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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크리스 에드먼드 커클랜드 (Christopher Edmund Kirkland) |
생년월일 | 1981년 5월 2일 |
국적 | 잉글랜드 (England) |
출신지 | Barwell |
포지션 | 골키퍼 |
소속 클럽 | 코벤트리 시티 (1998-2001) 리버풀 FC (2001-2006)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임대 (2005-2006) 위건 애슬레틱 (2006-2012) 레스터 시티 임대 (2010) 돈케스터 로버스 임대 (2011) 셰필드 웬즈데이 (2012-2015)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 (2015-2016) 버리 FC (2016) |
국가 대표: 잉글랜드 (2006) | 1경기 |
1 소개
스무살에 잉글랜드 전역이 주목했던 천재 골키퍼
그러나 최악의 유리몸으로 몰락하고 만 비운의 선수
크리스 커클랜드는 잉글랜드의 前 축구 선수다. 그는 선수 생활을 시작한 이래 잉글랜드 전역이 주목할 정도로 천재적인 기량을 과시한 골키퍼였다. 사람들은 그가 데이비드 시먼 이래 끊이지 않는 잉글랜드 국대 골키퍼 잔혹사를 끝내주고 잉글랜드 최고의 골키퍼로 우뚝 서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부상이었다. 그는 데뷔 이래 선수 경력 내내 온갖 부상에 시달렸고 결국 실패한 선수라는 오명 속에 사그라지고 말았다.
2 선수 경력
2.1 코벤트리 시절
커클랜드는 1981년 5월 2일 레스터셔 주의 Barwell에서 태어났다. 그는 10대가 되자 하스필드 학교에 다니면서 코벤트리 시티와 레스터 시티 유스팀에서 활동했다. 이후 그는 블랙번 로버스에 입단하기 위해 트라이얼을 받았으나 탈락하고 말았고 뒤이어 코벤트리와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1998년 7월부터 코벤트리에서 프로 축구로서의 인생을 시작했다.
커클랜드는 1999년 9월 22일 트란미어 로버스와의 리그컵 경기에 처음으로 출전했다. 이후 그는 2000-01 시즌 주전 골키퍼가 되었고 곧 가장 전도유명한 잉글랜드의 젊은 골키퍼로서 명성을 쌓아갔다. 2000-01 시즌이 끝날 무렵, 그는 잉글랜드 U-21 대표팀에 차출되었고 코벤트리 선정한 올해의 영 플레이어에 뽑히는 영광을 누렸다. 이러한 그의 활약을 주목한 아스날과 리버풀은 이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승자는 바로 리버풀이었다. 2001년 8월, 리버풀은 600만 파운드를 지불하고 커클랜드를 영입했다. 이 600만 파운드는 당시 영국 이적 역사상 20세 정도밖에 안되는 골키퍼에게 지불하는 이적료로서 가장 많은 금액이었다.
2.2 리버풀 시절
커클랜드가 비록 600만 파운드라는 비싼 값에 입단했지만 아직은 20세의 애송이였던 지라 예지 두덱이 주전 골키퍼로서 활동했고 커클랜드는 세컨 골키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던 2002년 12월 1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원정 경기가 열렸다. 이날도 역시나 두덱이 선발로 나와 골문을 지키게 되었는데...
팀 동료가 걷어내려다가 뒤로 뻐잔 공을 낚아챈다는 것이 그만 가랑이 사이로 흘려가는 바람에 포를란이 이를 낚아채 비어있는 골문에 공을 집어넣고 말았다. 그야말로 골키퍼로서는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리버풀은 이 여파로 숙적 중의 숙적인 맨유에게 2:1로 패하고 말았다.
이후 두덱에 대한 신임을 접은 제라르 울리에 감독은 커클랜드를 중용하기 시작했다. 커클랜드는 과연 잉글랜드 최고의 기대주라는 명성에 걸맞게도 14경기에 출전해 6번의 클린시트를 기록하며 기대를 충족시켰다. 이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이제 커클랜드가 두덱을 완전히 밀어내고 불과 만 21세의 나이에 리버풀의 주전 골키퍼로 발돋움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2003년 1월, 그는 무릎 부상을 입고 말았다. 처음에는 가벼운 부상인 줄 알았는데 이것이 어,어 하는 사이에 길어지더니 끝내 시즌 끝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이후 커클랜드는 다음 시즌에도 울리에로부터 많은 심임을 받고 리그 6경기, 유럽 대회에 4경기 출전했지만 자꾸만 온갖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더 이상 출전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래도 2004-05 시즌, 커클랜드는 두덱을 제치고 주전 골키퍼가 되어 시즌 개막 때부터 선발 골키퍼로 뽑혔다. 그러나 리그 10경기를 뛴 뒤 또다시 등, 무릎, 어깨 등등 온갖 부위의 부상을 호소하며 쓰러졌고 끝내 시즌아웃 판정을 받고 말았다.(...)
결국 리버풀은 그에 대한 기대를 접고 스콧 카슨을 영입해 백업 골키퍼로 기용하고 커클랜드를 웨스트브로미치 알비온으로 임대보냈다. 커클랜드는 웨스트브로미치에서 그럭저럭 괜찮은 활약을 하긴 했지만 시즌 중반에 또다시 큰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시즌 후반기를 송두리째 날리고 말았다. 결국 웨스트 브로미치는 골키퍼 공백을 메꾸기 위해 폴란드 국적의 토마시 쿠시착을 겨울 이적 시장에 영입해야 했다. 이후 커클랜드는 임대 해지되어 리버풀에 복귀했다가 2006년 7월 위건으로 이적했다.
2.3 위건 시절
2006년 7월, 커클랜드는 위건 애슬래틱과 6개월 임대 계약을 체결했다. 그후 2006년 10월 27일, 커클랜드는 위건으로 완전 이적하였다. 그는 위건에서 3년간 활약하며 위건의 핵심 선수로 자리잡았다. 그는 위건에서만큼은 부상을 별로 당하지 않았고 2008-09 시즌 훌륭한 활약을 선보여 위건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위건 보드진은 그의 이러한 활약에 만족해 계약 기간을 2012년까지 연장했다.
커클랜드는 2009-10 시즌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개막전 아스톤 빌라 원정에서 빌라 선수들의 맹공을 모조리 막아내며 클린시트를 기록했다. 그런데 2009년 10월 18일, 그는 맨체스터시티와의 경기 도중 손가락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이로 인한 고통을 참아내고 경기를 끝까지 치뤄내는 투혼을 발휘해 팬들의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커클랜드는 2010-11 시ㅣ즌에 들어 영 좋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그는 시즌 개막 후 첫 2경기인 블랙풀과 첼시 전에서 대량의 실점을 허용하고 말아 수맘ㄶ은 비판에 직면했고 결국 알리 알 합시에게 주전 골키퍼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이후 위건 보드진은 11월 25일에 레스터 시티로 임대되어 1월까지 그 팀에서 뛰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훈련 도중 요통에 걸리는 바람에 임대가 해지될 위기에 직면하고 말았다.(...) 그래도 다행히 빠른 속도로 회복할 수는 있었고 2010년 12월 19일 레스터 소속으로 데뷔전을 갖게 되었으나 입스위치 타운에게 3:0으로 대패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커클랜드는 레스터 시티에서 3경기를 뛰었지만 이후 요통이 재발하는 바람에 임대가 해지되어 위건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후 커클랜드는 허구헌날 온갖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경기를 뛰질 못했고 결국 2011년 10월 12일에 돈케스터 로버스로 임대되었다. 그는 돈케스터에서 한 경기를 뛰었으나 또다시 요통에 걸리는 바람에 임대가 해지되어 위건으로 돌려보내졌다. 이쯤되면 불쌍하다.
2.4 셰필드 웬즈데이 시절
2012년 5월 23일, 커클랜드는 위건과 계약을 해지하고 챔피언쉽 소속 클럽인 셰필드 웬즈데이에 입단했다. 데이브 존스 감독은 그를 팀내 첫번째 골키퍼로 기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후 커클랜드는 왠일로 2012-13 시즌에 별다른 부상을 당하지 않고 리그 46경기를 모두 출장해 제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그런데 2012년 10월 19일, 그는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봉변을 당하고 말았다. 1:0으로 이기고 있다가 골을 먹혀 1:1이 된 것에 허탈해하고 있을 때 한 리즈 팬이 경기장에 난입하더니 그를 가격한 것이다. 잉로 인해 커클랜드는 몇 분 동안 치료를 받아야 했고 커클랜드를 가격한 그 팬은 곧 체포되어 4개월 징역형과 축구 경기장 영구 출입금지 징계를 받았다.
리즈 팬에게 습격 당한 커클랜드.
커클랜드는 2013-14 시즌에도 주전 골키퍼로 나와 35경기를 소화했지만 막판에 부상을 당해 잔여 시즌은 치르지 못했다. 이후 2014-15 시즌엔 잦은 부상으로 주전 자리에서 밀려나 겨우 시즌 4경기만 소화했다. 이후 그는 계약 기간이 만료되자 쓸쓸히 셰필드를 떠났다.
2.5 말년
2015년 8월 12일, 커클랜드는 챔피언쉽 소속 클럽인 프레스턴 노스 앤드와 1년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그는 고작 5경기만 치르고 대부분의 시간을 부상으로 허비하고 말았다. 결국 계약 연장에 실패한 커클랜드는 2016년 6월 27일 3부리그 클럽인 버리와 1년 계약을 체결했따. 그러나 시즌이 시작하기 직전인 8월, 그는 돌연 개인적인 사유를 들어 클럽을 이탈했다. 그는 현재까지 팀을 구하지 못한 채 자유계약 선수로 남아 있다.
2.6 국가대표 경력
커클랜드는 잉글랜드 u-21 대표팀에서는 8경기에 뛰며 자신의 진가를 보여줬다. 그러나 이후에는 부상을 하도 많이 당하는 지라 대표팀에 뽑힐 기회가 없었다. 그러던 2006년 8월, 그는 마침내 그리스와의 친선 경기 때 교체로 투입됨으로서 그동안 갈망했던 국가대표를 향한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사실 그가 7살이었을 때,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30세가 되기 이전에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골키퍼로 출전할 확률에 대해 친구들과 내기를 걸었다. 이때 내기를 위해 지불한 돈이 100 파운드였고 배당률은 100/1이었다고 한다. 커클랜드는 2006년 8월 25세 3개월의 나이로 출전했으므로 아버지가 내기에서 승리해 1만 파운드를 챙기게 되었다고. 허나 이후로는 두 번 다시 국가대표로 뽑히는 일은 없었다.
3 여담
유명 축구 게임인 풋볼 매니저는 이 선수의 부상 빈도 수치를 19로 지정했다. (...)
4 수상
리그컵 우승 : 2003년 (리버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