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루냐

스페인 자치 지방
자치 지방
안달루시아아라곤아스투리아스발레아레스 제도
바스크카나리아 제도칸타브리아카스티야 라 만차
카스티야 이 레온카탈루냐에스트레마두라갈리시아
라 리오하마드리드나바라발렌시아
무르시아
자치 도시
세우타멜리야


당직사령기 또는 황저사선기(黃底四線旗)로 부르는 카탈루냐 주기(州旗).
얼핏보면 옛 남베트남당직부관국기와 혼동할 수 있다.[1]

1 개요

catalonia_map.png
지도 상에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2]

스페인 북동쪽 지방으로 북쪽은 피레네 산맥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프랑스와 경계를 이루며, 동쪽과 남쪽은 지중해에 면하고, 서쪽은 에브로 강 유역의 아라곤 지방과 발렌시아 지방에 접한다. 주도는 바르셀로나이며 바르셀로나·헤로나·레리다·타라고나 4개 주를 포함한다. 면적은 31,950 km²이며, 2007년 기준으로 720만 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그렇고 스페인 내부에서도 바스크 지방과 함께 가장 분리주의 성향이 강한 지역으로 유명하다. 이들의 상징기는 노란색빨간색 줄무늬로 이루어진 깃발이다. 북부 산악 지대는 겨울이 춥지만 지중해에 면한 지대는 지중해 특유의 온화한 기후가 나타나는 편이다.

바르셀로나가 바로 이 지역에 위치하는 도시이다. 카스티야 지역을 대표하는 마드리드와는 라이벌 관계이고, 유명한 엘 클라시코도 두 지역간 자존심 대결이다.


2 역사

2.1 8세기 이전

카탈루냐 지방은 2차 포에니 전쟁 이전까지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에 위치한 완층지대로 고대 그리스의 식민지였다. 카르타고의 장군 하밀카르 바르카가 점령한 도시였기 때문에 '바르카의 도시'라는 뜻으로 '바르셀로나'라고 불렸다. 이후, 히스파니아 시테리오르라는 속주로 편입되다가 BC 27년 로마 제정이 시작되었을 때 타라고나를 수도로 하는 히스파니아 타라코넨시스라는 속주로 개칭되었다. 이후 사두정치때 디오클레티아누스에 의해 카르타기엔시스로 나누어지다가 5세기부터 로마 제국이 쇠퇴해지면서 서고트족들이 침입하면서 서고트왕국의 일부가 되었지만 711년 이슬람교를 앞세운 무어인들의 정복으로 그 영향력 아래에 있게 된다.


2.2 바르셀로나 백작

스페인의 역사
Historia de España

고대 - 레콘키스타 - 스페인 제국 - 현대
레콘키스타스페인 제국현대
아스투리아스갈리시아 왕국카스티야 연합왕국




1






2









레온 왕국
카스티야 왕국
우마이야나바라 왕국
아라곤 왕국아라곤 연합왕국
바르셀로나 백작령
후우마이야무라비트무와히드나스르
718년 ~ 1492년1492년 ~ 1931년1931년~

801년 프랑크 왕국샤를마뉴 대제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 원정하여 이슬람 세력을 공격한 다음 에스파냐 변방백령(Marca hispánica)을 설치했다. 에스파냐 변경백령은 여러 백작령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프랑크 왕국에 신종하는 백작이었던 바르셀로나 백작이 다른 변경백령을 상속, 흡수하면서 우월한 지위를 획득한다. 바르셀로나 백작을 중심으로 한 카탈루냐 지역을 '카탈루냐 군주국'으로 부르게 된다. 다만 카탈루냐 군주국은 독립 국가로서 실체가 있는 '왕국'이나 '공국'이 아니라 그저 바르셀로나 백작이 봉건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차지한 지역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카탈루냐 군주국의 군주는 단지 '바르셀로나 백작'의 위치에서 주변 영토를 다스리고 있었다.

서프랑크 왕국의 왕계가 끊어지고 파리백작 위그 카페프랑스 왕국의 왕으로 등극했다. 그러자 바르셀로나 백작은 세력을 믿고 프랑스와 오랫동안 이어져 온 군종관계를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을 선포했다.


2.3 아라곤 연합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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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곤 왕국은 어린 여왕 페트로넬라(Petronela d' Aragón)가 즉위하자 이웃나라 카스티야 왕국의 침공을 우려하여 바르셀로나 백작 라몬 바란게 4세와 페트로넬라 여왕을 약혼시킨다. 약혼할 당시 페트로넬라 여왕은 고작 1세에 불과했다.

라몬 바랑게 4세는 아라곤 여왕의 남편 자격으로 아라곤을 통치했고, 두 사람의 장남 알폰소 2세가 아라곤 왕 / 바르셀로나 백작의 지위를 계승했다. 이로서 카탈루냐 지방은 아라곤 왕국의 새로운 중심부가 되었고, 원래의 아라곤 내륙지방은 중심지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단, 이렇게 성립된 아라곤 연합왕국(Corona d'Aragón, Crown of Aragon)에는 정해진 수도가 없었기 때문에 바르셀로나가 수도가 되지는 않았지만, 원래 수도였던 사라고사는 졸지에 수도 위치를 잃고 아라곤 국왕이 대관식을 치르는 도시(...) 정도로 위상이 내려갔다. 이후 아라곤 연합왕국의 국왕들은 대부분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나폴리에서 궁정을 꾸렸다. 흔히 노란색과 빨간색 줄무늬로 이루어진 깃발을 카탈루냐의 상징으로 쓰고 있는데, 이것이 원래는 아라곤 왕국의 깃발이다. 현재의 아라곤 주는 이 줄무늬에 문장만 추가된 형태의 깃발을 쓴다.

13세기 14세기의 카탈루냐 지방은 남부 이탈리아를 손에 넣고, 네그로폰테 같은 4차 십자군 이후 막장이 된 동지중해 그리스계 섬들과 교역망에 까지 손이 닫던 아라곤 해양 제국의 중심지로서 번영을 누렸다. 이 와중에서도 레반트-지중해 교역망의 서쪽 관문 역할을 했던 바르셀로나의 부와 영광은 대단한 것으로, 지금도 바르셀로나 시가지에 가면 당시 동방과의 무역을 통해 번 돈으로 휘황찬란하게 건축하고 장식해놓은 왕성과 성당들을 볼 수 있다. 근세에 들어서 벼락출세한 마드리드와 달리 바르셀로나의 부와 명성은 이렇게 중세부터 쌓아 놓은 뿌리 깊은 유럽의 부자 동네 중 하나로, 이러한 과거의 번영은 지금까지도 카탈루냐인들의 민족적 자존심의 큰 일부이다.

카탈루냐 지방에는 카탈루냐 의회(Corts catalanes)가 설치되었다. 현재의 카탈루냐 민족주의자들은 이 의회를 '민족 자치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나, 이 의회는 교회의 대표, 봉건 귀족, 왕립 도시 대표 등의 제한적인 신분이 모여서 하는 전형적인 중세 유럽식 신분제 의회였다.


2.4 스페인 제국

1469년,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 왕세자와 카스티야 연합왕국의 후계자 이사벨 1세가 결혼하였고, 1479년 페르난도 2세가 아라곤 연합왕국의 왕으로 등극하면서 양국은 동군연합이 되었다. 이 때 카스티야의 왕은 아사벨 1세의 오빠인 엔리케 4세였는데 후계자인 이사벨이 자신이 원하는 프랑스나 포르투갈의 후계자가 아닌 아라곤의 페르난도와 결혼했다는 이유로 후계자 교체를 선언하여서 또 한번[3]의 왕위 계승전쟁을 치뤄야 했다. 이것이 카스티야 왕위계승전쟁이다. 여기서 이사벨 1세가 승리하면서 '카스티야, 레온, 아라곤과 시칠리아의 왕'이 되었다. 하지만 두 왕은 각각의 궁정을 구성했는데, 이사벨 1세의 카스티야가 영토 3배에 인구 4배라는 압도적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카스티야 우위였다.

이후도 이런 경향이 오히려 강해지는데, 카탈루냐의 중심이 되던 지중해 무역은 오스만 제국의 대두로 침체해서 축소되었고, 반대로 카스티야 왕국은 아메리카 식민지 개척으로 엄청난 부를 누리게 되었다. 단적으로 크리스토퍼 콜럼부스를 지원한 것은 스페인이라고 알려지있지만 실제로는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의 독단에 의한 것이었고, 그 과실도 온전히 카스티야가 차지하였다. 결국 아라곤 왕 페르난도 2세 마저도 카스티야로 이동하고, 카탈루냐에는 부왕을 두고 통치하게 하면서 카탈루냐는 스페인의 일개 지방이 되었다.(역사적 혼란)

실질적으로 카스티야와 아라곤이 하나의 나라처럼 취급되게 된 것은 이사벨 1세와 페르난도 2세에게는 손자뻘이 되는 카를로스 1세 때의 일이다. 아라곤의 왕위계승권은 오로지 아들에게만 전해졌는데, 페르난도 2세가 남긴 유일한 혈족은 딸인 후아나였다. 결국 페르난도 2세는 아라곤 왕국의 왕위를 외손자인 카를로스 1세에게 넘길 준비를 다 해놓고 사망했다.

이중에서 붉은 색이 아라곤 연합왕국, 자주색이 카스티야 연합왕국, 그외의 노란색과 주황색 등은 조부모에게 상속받은 신성로마제국의 영토다.

그런데 이 카를로스 1세의 항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아라곤 연합왕국은 그의 영토에서 정말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이렇게 되니 카탈루냐는 정말 찍소리도 할 수 없게 제국의 일부분의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이어받은 것이 절대왕정의 일각을 담당하는 펠리페 2세였다. 이들 부자는 카탈루냐건 카스티야건 내부의 독립적 색체를 용납하지 않았고, 펠리페 2세는 대놓고 카스티야에 궁정을 꾸림으로써 카탈루냐를 일개 지역으로 만들었다.


2.5 수확전쟁

30년 전쟁이 벌어지자 스페인 제국은 프랑스와 전쟁을 시작했다. 프랑스 국경인 카탈루냐 지방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프랑스를 공격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 군대가 주둔하면서 물자를 징발하자 카탈루냐 농민들이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으니 이것이 바로 수확전쟁이다.

카탈루냐는 프랑스를 끌여들여 저항하였으나 프랑스군은 철수하였고 결국 단독으로 벌어진 바르셀로나 공성전 결과 카탈루냐는 항복했다.

1659년 피레네 조약의 결과, 카탈루냐 북부의 루시는 프랑스에 할양되었고, 사루다냐 지방은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에서 분할되었다. 현재의 피레네 오리앙탈(Pyrénées-Orientales) 지역이다.


2.6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18세기 초(1701 년~1714 년)에 벌어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서 카탈루냐는 발렌시아와 함께 칼 대공 측의 편을 들어 펠리페 5세에 맞서 싸웠다.

처음에는 칼 대공이 유리해서 제1차, 제2차 바르셀로나 공방전에서 유리하게 이끌어나갔지만 1710년 부터 펠리페 5세가 점점 유리해졌다. 1713년 위트레프트 조약으로 1714년 칼 6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즉위하면서 스페인 왕위를 포기했다. 칼 6세를 지원하던 다른 나라들 역시 합의하에 전쟁을 종결했다. 이로서 대세는 펠레페 5세에게 완전히 기울었다. 제3차 바르셀로나 공방전 결과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부르봉 군에 포위되어 마침내 함락당했다. 1714년 9월 11일, 카탈루냐는 완전히 진압되었다. 이후 1716년에 새로운 국가기본법(Decretos de Nueva Planta)이 만들어져서 카탈루냐는 최소한의 자치권을 완전히 박탈당하고 단순한 일개 주로 강등되었다.


2.7 현대

1931년 4월, 지방 선거에서 약진한 카탈루냐 좌파 공화당(ERC)의 당수 프란세스크 마시아는 4월 14일 '이베리아 연방' 내에서 '카탈루냐 공화국'의 성립을 선언했다. 이 선언에 놀란 스페인 제2 공화국 임시정부는 카탈루냐의 독립을 철회시키고 대신 자치 정부 '제네랄리타드'를 구성하도록 했다.

1934년 10월 6일, 제네랄리타드 데 카탈루냐의 수반인 ERC의 류이스 쿰파니스가 스페인 연방 공화국 내에서 카탈루냐 공화국의 성립을 선언했다. 이 사태에 스페인 정부는 군을 투입해서 쿰파니스 등 자치 정부 각료를 해임하고 체포했으며, 쿰파니스트는 30년 형을 선고받았다. 1936년 좌파 인민전선 정부가 들어서자 석방되었다.

20세기 초 독립파들은 위와 같이 두 차례 카탈루냐 공화국의 설립을 발표했으나 스페인 내전 이후 프란시스코 프랑코 정권은 제네랄리타드를 중지하고 자치 정부는 망명했다. 프랑스에 망명했던 쿰파니스는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1940년 10월 15일 바르셀로나에서 총살당했다.

프랑코 집권기를 맞이하면서 다른 스페인의 모든 지역과 마찬가지로[4] 심하게 탄압당했다. 프랑코 사후 다시 자치권을 얻었으며 현재 스페인의 경제 상황으로 인해 카탈루냐는 스페인에서 가장 경제가 활성화된 지역 독립 떡밥이 한창 달아오르고 있다.


3 카탈루냐 독립 주장

카탈루냐 독립운동 문서를 참고.


4 유명인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前 IOC 위원장. 카탈루냐어로는 조안 안토니 사마란치.
리카르도 사모라: FC 바르셀로나, RCD 에스파뇰, 레알 마드리드 및 스페인 국가대표팀에서 뛰었던 골키퍼. 라 리가 최소 실점 골키퍼에게 주는 사모라 상은 그의 이름에서 나왔다.
마크 가솔: NBA 농구 선수. 파우 가솔의 동생
보얀 크르키치: 전 FC 바르셀로나, AFC 아약스, AC 밀란 및 스페인 대표팀 공격수. 현재는 스토크 시티 소속.[5]
빅토르 발데스: 전 FC 바르셀로나 및 스페인 대표팀 골키퍼. 현재는 미들즈브러 FC 소속.
세르지오 부스케츠: FC 바르셀로나의 미드필더.
세스크 파브레가스: 전 아스날 FC, FC 바르셀로나, 현 첼시 FC 및 스페인 대표팀 미드필더.
제라르드 피케: FC 바르셀로나의 수비수.
조르디 알바: FC 바르셀로나 수비수.
카를레스 렉샤흐: 전 FC 바르셀로나 공격수 및 감독. 리오넬 메시를 데려온 사람으로도 유명.
카를레스 푸욜: 전 FC 바르셀로나 및 스페인 국가대표팀 수비수.
차비 에르난데스: 전 FC 바르셀로나 및 스페인 국가대표팀 미드필더.
티토 빌라노바: 전 FC 바르셀로나 수석코치 및 감독.
파우 가솔: NBA 농구 선수. 마크 가솔의 형.
펩 과르디올라: 전 FC 바르셀로나 및 스페인 대표팀 미드필더. 전 FC 바르셀로나, 현 맨체스터 시티 감독.
  1. 노란색은 '카탈루냐의 황금빛 대지'를 상징하며, 붉은색은 '카탈루냐 독립군 사령관 손에 묻었던 피를 상징한다'라고 하는데, 아래에도 적혀있지만 아라곤 왕국의 국장을 그냥 옆으로 눕힌 형태이다.(...)
  2. 행정구역으로서가 아니라 카탈루냐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개념으로 볼 경우 발렌시아마요르카도 포함되어 스페인 동부 해안가 대부분이 된다.
  3. 이미 카스티야 연합왕국은 이전에 2번의 왕위 계승전쟁을 치른바 있다.
  4. 여기는 뭐 이거다 싶을 정도로 제외되는 지역이 없다. 바스크 처럼 그냥 대놓고 전쟁 상태 아닌가 싶은 곳도 있지만, 나머지는 뭐..
  5. 부친의 성이 세르비야계이지만 어머니쪽이 카탈루냐인. 카탈루냐 출생으로 본인도 카탈루냐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