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루트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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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zherzog Karl (1771년 9월 5일 ~ 1847년 4월 30일)

나폴레옹 전쟁의 마르켈루스.
전쟁 황제가 가린 19세기 초 유럽의 숨은 명장.

목차

개요

레오폴트 2세의 아들이자 오스트리아대공으로 프랑스 혁명전쟁나폴레옹 전쟁 당시 연합군 사령관으로 신성 로마 황족. [1] 이미 약관의 나이부터 몸소 전투를 지휘하여 연전연승해 네덜란드 방면의 총독까지 역임했고, 이후 나폴레옹 전쟁을 맞아 젊은 나이로 맹활약하며 연합군측의 뛰어난 지략가로 이름을 날렸다[2].

나폴레옹 전쟁 당시 휘하 원수들, 그중에서도 최고급인 앙드레 마세나를 격파한다던가 장 란을 전사시킨다거나 하는 가공할 수준의 전적을 올렸다. 물론 앙드레 마세나도 칼디에로 전투(1805년)에서 이것을 복수하는데 성공하긴 한다. 아무튼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웰링턴, 쿠투조프와 함께 나폴레옹을 상대할 수 있었던 당대 얼마 없는 적수 중 하나.

단, 카를의 가장 큰 불운은 상대가 나폴레옹이었다는 점이다. 1809년에 아스페른 에슬링 전투에서 나폴레옹 인생에 손꼽히는 패배를 안겨주었지만[3], 불리한 상황에서 바그람 전투에서 몸소 총지휘권을 쥐고 나폴레옹과 쌍방 모두 거의 전군을 동원하여 건곤일척 승부를 벌였지만 결국은 패전했다. [4] 이후 그 책임을 통감하고 이후로는 나폴레옹 전쟁에 가담하지 않았다. 말년에는 테셴의 공작 직위를 누리며 전술서 집필 등으로 활약했다.
  1.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친동생이라는 당시 지휘관들 중에 최고의 신분으로 (러시아의 근위대 지휘관인 차르의 친동생 콘스탄틴 대공 정도만 같은 위치다.) 네임드급 인물 중에는 독보적이다. 마부의 아들로 병사 출신의 장 란과 비교하면(...)
  2. 당시 나이가 고작 20대 후반~30대였다. 나폴레옹도 나폴레옹이지만 이쪽도 ㅎㄷㄷ.
  3. 란이 전사한 전투로, 전역 자체가 나폴레옹에게 더 좋았던 상황이었음에도 그를 패배시켰다.
  4. 승패여부를 제외하고 사상자만 따졌을 경우 프랑스군과 오스트리아군의 피해는 오스트리아군이 약간 더 많은 정도로 별 차이가 없었다. 만약 양측의 병력이 비등하지 않고 카를 측의 병력이 더 많았다면 나폴레옹을 이겼을 가능성도 있다. 사실 나폴레옹으로서도 큰 피해를 감수하고서까지 이기지 않으면 안 되는 전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