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니 레이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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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뉴 베어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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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시절.

이름케니 레이번(Kenneth Rayborn)
생년월일1974년11월 22일
국적미국
출신지루이지애나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97년 아마추어 자유계약(보스턴 레드삭스)
소속팀히로시마 도요 카프(2005)
라뉴 베어스(2005)
SK 와이번스(2007-2008)
퉁이 세븐일레븐 라이온즈(2009), (2011)

1 소개

SK 와이번스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투수이자 비룡의 첫 우승을 함께한 용병 에이스
SK 와이번스에서 활동했던 외국인 선수. 등록명은 레이번.

2 선수 생활

2.1 마이너 리그, 일본 프로야구, 대만 프로야구 시절

1996년 보스턴 레드삭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하며 데뷔한 레이번은 시애틀 매리너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떠돌며 마이너리그 생활을 했으나, 단 한번도 콜업되지 못하였고, 결국 2005년 시즌 중반 일본프로야구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대체용병으로 영입되며 잔여 시즌동안 3승 5패를 기록하고 시즌 후 대만프로야구 라뉴 베어스(현 라미고 몽키스)로 이적하였다. 2006년 시즌 대만 라뉴 베어스에서 선발 투수로 활약하며 16승 5패 평균자책점 1.94로 특급 활약을 하였고, 시즌 후 코나미 컵 예선에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와의 경기에 선발 출장, 8회까지 무실점으로 호투하면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활약 속에 한국과 일본의 스카우터들에게 주목을 받았고, 결국 SK 와이번스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1]

2.2 한국 프로야구 시절

2007년 KBO 리그 SK 와이번스와 계약하면서 SK 와이번스의 1선발 에이스로 팀을 우승시키는데 크게 기여한다. 2007년 개막전 선발 투수로 나섰고, 이 해 17승 8패로 다승 2위, 평균 자책점 3.27을 기록했다.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는 1차전과 5차전에 선발 등판해 1차전에서 패전을 기록하였다. 2007시즌 후 금액 차이로 SK와 결별한 마이크 로마노와 달리 재계약에 성공하면서 2008시즌에도 SK와 함께하게 되었다. 2008년에도 개막전 선발로 나선 바 있다. 그러나 2008년 5승 3패 평균자책점 3.30[2]으로 승운이 지독하게 없었고, 팀은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거머쥐었으나, 전 시즌부터 김성근 감독과 마찰을 일으키는 등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며,[3] 시즌 후 SK와 재계약하지 않게 되며 그대로 한국을 떠나게 되었다.

2.3 이후

레이번은 미국으로 돌아가서 미국 독립 리그인 애틀랜틱 리그 서던 메릴랜드 블루 크랩스라는 팀에서 활약했고, 2009년 8월 14일 대만 프로 야구 팀인 퉁이 세븐일레븐 라이온즈와 계약하여 프로 활동을 재개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 이어 2009년 대만 리그에서 또 우승을 맛보았다. 그 후 2010년 시즌 계약을 하지 않고 독립 리그로 돌아갔다. 그러다가 2011년 다시 퉁이 세븐일레븐 라이온즈와 계약하고 활동을 했지만 성적 부진으로 퇴출되었다.
  1. 이 때 코나미컵에 참가했던 삼성 라이온즈선동열 감독각동이 레이번을 영입해 달라고 구단에 요청했으나, 삼성보다 더 나은 계약 조건을 제시한 SK가 레이번을 잡는데 성공한 바 있다.
  2. 리그 7위이다. 승운은 없었어도 평균자책점 부분에서는 어느정도 준수한 성적을 올린 상태.
  3. 이미 2007년 시즌 중에도 김성근 감독과 불화로 2군행을 지시받은적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