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에 지다

칼에 지다
미부의사전(壬生義士傳)

1 소개

일본의 소설가 아사다 지로가 오랜시간 조사와 집필 끝에 내놓은 시대소설이다. 막부 말 활동했던 신선조의 무사로 활동했던 요시무라 칸이치로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다만, 실제로 책에 쓰인 그대로 활약했다고 보기에는 어렵고, 그 당시 시대적 사실이나, 사건을 통해 재구성한 가상 주인공에 가깝다. 작품은 신선조가 사실상 해체되었던, 도바-후시미 전투를 기점으로 시작하여, 여러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서 당시 막부말의 혼란기는 어떠했는지, 그 시대 일본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땠는지를 주인공 요시무라 칸이치로와 신선조를 중심으로 전한다.

2 줄거리

눈이 내리던 어느 날 밤. 에도에 있는 한 커다란 다이묘 저택으로 찾아온다. 그 무사는 자기가 탈번한 무사 요시무라 칸이치로임을 밝히고, 번의 중신 오노 지로우에몬과의 인연을 빌미 삼아 다시 들어가기를 청한다. 처음에는 무시당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들어온 칸이치로는, 번의 이름과 무사도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어린 시절 죽마고우였던 지로우에몬에게 할복을 명받는데...

3 특징

신선조를 다루는 작품들이 그렇듯이 어느 정도 미화된 부분이 많다. 사실 지금에 와서는 그럴싸한 깡패집단에 지나지 않았느냐 라는 의견이 다수 전개되는 마당에, 이 책에서의 간지나는 모습에서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신선조라는 하나의 집단과 등장 인물등을 통해서 당대사회의 모순을 비판하는 내용이 이 책의 골자.

비록 내용은 작가의 상상으로 쓰여진 가상내용이 주를 이루지만, 시대적인 사실과 고증, 그리고 현실적인 캐릭터나 사연들을 다루면서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펼쳐낸다. 사실 작품에서 주로 소재가 되는 것은 무사도, 신분 사회, 그리고 혼란스러운 시대상이지만, 그것 뿐만 아니라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이나 조직에 속한 조직원으로서의 고뇌나, 가장으로서의 삶등도 폭 넓게 다룬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을 긴 시간이 지난 후에 화자들의 입을 통해서 전달하면서 어느 정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그 당시를 보게 도와준다. 굳이 일본 사람이 아니라도 이리저리 깊이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면에서 충분히 수작.

그리고 깨알같은 디테일한 면, 특히 조직사회의 갈등을 잘 묘사한다. 카리스마 넘치고 유능하지만, 사람 보는 눈이 종종 어두워 아첨꾼을 불러들이는 리더, 그리고 그 총애를 등에 업고 공을 가로채는 낙하산들(!), 또 그들을 질투하고 미워해서 급기야는 없애버리는 조직원들, 그걸 보이지 않게 잘 수습하느라 고생하는 다른 중간관리자의 모습 등등... 뿐만아니라, 윗 사람의 말도 안되는 지시에도 복종하느라 피 말리는 아랫 사람의 모습 등을 잘 알 수 있다. 오히려 신선조를 상당히 입체적이고 인간적으로 묘사한 덕분에 그들에 더 깊게 공감할 수 있게 한다.

4 여담

일본에서 189만부 가량이 팔렸다고 한다. 덕분에 바람의 검, 신선조 라는 이름으로 영화화 되기도 했다. 영화도 잘 만들었다는 평가를 들었다. 아사다 지로라는 작가의 역량이 총동원 된 작품이라, 이 사람의 다른 책을 보고 이 책을 보면, 상당히 놀라게 된다. 특히 아주 신파적이거나 코믹한 내용으로 술술 넘어가는 책을 주로 쓰던 사람이 더 그렇다.

사실, 일본 작가들이 두리뭉실하게 일본의 침략이나 어두운 면을 미화해서, 작품들을 읽을 때 불편한게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경우에는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서 그런 막장성을 대놓고 까기도 하고, 아무래도 태평양 전쟁 이전의 내용을 다루기 때문에 일본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편한 기분으로 읽을 수 있는 작품.

그리고 검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도 볼만하다. 사실 주인공의 무력이 워낙 귀신같이 그려져서 좀 비현실적인 맛도 있지만, 위에서 말한대로 상당히 디테일에 충실한 작품이라 읽은 거리도 많다. 이를 테면 키가 크면 클수록, 간격 잡기에 좋아서 유리하다는 내용이나, 상대의 검을 주로 쓰는 손과, 검집을 매는 위치에 따라서 공격범위가 정해지니, 같이 걸을 때 되도록이면 검집이 있는 위치는 피하고 칼 쓰는 손쪽으로 걷는다던가 하는 것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