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니티 실험

Trinity
실험 날짜1945년 7월 16일
실험 장소뉴멕시코 앨러모고도
실험 횟수1회
주도육군
미국의 핵실험 시리즈
TrinityOperation Crossroads

1 개요

미국 최초이자 세계 최초의 핵실험. 당연히 실험 당시에는 군사기밀이였으며 대중에 공개된 것은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후이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성공과 함께 원자력 시대의 개막을 알린 사건.

이 실험 이후,인류는 마침내 스스로조차 멸망시킬 수 있는 생명체가 되었다.

2 과정

개발 과정에 대해 자세한건 맨해튼 프로젝트 참고.

2.1 폭탄

트리니티 실험에 사용될 핵무기는 플루토늄을 이용한 원자폭탄으로, 가젯(Gadget)이라는 코드명이 붙여졌다. 이러한 이름이 붙은 이유에는 기밀 누출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고, 겉으로 볼때나 실상이나 "폭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기괴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플루토늄 핵폭탄은 주변을 둘러싼 재래식 폭약들이 아주 정확한 타이밍에 동시에 폭발하여 그 압력으로 중앙의 플루토늄을 강하게 압축시켜야 연쇄반응이 일어날 수 있고, 따라서 주변의 폭약을 정확한 타이밍에 기폭시키는 장치가 필요했다. 이러한 설계의 결과로 가젯의 표면은 온갖 돌출부와 케이블, 기폭장치가 어지럽게 얽혀있는 기묘한 쇠공 같은 모습이 되었다.


조립중인 가젯의 모습

우라늄 원자폭탄을 실험하지 않은 이유는 플루토늄과는 달리 우라늄 원자폭탄은 상대적으로 원리나 구조가 간단하고, 보다 잘 연구되어 있어 굳이 실험을 통해 작동을 검증할 필요성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플루토늄 핵폭탄은 전혀 새로운 구조에다가 기술적으로도 난이도가 높았고, 따라서 검증 없이 바로 실전에 투입하는 위험을 무릅쓰기 힘들었다.

2.2 장소

보통 실험이 아니라 실험 장소를 선정하는데도 여러가지로 신경을 써야 했다. 워낙 강력한 폭탄 실험이니 주변 지형지물 때문에 충격파가 간섭되는 현상을 줄이기 위해 평평한 지형에서 실험해야 했고, 효과를 안전거리에서 육안으로 관측하기 위해 날씨가 좋고 시야가 넓은 장소를 선택해야 했다. 핵분열 생성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목장이나 거주지와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 했고, 주요 시설이 자리한 로스앨러모스와 교통이 편리한 곳에 위치해야 했다. 물론 기밀 유지를 위해 매우 외딴 곳에 위치해야 한 것은 물론이다.

이러한 고려 끝에 최종적으로 뉴멕시코의 앨러모고도 공군 기지 북서쪽 사막 한가운데가 최종 실험 장소로 확정되었다.

2.3 사전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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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폭발에 의한 효과를 예측하고 캘리브레이션을 위해 본 실험 이전에 100톤의 TNT에 1000퀴리(37TBq)의 핵분열 생성물을 섞어 폭발시키는 실험이 진행되었다. 사실 이 실험 이전에는 고작 수 톤의 TNT의 폭발 효과밖에 연구되지 않았기 때문에 최대 수십 킬로톤의 위력을 가질 것으로 예측되는 핵폭탄의 효과를 측정하기에는 자료가 부족했고, 따라서 사전에 대형 폭발의 효과를 측정하고 덤으로 방사능 낙진의 확산 양상도 측정하려는 목적.


또한, 만약 가젯이 잘못 작동해 핵폭발이 일어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하여 점보라는 이름의 핵물질을 차폐할 거대한 철제 차폐용기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당연히 핵실험하는데 방사능 오염같은걸 신경쓴건 아니고, 실험이 실패했을때 소중한 플루토늄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버려지는것을 막고 온전히 회수해서 재사용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 하지만 정작 실험할 시기가 다가오자 풀루토늄 생산량이 충분히 증가해 굳이 실패했을때 다시 회수해야 할 필요성이 줄어든 동시에 실험이 성공할거라는 확신이 퍼지면서 점보를 사용한다는 계획은 취소되고, 겨우겨우 만들어 수송해놓은 이 194톤짜리 치폐용기는 폭심지에서 700m쯤 위치한 탑에 옮겨져 폭발 위력을 가늠하는 희생양으로 사용되었다.(...)

3 폭발

트리니티 실험
실험 날짜1945년 7월 16일 5시 29분 45초
실험 장소뉴멕시코 앨러모고도
사용한 폭탄가젯
예상 위력0~45kt
실제 위력20kt
폭탄 종류플루토늄 내폭형 핵무기
고도지상 30m

7월 14일, 실험 이틀 전 30m 높이의 철탑 꼭대기에 가젯을 설치하는 작업이 끝났고, 16일 오전 4시에 실시될 실험을 위한 막바지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15일 밤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 다음날 오전 4시가 다되도록 줄기차게 내린 덕에 실험은 연기되었다. 비가 내릴 때 실험을 할 수 없는 이유는, 시야가 줄어 육안관측이 힘들어지고 낙진이 쓸려 떨어지면서 좁은 지역에 집중되어 위험 수준까지 농축될 수 있으며, 각종 전자장비가 오작동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4시에 비가 그치고, 4시 45분 문제가 없다는 기상예보가 나오면서 실험 시각은 5시 30분으로 재조정되었다.

Trinity_shot_color.jpg
그리고 5시 29분 45초, 최초의 핵분열 폭탄이 점화되었다.

실험은 성공적이었고, TNT 20kt의 위력을 가진 것으로 측정되었다. 강렬한 빛이 수 km 떨어진 산을 낮보다 환하게 비췄고 16km 떨어진 본부에서도 오븐처럼 강렬한 열이 느껴졌다. 충격파는 26km 거리에 서 있는 사람을 넘어뜨릴 정도였고, 버섯구름은 12km 높이까지 솟아올랐다. 24km 거리에 있던 사람도 태양과 같은 밝은 빛이 하늘을 환하게 물들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Trinity6-18MS320c10.jpg
각각 폭발 6, 16, 18 밀리초 후 모습

실험 직후 폭심지를 조사하기 위해 측정장비를 탑재한 M4 셔먼 전차가 출발하였다. 물론 방사선을 막기 위해 총 12톤 가량의 납을 2인치 두께로 펼쳐 덮는 개조를 거친 물건. 탐사 결과 폭심지 부근에는 직경 340m에 이르는 구덩이 전체가 강렬한 열로 인해 모래가 녹아 옅은 녹색의 방사능 유리로 덮여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광석은 실험명을 따서 트리니타이트(Trinitite)라고 이름지어졌다.

Trinity_crater.jpg
실험 28시간 후 모습. 오른쪽 아래에 있는 작은 검은색 얼룩이 100t 실험으로 인한 크레이터이다.

이러한 소식은 뉴멕시코 전역에 떠들썩하게 퍼졌지만, 정부의 공식 답변은 앨러모고도 공군 기지의 무인 탄약 창고가 폭발했으나 사상자는 없다는 짧은 언급 뿐이었다. 미국 동부 지역에서는 아예 화제조차 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진실을 알게 된 것은 히로시마에 폭탄이 떨어진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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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후에 바닥의 뼈대 일부만 남은 30m 높이의 철탑. 왼쪽의 사람은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오른쪽의 사람은 맨해튼 계획의 총책임자 레슬리 그로브스이다. 실험 2달 후에 찍은 사진.

4 여담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그라운드 제로 30km 밖에서 관찰 실험을 하였는데, 성격답게(...) 눈을 보호하기 위해 나눠준 짙은 검은색 색안경을 냅다 버리고 자동차 유리를 통해 자외선을 막아 맨눈으로 폭발을 관찰하였다. 본인 주장으로는 자신이 맨해튼 계획에 참여한 사람 중에 유일하게 맨눈으로 폭발을 관측한 사람이라고...

5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