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계획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넘어옴)
'이제 우린 모두 개자식이 됐군. ("Now we are all sons of bitches.")

- 첫 원폭실험 후 케네스 베인브리지가 자괴감을 담아 내뱉은 말

"if I had foreseen Hiroshima and Nagasaki, I would have torn up my formula in 1905."

"내가 만약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일을 예견했었다면, 1905년에 쓴 공식을 찢어버렸을것이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맨해튼 계획을 실시하도록 편지를 보낸 것에 후회하며.

1 개요

Manhattan Project.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정부에서 주도하고, 영국, 캐나다가 합심한 비밀 프로젝트명.

이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은 인류 최초의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였다.

수학, 물리학을 전공한 사람들에게는 20세기 물리학 올스타전.

2 위치

맨해튼 프로젝트는 모든 것이 기밀이었으며, 약 30군데의 시설에서 연구를 진행했다. 여기엔 미국, 캐나다, 영국 대학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중 맨해튼 프로젝트의 중추적인 곳 3군데를 꼽으라고 한다면 다음과 같은 곳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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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크리지 - 테네시 주에 위치해 있는 도시로, 맨해튼 프로젝트의 본부가 있었다. 이 도시에선 우라늄 농축시설이 있었다. 현재 이 도시에는 당연하게 시리 오크리지 국립 연구소가 자리해 있다. 현재 이곳에 있는 ORNL은 로스 앨러모스와 더불어 도시의 중대한 밥줄이다.
  • 핸포드 - 최초의 핵연료 재처리 시설. 현재는 폐로 중.
  • 로스 앨러모스 - 핵무기 설계 및 연구시설로 뉴멕시코 주에 있다. 좀 유명하다 싶은 과학자들이 꽤 많이 몰려서 대중에 많이 알려졌다. 대표적으론 리처드 파인만 같은 사람들. 리처드 파인만의 경우엔 이론팀에서 근무했었다.

3 과정

1939년 레오 실라드가 주장하고,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쓴 편지에 의해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처음엔 자그마한 연구 프로젝트에서 시작한 맨해튼 프로젝트는 나중에 13만명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며, 프로젝트에 쏟아부은 비용은 당시 돈으로 20억 달러[1], 2012년 현재로 따지면 255억 2천만달러(대한민국으로 따지자면 약 27조 77백억원)가 들어간 거대 공학 프로젝트이다. 특히 총책임자인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시작으로 닐스 보어, 엔리코 페르미, 존 폰 노이만, 리처드 필립스 파인만 등등 전세계에서 긁어모은 당대 최고의 두뇌들을 모두 여기에 갈아넣었다. 참고로 알버트 아인슈타인 본인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우라늄의 유통을 중단하면서, 미국은 히틀러를 필두로 한 이 광기의 집단이 핵무기의 개발을 시작하였다고 판단하였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이 작전을 허가하였다. 이후 부통령에서 대통령이 된 트루먼은 최대한 빨리 핵폭탄 개발을 완료할 것을 촉구하였으며 '나치 독일로부터 조국인 미국과 유럽을 지키기 위해'라는 목적으로 무한 예산 지원으로 진행된 크고 아름다운 프로젝트가 이루어졌다.

엄청난 힘을 가진 핵분열을 인간이 마음대로 다루는 것은 이론상으로만 가능하고 실제로는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일류 학자들 수천명이 수년간 함께 연구한 결과, 그것의 존재는 점점 실체화 되었다.

결국 1945년 7월 16일 뉴멕시코주 앨라모고도의 폭격연습장에서 인류 최초의 핵폭탄 실험이 성공리에 끝나게 되었다. 이 역사상 첫 핵실험의 이름이 트리니티 그리고 이 실험에 사용된 원폭의 이름은 가젯(gadget)이다

4 영향

4.1 일본 제국의 멸망

2차 대전 당시 압도적인 연합군의 전력과 그로 인한 연이은 패배, 경제 및 플랜트의 붕괴로 인해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1%도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 일본 제국은 1억 총옥쇄, 반자이 어택, 카미카제제국주의로 인해 만들어진 헛된 욕망을 표출하며 연합군 측과 자기진영의 국민들을 사지로 내몰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를 통해 일본제국은 30만 명 안팎이라는 비교적 적은 규모의 피해만 입고 자신들의 제도를 보존한 채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게 되었다. 당연하지만 일본은 공습과 폭탄 투하가 충격적이긴 해도, 그 덕에 희생이 더 적었다. 한 국가에서 전쟁으로 인한 인명피해가 가장 큰 경우는 지상군이 국토를 들쑤시고 다니며 싸우는 것이다. 국토에서 전선이 형성되며 전장 그 자체가 되기 때문이다. 일본은 국토가 전장이 되진 않았고 폭탄 투하와 공습만 당했기에 2차 대전으로 사망한 일본인은 전체의 6~8%도 되지 않았으나 한국 전쟁에서는 국토에서 직접 보병들이 싸우며 전장이 한반도에서 일어났기에 사망한 한국인만 10~20%에 달하는 것도 그 이유이다. 당장 2차대전 때 독일인과 러시아인, 중국인이 많이 죽은 이유도 그들 국토가 전장이 되어서였다.

아인슈타인은 평화주의자였고, 맨해튼 계획과 몰락 작전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한 상태에서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의 소식을 들어 핵개발에 실질적으로 관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 맨해튼 계획에 대해 상당히 자조적으로 평가했다.

2차 대전 당시 일본 제국은 나치 독일과 같이 심각한 제국주의로 인해 난징 대학살, 731 부대 인체 실험등 잔인한 행위들을 자행하였으며 만약 이러한 일본군에게 핵무기가 있었고 당시 미국의 상황과 같이 교전국에게 핵공격을 하여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상태였다면 일본은 도덕적 죄책감으로 인해 뉴욕, 워싱턴 등에 핵을 투하하지 않을 것인가?라는 의문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은 불가능하다. 물론 실제로 투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는 가는 별개로 치자.[2]

또한 핵무기로 인한 조기 항복이 없는 상태, 핵무기의 존재 자체가 아예 없는 상태였다면 원폭 투하나 항복 없이 일본 본토를 공격하는 몰락 작전이 실행되었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비록 핵무기가 없더라도 일본인 수백만 명이 고통스러운 생화학무기와 연합군의 공격에 의해 죽고 당시 일본 인구 7500만명 중 대다수가 공중 제초제 살포로 인한 아사로 사망했을 것이다.

핵개발에 참여한 맨해튼 프로젝트의 연구진 중에는 죄책감에 시달린 사람들도 있으나 존 폰 노이만, 한스 베테, 엔리코 페르미, 리처드 파인만 등은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투하에 대해 더 많은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 한 일이라고 평가하였다.

4.2 공포 위의 평화

역설적으로 가장 강력한 전쟁무기인 핵무기가 등장한 이후 강대국끼리의 전면전의 횟수는 0에 가깝게 줄어들었다. 핵무기의 존재하에서는 적국을 공격하게 되면 조국도 멸망하게 되는, 전쟁을 시작하면 누구도 이득을 볼 수 없는 상호확증파괴가 대두되면서 인류는 인류 스스로를 멸망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 힘의 공포로 인해 2차 세계대전과 같은 거대한 전쟁이 종식되고 계산된 평화가 생성되었다.

5 이후

이 프로젝트가 끝난 후 에너지부(당시 원자력 에너지 위원회)에서는 이 시설들 중 3곳을 국립 연구소로 지정[3]하였으며, 현재는 핵무기만 연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관은 에너지부이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대표적인 국립 연구소로는 아르곤 국립 연구소[4], 오크리지 국립 연구소, 로스 앨러모스 국립 연구소 등등이 있다.

지도에 나와있는 캐나다 초크 리버(Chalk River) 연구소에서도 맨해튼 프로젝트에 대한 연구가 벌어졌는데, 이런 연구로 인하여 캐나다는 1945년 11월에 세계 2번째로 원자로를 보유한 국가가 되었으며, 여기서의 삽질인 ZEEP(Zero Energy Experimental Pile)이 발전하게 된 것이 CANDU이다. 캐나다가 중수로를 삽질한 것도 맨해튼 프로젝트 당시 중수를 생산하던 공장이 캐나다에 있어서였다.

YBM 시사닷컴에서 맨해튼 프로젝트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을 잘 정리해 두었다.#
네이버캐스트에도 있다.#

6 기타

프로젝트 이름이 맨해튼이지만 실제 뉴욕맨해튼과는 별 상관이 없다. 미국 전역에서 나누어 진행되었지만 그 중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름의 유래에는 2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미군 공병부가 맨해튼 거리에 있었다는 것과 더불어 맨해튼 기술국에서 따왔다는 설이 있다. 맨해튼 페리 투어 가이드 아저씨의 말에 따르면, 연구진들이 맨해튼에 있는 컬럼비아 대학 과학관에서 연구를 했기 때문이라고 카더라 실제로 엔리코 페르미가 주도한 원자로 실험은 대학의 라켓볼 코트에서 이루어졌다. 규모가 크기도 했지만 위장하기 좋았다고.

7 관련항목

8 창작물에서의 등장

시드 마이어의 문명에서는 이 프로젝트를 개발하면, 맨해튼 프로젝트전용 핵폭탄을 제외한 모든 문명이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게 된다. 모든 문명이 소련처럼 첩보질[5][6]을 많이 해서 그런가?

문명 5에서는 개발할 시 원자폭탄과 핵미사일에 생산이 가능해진다

슈퍼파워 2에서는 외교적으로 용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국가를 핵 공격 시, 다른 모든 핵보유국 들에게 핵 보복 공격을 받게 된다.

캐나다의 락밴드 러시는 이 계획과 더불어 이 계획의 결과인 히로시마 원폭 투하를 다룬 동명의 노래 Manhattan Project를 발표하기도 했다.

Braid는 워낙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게임이지만 가장 메이저한 해석은 이 프로젝트를 다룬 게임으로 알려져있다.

왓치맨닥터 맨하탄은 이 프로젝트를 따 붙여진 이름이다. 작중에서 그의 회고에 따르면 '미국의 적들이 두려워 할 만한 호칭'으로 이름 붙여졌다고 나온다.

Time-line 191 시리즈에서는 독일과 북부가 독자적으로 자신들만의 맨하탄 프로젝트를 발동시킨다. 문제는 북부의 경우 남부연합 게릴라부대와 남부가 결사적으로 시작한 연구소에 대한 편도 폭격으로 인해서 프로젝트는 무산되고(...) 결국 독일이 제공한 연구결과를 통해서 핵을 완성하는 것으로 마무리

빅뱅이론의 쉘든이 여자친구인 에이미와 잠시 헤어진 에피소드에서 해어짐의 충격으로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과학자들의 이름을 딴 고양이들을 키웠던 적이 있다.

아이언맨 실사영화 시리즈에서는 토니 스타크의 아버지 하워드 스타크가 이 계획에 참여했다고 나온다. 군수물자를 생산/개발하는 미국의 천재 과학자이니만큼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그리고 토니 스타크는 어벤져스에서 맨하탄에 발사된 핵 미사일을 막는다. 결자해지? [7]

팀 포트리스 2에서는 데모맨의 핼러윈 모자로 핵폭발 버섯구름을 머리에(...) 쓰고 다닐 수 있는 만(Mann)해튼 작전을 얻을 수 있다. 드랍이 되지 않으므로 거래를 통해 구하자. 사실 맥주거품 같다는 의견도 있다..

9 듀크 뉴켐 시리즈

듀크 뉴켐 3D의 후속작들 중 하나. 듀크 뉴켐 3D에 비해 좀 더 본격적인 3D화해서 나온 작품이다. 하필 발매시기가 듀크 뉴켐 포에버 전이라서, 이 게임을 듀크 뉴켐 포에버로 알고 있는 경우도 간간히 있다...

3D 이지만 진행 방식은 횡스크롤식. 즉 록맨 X8 같다고 보면 된다.

참고로 원래 이 작품의 최종보스는 Dr. 프로톤이 될 예정이였다. 실제로도 로봇 과학자라는게 그럴싸하게 맞아 떨어지고. 하지만 무슨 사정으로 인해 메크 모르픽스(Mech Morphix)라는 이름으로 변경. 대신 듀크 뉴켐 포에버에서 등장할 예정...이였으나 다시 짤렸다가 DLC에서야 보스로 등장!...했으나 최종 보스가 아닌 중간 보스로 나왔다... 프로톤 입장에서는 현실의 맨해튼 프로젝트처럼 충격과 공포 였을지도.

10 만화책

2012년 3월부터 미국 이미지 코믹스에서 연재 중인 만화. 글 조나단 힉맨(Jonathan Hickman), 그림 닉 피타라(Nick Pitarra)

2012년 3월부터 연재를 시작했으며, 2013년 7월 현재 11화까지 출판되었다. 일단은 오펜하이머를 중심으로 한 당대 로스 앨러모스의 과학자들을 주인공으로 한 맨해탄 프로젝트를 배경으로 한 대체역사물로 보이나, 실상은 약을 거하게 들이마신 판타지물.

실존 인물을 따서 만든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도덕과 윤리는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지 오래며, 하나같이 사격과 격투술에 능하며, 이미 인간을 초월하거나 인간이 아닌 인물도 있다. 유가족들에게 고인 드립으로 소송당하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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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등장 국가

  • 미국 : 가장 현실의 미국과 비슷해 보이나 프리메이슨이 권력을 잡고 있는 등 정상은 아니다.
  • 소련 : 퉁구스카에 떨어진 외계 기술을 이용하여 비밀 우주기지 '스타시티'를 운용하고 있으며, 해파리 같은 정체불명의 생물을 배양하여 로봇의 인공지능으로 사용하는 등 실제 소련과 비교해봤을 때 상당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
  • 일본 : 작중 시작시점에서는 실제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전쟁 중. 하지만 승려의 생명을 이용한 순간이동장치인 '토리이'와 자율전투로봇인 '카미카제'를 운용하는 등 실제 일본제국보다는 강해보이는 듯...했지만 순식간에 핵 맞고 항복한 후 기술 셔틀로 전락.

10.2 등장 인물

10.2.1 미국

10.2.2 독일

10.2.3 소련

10.2.4 일본

  1. 당시 M4 셔먼전차의 평균 가격이 $47,000으로 약 43,000대를 생산가능한 금액이다.
  2. 사실 투하는 물론이고 개발조차 불가능했다. 자원고갈로 인해 독일과 일본 둘다 양면전선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자기들 국력의 몇배나 되는 소련과 미국을 공격했다.
  3. 로스 앨러모스, 오크리지, 버클리 방사선 연구소(현재의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
  4.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을 맡은 체인 리액션에서 싱크로트론이라든가 중수소 실험실이 있는 연구소가 아르곤 국립 연구소다.
  5. 소련도 핵무기의 가능성을 알고 있었기에 2차대전 기간 동안 이론 연구는 계속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핵분열에 대한 과학자들의 논문과 기사가 사라진 것을 이상하게 여긴 소련 과학자가 미국이 핵분열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기도 했다. 결국 맨해튼 프로젝트에 간첩을 투입하여 미국의 연구개발 자료를 빼돌렸다. 자신들의 이론 연구와 엄청난 돈과 인력을 퍼부어서 실험한 미국쪽 자료를 바탕으로 단시간 안에 핵무기를 만들어 1949년 8월, 첫 원폭실험을 성공리에 마쳤다. 미국 과학자들은 대부분 소련 따위가 어떻게 핵무기를 만드느냐는 입장이었지만 이로 인해 뒷통수를 제대로 맞았다. 특히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은 보고를 받고도 그 사실을 믿지 않았고 퇴임 이후에도 "난 소련이 핵무기를 가지지 않았다고 믿는다."는 발언을 하기까지 했다.
  6. 2차대전 말 미국은 낙후한 과학기술과 폐허가 된 국토의 재건때문에 소련의 핵무기 개발은 최소 20년 이상 걸린다고 예측하였다. 따라서 '앞으로 장기간 미국이 유일한 핵보유국이다'라는 전제 위에 모든 전후처리를 결정하였다.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동유럽과 아시아에서 소련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인 것도 어차피 결정적인 순간에는 핵무기때문에 소련이 물러설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고 대인배의 풍모를 보인 것이라는 추정이다. 그런데 4년만에 소련이 핵개발을 성공하면서 모든게 망했어요...1949년 소련 핵실험 성공과 중국 국공내전의 공산당 승리 직후에 김일성의 남침 주장을 스탈린이 승인한 게 의미심장하달까...
  7. 물론 본 문서 초반에 서술되어 있듯이 실제론 뉴욕의 맨하탄에서 진행된 계획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