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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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왕국프랑크 왕국서프랑크프랑스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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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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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군트 왕국메로빙거 왕조카롤링거 왕조카페 왕조발루아
왕조
부르봉
왕조
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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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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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라(모데나),파르마,몬페라토,루카,등등




로마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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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왕국





































그리스


비잔티움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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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 로마 제국

오스트리아 변경백국
오스트리아 공국
오스트리아 대공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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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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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바벤베르크
가문
프르셰미슬
가문
합스부르크
가문
합스부르크 가문


프랑크 왕국
Regnum Francorum
[1]
481년 ~ 843년
위치중서부유럽
수도투르네(431년 ~ 508년)
파리(508년 ~ 768년)
정치체제군주제
국가원수
언어고대 프랑크어,[2] 라틴어
종교아리우스파가톨릭
주요사건481년 건국
800년 카롤루스 황제 등극
843년 베르됭 조약 → 서, 중, 동으로 분할
통화디나르
성립 이전서로마 제국
프리시 왕국
게르마니아
멸망 이후서프랑크 왕국
중프랑크 왕국
동프랑크 왕국
오늘날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벨기에
체코(일부)
스페인(일부)

1 개요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의 기원이 되는 국가.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로마의 이름을 차지한 나라[3]

게르만족의 일파인 프랑크족이 세운 나라. 현재의 프랑스와 독일, 체코,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스위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중북부, 이스트리아 반도를 위시한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일부, 스페인 북부 지방[4]크고 아름다운 영토로 가지고 있었으며, 영국아일랜드를 제외하고 로마제국 이후로 서유럽통일한 나라. 설명이 뭐이래.. 차라리 내꺼 아닌 영토 빼고 다 통일한 나라라고 해라. 그런데 영국, 아일랜드는 북유럽으로 분류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서유럽 완전통일을 달성했다고 볼 수도 있음.

후대 여러 유럽 왕위에 영향을 끼친 살리카법이라는 법전을 편찬하기도 했다.


2 역사

2.1 메로빙거(메로비우스) 왕조

메로빙거라는 이름은 창시자라고 알려진 프랑크족 족장 메로베치에서 유래한다. 메로베치는 서로마 제국의 군인으로 용병 출신이었다. 메로베치는 서로마 제국군 사령관을 지내기도 했으며 그의 아들인 힐데리히 1세는 서로마 제국에서 용병대장을 지내기도 했다. 사실상 메로빙거 왕조를 건국한 건국자는 힐데리히 1세의 아들 클로비스 1세로 세력을 쌓고 수와송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프랑크족을 통일했다. 그는 파리로 수도를 옮겼으며 이전까지 믿던 아리우스파 기독교를 버리고 가톨릭을 받아들여 486년 교황 펠렉스 3세에게 세례왕관을 받았다.

하지만 메로빙거 왕조는 살리카법으로 인한 분할 상속으로 분열과 통합을 반복하며 서서히 권력을 잃어버렸으며 궁재(宮宰. 프랑크 왕국의 재상)를 차지하고 대대로 세습하던 카롤링 가문이 점차 세력을 강화해 나가다가 카롤링 가문의 피핀 3세[5]가 751년 메로빙거 왕조의 마지막 왕 힐데리히 3세를 폐위하고 카롤링거 왕조가 성립되었다.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다고는 하지만 메로빙거 왕조 시기만 해도 프랑크 왕국의 왕권에는 그리스도교 요소만이 아니라 게르만족의 전통적인 요소가 많았다. 메로빙거 왕은 머리를 길게 기르고, 황소를 타고 외출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는 게르만 전통에 따라 신성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메로빙거 왕조의 마지막 왕 힐데리히 3세는 폐위 당하면서 머리를 짧게 잘리고 수도원에 유폐를 당했다.


2.2 카롤링거(카롤루스) 왕조

카롤링 가문의 영화는 아우스트라시아의 궁재 피핀 1세에서 시작되었다. 피핀 1세의 외손자 피핀 2세는 687년 텔토리 전투에서 프랑크 왕국의 실권을 잡았으며 피핀 2세의 서자였던 카롤루스 마르텔이 732년 투르-푸아티에 전투에서 우마이야 왕조를 격퇴하면서 이슬람군의 침략을 막아내면서 군사적 권위를 얻었다. 이는 이슬람의 침입으로부터 서유럽을 방어했다는 의의가 있다. 카롤루스 마르텔은 내란으로 잠시 공석이 되었던 왕위를 대신하여 메로빙거 왕조를 통치하기도 했지만 감히 왕위까지는 넘보지 않았다.조조? 하지만 그의 아들 피핀 3세는 메로빙거 왕조의 힐데리히 3세를 폐위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교황 자카리아는 피핀 3세에게 힐데리히 3세의 폐위를 종용했기 때문에 그의 왕위를 인정했다. 피핀 3세는 754년 롬바르디아 왕국을 격파하고 교황 스테파노 2세에게 라벤나 일대의 토지를 기증하여('피핀의 기증'이라 함) 교황령의 시초를 만들었다.

그 아들이 바로 그 유명한 카롤루스 대제, 즉 샤를마뉴이며 800년 교황 레오 3세에게 로마 제국 황제의 칭호를 받아 신성로마제국의 시초가 되었다. 하지만 샤를마뉴의 아들 경건왕[6] 루이 1세[7] 때 3명의 아들 로타르, 루트비히, 샤를[8]에게 나라를 각자 분할해주면서 카롤링거 왕조는 세 개삼국지로 쪼개지고 만다.


2.3 분열

840년 로타르는 프랑크 왕국의 단독 통치자가 되려고 했으나, 다른 두 형제들의 저지를 받았다. 세 형제는 이미 각각의 왕국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는데 로타르는 이탈리아, 루트비히는 바이에른, 그리고 샤를은 아키텐을 소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세 형제는 843년 프랑스 북부의 베르됭에서 만나 베르됭 조약을 맺었는데 결국 왕국은 3개로 분할되었다.신나는 삼국지!아하!

로타르는 제국의 중앙 부분인 로타링기아, 알자스, 부르고뉴, 프로방스, 이탈리아 왕국[9]을 가지고 루트비히는 제국의 동쪽 부분인 라인강 동쪽에서 이탈리아 북동쪽에 이르는 지역을 가지고 샤를은 제국의 서쪽 지역인 라인강 서쪽에서 이탈리아 북서쪽에 이르는 지역을 가진다.

서유럽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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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랑크 왕국
  • 중프랑크 왕국: 장남 로타르 1세의 나라. 중심지인 로타링기아를[10] 비롯한 중부 영토, 이탈리아 영토, 로마 제국 황제 칭호를 받았다. 따라서 왕에 불과한 동프랑크 왕국, 서프랑크 왕국을 명목상으로 지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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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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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키텐: 차남 피핀 1세의 영토. 하지만 피핀 1세는 839년 사망했기 때문에 형제들의 상속 전쟁에 끼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 루트비히 1세는 아키텐을 샤를 2세에게 넘겨주려 했지만, 아키텐의 귀족들은 집단으로 반발했다. 이에 아키텐의 귀족들은 피핀 1세의 아들 피핀 2세을 지지하여 루트비히 1세는 결국 피핀 2세를 인정하였다. 그러나 855년에 샤를 2세는 피핀 2세를 사로잡고 축출했으며, 피핀 2세의 동생 샤를은 강제로 수도사로 만들어 아키텐을 강제로 뺏어버렸다.

855년 로타르 1세가 죽자 중프랑크 왕국은 프룀 조약을 통하여 그의 세 아들 장남 루트비히 2세, 차남 로타르 2세, 막내 샤를 2세에게 또 다시 분할되었다. 루트비히 2세는 이탈리아, 로마 제국 황제 칭호, 로타르 2세는 로타링기아, 샤를 2세는 프로방스, 부르고뉴를 나누어 가졌다. 863년애 샤를이 후사 없이 죽자, 그의 두 형은 샤를의 영지를 나누어 가졌는데, 부르고뉴 북부 지역은 로타르 2세가 가졌고 부르고뉴 남부와 프로방스는 루트비히 2세가 가졌다. 869년애 로타르 2세가 죽었다. 그는 서자였던 위그 외에는 후계자가 없었다. 위그는 계승자를 선언했지만, 결국 그들의 숙부들인 동프랑크 왕국의 루트비히 2세와 서프랑크 왕국의 샤를 2세는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두 숙부들은 870년에 메르센 조약을 맺어 로타링기아를 동서로 나누어 가졌다. 875년에는 이탈리아의 루트비히 2세가 후사 없이 죽었는데, 이탈리아, 부르고뉴 남부, 프로방스, 그리고 로마 제국 칭호는 모두 서프랑크 왕국의 샤를 2세가 가졌다. 그러나 877년에 샤를 2세가 사망하자, 이탈리아, 부르고뉴 남부, 프로방스, 그리고 로마 제국 칭호는 그의 조카이자 동프랑크 왕국의 카를만[11]에게 넘어갔다. 이탈리아는 동프랑크 왕국이 대대로 소유하다가 동프랑크 왕국 멸망 후 962년 신성로마제국오토 1세가 가지게 되었다. 어쨌든 이렇게 중프랑크 왕국은 여러 번 찢어지고 나뉘어지는 과정을 거쳐 결국 몰락하였다.

이후 동프랑크 왕국은 루트비히 2세의 증손자 유아왕 루트비히 4세가 911년 후계자없이 사망하여 망했다. 서프랑크 왕국은 샤를 2세의 5대손 무위왕 루이 5세가 987년 후계자없이 사망하여 망했다. 서프랑크 왕국에서는 일드프랑스(Île-de-France, 파리)의 백작 위그 카페[12], 동프랑크 왕국에서는 프랑켄 공 콘라트 1세[13]가 왕위에 선출되어 독일과 프랑스는 완전히 분리되었고 이것은 오늘날 까지 계속되고 있다. 참고로 위그 카페는 계속 대를 이어 카페 왕조를 이루었고 방계 왕조인 발루아 왕조, 부르봉 왕조를 이루며 절륜한 가계를 자랑했지만 콘라트 1세는 딸 쿠니군데 외에는 아들 헤르만이 요절하여 후계가 단절되고 만다. 또한 헝가리지역에서 마자르족이 계속 동프랑크 왕국과 바이에른을 침공했으며, 결국 콘라트 1세는 죽기전에 왕국내에서 가장 강력한 영주였던 작센의 하인리히 1세에게 왕위 계승권을 주게 되었다. 하인리히 1세의 아들이 오토 대제이며, 이후 동프랑크의 역사는 신성로마제국으로 승계되었다.

3 비잔티움 제국과의 관계

당연히 사이가 좋지 않다. 일단 비잔티움, 또는 동로마 제국의 입장은 자신들이 유일한 로마 제국이며, 따라서 프랑크 왕국이 신성 로마 제국이라는 칭호를 받는것은 비잔티움 제국이 로마 제국이 아니라고 하는것과 똑같기 때문이다. 또한, 프랑크 족이 원래 서로마 제국의 밑에 있던 야만족중 하나임을 고려하면 동로마 제국 입장에선 신하한테 자신들의 직위를 뺏긴거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4 관련 문서

  1. 843년경 베르됭 조약으로 나뉜 프랑크 왕국.
  2. 놀랍게도 이 언어의 직계 후손뻘 되는 언어는 다름아닌 네덜란드어이다.
  3. 물론 이는 정치적 필요에 의해 그렇게 된 것으로, 사실 대의명분에 불과하다.
  4. 바르셀로나를 위시한 북부 카탈루냐 지방.
  5. 대(大) 피핀으로 일컬어지는 피핀 1세, 중(中) 피핀으로 일컬어지는 피핀 2세와 구별해서 소(小) 피핀이라고도 한다.
  6. 또는 자비왕
  7. 독일어로는 루트비히 1세
  8. 로타르와 루트비히는 친형제였으나, 샤를은 이복형제였다.
  9. 이탈리아 반도 북쪽 절반
  10. 이 곳이 바로 훗날의 알자스-로렌이 되는 '로렌'('로트링겐') 지방이다.
  11. 동프랑크 왕국 루트비히 2세의 장남
  12. 할머니가 카롤링거 왕조 루트비히 1세의 딸 아델라이드였기 때문에 왕족의 후손이었다.
  13. 어머니가 동프랑크 왕국 아르눌프의 딸 글리스무트였기 때문에 그 역시 왕족의 후손이었다. 동프랑크 왕국 마지막 왕 루트비히 4세는 그보다 나이가 어렸지만 아르눌프의 아들이기 때문에 항렬 상으로는 루트비히 4세는 외삼촌이었고, 콘라트 1세는 외조카에 해당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