 않았으며 18세 때까지 글을 읽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은 노동자들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어 그들이 당하고 있는 비합법적인 노동과 학대의 실상을 알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노동자들의 자식들이 학교를 다니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1960년대 국제 고무 가격이 폭락하고 전통적인 고무 플랜테이션 농장이 전혀 이익이 되지 않자, 아마존의 고무 플랜테이션 자본들은 대거 축산업으로 전향했고, 농장을 만들기 위해 고무나무들과 밀림의 나무들이 벌목되기 시작해 아마존의 밀림은 심각하게 훼손되기 시작하였다.치코의 고향이자 주요 고무 생산지역이었던 사푸리에서도 18만 그루의 고무나무들이 벌목되었고 밀림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또 고무나무들이 벌목되자 고무 채취 노동을 해서 생계를 이어가던 세렝게이우들은 생존권에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세렝게이우들은 생존 투쟁을 시작했고 치코는 그 투쟁의 중심에 서게 된다.
2.2 고무 노동자 생존권 투쟁과 아마존 보존 운동
1970년 '사푸리시 고무채취 노동자 연합'이 결성되었고, 치코는 이 연합의 회장으로 선출되었다.또 노동자당 소속으로 아크리 주 의회에도 진출하였다.치코는 사푸리시 연합의 회장으로써 고무채취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을 벌임과 동시에, 브라질 전역의 고무나무 채취 노동자들의 연합을 결성하기 위해 노력했고, 마침내 1985년 '전국 고무채취 노동자 평의회'가 창립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1985년에 브라질리아에서 이 연합의 첫 총회가 개최되었다. 브라질 전역에서 고무나무 채취 노동자들이 모여든 이 총회의 의제는 고무 채취 노동자들의 생계 문제 뿐 아니라 축산업과 아마존 개발로 인한 밀림 파괴 문제로 확산되었다.이 총회에서 연합은 국제적 환경운동들과의 폭넓은 연합을 결정했다.또한 이 총회에서는 'Extractive Reserves'[2]라는 개념을 정립하였다.1987년 치코는 미국의 비정부기구 미국 야생동물 연맹과 환경 보존 기금의 초청을 받아 미국 의회와 미 대륙간 개발 은행, 세계은행이 'Extractive Reserves' 설치 운동에 대한 후원을 해 줄 것을 요청하기 위해 워싱턴 D.C.를 방문하였다. 또 국제연합 환경 계획에서 시상하는 '세계 500인' 상을 수상하였다.
1988년 치코는 축산업자 달리 아우베스 다 실바가 보존하기로 계획된 밀림을 개발하는것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전개하였다.또 달리 아우베스가 다른 주에서 개발 과정에서 저지른 살인 혐의로 그를 고소하기 위해 연방 경찰에 고소장을 전달하였으나 묵살되었다.
2.3 암살
1989년 12월 22일 치코는 그가 고소하려고 했던 축산업자 달리 아우베스와 그의 아들, 직원에 의해 그의 집에서 살해당하였다.
아마존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열대우림의 자연을 지키기 위해 거대 자본과 그것을 옹호하는 공권력에 정면으로 맞섰던 치코의 생애는 여론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지역 정부와 연방 경찰이 묵인했던 치코의 암살사건에 대한 재판을 위한 여론이 급격하게 형성되었다.결국 치코의 암살범 달리 아우베스와 그의 아들 달리 아우베스 주니어,그리고 암살에 참여했던 아우베스 회사의 직원 제르데이르 페레이라에게 징역 19년형이 선고되었다.치코의 암살사건은 전 세계로 보도되었고 치코의 생애와 죽음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전 세계가 아마존의 열대우림 보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 전 세계적으로 아마존 열대우림 보존을 위한 여론이 일어남에 따라 치코가 주장하던 'Extractive Reserves'의 설치가 브라질에서 실현되었다.
폴 매카트니는 치코의 삶을 기리는 'How many people'이라는 곡을 발표했으며, 소설가 루이스 세풀베다는 치코에게 헌정하는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이라는 소설을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