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olus Martell(680년 8월 23일 ~ 741년 10월 22일)
샤를 마르텔, 카를 마르텔, 찰스 마르텔 등으로 불린다. 프랑크 왕국의 궁재로 카롤링거 왕조를 개창하는 피핀 3세의 아버지이다.
원래 그는 프랑크 왕국의 궁재로 사실상 전국을 장악했던 피핀 2세의 서자로 태어났다. 714년 12월 피핀 2세가 죽었을 때 피핀 2세의 적자들이 사실상 다 죽은 상황이었고, 남은건 적자의 손자들밖에 없었다. 그러던 상황에서 피핀 2세의 지위를 조카들이 받는 것을 못마땅한 카롤루스 마르텔이 아버지의 유언을 무시하고 정국을 장악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반란들을 죄다 제압하면서 719년에는 프랑크 왕국의 유일한 궁재로 자리 잡게 된다.
카롤루스 마르텔은 각종 정복전쟁을 펼치며 영토를 확장시켰으며, 성당과 수녀원의 토지와 재산을 압수하면서 교회세력을 자신의 세력 아래에 두었다. 그렇게 안정적으로 프랑크 왕국을 이끌던 그는 이슬람 제국 우마이야 왕조의 유럽 침공을 맞게 된다. 그리고 그 유럽 침공을 732년 투르-푸아티에 전투에서 막아내면서 그야말로 유럽을 지킨 사나이가 되었다.
이슬람을 막아낸 이후 군제개혁을 시도하여 이슬람 기병대를 모델로 기병집단을 양성하기 시작했으며, 이들 기병집단의 전투력을 유지시켜주기 위한 경제적 기반으로 수도원 등 교회로부터 빼앗은 토지를 지급하면서 충성맹세를 받았다. 이것이 바로 은대지 제도이며 중세 봉건제도의 기원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737년 프랑크 왕이 사망하자 왕위를 비워두고 왕위에 오를 시기를 노렸던 것으로 추정하나, 741년 왕위에 오르기도 전에 죽게 된다. 그가 장악했던 궁재직은 장남 카를로만과 차남 피핀에게 이어지게 되고, 이후 차남 피핀이 궁재직을 독차지한 연후 허수아비왕인 메로빙거 왕을 몰아내고 교회와 손 잡고 카롤링거 왕조를 개창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