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7 시즌 진행 중 발생한 이슈에 대해서는 FC 바르셀로나 2016-2017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2016-17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 C조 | |||||||||||
50px | 바르셀로나 (Barcelona) | 50px | 맨시티 (Man City) | 35px | 묀헨글라트바흐 (Mönchengladbach) | 50px | 셀틱 (Celtic) |
FC 바르셀로나 | |
Futbol Club Barcelona | |
정식 명칭 | Futbol Club Barcelona 풋볼 클루브 바르셀로나 |
애칭 | 로스 블라우그라나(Los Blaugrana), 꾸레(Cule)[1], 로스 카탈라네스(Los Catalanes) |
창단 | 1899년 11월 29일 |
구단 형태 | 시민구단[2] |
소속 리그 | 프리메라 리가(Primera División de España) |
연고지 | 바르셀로나(Barcelona) |
홈 구장 | 캄프 누[3] (Camp Nou, 98,772명 수용 가능) |
라이벌 | 레알 마드리드 CF - 엘 클라시코 RCD 에스파뇰 - 카탈루냐 더비 |
회장 | 주제프 마리아 바르토메우(Josep Maria Bartomeu i Floreta) |
감독 | 루이스 엔리케(Luis Enrique Martínez García) |
주장 | 안드레스 이니에스타(Andrés Iniesta Luján) |
부주장 | 리오넬 메시(Lionel Messi) |
공식 홈 페이지 | [1] |
한국 팬 페이지 | [2] |
전세계 스포츠 구단 가치 순위 | 3위[4] |
클럽 기록 | |
최고 이적료 영입 | 루이스 수아레스(Luis Alberto Suarez Diaz) (2014년, From 리버풀 FC, 8000만 유로)[5] |
최고 이적료 방출 | 루이스 피구(Luis Figo) (2000년, To 레알 마드리드, 6000만 유로) |
리그 최다 출장 | 차비 에르난데스(Xavier Hernández i Creus) - 454 (1998-2015) |
리그 최다 득점 | 리오넬 메시(Lionel Messi) - 312 (2004-)[6] |
우승 기록 | |
프리메라 리가 (24회) | 1928-29, 1944-45, 1947-48, 1948-49, 1951-52, 1952-53, 1958-59, 1959-60, 1973-74, 1984-85, 1990-91, 1991-92, 1992-93, 1993-94, 1997-98, 1998-99, 2004-05, 2005-06, 2008-09, 2009-10, 2010-11, 2012-13, 2014-15, 2015-16 |
코파 델 레이 (28회, 최다 우승) | 1909-10, 1911-12, 1912-13, 1919-20, 1921-22, 1924-25, 1925-26, 1927-28, 1941-42, 1950-51, 1951-52, 1952-53, 1956-57, 1958-59, 1962-63, 1967-68, 1970-71, 1977-78, 1980-81, 1982-83, 1987-88, 1989-90, 1996-97, 1997-98, 2008-09, 2011-12, 2014-15, 2015-16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12회, 최다 우승) | 1983, 1991, 1992, 1994, 1996, 2005, 2006, 2009, 2010, 2011, 2013, 2016 |
코파 에바 두아르테[7] (3회) | 1948, 1952, 1953 |
코파 데 라 리가 (2회) | 1982-83, 1985-86 |
UEFA 챔피언스 리그 (5회) | 1991-92, 2005-06, 2008-09, 2010-11, 2014-15 |
UEFA 컵위너스컵 (4회) | 1978-79, 1981-82, 1988-89, 1996-97 |
인터-시티 페어스컵[8] (3회) | 1955-58, 1958-60, 1965-66 |
UEFA 슈퍼컵 (5회, 최다 우승[9]) | 1992, 1997, 2009, 2011, 2015 |
FIFA 클럽 월드컵 (3회, 최다 우승) | 2009, 2011, 2015 |
MES QUE | UN CLUB |
FC 바르셀로나 산하 스포츠단[10] | ||||
남자 축구 | 남자 축구 B | 여자 축구 | 풋살 | 비치 사커 |
농구 | 농구 B | 휠체어 농구 | 럭비 유니온 | 럭비 리그 |
핸드볼 | 롤러 하키 | 아이스하키 |
목차
1 소개
21세기 최고의 클럽
축구 역사상 최초로 6관왕[11]과 2번의 트레블[12]을 달성한 스페인의 명문 축구 클럽
축구 전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티키타카가 만들어진 클럽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의 축구 클럽. 세계적으로 축구팀이 워낙 넘사벽으로 알려져서 그렇지 위에 서술한 대로 산하에 여러 계열 스포츠팀이 많다. 레알 마드리드도 그렇고 유럽 더비 스포츠팀이 이런게 많아서 다른 종목(축구 다음으로 유럽에서 인기가 많은 농구에서 그 다음으로 유달리 그런다)에서 티격태격 장난아니게 경기를 하며 엘 클라시코가 이뤄진다. 참고로 FC 바르셀로나도 마찬가지이며 계열 농구팀인 FC Barcelona Bàsquet(바스켓)팀은 스페인 프로농구리그 Liga ACB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이은 우승 횟수 2위 팀이다.
약칭은 바르싸 혹은 바르사[13]로 국내 팬들 사이에서는 간혹 바셀이라고 불리는데 바르셀로나 팬들이 FC 바젤 이야기를 하면서 투닥거리는 것이 일상이다.[14] 스페인의 프리메라 리가의 명문팀 양강 중 하나이며 전통의 강호답게, 라이벌 레알과 마찬가지로 1928년 프리메라 리가가 시작된 이후 한 번도 강등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 초대 우승팀. 2008-2009 시즌부터 2011-2012 시즌까지의 바르셀로나는 역대 최강의 팀 중 하나라는 데에 반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세계 클럽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는 바르셀로나의 라이벌들도 인정한 바...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구를 구현하는 것으로 명성이 드높다. 요한 크루이프가 창시한 일명 토털 사커. 전원 공격, 전원 수비, 즉 멤버 전원이 많이 뛰어야 하는 전술을 사용한다. 선수 전원이 체력이 뛰어나게 좋아야 하고, 또한 선수 전원의 축구 지능이 수준급이어 모든 게임에서 상대 팀을 압도하여야 한다. 또한 토탈사커를 베이스로 티키타카로 불리는 짧은 패스를 빠르게 가져가 상대의 공간을 벌리는 전술이 트레이드마크이다. 토탈사커+티키타카를 구사하려면 선수 전원이 마음의 흐름이 일치해야 하고, 충분한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그냥 11명 모두 축구를 잘하면 된다 토탈 사커를 구사했던 팀은 1974년, 서독 월드컵 때에 요한 크루이프의 네덜란드 월드컵 대표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에 사비, 인혜의 스페인 월드컵 대표팀, 그리고 지금의 FC 바르셀로나. 토털 사커는 결코 경기의 흐름이 끊기지 않는 '아름다운 축구'를 보여주며, 축구의 진수를 맛보게 해준다. 그러나 감독인 펩 과르디올리가 더 이상 이룰 것이 없다는 이유로 떠나게 되면서, 2013년 레알 마드리드 CF에게도 5:5로 추격당하고, FC 바이에른 뮌헨에게 챔스 4강에서 참패하면서 잠시 세계 최강의 클럽이라는 호칭을 빼앗겼다. 그러나 이후 14-15 시즌 세계 최초로 두번의 트레블을 달성한 팀의 자리에 오르며 다시금 유럽축구의 정상을 탈환했다.
어찌됐건 2000년대 중반부터 10년대 중반까지의 바르셀로나는 유럽 축구 사상 최고의 팀 중 하나라 불리워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으며 아리고 사키의 '밀란왕조'가 끝난뒤, 곧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의 10여년간의 춘추전국시대를 깨고 유럽 역대 최고의 헤게모니를 구축한 클럽 중 하나로써 유럽 축구사에서 가장 강력했던 왕조 중 하나로 일컬어지고 있다. 05/06~14/15 10시즌 간 리그 6회 우승(평균 승점85), 컵 3회 우승, 챔스 4회 우승, 두 번의 트레블과 2009년 전관왕 등, 이와 유사한 기간동안 전 유럽 축구사를 통틀어 이만한 업적을 이룩한 왕조를 뽑아보자면, 1950-1960년대 유럽을 주름잡았던 <저승사자 군단> 레알 왕조, 60년대 중반에서 70년대 초반 까지의 <토탈사커> 아약스 왕조, 1970년대 초반부터 후반말엽까지의 <데어 카이저의 팀>바이에른 뮌헨 왕조, 70년대 초반부터 80년대 중순까지의 <붉은 제국> 리버풀 왕조, 1980년대 중순부터 1990년대까지의 <사키혁명> 밀란 왕조 만이 이에 대조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꼽히는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은 이 시기의 바르셀로나를 내 생애 최고의 팀이라고 꼽았으며, 아르센 벵거 감독은 이 시기의 바르셀로나를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팀 이라고 표현했다.
본인들도 자신들의 플레이 방식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그 어떤 팀도 무력화 시키고 그 어떤 팀을 상대로도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하고 있다. 유소년 시절부터 함께 해온 선수들이 많아 눈빛만 봐도 통하는 환상의 플레이와 절대 상대에게 볼을 내주지 않는, 원터치로 물 흐르듯 이어지는 숏패싱 게임 '티키타카'로 유명하다. 바르셀로나 선수들 스스로도 자신들의 가족적인 분위기를 많이 강조하는 편.[15]
창단 모토는 클럽 그 이상.(Més que un club)[16] 다른 클럽과는 다른 이 클럽만의 특이사항으로는 세계 최초로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는 축구 클럽이라는 것. 일종의 시민구단이라고 보면 된다. 박물관 2층 입구에도 '바르사의 주인은 조합원'이라고 새겨놓았을 정도. 이 클럽은 구단주가 구단을 창설하면 그에 맞춰서 팬들이 생겨나는 방식이 아니라, 축구팬들이 자발적으로 출자하여 구단을 만들고 운영하는 방식으로 돌아가며 구단의 회장까지도 6년마다 한 번씩 팬들의 투표를 통해 선출한다. 가입 경력 1년 이상, 18세 이상이면 누구나 6년마다 한 번씩 치러지는 클럽 회장 선거에서 회장을 선출할 권리를 가질 수 있다고 한다. 단, 회장 출마는 카탈루냐 인만 가능하다. 현 회장은 '조세프 마리아 바르토메우'. 전임 회장인 산드로 로셀이 61.35%의 역대 최다 득표율로 회장에 선출되면서, 바르토메우는 구단 협상 담당 및, 부회장으로 임명되었었다. 이후에 산드로 로셀이 구단 내부에 문제를 일으키고 신변의 위협을 느끼면서 사임. 부회장인 바르토메우가 회장직을 이어받았다. 2015년 신임 회장 투표에 출마해서, 이전 바르셀로나 회장이었던 호안 라포르타를 누르고 정식 회장에 당선. 현재 구단을 운영 중이다.
2008/2009 시즌에서 2군팀인 바르셀로나 B팀의 감독이자 팀의 레전드 출신인 펩 과르디올라를 1군 감독으로 선임하였고, 놀랍게도 부임 후 첫 시즌인 2009년 5월 28일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트레블[17]을 달성하였다. 한마디로 끝판왕 (이후 펩은 10/11시즌 아쉽게 5관왕을 이룸으로 단일임기 헥사블과 펜타블 성취라는 거의 불가능한오직 기적으로만 표현 가능한 커리어를 성취한다)
자세히 말하자면, 08/09 시즌 리그 우승, 코파 델 레이 우승,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트레블을 달성한 후 스페인 수페르코파, UEFA 슈퍼컵, FIFA 클럽 월드컵까지 우승하며 시즌 전관왕을 달성했다. 즉, 리그를 포함해 참가한 모든 대회를 우승했다는 얘기.물론 이전까지 없었으며 이후에도 없을지 모르는 어마어마한 대기록이다.최근의 바르셀로나는 '독주'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클럽 창단 이래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레이카르트 감독 시절 매너리즘에 빠졌었으나 이제는 정신 차리고 세계 축구 전술의 결정판과 같은 충격적인 전술구사능력으로 '무너뜨릴 수 없는 팀'을 만들고 있는중...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퍼거슨감독의 맨유를 상대로 2번 연속 완승을 거두었고 연속된 조세 무리뉴 감독의 레알마드리드와 엘클라시코에서도 단 한차례의 패배밖에 허용하지 않았다.[18] 가장 무서운 것은 이러한 모습을 무려 3년이상 보여주고 있다는 것. 오히려 점점 더 완성이 되어가는 듯;; 펩 이후 빌라노바-마르티노 감독 하에서의 바르셀로나는 예전의 극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는 못하나 여전히 UEFA챔피언스리그 우승 후보로 꼽히는 강팀이다.
스페인 4대 스포츠 일간지 중 2개(스포르트, 문도 데보르티보)가 바르셀로나를 지지하고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나머지 둘인 AS와 마르카는 물론 레알 마드리드를 지지한다. 이적시즌만 되면 유명 선수가 자기들이 지지하는 팀으로 이적할 것이라고 다투는 촌극이 일품.)
풋볼 클루브 바르셀로나(Futbol Club Barcelona), 보통 바르셀로나나 바르싸(Barça)[19]로 불리는 이 팀은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바르셀로나에서 호안 감페르를 주축으로 스위스와 잉글랜드, 카탈루냐 축구 선수들이 모여 1899년에 창단했다.
여담으로 레알 마드리드는 Real Madrid C.F.인데 C.F.는 스페인어로 Club de Futbol이고 카탈루냐 지방 언어와 순서 배치가 다르다. 실제로 프랑코의 독재시절에는 C.F. 바르셀로나로 팀명을 기록해야 하기도 했다. 이는 역대 바르셀로나 엠블럼에서 1939년(스페인 내전 종결. 1월에 종결되었다.)부터 한동안 C.F.B라고 적혀있는 모습에서도 알 수 있다.
팀의 유니폼 색깔은 클럽의 창시자 조안 감페르[20]가 스위스인[21]이라서 스위스의 명문 클럽 FC 바젤을 참고한 것[22]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바르사의 지위가 높아지자 FC 바젤 팬들이 오히려 자신들의 클럽이 바르사를 따라했다며 클럽을 욕하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이 붉은 색과 푸른 색을 사용한 유니폼에서 유래한 별명이 블라우그라나(Blaugrana)인데, 카탈루냐어로 블라우가 파란색이고 그라나가 선홍색이다. 말 그대로의 의미.
엠블렘 변천
앰블럼에 카탈루냐 기 문양과 함께 잉글랜드 기 문양과 동일한 성 게오르기우스 십자가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잉글랜드와는 무관하다. 성 게오르기우스(카탈루냐어로 St. Jordi)는 바르셀로나가 위치한 카탈루냐의 수호성인으로 바르셀로나 시 깃발에 카탈루냐 기와 함께 성 게오르기우스 십자가가 들어가 있다. 즉, FC 바르셀로나의 엠블럼은 바르셀로나 시 깃발을 차용한 것이다. 아래 바르셀로나 시의 깃발을 보면 이해가 될 듯.
홈구장은 캄프 누이며 유럽에서 가장 큰 축구 경기장이며, 세계에서 11번째로 큰 경기장이다. 그리고 인기팀답게 유럽 최고의 평균 관중을 자랑하는 팀이다. 11/12시즌 한 경기 평균 84,119명의 관중을 동원해 도르트문트(8만 521명)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관중 대부분은 연간 회원권을 가진 사람들이고 회원권을 사기 위해 대기한 사람만 수만명에 달하기에 1년간 회원권을 대여하는 경우도 있는데 1만유로(약 1400만원)를 호가하는 가격에도 원하는 사람이 줄을 설 정도라고...
라이벌 팀 레알이 스타 선수들의 영입으로 화려한 멤버 구성을 자랑하는 한편 바르셀로나 역시 세계 최고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긴 하나 레알과의 차이점이라면 이들 대부분이 유소년 시절부터 함께 자라난 선수들이라는 점.[23] 어린 시절부터 함께 맞춘 조직력과 단결력은 이 팀의 큰 장점이자 플레이 스타일의 핵심이다.[24]
선수들 개개인의 기량도 세계 최고지만 라이벌 팀들에 비해 연계 플레이에서 강함을 보여주는데 이것 역시 유소년 시절부터 함께한 팀의 특권. 열살때부터 축구의 생명이 패스임을 뼛속 깊이 새기고, 개인기나 개인의 존재감을 드러내기보다는 팀 중심으로 경기가 되게 플레이를 하도록 배우고, 팀이 최우선임을 체득한다.
플레이 자체가 패스 중심이고, 항상 토털 사커로 인해 공수에서 상대방보다 수적 우위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압박을 허용하지 않는다. 강한 압박을 앞세워 바르사를 꺾으려는 팀은 경기 초반부터 파탄이 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볼 소유권이 상대방으로 넘어가면 그들은 바르사로부터 극심한 압박을 받는다. 모처럼 볼을 갖게 되었어도 좀처럼 앞으로 나오지 못한다. 바르사의 최전방 공격수로부터 압박을 받아 볼을 뒤로 돌리다 골키퍼에게까지 패스하기 일쑤다. 대표적인 예는 2015-16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아스날. 전후반 통틀어 슛을 한 번 못 쏘아볼 정도로 극심한 압박을 받았다.
더불어 이 팀 이름 그대로 여러 다른 종목팀들이 있다. 농구팀, 배구팀, 레슬링에서 장애인 스포츠팀까지 골고루 같은 이름을 가진 팀들이 있는데 이는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도 그렇다. 농구팀도 유럽에서도 알아주는 강호이다. 2009년 유로 농구챔피언스리그도 우승했으며,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농구리그도 우승했다. 유니폼도 축구와 똑같은 색상을 쓰며, 기묘하게도 농구클럽임에도 FC 바르셀로나 라는 이름을 쓴다. 아마도 축구 클럽이라는 명칭보단 아예 구단 전체 이름을 상징하는 듯 싶다.
2 El Canto del Barça
FC 바르셀로나 공식 응원가 El Canto del Barça[25] | 경기 시작 전 캄프누에서의 응원[26] |
작사: Jaume Picas(하우메 피카스), Josep Maria Espinàs(호셉 마리아 에스피나스)
작곡: Manuel Valls(마누엘 발스) 코러스: Coral sant Jordi(코랄 산 조르디)[27]
Tot el camp És un clam Som la gent blaugrana Tant se val d'on venim Si del sud o del nord Ara estem d'acord estem d'acord Una bandera ens agermana. Blaugrana al vent Un crit valent Tenim un nom que el sap tothom: Barça, Barça, Barça! Jugadors Seguidors Tots units fem força Són molts anys plens d'afanys Són molts gols que hem cridat. I s'ha demostrat s'ha demostrat Que mai ningú no ens podrà tòrcer. Blaugrana al vent Un crit valent Tenim un nom que el sap tothom: Barça, Barça, Barça! | 온 경기장이 사람들로 가득차 있네 우리는 블라우그라나의 서포터 우리의 출신이 남쪽이든 북쪽이든 그건 중요치 않아 우리 모두 하나되어 형제애로써 바르셀로나 깃발 아래 뭉친다. 블라우그라나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용맹스런 함성이 울려퍼진다 모두가 알고있는 그 이름: 바르사, 바르사, 바르사! 선수들이여 서포터들이여 우리는 최강으로 하나가 된다. 우리는 오랫동안 많은 것을 이룩했고 수많은 골들을 작렬시켰다 또한 우리는 보이고 또 보여줘왔다. 그 어떤이도 우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블라우그라나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용맹스런 함성이 울려퍼진다 모두가 알고있는 그 이름: 바르사, 바르사, 바르사! |
FC 바르셀로나의 공식 응원가로써 팀의 창단 75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졌다. 이 응원가는 1974년 11월 27일, 캄프 누에서 열린 FC 바르셀로나와 동독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 처음 울려퍼졌다. 다른 응원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스페인어가 아닌 카탈루냐어 , 즉 바르셀로나 자치주정부 언어를 사용하여 작사 됬다는 점이다. 응원가의 명칭인 El Canto del Barça[28] 을 해석하자면 바르사의 노래가 된다. 다른 명칭으로 Himno del F.C Barcelona라고도 하는데 이 것 역시 해석하자면 바르셀로나의 찬가 정도로 해석된다.
여느 팀과 똑같이 캄프 누 홈 경기에서 경기 시작전과 종료 후에 울려퍼지며, 득점 상황에서도 울려퍼진다. 자주심이 강한 카탈루냐인들의 굳은 의지가 잘 표현되어있으며 카탈루냐 인들의 정신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축구팀 FC 바르셀로나만의 응원가라 할 수 있다.
3 바르셀로나의 아시아 선수
아시아 선수가 과거에 딱 1명 있었다! 1910년에 필리핀과 스페인 2중 국적이던 필리핀 어머니와 스페인 아버지를 둔 혼혈선수 파울리노 알칸타라(1896~1964)이다. 2013년까지 유일하게 아시아 국적을 가진 바르셀로나 선수인 알칸타라는 1912년 15세 4개월 18일의 나이로 카탈라(Catala)와의 경기에 출장하여 첫 세 골을 터뜨리는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바르셀로나의 9대 0 승리. 리그 경기 첫 출장은 1912년 8월 14일에 벌어진 시바델(Sibadell)과의 경기에서도 해트트릭을 기록했다.(그렇게 전설은 시작된다)
또한 그 다음 치뤄진 비야레알과의 경기에서도 골을 기록하게 되는데 바르셀로나가 3-2로 이긴 그 경기에서 당시 바르셀로나 회장 라울 호세는 저 빼빼마른 선수가 도대체 누구냐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다가 1916~18년까지 어머니의 나라인 필리핀으로 돌아가 필리핀의 보헤미안 클럽에서 3시즌을 뛰면서 필리핀 국대선수로도 활약했다가 1918년 이후로 다시 바르셀로나로 돌아왔고, 2중국적이었던 그는 스페인 국대선수로도 활약하며 6경기에 나섰는데 5골을 기록했다. 더불어 1922년 4월 30일에 벌어진 프랑스와의 친선경기에서 골을 넣었는데 골이 골네트를 뚫고 넣는 진기한 장면까지 보여줬다. 이 당시엔 국대 관련 규정이 약한 편이어서 두 나라에서 국가대표로 뛰는 것이 가능했다.
그렇게 알칸타라는 1927년에 은퇴할 때까지 357경기에서 무려 356골을 터뜨리며 팀이 5번 코파 델 레이, 10번 카탈루냐 리그를 우승하는 데 맹활약을 하면서 바르셀로나 전설로서 길이남아 역사를 남겼다. 다만 공교롭게도 그가 뛰던 시절 프리메라 리가는 프로 리그가 아니었고, 그가 은퇴하고 나서인 1928-29 시즌부터 프로 리그를 개막했기에 바르셀로나 역사에서 위대한 선수이면서도 프로 선수가 아닌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여담으로 알칸타라는 필리핀 국대 축구선수로 활약하며 1917년 일본 원정에서 벌어진 극동선수권 대회에서 15-2로 일본을 뭉개는데 기여했다. 이당시만 해도 필리핀은 아시아 축구 선진국이었다. 이는 일본 축구역사상 최다 실점패인데 이 굴욕을 잊지못한 일본은 딱 50년 뒤인 1967년에 필리핀과 재경기를 가져서 이번에는 15:0으로 설욕하며 일본과 필리핀이 서로 축구 최다 실점과 최다 골득점을 서로간에 기록하고 있다.
유일했던 아시아 선수였던 알칸타라 이후, 오랜기간 아시아 선수가 없었지만 한국의 유망주인 백승호와 이승우, 그리고 장결희까지 3명의 선수가 바르셀로나의 유소년 팀에 입성했다. 그러나 이후 이 세 명 모두 바르셀로나의 유소년 영입에 관련한 FIFA의 징계를 받아 한참 중요한 시기에 팀내에서 훈련과 공식 경기를 치르지 못했고, 이승우의 경우 이적까지 고려했었으나 결국 세 명 모두 잔류를 선택했다.
2016년 1월, 바르셀로나의 선수 등록 금지 징계가 풀리고 이미 5년의 거주 기간을 채워 영주권을 확보한 백승호와 만 18세가 되어 역시 마찬가지로 징계가 해제된 이승우가 팀에 복귀하였고, 백승호는 2016년 2월 20일에 세군다 B 22라운드에서 후반 교체 출전하며 바르셀로나 B 데뷔전을 치렀다. 프로 경기로 한정한다면 최초의 바르셀로나 선수가 된 셈. 이승우도 2016년 3월 14일에 세군다 B 경기에 출전하며 바르셀로나 B 데뷔전을 가졌다. 장결희의 경우 생일에 늦은 탓에 2016년 4월에 징계가 풀렸으나, 선수 등록 기간이 지난 탓에 2016-17 시즌부터 출전할 예정이다.
그리고 2016-17 시즌, 백승호가 공식적으로 바르셀로나 B 시즌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며 1군 진입을 위한 마지막 단계에 올랐다. 이미 프로 선수로는 아시아 최초의 선수가 된 셈이지만 오랜 기간 바르셀로나 1군에서 활약한 레전드인 알칸타라를 생각한다면 그렇게 큰 의미를 둘 기록은 아닌 셈이다. 이승우 또한 바르셀로나 B의 제안을 받았지만 오랜 기간 징계로 경기를 뛰지 못했기에 더 많은 경기를 소화하기 위해 후베닐 A에 남았다. 바르셀로나 B에 이름을 올리면 후베닐 A 경기는 물론 UEFA 유스 리그 또한 출전할 수 없기 때문. 더군다나 백승호의 경우 이미 나이가 초과해 유소년 팀에 남을 수 없었고, 이승우는 유소년 팀에서 마지막 시즌을 맞이하며 프로 진입을 위한 마지막 담금질을 할 기회가 있었던 셈이다. 결국 장결희와 함께 후베닐 A 소속으로 2016-17 시즌을 맞이하게 되었다.
4 라이벌
4.1 엘 클라시코(El Clàssic) - 레알 마드리드 CF
FC 바르셀로나 FC Barcelona | 레알 마드리드 CF Real Madrid CF |
엘 클라시코(El Clàssic) |
전 세계를 둘로 나누는 경기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더비 매치
시작은 조안 감페르와 스페인을 쿠데타로 장악했던 리베라의 대립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리베라가 딱히 레알을 지지한 것도 아니고, 감페르보다 리베라 정권이 빨리 무너졌기 때문에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다. 조안 감페르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는데, 이 원인은 리베라와의 대립이 문제가 아니라 세계 대공황의 여파였다.
문제는 스페인 내전 시기이다[29]. 이 때의 대표적인 인물이 주젭 수뇰(Josep Sunyol I Garriga)이다. 본래부터 카탈루냐 독립파이면서 강성좌파였던 태생적으로 정치가의 아들이면서 카탈루냐 좌익 정파였던 ERC(Esquerra Republicana de Catalunya)의 당원이기도 했으며, 좌익신문 라 람블랴의 창립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수뇰이 1935년 카탈루냐 축구협회장이자 바르셀로나 회장이 된다. FC 바르셀로나에 카탈루냐 민족성에 더해서 반 정부 성향이 강해진 것이 이 시기였다. 그리고 1년 후인 1936년에 스페인 내전이 터졌고, 수뇰은 프란시스코 프랑코 추종세력에게 총살 당해서 암매장 되었다[30]. 이 사건으로 인해서 FC 바르셀로나와 수뇰은 카탈루냐 독립운동과 반 프랑코 투쟁의 상징이 된다[31]. FC 바르셀로나에 강경한 분리주의와 반 프랑코 성향이 본격화 된 것은 이 시기부터이다. 이 이전의 FC 바르셀로나는 에스파뇰을 포함한 이 지역 축구협회에 모두 관여하기도 하는 등 딱히 민족분리나 독립 성향이 강하지 않았다[32][33].
스페인 내전이 프랑코의 승리로 끝나면서 총통의 자리에 오른 프란시스코 프랑코는 스페인 국가주의를 주장했다. 모든 지역에서 지역색을 빼는 작업을 시작했고, 그 중에서 가장 강한 타격의 대상이 된 것이 좌익이면서 카탈루냐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바스크를 제외한다면 스페인 내전 시기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카탈루냐 지역이었다[34]. 프랑코는 모든 축구팀의 명칭은 스페인어로 쓰여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서 영어식으로 Football Club의 약자인 FC를 사용하던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어 문법에 따른 명칭인 Club de Futbol의 약자인 CF로 바꾸어야 했다[35] 그리고 스페인 이외의 민족적이고 지역적 상징도 금지되었기 때문에 카탈루냐 기를 사용했던 바르셀로나의 앰블렘도 교체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위의 앰블렘 변천을 보면 잘만 들어 있어서 상당히 의심스럽다. 또한 1940년 프랑코 지지자였던 엔리케 피녜이로[36]가 바르셀로나 회장으로 취임하기도 했다. 이전에는 바르셀로나 경기를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인물의 취임이었는데, 오히려 나중에는 바르셀로나를 정치에서 보호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단적으로 엔리케 피녜이로 회장 재임 시기인 1943년 6월 코파 델레이 준결승전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경기는 노골적인 경기 조작이 있었다. 1차전 홈경기에서 바르셀로나가 3대 0으로 승리한 이후, 차마르틴 경기장에서 벌어진 레알 마드리드의 홈경기에서 레알 마드리드가 11대 1로 승리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보안부장이 전반전 시작하기 전에 니들이 경기 뛰는건 위에서 눈감아주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협박을 했다는 것이 밝혀졌고, 피녜이로는 이에 대해서 항의하고 사임했다. 이후 바르셀로나 회장직은 프랑코 체제 임명 시기를 짧게 거치다가 오히려 강경한 대응이 더 문제를 야기한다는 판단이 내려져서 카탈루냐 출신 임명을 거쳐서 자체 선임으로까지 변했다.
결국 이 과정에서 스페인 축구협회는 해당 경기를 무효로 처리했고, 이후에 회장에 취임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레알 마드리드 회장은 공식적으로 사과를 해야 했다. 이후 1978년까지 이어진 프랑코 치세에서 바르셀로나는 8번의 리그우승, 10번의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차지했고, 오히려 레알 마드리드는 53-54 시즌 리그를 우승할 때까지 21년의 무관 세월을 보내야 했다는 점에서 프랑코가 레알 마드리드를 밀어주었다는 이야기에 대해서 실질적인 지원이 있기는 했냐는 비판도 존재한다. 레알 마드리드 항목에 이에 대한 글이 적혀 있으니 참고[37].
하지만 프랑코의 스페인 민족주의라기보다는 우파 국가주의와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 민족주의 + 좌익적 성향에 더해서 저 앞서 언급된 레알 마드리드에 대한 승부조작 사건의 임팩트가 더해져서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카탈루냐와 카스티야라는 해묵은 민족간 대립이 오히려 격화되는 계기가 되었다.[38][39]
때문에 바르셀로나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레알 마드리드에서 바르셀로나로 선수 이적은 불가능에 가까웠는데[40], 드물게 있었던 두 팀간 이적에서 루이스 피구 사건만큼 두 팀의 갈등을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는 드물 것이다. 피구는 바르셀로나에서 부주장의 위치까지 오르며[41] 바르셀로나 팬(들에게 사랑을 한몸에 받아왔다. 피구 본인도 레알 마드리드를 신나게 디스하면서 바르셀로나의 심장으로까지 여겨졌다. 그러나 2000년에는 무시무시한 계약파동끝에 바르셀로나 최대 라이벌인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다. 피구와 에이전트가 주급인상을 요구하며 레알과 바르셀로나 사이를 오가다가 강제이적협상 허가조항(바이아웃)을 발동한 레알 마드리드와 계약을 체결한 것. 결국 시즌이 지나고 바르셀로나의 홈구장인 누캄프에서 바르셀로나와 레알마드리드의 엘 클라시코가 열린 날, 10만 꾸레들에게 FUXX과 수전노등 야유를 한몸에 받으며(일명 '돼지머리 폭격') 경기를 망쳤다. 그 후 약간의 정신병을 앓았다는 설도 있다. 피구의 이적건은 바르셀로나에서 레알 마드리드로의 직접 이적으로 충격을 선사한 것이 이펙트가 컸기에 상당히 많이 회자가 됬지만 비록 직접 이적은 아니지만 한 다리 건너 나중에 이적하여 제대로 부메랑이 되서 돌아온 사례 역시 있기도 하다. 사무엘 에투가 그에 적합한 예인데. 2000년까지 레알마드리드에서 뛰었으나 활약이 미미해 레알 마요르카로 이적 후 약 4년 뒤인 2004년에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게 되었는데 바르셀로나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펼치면서 레알 마드리드에게 유독 강한 면모로 활약한 사례가 있다. 이로 인해 레알 마드리드는 선수가 이적할 시 계약에 차후에라도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지 않겠다는 계약을 추가해 집어넣는다고 한다.[42]바이백은 항상 덤이다.
이 반대 사례로 현 FC 바르셀로나의 감독이자 전 선수출신인 루이스 엔리케 감독이 레알 마드리드에서 FC 바르셀로나로 직접 이적한 전적이 있다.
이렇듯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간의 더비매치, 즉 엘 클라시코는 그 명성답게 화려하면서도 두 지역간의 엄청난 반감정때문에 누구 하나 작살날 것 같은 무서운 분위기로 진행되곤 했으나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주요 선수들로 이루어진 스페인 대표팀이 08 유로 - 10 월드컵 - 12 유로에서 3연속 메이저 대회 우승을 거두고 두 팀 선수들 사이에 스페인 국가대표라는 유대감이 생기면서 꽤 훈훈한 분위기로 탈바꿈하는데 성공했다. 14-15 시즌부터는 피케가 망치고 있다 [43]
지역감정이나 팀 간의 적개심과는 별개로 레알 마드리드의 곤살로 이과인은 엘 클라시코가 벌어지면 맨 처음 하는 행동이 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를 찾아가서 껴안고 뽀뽀하고 별짓을 다하는 것이다. 메시 역시 이렇게 행동하는 이과인을 흔쾌히 받아들인다는 점. 엘 클라시코이기 이전에 같은 국적의 동질감 때문에 메시와 이과인은 엘 클라시코 라이벌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매우 친분이 깊다. 카스티야와 카탈루냐 출신들이 아닌데다 외국인 용병들 그냥 같은 국대선수들끼리 친하게 지내는 거니 팬들 역시 오히려 보기 좋다면서 신경쓰지 않는듯.
4.2 데르비 카탈란(Derbi català) - RCD 에스파뇰
FC 바르셀로나 FC Barcelona | RCD 에스파뇰 RCD Español |
데르비 카탈란(Derbi català) |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에스파뇰은 카탈루냐 지방 바르셀로나에 사는 카스티야인들이 만든 클럽이다.[44] 축구를 보고 싶지만 카탈루냐 인들이 만든 FC 바르셀로나를 응원하기 싫었던 카스티야 인들이 따로 만들어낸 클럽이기 때문에 태생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라이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 같은 카탈루냐 지방의 축구클럽이지만 서로 스페인 잔류와 카탈루냐의 독립 쪽을 대변했던 팀이기에 치열한 라이벌이다. 흔히들 카탈루냐 더비라고 부르며, 연고지로 하고 있는 바르셀로나 지방의 로컬 매치라고 볼 수 있다. 물론 한낮 리그 중위권 팀과 최상위권 팀의 더비가 무슨 볼 맛이 있겠냐는 말들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는 스페인 역사와 양 클럽간의 정체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말이다. 물론 90년대 들어 에스파뇰이 카탈루냐 지역팀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으며 과거와 같은 역사적,정치적 성향이 많이 수그러들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두 팀의 매치는 뜨겁다. 경기를 보면 정말 여타 더비매치와 다를바 없는 치열한 경기가 펼쳐진다. 실제로 15-16시즌 매치를 보면 스터드로 자신의 다리를 밟은 골키퍼에게 메시가 빡쳐서 다가가는데 수아레스가 이를 말리는 것을 볼 수 있다.[45]
이러하듯 실력차가 넘사벽임을 떠나서 라이벌이라 할 수 있겠다. 오죽하면 2000년대 중반, 바르셀로나로 막 이적해서 공항에 도착한, '지안루카 잠브로타'가 택시를 타려고 하자 에스파뇰 팬인 택시 기사가 승차 거부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도 여전히 바르셀로나 팬이나 에스파뇰의 팬이 각기 다른 팀을 응원하는 택시기사를 만나면 같은 상황이 펼쳐지곤 한다고 한다...
5 스폰서에 대하여
2016-17 Season KIT | |||||||||
HOME | AWAY | GK | |||||||
FC Barcelona Sponsor Marking | |||||||||
NIKE | QATAR Airways | Unicef[46] | Beko | ||||||
전반적으로 RCD 에스파뇰과 더불어 카탈루냐 지방을 대표하는 팀이라는 자긍심 탓인지 팀 창단 후 최근 몇년 전까지 유니폼에 스폰서 마크가 없었던 팀이다. 심지어, 유니폼에 붙어있는 '유니폼 마크 : 나이키'도 때버리자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나마도 몇년 전부터 달고 있던 스폰서 마킹은 유니세프다. 하지만 유니세프로부터 후원을 받는 게 아니라 거꾸로 유니세프를 후원한다는 의미로 유니세프 마크를 달고 뛴다. 비록 후원금으로 돈은 나가지만 유니세프 마크를 달면서 '공익에 헌신하는 바르사'라는 이미지가 생겨나 제대로 홍보 효과를 봤다. 그러나 유니세프 마크를 닮과 동시에 유니폼 상품의 가격이 상당히 올랐으며, 추후 다른 스폰서를 받기 위한 명분이 될것이라는 시각도 있었다.(유니세프 마크를 달 때에도 상당히 말이 많았다.)[47]
결국 2011-12시즌부터 카타르재단(Qatar Foundation)과 연간 3000만 유로의 5년짜리 유니폼 스폰서 계약을 맺으면서 111년 만에 돈을 받고 유니폼에 스폰서를 새기게 되었다.
2012년 말, QATAR AIRWAYS, 즉 카타르 항공과 유니폼 스폰서쉽을 체결하였다고 공식 발표하였고, 이로써 2013-2014 시즌부터는 블라우그라나에 카타르 항공의 로고가 새겨지게 되었다. 바르셀로나 팬들은 그나마 영양 그림이나 아랍어가 새겨지지 않은 게(...) 어디냐며 자기위안 중. 덧붙이자면 이전까지 달았던 카타르 파운데이션은 교육재단으로써 기업적 스폰서가 아니라는 명목이라도 있었으나 카타르 항공은...그런 거 없다.
그런데 우습게도 카타르 항공의 라이벌인 에미레이트 항공도 질세라 2013~14 시즌부터 바로 레알 마드리드와 2013년 5월 31일 5년 계약에 3000만 유로로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 스폰서로 계약을 맺었다. 2013~14시즌부터 아랍 항공사의 유니폼 엘 클라시코가 이뤄진 셈이자 두 라이벌팀끼리 유니폼에서도 경쟁 업체의 혈투가 벌어진 셈이랄까.
2014년부터 터키의 가전제품 제조사 아르첼릭(베코)과 스폰서십을 맺었다.
협약 클럽으로 우즈베키스탄의 FC 분요드코르가 있었다. 협약 이후에 구단 엠블럼도 바르샤와 비슷하게 변경할 정도.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시민들이 운영하는 바르사와는 달리 분요드코르는 독재자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근데 무슨 FC 분요드코르가 바르셀로나에 거액을 지원해주니 그런 관계랄 것까지는 없었고, 단순한 FC 분요드코르 유소년 지원 측면에서 협약이었다. 2011년 쯤에 협약 기간이 만료되면서 자연스럽게 결별했다. 독재자에 반대하던 바르셀로나가 독재자 클럽과 협약했다고 레알 마드리드 팬들에 비난을 받았으나, 오히려 2010년에 레알 마드리드쪽에서도 분요드코르에 호날두를 파견했던 일이 밝혀지면서 데꿀멍.(...)
그리고 갑자기 라쿠텐 스폰서 참여 루머가 떴다.
15-16시즌을 마지막으로 카타르 항공과의 스폰서 계약 연장이 지지부진 하다는 소식이 있었으며 실제로 16-17 시즌의 프리 시즌의 유니폼에는 카타르 항공의 스폰서마크가 없는 클럽 월드컵 우승팀의 패치와 뒷쪽의 유니세프 패치만 붙어있었다. 과거 본래 스폰서가 없었기에 별 상관 없는 듯한 반응이였고 이번 시즌의 새로운 유니폼 역시 바르셀로나의 20세기 바르셀로나 유니폼 특유의 클래식한 느낌을 살렸기에 과거로 회귀하는 듯 싶더니... 2016 스페인 슈퍼컵을 기점으로 유니폼에 다시 카타르 항공의 스폰서 마크를 찍고 나왔다.재정적으로 역시...
6 멤버
6.1 팀 주축 멤버
바르셀로나는 유스 잘 키우기로 소문난 팀이다. 이외에도 유스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는 평가를 받는 클럽이 많긴 하지만, 바르셀로나는 그 중에서도 독보적. 마르지 않는 샘물, 라 마시아[48]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최전성기로 알려져있는 과르디올라 시절 팀의 베스트 일레븐 중 여덟명이 유스출신이며, 특히 주축멤버인 리오넬 메시, 페드로 로드리게스(2015년 첼시 이적) 등 꼬꼬마 2톱을 비롯한 카를레스 푸욜(2014년 은퇴), 차비 에르난데스(2015년 알 사드 이적),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헤라르드 피케, 세르히오 부스케츠 등의 선수들은 세계적으로 해당 포지션에서 손꼽히는 대단한 선수들이다. 그 외에도 발데스, 페드로도 해당 포지션에서 라리가 톱클래스를 자랑하는 선수들. 게다가 전성기를 이끈 감독인 조셉 과르디올라 또한 유스팀 출신이며 심지어 세스크 파브레가스처럼 다른 팀에서 데려간 유스 출신의 선수가 있을 정도이다. '믿고 쓰는 바르셀로나 유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 이에 대응하는 말로 믿고 쓰는 레알산[49]이 있다. 또다른 이유론 레알 유스 역시 바르셀로나 유스에 비할만큼 명성있는 유스지만 갈락티코 정책을 시행하면서 자 클럽 유망주들이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면서 이 유망주들이 스페인이 타클럽으로 빠져나갔다. 그래서 2000년대 중후반부터 타클럽에 레알 유스출신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레알 팬들은 바르셀로나는 유스로 자기 배를 채우지만 레알은 라 리가를 먹여 살린다고 카더라.
게다가 2011년 현재 바르셀로나 감독 펩 과르디올라는 끊임없이 유스출신 B팀 선수들을 1군에서 시험하고, 계속해서 좋은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올시즌 톱클래스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부스케츠와 페드로. 게다가 중미쪽 유망주들도 간간히 나와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곤 한다.
주전을 살펴보자면, 리오넬 메시는 역대 최고로 거론되는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고, 사비와 이니에스타도 세계 축구선수를 꼽으면 다섯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의 선수들. 이 셋은 매년 발롱도르 수상 대상자에 올라갈 정도. 게다가 피케와 푸욜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정상급 센터백 조합이며 사실상 푸욜빨, 빅토르 발데스 또한 최근 수년간 라리가 최소 실점 골키퍼를 놓치지 않은 정상급 골키퍼. 심지어 뜬금없이 등장해서 야야 투레와 앙리를 밀어내었던 부스케츠와 페드로도 지금은 해당 포지션에서 톱레벨의 선수들. 부스케츠는 이미 수미 중에서 가장 폼이 좋은 선수 중 한명이며, 마스체라노를 서브로 밀어놓는 기염을 토했고[50], 페드로도 올시즌 미친듯이 골을 집어넣으며 양심이 있다면 메시랑 비교하지는 말자 라 리가에서 메시와 호날두를 빼면 가장 폼이 좋은 윙어 중 한명으로 꼽히고 있다. 이 외에도 보얀이나 헤프렌 같이 유스 출신 1군들은 아직도 끊기지 않고 나타나고 있다. 그야말로 마르지 않는 샘물.
그러나 이러한 유스 시스템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해적질이라고 세스크를 빼돌린 아스날을 비난하지만 바르셀로나는 범세계적인 스케일로 세계 각지에서 유망주를 수집한다. 어디 바르샤 캠프나 설비해서 이런다면 말이 없겠지만 그냥 프로계약 맺지 않은 유망주를 빼돌리는 것이다. 당장 한국만 해도 인천과 수원의 유스 선수들을 그냥 꿀꺽 삼킨 게 바르셀로나다.
잘 되면 좋겠지만 이 선수들의 미래는 바르셀로나가 책임지지 않는다. 그 수많은 연령대별 팀 중 바르셀로나에서 데뷔하는 것은 선배들의 어린 시절 기록을 갈아치우거나 그에 근접하는 보얀이나 페드로 같은 천재들이나 그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바르셀로나에서 배웠으니까 최소한 세군다 정도에선 공 찰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도 엄연히 존재할 것이다. 예컨대 큰 부상을 입어서 선수의 능력 자체가 퇴보한 경우라든가. 한국의 유망주들이야 그렇다쳐도 해외 선수들을 데려올 때 선수의 마음의 안정을 위해 가족들도 같이 이주시키고 가족들에게 일자리를 보장해 주지만 바르셀로나에서 선수가 짤리고 나서도 그 일자리가 보장된다는 법칙은 결단코 없다. 스페인은 지금 국가경제가 영 좋지도 않고.
하지만 바르셀로나는 타구단들에 비하면 유스 선수들의 책임을 지는 편이고, 여기서 나오는 리스크들은 해외에 스카우트되는 모든 유스 선수들이 겪는 문제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바르셀로나만을 비판하기에는 약한 주장. 해외 유스들을 열심히 모으는 유럽의 모든 유명 클럽들의 문제점이다.
최근에는 세르지 로베르토와 아다마 트라오레 등 바르셀로나 B팀의 선수 7명이 바르셀로나 대학에서 공부또힌 병행하고있다. 유망주의 미래를 보장해주는 아주 좋은 정책이자 라 마시아가 대단할 수 밖에 없는 또다른 이유.
현대 시대에 와서 라 마시아에 필적하는 유스 시스템은 라이벌인 레알 마드리드의 유스나[51] 바이에른 뮌헨의 유스 시스템이다.[52]
6.2 이적에 대하여
옆동네 레알의 차원이 다른 이적에 비해서 돈을 적게 쓰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많이 쓴다. 일단 팀의 레전드 크루이프는 이적료가 너무 비싸 농기계로 등록해서 영입했으며[53] 최근만 계산하면 엔리케 100억 케이타 200억 알베즈 600억 비야 600억 아드리아누 코헤이아 200억 막스웰100억 케이리송 200억 카세레스 300억 치그린스키 400억 즐라탄 1024억 네이마르 1273억 매년당 천억씩 부었다.그리고 주급역시 레알보다 높다.[54]
유스 출신을 제외하고 보면, 다비드 비야라는 걸출한 스페인 최고의 공격수가 있고, 알베스는 마이콘과 필립 람만 제외하면 세계에서도 가장 잘나가는 라이트백이었으며 마이콘의 기량이 떨어진 이후로는 필립 람과 함께 최고의 라이트백이라고 볼 수 있는 선수다. 마스체라노도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정상급 수비형 미드필더이고 이외에도 에릭 아비달, 세이두 케이타, 아드리아누 같은 선수들이 1군에 있다.
레알 마드리드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바르셀로나도 한껏 지를 때도 많다. 해외 축구를 아는 팬들은 레알 마드리드, 첼시와 함께 현질 최종보스로 꼽는 팀이기도 하다. 다만 최근 맨체스터 시티과 파리 생제르망의 등장으로 세 팀 모두 버로우...이긴 한데, 팀의 명성이라든가 전력적인 측면에서 레알 마드리드, 맨유, 첼시 등과 더불어 축구선수들이 선망하는 구단임은 틀림없다. 그리고 09/10시즌 끝나기 무섭게 발렌시아 C.F.의 다비드 비야를 4000만 유로에 사오면서 맨체스터 시티에 뒤질수 없다는 모습을 보이고있다. 흠좀무.이제 위닝에서 바르샤는 최강이다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니라 3000만~3500만 유로의 몸값이 예상되는 세스크 파브레가스도 노리고 있다. 물론 현찰 박치기 하기엔 자금이 부족해서 즐라탄, 야야 투레+현금a등도 고려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09/10시즌 후 이적 시장에서 가장 큰 손이 될것은 확실해 보인다. 심지어 회장인 로셀은 페르난도 토레스까지 영입까지 공약으로 내걸었다!! 물론 토레스가 첼시로 가버린 2011년 현재로서는 물거품이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3년 무렵 2억 유로에 달했던 클럽의 부채[55][56]를 2008년에 전액 상환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팀은 통상적으로 축구클럽의 가장 큰 돈줄인 갑부 구단주와 유니폼 스폰서 둘 다 없는 구단이란 점을 감안하자. 뭐냐 얘네.(...)[57]
어쨌거나 저쨌거나 바르셀로나가 다비드 비야의 영입을 발표. 이제 지구는 멸망할 것(...)으로 보였는데 지구방위대가 스페셜 원 감독과 계약을 맺어 라 리가는 내년에도 다시 신과 우주의 대결이 벌어지게 될 듯 하다. 하지만 야야 투레를 25m으로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시켰다. 트레블의 주역으로 미칠듯한 활동량과 수비력으로 중원을 석권했던 야야 투레가 부상으로 인한 폼 하락과 부스케츠때문에 경기에 출전하지 못해 이적한 걸 두고 팬들의 비판도 있는 듯. [58] 특히 당시에는 야야 투레의 대체자인 부스케츠가 까꿍 다소 미숙한 모습을 보여주곤 했었기 때문에...[59]그리고 이 자금으로 세스크 파브레가스 영입에는 더욱 박차를 가했지만 결국 세스크를 사오는데는 실패했다.[60]
하지만 스페인의 경제난은 피해갈 수 없었는지 재정상황이 썩 좋지는 않다고...08/09시즌에 215M 유로이던 구단 부채가 09/10 시즌에는 326M 유로로 111M 상승했는데, 이건 400M이 넘는 수익에도 불구한 결과물이다. 그 여파인지 도중에 주급이 부족해서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중계권 재협상 문제도 레알 못지 않은 발등의 불이 되어 버렸다. 새 회장 산드로 로셀에 따르면 이미 전임 라포르타 시절에 재정이 막장인걸 분식회계 했다고 한다. 임원들이 공금을 사적으로 쓰는 일도 비일비재했다고. 나아가 로셀은 라포르타에게 고소드립을 시전하기도 했다. 덕분에 구장인 캄프 누의 보수계획은 안드로메다로 떠나버렸다...물론 로셀은 이적자금으로 100m을 내놓겠다고 공언했지만 새로운 선수는커녕 알베스 주급문제로 시끄러운게 바르셀로나의 재정 상황.
결국 주급 많이 받는 티에리 앙리를 미국으로 보내고, 치그린스키를 사올 때보다 더 싼 값에 돌려보냈으며(...)[61] 라파엘 마르케즈도 MLS로 이적이 완료됐다. 수비에서는 세비야의 풀백 아드리아누[62]를 영입했다. 아드리아누가 양쪽 풀백이 모두 가능해서 알베스의 서브, 아비달의 노쇠화를 대비한 왼쪽 풀백[63]을 갖추는데 성공했지만 수비형 미드필더와 수비진의 약화가 문제로 지적받는다. 수비형 미드필더는 부스케츠가 월드컵에서 활약하는 등 잘 크고 있지만 야야 투레의 전성기 활약에 비하면 아직 미흡하다는 평가가 많고,[64] 수비진도 서브가 불안불안하다.마르지 않는 라 마시아를 믿는 수 밖에 결국 수비형 미드필더는 리버풀 FC의 마지우개 마스체라노를 영입해 무게감을 더하였으며, 수비수는 아드리아노와 마스체라노로 윙백과 수미를 보강했으니만큼 급할 때는 아비달과 부스케츠를 센터백으로 돌려서 해결하는 중. 이로써 골키퍼를 제외한 포지션을 루저로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65](베르더 브레멘의 메수트 외질 이적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외질의 포지션에는 이미 선수들이 넘쳐나서 사실상 무리였다.)
현재 바르사의 부채 규모가 4억 5천만 유로(약 7천억 원)로 2~3년 이내에 흑자를 달성해야하는 형편, 겨우겨우 은행에서 4천 5백만 유로(약 700억) 정도를 빌려 겨우 이적 시장에서 쓸 돈을 마련한 상황, 그리고 바르셀로나는 전세계의 스포츠 구단 중 평균주급이 가장 높다! 선수당 152000달러(약 1억 6천만 원)정도.
비단 경제위기 탓만 할 게 아니라 그리고 선수영입이 적은 것이 경제적으로 좋을지 모르겠지만 빈 칸 메꾸겠다고 돈을 너무 비효율적으로 쓴다. 사실상 주전들 체력안배나 부상용 보험, 잘 쓰지도 않을 플랜B를 위한 선수들 영입인데 너무 비싸다. 비싸기만 하면 그나마 나을 것이 그렇게 비싼 주제에 성공 확률이 그렇게 높지도 않다.[66] 몇백억씩 퍼부은 선수들 중 성공사례는 알베스, 비야, 막스웰 정도고 마스체라노와 케이타 정도는 그나마 괜찮은 사례일 것이다. 전술의 완성도와 조직력 때문에 주전들만 신나게 돌리는 점까지 감안하면 경제적으로는 분명 낭비다.
가능성은 적지만 클럽 자체가 붕괴할수도 있다. 맨체스터 시티나 첼시 FC같은 클럽들이 은근히 바라는 상황이기도 하다. 근래 거의 전설적인 성적을 쌓고 있으며, 바르셀로나의 상징적 존재이고, 빚이 이쯤 되면 오히려 채무자가 나 망하면 너네 돈 못 받는다고 큰소리 빵빵 칠 수준이라 한 방에 몰락하지는 않겠지만...
11-12시즌을 두고 칠레 출신의 알렉시스 산체스를 영입하더니 결국 시즌 개막즈음에는 세스크 파브레가스를 결국 영입하는데에 성공했다! 파브레가스의 바르셀로나 데뷔전은 8월 18일 슈퍼컵(수페르 코파, Super Copa)에서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일 것이라고 한다!! 오오. 그리고 마르셀루의 거친 반칙으로 그 데뷔전에서 훅 갈 뻔했다
2012년 1월 12일 막스웰을 파리 생제르망으로 이적시켰다.
2012년 챔피언스 리그 우승과 리그 우승을 다 날리면서, 적자폭이 늘어나는 것 아닌가라는 평가가 나왔지만, 오히려 흑자를 봤다고 한다. 산드로 로셀 회장의 결산에 의하면 11/12 시즌 40M의 흑자를 보았다고. 그리고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을 하지 못하면서 포상금 12M을 절약할 수 있어서 오히려 예상했던 흑자를 늘리는데 더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순이익은? 고스란히 부채상환에 투입되었다. 그 결과 부채는...340M유로[67]이다. 이에 대해서 산드로 로셀은 처음 바르셀로나 회장 되었을 때의 부채가 420M유로였다면서 그 때보다 많이 줄었다고 자랑스러워 했다고 한다[68]. 이 추세를 봐서는 부채는 감소하고 있으나, 그 배경에는 이적을 통한 주급의 감소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일단 구단붕괴 가능성은 좀 들어들긴 한 듯.
13/14시즌 사비의 노쇠화와 메시 의존증으로 심각한 고민에 빠진 바르셀로나는 야심차게 브라질의 슈퍼 라이징 스타인 네이마르를 데리고 오게된다. 하지만 이적 당시 이적료는 700억으로 공식적으로 발표하며 옆동네의 EPL 토트넘의 본격 호빠베일을 1400억 가량에 구매한 레알을 디스하지만 사실상 4개월후 이적료는 1300억가량으로 거의 베일과 비슷한 수준이라 카더라 이를 본 네이버 친레알 댓글러들은 13-14시즌이 끝난 후 스탯으로 비교하며 네이마르를 버블마르로 깎아내린다. 흠좀무
물론 13-14시즌은 베일이 네이마르에 비해 객관적으로 잘했지만 네이마르 역시 국가대표에서의 활약상이라던지 베일 보다 3살정도 어린 나이를 비교했을 때 결코 요즘과 같은 이적시장에서 심각하게 까일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점점 라리가와 팀에 녹아들면서 차기 발롱도르를 받을 수 있을 만큼에 활약을 할 수있다고 전문가들은 판단한다.
14/15시즌 바르셀로나는 2009년부터 FIFA의 유소년 규제를 어긴 것을 괘씸하게 여긴 FIFA는 결국 2014년 1월경에 2015 겨울 이적 시장부터는 1년간 선수 영입금지[69]라고 발표했으며 이에 대해 항소를 했으나 기각 되는바람에 2014 바르셀로나의 여름 이적시장은 바빠질 수 밖에 없었다. 13/14시즌 리버풀에서 특급 활약을 한 드라큘라 루이스 수아레스를 1024억에 영입하고 사비의 노쇠화로 인해 세비야에서 항상 높게 평가 받아오던 패서인 이반 라키티치를 275억에 데려오고 수비의 안정감을 더할려고 제레미 마티유등을 276억에 영입하는 등 이적료는 많이 사용했지만 루이스 수아레스 이외에는 알짜영입으로 영입을 잘했다는게 사실이다.(아 본문에는 안 넣었으나 독일 최고의 골키퍼 유망주인 테어 슈테겐과 라리가에서 항상 꾸준한 활약을 보여줬던 클라우디오 브라보도 있다.) 단, 알 수 없는 영입이 되어버린 더글라스와 부상 때문에 시즌 중반이 되도록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있는 토마스 베르마엘렌에 대해서는 팬들은 그말싫...
7 최근 시즌
7.1 08/09 시즌
7.2 09/10 시즌
09/10시즌은 코파 델 레이는 세비야에게 패배해서 탈락했지만, 리그는 두번의 엘 클라시코에서 모두 승리하며 우승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고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8강에서 아스날 FC를 만났다. 그리고 완벽함과 이상을 지향하던 아스날은 완벽하고 이상적인 축구를 하는 바르샤에게 탈탈 털리다가 메神이 혼자서 4골을 다 해먹어 4:1로 대패당하는 치욕을 맛보았다.
4강에서 인테르와 경기가 예정되어 있는 등 전체적으로 순항하는 중...이었는데 4강 1차전(인테르 홈)에서 3:1의 패배를 당했다. 어쨋든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전반에는 어느정도 압박이 됐으나 후반에 들어서는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확연히 체력이 떨어진 모습을 보이며 연신 뒷공간을 내주다가 2골을 헌납하고 말았다. 2차전때는 점유율이 무려 9:1. 인테르는 초반 부스케츠의 시뮬레이션 액션으로 모따가 퇴장당하자 전원 수비로 변경했다. 에투와 밀리토가 가끔 올라오긴 했지만 거의 전원이 철저하게 수비가담을 했고 바르셀로나는 엄청난 점유율을 가졌음에도 효율적인 공격을 거의 이끌어내지 못하고 공만 돌리다 결국 골득실 차로 탈락했다.
이때 바르셀로나vs인테르의 챔스 4강전은 여러모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 아이슬란드 화산폭발로 인한 화산재로 비행기의 이륙이 불가능해지자,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밀라노까지 버스를 타고 장거리 원정을 오게 되면서 피로가 누적된 상태였다. 이를 보고 있던 바르셀로나 팬들은 기어코 인테르숙소로 찾아가 밤새도록 깽판을 피워서 취침을 방해하였다.그리고 3:1로 발렸다. 2차전때는 화산재의 영향이 옅어져서 인테르선수들은 비행기를 타고 바르셀로나에 가게 됐는데, 스페인 사무국은 여태 가만히 있다가, 갑작스레 사무엘 에투를 탈세혐의로 조사한다. 그것도 경기 바로 전날에(...), 이게 끝이 아니다. 바르셀로나는 결국 총스코어 3:2로 패배하여 결승 진출이 좌절하자, 인테르 선수들이 있는 잔디의 스프링클러를 켜면서 안티팬을 양산하게 되었다. 덤으로 붗까꿍도 있다. 결국 이 경기는 바르셀로나의 국내 안티팬이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고, 시즌 종료후 전설의 k리그 올스타전을 기점으로 한국 한정으로 안티팬이 급격히 늘어나게 되었다.
7.3 10/11 시즌
7.4 11/12 시즌
7.5 12/13 시즌
7.6 13/14 시즌
7.7 14/15 시즌
7.8 15/16 시즌
7.9 16/17 시즌
8 팀 스쿼드
FC 바르셀로나 2016-17 시즌 스쿼드 이 틀은 기기 환경에 따라 볼 때 상당히 길 수 있습니다. 스쿼드에 대한 간략한 틀은 여기를 참고해주세요. 또한 이 틀을 수정할 때는 여기도 같이 수정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
등번호 | 국적 | 포지션 | 한글 성명 | 로마자 성명 | 생년월일 | 신체 조건 | 비고 |
1 | 30px | GK | 마르크-안드레 테어 슈테겐 | Marc-André ter Stegen | 1992.04.30 | 187cm, 85kg | |
3 | 30px | DF | 제라르 피케 | Gerard Piqué | 1987.02.02 | 194cm, 85kg | |
4 | 30px | MF | 이반 라키티치 | Ivan Rakitić | 1988.03.10 | 184cm, 78kg | |
5 | 30px | MF | 세르히오 부스케츠 | Sergio Busquets | 1988.07.16 | 189cm, 76kg | 3주장 |
6 | 30px | MF | 데니스 수아레스 | Denis Suárez | 1994.01.06 | 176cm, 69kg | |
7 | 30px | MF | 아르다 투란 | Arda Turan | 1987.01.30 | 175cm, 76kg | |
8 | 30px | MF |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 Andrés Iniesta | 1984.05.11 | 171cm, 68kg | 주장 |
9 | 30px | FW | 루이스 수아레스 | Luis Suárez | 1987.01.24 | 182cm, 86kg | |
10 | 30px | FW | 리오넬 메시 | Lionel Messi | 1987.06.24 | 170cm, 72kg | 부주장 |
11 | 30px | FW | 네이마르 | Neymar JR | 1992.02.05 | 175cm, 68kg | |
12 | 30px | MF | 하피냐 알칸타라 | Rafinha | 1993.02.12 | 174cm, 71kg | |
13 | 30px | GK | 야스퍼르 실레선 | Jasper Cillessen | 1989.04.22 | 185cm, 83kg | |
14 | 30px | DF |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 Javier Mascherano | 1984.06.08 | 174cm, 73kg | 4주장 |
17 | 30px | FW | 파코 알카세르 | Paco Alcácer | 1993.08.30 | 175cm, 71kg | |
18 | 30px | DF | 조르디 알바 | Jordi Alba | 1989.03.21 | 170cm, 68kg | |
19 | 30px | DF | 뤼카 디뉴 | Lucas Digne | 1993.07.20 | 178cm, 74kg | |
20 | 30px | DF | 세르지 로베르토 | Sergi Roberto | 1992.02.07 | 178cm, 68kg | |
21 | 30px | MF | 안드레 고메스 | André Gomes | 1993.07.30 | 188cm, 84kg | |
22 | 30px | MF | 알레시 비달 | Aleix Vidal | 1989.08.21 | 177cm, 70kg | |
23 | 30px | DF | 사뮈엘 윔티티 | Samuel Umtiti | 1993.11.14 | 182cm, 75kg | |
24 | 30px | DF | 제레미 마티외 | Jérémy Mathieu | 1983.10.29 | 189cm, 82kg | |
25 | 30px | GK | 조르디 마지프 | Jordi Masip | 1989.01.03 | 180cm, 69kg |
9 팀 스타일
FC 바르셀로나는 2011년 초반 자타공인 최강팀으로 꼽혔었다. 심지어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2011년의 바르셀로나는 역대급으로 꼽힐만한 팀인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고 있었으며, 전문가들은 일반 축구 팬들의 평가보다 더 높은 평가를 내렸다. 반 바스텐도 2011년의 바르셀로나를 자신이 이끈 밀란 제네레이션보다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
이런 바르셀로나의 팀 스타일은 매우 독특하다. 그 특징을 얘기하자면, 엄청난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미칠듯한 패스워크와 그 패스워크를 바탕으로 한 압도적인 점유율. 그리고 점유율 축구 특유의 아주 느려 보이는 템포에서 송곳처럼 터져나오는 빠른 템포라 하겠다. 보통 어지간한 실력차가 나는 팀이라도 점유율이 6:4 이상으로 넘어가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바르셀로나의 경우는 7:3 이상의 점유율을 가지는 경우 마저도 흔할 정도로 독보적인 점유율 축구를 구사한다. 이렇게 점유율이 높은 데에는 이유가 있는데, 센터백들이 모두 하프라인 부근까지 올라가 거기서부터 공을 돌리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강렬한 압박, 골키퍼를 제외한 선수 전원이 센터 서클 앞으로 전진하는 수준의 토탈사커, 화려한 드리블러와 뛰어난 파괴력을 지닌 윙백의 오버랩을 통한 공간창출&돌파, 그로 인해 생기는 공간에 대한 킬패스, 공격수는 물론이고 미들, 수비수들 까지 동원되는 수없이 많은 포메이션 변화 등등이 합쳐져서 현재의 바르셀로나 축구를 완성하고 있다.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모두 발기술이 좋아야 하는것이 필수이다. 바르셀로나는 빌드업을 골키퍼에서부터 시작하기에 골키퍼 역시 발기술이 좋아야한다. 또한, 위에서 말했듯이 대부분의 선수들은 모두 하프라인을 넘어서 있기에 센터백들과 골키퍼와의 거리가 넓기에 골기퍼가 종종 드리블을 해서 상당히 앞에까지 나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하프라인의 수비수들이 공격 방향을 바꾸어주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만약 오른쪽을 공략하고 있는데 잘되지 않을 경우에는, 코너 플래그 근처라 할지라도 선수들은 공을 돌려 센터 서클에 자리를 잡고 있는 센터백들에게 패스를 한다. 이 센터백들은 순식간에 경기장의 왼쪽으로 패스를 주고, 방금까지 오른쪽으로 쏠려있던 상대팀 선수들은 잠시동안 왼쪽 부근에 자리를 내주게된다. 다른 팀들의 경우, 센터백들은 패널티 박스 부근에 있기에 이 동작을 시도하려면 시간이 걸리고, 또 아무리 빠르게 할 지라도 하프라인 넘어서 있는 선수가 비교적 적을것이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에서는 센터백들이 높이 자리잡고 있고, 이 덕분에 나머지 선수들이 대부분 상대팀 골망 근처에 포진해 있을 수 있다.
빌드업시, 바르샤는 3백에서부터 빌드업을 시작한다. 두명의 센터백들은 경기장 측면으로 빠지고, 중앙에는 수비형 미드필더가 자리잡는다. 이로서 윙백들은 오버래핑을 위해 좀 더 전진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축구 스타일은 08/09 시즌 6관왕을 거머쥐었을뿐만 아니라 거의 세계 최강의 포스를 보여주고 있는 바르셀로나, 그리고 바르셀로나의 선수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한 스페인 국가대표팀의 월드컵 우승 등과 맞물려 아름다운 축구로 불리며 칭찬받았었다. 심지어는 라이벌팀 레알 마드리드의 레전드 디 스테파뇨가 "나는 바르셀로나가 경기를 지배하는 모습에 감탄하고 그것을 좋아한다. 그들의 축구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들만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볼을 다루는 것은 존경스럽고 숭배스럽고 대부분 아름답다. 이팀의 경기를 보는것은 가장 큰 기쁨일 것이다."라고 공개적으로 말할 정도.
에이스 리오넬 메시가 워낙 빛나다 보니 가끔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FC 바르셀로나는 리오넬 메시의 원맨팀이 아니다. 메시는 마라도나처럼 전통적인 10번에 해당하는 선수가 아니며 바르셀로나는 메시가 없더라도 주연이 되줄 선수들을 수없이 보유하고 있다. 이 점을 무시한 많은 팀들이 메시만 묶고 버티려다 볼 소유권 다 빼앗기고 과거에는 에투 앙리 사비 즐라탄 비야 산체스 페드로 파브레가스 이니에스타에게 현재는 네이마르 수아레즈 라키티치 등에게 도륙당했다.
다만 얇은 스쿼드는 크나큰 문제점이다. 2011/2012 시즌에 와서 그 문제점이 극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수비진들이 그야말로 줄 부상을 당하면서 수비에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아무리 볼을 오래 점유한다고 해도 골을 먹히면 그걸로 끝인게 축구이니까.
또한 메시의 원맨팀은 아니라지만 메시가 빠진 바르셀로나는 전력이 매우 감소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적어도 2010년 시즌부터 바르셀로나의 모든 플레이는 메시가 중심이 되어있다. 중앙의 메시를 제외한 양쪽 윙포워드는 상대의 포백을 끌고 올라가 중앙의 메시에게 공간을 만들어주는 플레이에 전념하고 있으며, 메시 뒤쪽에 포진한 선수들도 결국에는 메시에게 공을 연결해주는 것이 지상과제인 상태.
10/11 시즌들어 사비의 노쇠화와 부상으로 인한 공백을 메시와 이니에스타가 메꾸고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세스크를 그렇게 원했던 것이고, 결국 세스크가 오긴 왔지만, 여전히 수비진의 문제점은 남아있는 상황. 그리고 12/13시즌 초반부터 수비진 줄부상으로 수비에 크나큰 문제를 보이고 있으나 메시의 득점포가 제대로 터지면서 어떻게든 커버가 됐는지 연속무패 기록을 이어나가나 했더니...밀란과의 챔스 1차전에서 문제가 터졌다. 메시가 제 활약을 하지 못하자 팀 자체도 경기력이 떨어져 결국 패하고 만것...거기다 11경기 연속 실점으로 수비진이 여전히 문제라는 게 명확해졌고, 결국 이게 발목을 잡아 뒤이은 엘클 2차례마저 연속으로 패배하고만다.
챔스 8강 2차전에서는 마요르카같은 약팀을 상대할때는 메시 없이도 충분히 강하지만 생제르맹을 상대로는 어떨까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메시가 들어가기전 까지의 바르사의 경기력은 안습한 수준이었고 선제골까지 먹힌후 후반 61분 급하게 메시카드까지 꺼내들고 나서야 경기력이 안정되며 동점골을 넣을 수 있었다. 12/13시즌 중후반부터는 수비진의 삽질 외에도 공격수들의 결정력 부족까지 도마에 올라 메시 의존증 논란이 있어왔는데, 여전히 이를 극복하지 못했단걸 드러내어 이적시장에서 공격수의 보강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부상 재발 위험이 커서 감독도 정말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안 넣으려했다고 하고, 메시 본인마저 위험한 도박이라 할 정도로 메시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도 그를 넣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메시가 없을 때 바르사의 경기력이 급격히 나빠지는것과 산체스 등 다른 공격수들의 결정력이 12/13 시즌 매우 좋지않다는 점은 분명히 심각한 문제였다. 이 때는 메시 원맨팀이란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었다.
13/14 시즌에는 리그가 진행될 수록 12/13 시즌 빌라노바 감독 체제 하에서 보였던 '메시의존증'이 해결되는 듯. 여름 이적시장에서 네이마르 한 명만 영입했기에 팀이 메시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모습을 줄일 수 있을 지에 대해 많은 우려가 있었으나, 세스크와 네이마르 등 선수들의 활약 덕분에 생각보다 빠른 시일 내에 이 문제가 해결된 듯 보인다. 물론 리그에서의 모습은 그렇지만 '메시의존증'이 해결되었는 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노리는 다른 강팀들과의 경기에서 확인해봐야 할 듯하다.
14/15시즌이 진행중인 지금에야 대(對) 바르사 정석이 새로울게 없지만, 그 전까지 공격 대 공격 혹은 힘 대 힘으로 사나이(?)답게 바르사와 맞서다 많은 클럽들이 무의미하게 쓰러진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대표적인 최고의 상남자클럽 레알이 명장 무리뉴의 지휘에 패기롭게 공격후 산화한 기록이 있다. 물론 처음 뿐이다 [70]시대를 풍미한 전술이였던 티키타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각 포지션에 그야말로 '티키타카'를 위한 선수들이 즐비해야한다. 우선 선수들 간의 조직력은 그 어느 팀보다도 단단히 연결되어 있어야 하고, 선수 개개인도 빠른 패싱게임에 능숙해야한다. 바르샤의 최전성기 시절 즈음의 '티키타카'를 생각해보면 차비, 이니에스타, 메시, 부스케츠, 피케를 비롯한 모든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오랜 시간 함께 훈련해왔거나 아예 유스 때부터 같이 올라오면서 생겨난 단단한 조직력을 갖고있었고, 선수 개인으로서도 발롱도르 1, 2, 3위가 싹다 바르샤 선수일 만큼 독보적인 기량을 가진 선수들메시?이었다. 그렇기에 바르셀로나의 성공이 불러온 패싱게임의 바람에 힘입어 우후죽순처럼 숏패싱 게임을 표방하는 축구팀들이 생겨났지만, 어떤 팀도 바르샤의 최전성기와 같은 압도적인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예컨데 당시의 바르셀로나는 '바르셀로나'였기에 가능한 게임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14/15시즌 막바지에 이르르는 지금, 바르사는 이전까지의 '티키타카'에서 보다 탈피하여, 역습과 기동력을 장착한 이른바 '티키웨카'로의 진화를 이루어내었다. 사실, 다른 선수들은 어느 정도 대체가능할지 몰라도 차비와 이니에스타가 노쇠화로 인해 기량이 떨어진만큼하지만 아직도 이니에스타의 드리블은 예술이다 더 이상 이전까지 추구해온 고속의 패싱게임을 계속 고집해 나갈 수 없었다. 그렇기에 엔리케 감독은 라키티치와 수아레즈의 영입과 그에 맞는 새로운 전술을 바르샤에 녹이는 것을 시도하였다. 라키티치는 당연히 차비의 기량을 따라 갈 순 없었지만, 차비가 갖지 못했던 빠른 기동력과 역습 플레이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수아레즈는 메시, 네이마르와 함께 이른바 'MSN'이라 불리는 공격진을 결성하여 특유의 이타적이면서도 강력한 파괴력을 과시하며 영입 초기 예상했던 것보다 더 압도적인 시너지 효과를 내고있다. 메시는 수아레즈의 등장으로 오른쪽 윙사실상 오른쪽 미드필더에서 주로 뛰게 되었고, 빌드업을 주로 메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메시가 빌드업을 맡게 되면서 중앙으로 이동할때가 종종 있는데, 이때 생기는 오른쪽의 공백을 메꾸어준것이 바로 라키티치다. 말했듯이 엄청난 활동량을 지닌 라키티치가 없었다면 지금의 플레이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수아레즈는 바르셀로나에 없었던 탱커가 되어주었다. 혼자 드리블하다가 견제 들어오는 수비들은 어깨싸움으로 내팽게치고 골을 넣은 장면[71]도 수두룩(...)물론 아직 고쳐지지않은 수비불안을 어떻게 고칠지가 남은 과제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더 잘한다 사실상 미들진 따윈 어떻게 돼도 상관없어 MSN만 있으면 어떻게든 뚫는듯 14/15 시즌에 엄청나게 효과적인 전술이 있었는데, 필수 준비물은 메시다메시가 오른쪽에서 반대쪽 대각선으로 찔러주는 쓰루 패스와 로빙 쓰루 패스가 상당한 골을 뽑아냈다.
9.1 공략법
공격시에 골키퍼를 제외한 10명의 선수 전체가 공을 돌려가며 올라오는 패싱 플레이를 하는 탓에[72] 공격 전개 도중에 공을 빼았겼을 경우 역습에 취약하다는 것이 약점. 실제로 바르셀로나의 실점 패턴 대부분이 역습에 이은 상대팀 공격수와 바르셀로나 수비진의 스피드 싸움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의 끈끈한 패싱 플레이를 차단해서 역습으로 가져가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이 문제. 또한 어렵사리 역습까지 이어간다 쳐도 그 귀중한 기회가 100%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현실적인 공략법은 크게 두 가지.
첼시처럼 버스 두대를 세우자
첫번째는 강력한 피지컬로 바르셀로나의 축구 자체를 무너뜨리는 작전이다. 08/09년 챔피언스 리그 4강 2차전에서 바르셀로나를 맞은 히딩크의 첼시는 드록바, 아넬카, 램파드, 발락, 에시앙 등을 위시한 강력한 피지컬 축구로 바르셀로나를 압도하는 경기를 펼쳤으나, 11+1[73]:11이라는 한계상 막판 통한의 한골로 결승행 티켓을 놓치고 말았다.
반면 11/12년 챔피언스 리그에서 첼시는 수비 범위를 페널티 라인 근처로 설정하고 지역 방어를 펼쳐 바르셀로나의 패스 거리를 최소화시키는 전술을 사용했다. 거기에 우월한 피지컬과 빠른 속도의 역습이 전술의 효율성을 극대화하였다. 그리고 골키퍼와 골대의 활약도 엄청났다. 1, 2차전에서 골대를 5번 가까이 맞췄다. 이에 바르셀로나는 1, 2차전 모두 효과적인 공격을 제대로 펼칠 수 없었으며, 상대를 끌어내지 못하고 공만 돌리는 의미 없는 점유율 축구를 펼쳤다. 이로 인해 지치고 집중력이 저하되어 첼시의 역습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였다. 물론 08-09 때와는 달리 11-12 때는 첼시가 한번 센터 서클 밟아보는게 하늘의 별 따기였다.[74] 슈팅 수를 비교해보면 바르셀로나가 압도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득점에 그쳤던 이유는 페트르 체흐의 야신 빙의 및 바르셀로나의 결정력 부족. 당시 주축 공격수였던 다비드 비야는 장기부상중이었던 것이 당시 바르샤에게는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리고 골대의 엄청난 활약
12/13 시즌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AC 밀란이 이 전술을 사용하여 바르셀로나를 완벽하게 틀어막았고, 후반전 두 골을 넣으며 2:0으로 승리했다. 마치 08/09 첼시와 바르샤간의 경기마냥 바르셀로나는 유효 슈팅 도 겨우 2개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공격전개가 틀어막혔고, 밀란은 미드필더진을 장악하고 피지컬로 압도하면서 전후반 내내 여러 번의 좋은 찬스를 만들어냈다. 무엇보다도 메시를 틀어막았다. 메시는 이날 유효 슈팅을 한번도 만들지 못하면서 도저히 믿기 힘들 정도로 부진했다.[75] 이 경기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메시의 활약이 정말 없었다. 정말 내가 보는 메시가 내가 아는 그 메시인가를 의심하게 될 정도였다.
두번째는 09-10년 무리뉴의 인테르처럼 그냥 공격적으로 맞불 놓는 방법이 있다. 물론 철저한 존 디펜스와 팀원들간의 끈끈한 조직력, 뛰어난 개인기량, 90분 내내 뛰어다닐수 있는 강인한 체력, 절대 움츠러들지 않으며 반드시 이기고 만다는 정신력, 상대팀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모두 뒷받침되어야만 쓸 수 있는 방법이다.그리고 화산 폭발[76][77]
실제로 08/09와 10/11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맨유는 바르셀로나의 패싱 플레이를 상대로 뛰어다니는 축구를 구사하다가 질질 끌려갈 수 밖에 없었다.
무리뉴 역시 레알의 감독을 맡은 뒤 엘클라시코에서 맞불 작전을 여러번 실시했으나 성공한 예는 그리 많지 않다.
종합해 볼 때, 바르셀로나에 대항하는 데에는 몇 가지의 요건이 있으며 이것을 많이 가질수록 효과적으로 대항할 수 있다. 뛰어난 골키퍼, 강력한 피지컬 능력을 가진 수비수와 수비 전술에 능한 수비수, 활동량을 기반으로 한 수비 능력이 좋은 중앙 미드필더, 원터치나 투터치로 미친 킬패스를 찌를 수 있는 중앙 혹은 공격형 미드필더, 좋은 결정력을 기반으로 빠른 발, 강력한 피지컬, 수비 라인을 귀신처럼 뚫는 세 가지 능력 중 하나를 가진 공격수. 이봐, 현대 축구의 모든 요소 아냐?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러한 전력을 항상 보유한 팀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고, 오늘도 스페인과 유럽의 축구 클럽들은 바르샤에게 미친듯이 털리고 있다.
09/10 시즌 무리뉴의 인테르가 바르셀로나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무리뉴 특유의 조직력과 디펜스 전술과 바르셀로나와 거의 비등비등한 월드클래스 선수들의 뛰어난 기량 + 뛰어난 체력과 막강한 피지컬을 가진 수비수들(마이콘, 루시우, 월터 사무엘, 키부, 하비에르 사네티 등등) + 활동량을 기반으로 수비능력이 좋은 중앙 미드필더(에스테반 캄비아소) + 미친 킬패스를 찌를 수 있는 중앙 혹은 공격형 미드필더 (웨슬리 스네이더) + 좋은 결정력을 기반으로 빠른 발(사무엘 에투), 강력한 피지컬(판데프), 수비라인을 귀신처럼 뚫는 능력(디에고 밀리토)(사실 에투, 판데프, 밀리토 3인은 거의 종합체라고 봐야 한다.)
조합이 딱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
물론 무리뉴의 전술과 선수들의 기량이 만들어낸 승리이기에 이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09/10시즌의 인테르가 바르셀로나를 공략하는데 있어 효과적인 요건들을 거의 다 갖추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12/13 시즌의 바이에른 뮌헨은 정면승부를 펼쳐 바르셀로나를 그야말로 완파하였다. 중원에서는 슈바인슈타이거와 하비 마르티네스가 뛰어난 수비력, 활동량 그리고 사비와 이니에스타를 압도하는 피지컬을 과시하면서 바르셀로나의 전진을 저지했고, 부스케츠나 피케로부터 시작되는 빌드업은 뮐러나 만주키치가 봉쇄했다. 바르셀로나의 장기인 풀백으로부터의 측면 공격은 리베리와 로벤, 특히 리베리가 알베스에게 악착같이 달라붙으며 저지했다. 패스는 제대로 돌지 않았고, 심지어 메시가 받으러 내려왔던 국면에서조차도 강력한 육체적 압박과 좁은 공간에 드리블은 실패했다. 메시는 그의 유일한 약점이라고 불리는 지나치게 모험적인 패스 끝에 공격기회를 날리기 일쑤였다.
바르셀로나는 바이에른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실패했다. 바이에른이 자랑하는 황금날개진은 바르셀로나 풀백의 공격을 막아냈을 뿐 아니라[78] 위협적인 속도와 놀라운 드리블 실력으로 역습의 선봉에 섬으로 섣부른 바르셀로나의 측면 전진을 견제했다. 여기에 세계 최고의 풀백인 필립 람과 젊고 빠르고 과감한 알라바는 바이에른의 황금날개진과 연계하며 측면을 사실상 바이에른의 것으로 만들었다. 바이에른은 바르셀로나의 강력한 무기인 전방압박을 때로는 부드러운 패스플레이로, 때로는 뻥축구로 대응했는데 뻥축구마저 골키퍼 노이어의 준수한 골킥과 중앙 공격진의 강력한 피지컬 또는 날개진의 뛰어난 스피드로 위협적인 경합 장면을 보여주며 바르셀로나를 뒷걸음치게 했다.
바르셀로나를 계속 뒷걸음치게 했고 측면을 강력하게 두드린 바이에른은 많은 코너킥 기회를 가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바이에른은 첫 번째 골과 두 번째 골을 코너킥 상황에서 가져갔다. 그리고 역습상황에서의 측면돌파를 이용해 세 번째, 네 번째 골과 엮으면서 4:0으로 바르셀로나를 완파했다.
2차전에서도 바르셀로나는 비슷한 전술을 택한 바이에른을 넘어서지 못했고, 역습 상황에서의 측면 공격에 완벽하게 파괴되면서 3:0으로 패배, 총합 7:0으로 대패했다.
이 결과는 바르셀로나가 테크닉 특히 중원의 테크닉이 앞선다는 걸 가정한 상황에서 대 바르셀로나전 키워드, 미드필드에서의 체격조건의 우위로 전진 봉쇄, 크로스 상황에서나 공중볼 경합 상황에서 높이의 우위, 바르셀로나의 엄청나게 높은 수비 라인을 측면돌파로 후벼파기 이 3가지를 모두 효과적으로 수행한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하비 마르티네스는 이니에스타를 완벽히 찍어누른 걸로도 모자라 바르셀로나 미드필더진의 다른 영역까지도 틈나는 대로 잡아먹었고, 바르셀로나는 주지하다시피 피케나 부스케츠[79] 정도를 제외하면 공중볼 루저들에, 리베리와 로벤, 람과 알라바는 이 우위를 효과적으로 이용 가능하도록 바르셀로나의 측면을 미친 듯이 휘저었다.[80]
첼시나 인테르와는 달랐던 점을 들자면 첼시는 강력한 피지컬로 중원에서 밀리지 않았으며 중원 삼각형의 꼭지점인 램파드는 원투터치로 정확한 스루를 제공할 수 있는 자원이고 드록바는 피지컬 괴수 공격수다. 인테르는 정확한 패스를 제공할 수 있는 스네이더와 타고난 골잡이인 에투와 밀리토 삼각편대가 역습으로 비수를 꽂는 조합이었다. 그러나 바이에른은 중원에서의 파워도 파워이거니와, 양 측면 날개와 풀백 전부가 어떤 옵션으로도-스피드, 드리블, 크로스, 연계, 중거리,- 바르셀로나를 압도할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는 중원에서의 힘싸움 및 수비적 경합에서 야야 투레와 케이타[81]라는 파워한 흑형 미드필더들이 주던 우세를 잃어버렸으며, 수비적으로 힘과 높이와 안정성을 통해 커다란 보루가 되어 주던 아비달마저도 병마로 인해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즐라탄처럼 공격진에 크게 차별적인 옵션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선수조차도 없었다.메시가 짱짱맨이긴 한데. 물론 바르셀로나의 팀 컬러 상 피지컬을 통한 돌파보다는 패싱을 통한 탈압박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선수들의 평균 피지컬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해진 건 사실이나 지금까지는 이러한 상황에서는 적극적인 압박을 통해 볼을 뺏어내면서 다시 티키타카를 시전하는 방식으로 주도를 했다. 그러나 바이에른 전에서는 그 압박이 전혀 통하지 않으면서[82] 모두 개발살나버렸고, 이는 바르셀로나에게 주어진 큰 과제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푸욜의 대체자를 찾는 것도 급선무일 것이다.푸욜 없는 피케는 그냥 전봇대
12-13 시즌 전후로 바르셀로나가 더이상 예전의 강력함을 잃어버렸다는 것이 사실. 즉, 바르셀로나에 대한 가장 강력한 공략법인 시간의 경과가 작용한 것이다. 다시 시간을 라누스 미헬스와 요한 크루이프의 시기로 되돌려보자. 이 시기 토털풋볼은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토탈 풋볼의 원형이라고 불리는 페렌츠 푸스카스가 이끌었던 매직 마자르는 경이적인 기록을 쌓았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축구계에 큰 충격과 영향을 주기는 했지만 그 자체로 시대의 대세가 되지도 못했다. 요는 토털 풋볼이 따라하기도, 그리고 성적을 일정하게 유지하기도 대단히 어려운 전술이었다는 것이 요체이다. 토털 풋볼을 완벽하게 구사하기 위해서는 체력적, 기술적 바탕 아래에서 꾸준한 반복 훈련을 통해서 전술을 완성해야 했다. 이중에서 하나라도 틀어지면 와르르 무너졌던 무수한 전례가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시대의 대세가 된 것이 아리고 사키로 대표되는 현시대의 축구이다.
바르셀로나의 전성기는 차비, 이니에스타, 푸욜 등의 우수한 자체생산 선수가 동시에 전성기를 맞이하였고 여기에 크랙인 메시가 더해지면서 이루어졌다. 문제는 이들을 대체할 수 있는 선수가 마땅치 않은 것이다. 기본적인 실력도 좋아야 하지만, 동시에 기존의 전술에 적절하게 조화되는 것도 필요하다.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하는 라마시아에서 주전선수들을 대체해주면 좋겠지만, 그것은 현실에서 드러났듯이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바르셀로나는 노쇠한 선수와 이탈한 선수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서 엄청난 돈을 써가면서 실력 있는 선수를 집어넣었다가 안 맞으면 빼고, 다시 다른 선수를 구해와서 집어넣기를 반복해야 했다. 그것은 필연적인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바로 이 과정에서 엄청난 자금이 소모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바르셀로나는 우수한 성적을 냈다. 이것은 곧 선수들의 주급과 위상이 상승한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수익은 이것을 절대 따라잡지 못했다[83]. 트레블을 해도 주급과 옵션 때문에 적자를 보는 팀이 바르셀로나이다. 이 과정에서 바르셀로나는 선수들을 하나하나 잃을 때마다 그 선수들을 대체하기 위해서 막대한 돈을 써야 했다. 야야 투레의 이적은 기적적으로 부스케츠가 성정하면서 막았지만, 다른 포지션은 그렇게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온갖 무리수와 말도 안되는 DNA 드립까지 쳐가면서 세스크 파브레가스를 영입한 것도 이 때문이다. 라마시아에서 뛰어서 호흡도 잘 맞을 수 있고, 실력도 있으면서 그에 비해서 가격은 저렴한 선수. 승리를 위한 까꿍처럼, 돈 절약을 위한 DNA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파브레가스 조차 차비와 이니에스타의 완전한 대체자가 되지는 못했다.[84] 이 과정에서 바르셀로나의 재정은 한계에 달했고, 긴축재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이것은 바르셀로나가 자체적인 한계에 의해서 무너져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3년의 뮌헨이 그 이전의 첼시, 레알 그 외의 팀들보다 강한 것도 사실이지만,[85] 바르셀로나 자체도 쇠락기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토탈 사커의 부품이 되는 선수들은 인간이기에 나이를 먹고 노쇠화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 시스템속에서는 기적적으로 푸욜의 대체자, 차비의 대체자, 이니에스타의 대체자가 연이어서 기존의 팀에서 펑펑펑 솟아나주지 않으면 앞으로도 꾸준히 하락할 것이라는 것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12-13시즌 엘클라시코에서 한번도 이기지 못했다는것도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86]
13/14을 맞이하여 바르셀로나는 여전히 긴축재정을 진행중이지만, 네이마르를 무리해서 영입하였다. 그리고 미드필더와 수비수에서 주전의 대체자를 영입하지는 못했다. 만일 네이마르가 적어도 제 2의 에투급으로 활약해주지 못한다면, 14/15시즌은 더더욱 암담한 상태로 맞이하게 될 것이다.
14/15 시즌 루이스 엔리케가 감독으로 들어오면서 전술상의 변화가 생겼다. 기존에 비하면 정교한 티키타카를 보이지는 않지만 역습을 시도하는 등 공격 속도가 더욱 빨라졌고, 이는 루이스 수아레스가 팀에 녹아들기 시작하면서 상당히 강력해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한 상대팀은 어떤 대응책을 내놓을지 앞으로의 모습을 지켜볼만한 가치가 있다.
14/15 시즌 막바지에 이른 지금, 메시-수아레즈-네이마르, 이른바 'MSN' 삼각편대는 그 예전 메시-앙리-에투 이상의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사실 시즌 시작부터 영입 금지 징계가 확정됐는데도 불구하고 사실 영입 작업이 그리 시원하진 않았기에 암흑기가 더 가속화 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우려가 컸지만 MSN의 압도적인 공격력은 일말의 불안도 녹여버리고 말았다. 수아레즈가 메시와 네이마르와 공존할 수 있을지는 시즌 시작 전부터 말이 많았다. 하지만 막상 수아레즈가 징계에서 복귀하고, 바르셀로나에서 적응을 마치기 시작하자 그 시너지 효과는 상상을 초월한 것이였다. 또한, 엔리케 감독은 라키티치의 영입으로 중원에서의 기동성과 역습 능력을 확보하였고, MSN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파괴적인 역습을 하는 팀이 되었다. 사실상 이제 바르셀로나는 '티키타카'에서 어느정도 벗어났다고 보아야 한다. 이전에 없던 기동성과 역습 능력은 바르셀로나의 전술이 수차례 헤매이던 과도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증거이며, 그 성과는 지금 트레블을 눈앞에 두고있는 것으로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 축구 역사상 최초로 두 번째 트레블을 달성하면서 전술상의 변화 결과가 성공적으로 증명되었다.
10 FC 바르셀로나 B(Futbol Club Barcelona B)
FC 바르셀로나의 리저브 클럽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를 참조할 것.
11 기타
요한 크루이프의 언급처럼 이상적인 토털 풋볼을 구체화 시킨 팀이라고 볼 수 있다. 의외로 역대 감독들이 바뀌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을거라 생각 할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바르셀로나는 몇십년째 커다란 틀에서는 변한게 없다. 현재의 티키타카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70년대 중후반에서 80년대를 꿰뚫는 하나의 라인을 형성하는데, 그 이름하여 바르작스(Barjax) 아약스의 유스시스템을 거치고, 네덜란드 리그에서 검증받고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맞는 코스는 유럽 축구의 하나의 엘리트 라인을 형성했다. 그 대표적인 선수가 요한 크루이프, 그리고 70년대 네덜란드 국가대표 팀에서 지휘관 크루이프의 부관으로 잘 알려진 요한 네스켄스이다.[87][88] 크루이프가 다 늙었어도 바르셀로나에 대해 말도 많고, 또 여전히 명예직이지만 주는 자리는 덥썩덥썩 다 받아먹는 이유가 그냥 생겨난게 아니다. 그만한 임팩트가 있었으니 가능했던것.
첨언하자면, 로날드 쿠만 또한 바르작스 라인을 탔던 선수이다. 바르작스(Barjax) 라인은 1990년대에도 이어지는데, 대표적인 선수가 에드가 다비즈나, 마크 오베르마스 와 같은 선수를 그 이후 세대 바르작스라 한다. 다만 아약스에서 바로 바르셀로나로 온 것은 아니었고, 다른팀을 거쳐서 왔으며, 실제적으로 전성기는 바르셀로나에서 보내지는 않았지만, 크루이프와 네스켄스 시대를 거쳐오면서 많은 선수들이 Barjax를 거쳐온 것 또한 사실이다.
의외로 챔피언스 리그 첫 우승이 늦은 팀이다. 대개 바르셀로나 정도의 역사를 자랑하는 팀이 창단후 9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챔피언스 리그 우승컵이 없었다는게 놀라울 정도인데, 그 숙원을 풀어준 사람은 바로 요한 크루이프 선수로써도 뛰어났지만, 감독으로써도 바르셀로나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Barjax는 단순히 그 당시 뛰었던 선수들로만 이어진게 아니라, 크게 보면 네덜란드 커넥션과도 연결되는데, 요한 크루이프 이후 바비 롭슨 시대를 거쳐 등장한 감독인 프랑크 레이카르트로 이어진다. 정확히 롭슨을 제외하고 보면, 크루이프와 레이카르트 둘다 토털 풋볼의 창시자 리누스 미헬스가 발굴해 낸 선수이며, 과르디올라를 발굴해낸 사람은 바로 크루이프이다.
09년도를 기점으로 5년동안 세계최강의 전력을 유지하며, 88~95년까지 이어진 밀란제너레이션 이후 유럽 깡패팀으로 거듭났지만, 세월은 이기지 못하여 주축 선수들의 노쇠화와 부진및 부상으로 인해 리오넬 메시의존증이 점점 심각해지더니 급기야 2012-2013시즌 경기를 지배하는데도 전방공격수들과의 연계및 마무리가 말끔하지 못해 메시없으면 반쪽짜리라는 조롱까지 받는 수준으로 추락하였다. 이미 펩 과르디올라 시절부터 메시 의존증의 문제점을 수차례 지적받았지만 당시 바르셀로나에는 티에리 앙리, 사무엘 에투,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등 기라성의 스트라이커들이 즐비하여있어 그다지 부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각각 팀 스타일에 맞지 않아 쫒겨나거나, 트레이드, 노쇠화 등을 이유로 전부 떠난 현재 장기부상을 끊어버려 작년에서야 복귀한 다비드 비야만이 믿을맨. 그마저도 메시를 위한 희생룰과 장기부상의 여파로 기량이 하락하여 발렌시아 시절처럼 무조건 골넣어주는 믿을맨이 되지 못하다 결국 아틀레티코로 이적해버렸다. 미들진이 가장 장점이였던 바르셀로나지만 차비 에르난데스는 어느덧 30대 중반,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는 어느덧 30대초반이며, 기껏 큰돈주고 다시 데려온 세스크 파브레가스는 아스날 시절에 비해 제한된 룰만을 부여받아 맞지 않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있다. 그나마 현재 바르셀로나에서 오랫동안 믿을 짱짱맨은 세르히오 부스케츠뿐이였고, 13-14시즌 여름 이적시장에서도 핫 이슈였던 네이마르를 제외하면 미드필더, 수비진의 보강이 거의 없었다는 점을 지적받았고 그리고 2014년 현재 이 우려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89]
수비진 또한 주전라인과 후보의 기량차이가 어마어마 하며,[90] 왼쪽 풀백은 그나마 괜찮은 활약을 펼쳐준 실빙요 이후 맥스월, 아드리아누 코헤이아등등 브라질출신이 커버 되었지만 맥스웰은 그놈의 공격본능때문에 아드리아누는 세비야 시절보여주던 폭발적인 공격능력은 세비야에 두고왔는지 기대이하의 활약만을 보여주고 있으며, 중앙수비또한 카를레스 푸욜이 은근 유리몸이라 피케가 건강하면 푸욜이 골골거리고 푸욜이 나오면 피케가 골골거리는등 자동로테이션이 이루어지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래저래 티토 빌라노바 감독이 분투하고 있지만 다음시즌 리오넬 메시를 보조 + 부재시 대처할수 있는 공격수, 수비라인의 보강, 차비 에르난데스를 비롯한 미드필더 보강을 반드시해야할것이다. 특히나 바르셀로나는 전성기 이후 일정기간 흑역사가 이어지는 팀의 징크스(?) 비스무리한 패턴이 이어지고 있어서 이 텀을 반드시 지혜롭게 벗어나야 04시즌 겨우 부활한 팀이 또다시 주저앉을 일이 없을 것이다.[91]
미녀들의 수다의 루저 발언과 관련, 팀의 핵심 멤버들 중에 키가 작은 선수가 많아서 루저셀로나라는 별칭도 얻었다.(...) 피케나 부스케츠 정도만 장신이고, 메시 , 이니에스타, 사비 , 알바, 마스체라노등 대다수의 핵심선수가 170cm 전후의 단신이다.
연예인 중에서는 김옥빈, 정용화, 윤두준이 바르셀로나의 팬이며, 정용화는 데뷔 전 스키장에 갔을 때 스키복 안에 레플리카를 입고 있는 사진이, 윤두준은 바르셀로나 담요를 가지고 인증샷을 찍은 사진이 인터넷상에 퍼져 있다. 또한 시아준수는 원래 앙리 팬이었으나 앙리가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면서 바르셀로나에 대해 흥미를 갖고, 현재는 메시 팬이 되었다고 한다.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때마다 매수셀로나 혹은 핸드셀로나 미꾸레지라고 부른다.[92] 이런 별칭들이 다 그렇듯이 팬들에겐 좋지 않게 들리니 매너있는 축구팬이라면 쓰지 마라.
09/10 시즌 때 챔스에서는 떨어졌지만 라 리가에서 20번째의 우승을 달성하였다. 10/11 시즌은 코파 델 레이를 레알 마드리드에게 빼앗긴 했지만 빅이어를 다시 들어올리고 리그도 쟁취하는 더블을 달성.
엠블럼에 있는 공을 보면 배구공 모양으로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저 엠블럼이 제정될 당시에는 축구공의 모습이 현재와는 달리 배구공과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일부 바르셀로나 팬들은 본인들을 지칭하는 말이 꾸레라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있다. 하도 '조선꾸레'라 불리는 일부 바르셀로나 빠들이 욕을 먹다보니 간혹 라이트팬의 경우 꾸레가 욕인 줄 아는 듯. 욕할 때는 꾸레기로 써주자. 참고로 꾸레의 유레는 과거 실제 수용인원보다 더 많은 관중들이 운집하곤 했는데 캄프 누가 리모델링 하기 전에는 관중석의 턱이 대단히 낮았다. 그래서 관중들이 턱에 걸터 앉다보니, 경기장 밖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엉덩이만 보였다고 한다.
엉덩이가 스페인어로 Culo, 카탈루냐어로는 Collegi(꾸레지)로 줄여서 Colle라는 발음에 가까운데, Cule(꾸레)는 엉덩이로 내민 자로 해석하면 된다고 한다. 그래서 훗날 바르셀로나 팬들을 가리켜 '꾸레'라고 부른다.
2014년 4월 25일 바르셀로나의 전임 감독인 티토 빌라노바가 귀밑샘 종양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향년 46세.
야구에 삼적화가 있다면 축구에는 꾸레화가 있다.
축구 관련 커뮤니티에서 꾸레화라는 표현이 종종 쓰이는데, 이는 원래는 준수한 외모를 자랑했던 선수들이 바르셀로나로 이적해온 이후부터 역변되어 망가지거나 유스시절 준수했던 선수들이 역변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다비드 비야, 헤라르드 피케피케의 역변, 세스크 파브레가스, 네이마르, 차비 에르난데스 등등이 있다. 이런 평가를 받는 공통된 이유 중 하나는 바르셀로나에 간 이후의 선수들이 아랍인을 연상시킬 정도로 수염을 부담스러울 정도로 덮수룩하게 기르는 경우가 많이 때문이다.
이승우가 이에 대한 이유를 밝혔는데, 바르셀로나 구단 측에서 선수들에게 용모 단장을 요구하면서 검사를 한다는 것!무슨 대한민국 학교도 아니고 이승우 자신은 아직 머리가 짧아 괜찮다고 한다.
12 논란거리
경기 외적으로 한마디 하자면, 2차전 경기 종료 후 결승에 진출한 인테르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결승진출을 자축하고 있는데, 그걸 보기 싫었는지 운동장에 스프링클러를 틀어서 얼른 나가버리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해서 경기를 지켜보던 수많은 축구팬들을 황당하게 했다. 더불어 골키퍼 발데스는 그라운드에서 기쁨을 만끽하는 주제 무리뉴에게 달라붙어 시비를 거는듯한 모습을 보였는지만 그것은 무리뉴가 바르셀로나 팬들을 도발하려는 것으로 오해하고 말리려 했다고 했다. 하지만 어쨌든 문제가 있었던 것은 틀림없다. 2차전 경기전날 카탈루냐 사람들이 인테르 선수들의 숙소 앞에서 새벽 4시까지 폭죽을 터뜨리며 수면방해를 했다고 한다.
12.1 2014년 이후의 떡밥
FC 바르셀로나는 14/15 시즌 이후로는 엄청난 변화를 맞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나는 꾸준히 언급되었던 중계권료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카탈루냐의 독립문제이다. 그리고 이 두문제는 모두 FC 바르셀로나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기 어렵다.
12.1.1 중계권료 협상 이후의 구단 재정 파탄?
가볍게 피할 수 없는 것이 중계권료 문제이다. 협상이 이뤄지지 않았던 2011년 기준으로 바르셀로나는 1억 3500만 유로 가량의 중계권료 수입[93]을 거두었고, 이는 2013년 상황에서도 거의 차이가 없다. 이 2팀이 프리메라리가 전체 중계권료 수입 총합인 4억 유로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었고, 이 막대한 수입은 바르셀로나 전체 수입의 40% 이상을 점유하고 있었다[94]. 이것이 14/15 시즌의 타협안이 시행되면, 이전의 중계권료 배분에서 거의 절반 정도로 줄어들게 된다. 이 것이 대략 6-7천만 유로 가량. FC 바르셀로나는 본문에서도 언급되었지만 기존 시스템에서도 적자를 보던 구단이다[95].
이 수익 감소를 해결하기 위해서 산드로 로셀이 선택한 것이 선수들의 주급 지급을 감소시키는 긴축재정, 그리고 상업 스폰서의 시작이다. 단적인 예가 유니세프 대신에 카타르 항공과의 메인 유니폼 스폰서 계약이다. 이 수익액이 거의 3천만 유로 가량. 이 외에도 유니폼 안감에 인텔 스폰서를 다는 계약을 맺었다. 유니폼을 얼굴에 뒤집어 쓰는 세레모니를 할 때마다 인텔 마크가 노출되고, 그 대가로 연간 500만 달러를 받는 것. 하지만 FC 바르셀로나는 여전히 수익 감소분을 메우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산드로 로셀 취임 이전의 부채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이 때문에 레알 마드리드와 손을 잡고이럴때만 사이가좋지 중계권료 배분 협상에 대해서 대단히 불쾌해하는 상황인데, 정작 리그 관리측에서는 이 부분을 대대적으로 손을 봐서 리그 구단 평준화를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2015년 프리메라리가 클럽 대표단은 중계권료를 묶어서 협상하는 방안을 요구하였고 LFP의 42개 팀은 1팀을 빼고 동의하였다.아스 지에 따르면 그 팀은 레알도 바르샤도 아닌 아틀레틱 빌바오. 아틀레틱 빌바오는 구단정책을 위해 반대한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아틀레틱 빌바오는 영입보다는 바스크 순혈주의 정책으로 바스크 국적 선수들만 쓰는 식으로 제한되어 있는데 다른 클럽들이 중계권 협상 잘 되어서 선수 영입도 하면 그게 곧 타클럽 전력 강화로 직결, 바스크는 영입을 못하기에 잘못하면 유럽대항전을 못 나가게 된다. 고로 이런 모든 중계권료 협상이 마음에 안들고 그냥 현상 유지하길 바란다고 해석된다.
12.1.2 카탈루냐가 정말로 독립?
사실 카탈루냐나 바스크가 독립할 확률은 영국에서 스코틀랜드가 독립할 확률보다 압도적으로 낮다. 국내팬들이 헷갈리는 것이겠지만 주된 이유는 독립이 아닌 지역의 이익추구가 궁극적인 목표이다. 축구적인 측면에서는 카탈루냐가 독립이 된다고 하더라도, FC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에는 계속 참여할 것임을 밝혔다.[96][97] 그러나 카탈루냐가 독립하게 된다면 스페인 측에서는 FC 바르셀로나의 참가를 반대할 가능성이 높아보이는게 사실이다. 이에 대해선, FC 바르셀로나가 갖고가던 중계권료를 하위 팀들이 나눠가져서 경제적 이득이 될 거란 주장과, 엘 클라시코 없는 프리메라 리가의 중계권료가 폭락해서 리가 전체에 위협이 될 것이란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2014년의 중계권료 임시 타협 이전까지는 개소리였다. 애초에 각 구단별로 중계권료 계약을 하던 시기에는 설사 엘 클라시코가 없어지더라도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중계권 수익이 급락하는거지 라요나 발렌시아 같은 구단들에게는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에 각 구단의 중계권료 총액의 합이 얼마나 커지느냐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각 구단별로 계약을 하던 시기에 레알과 바르셀로나는 프리메라리가 전체 중계권료의 거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었는데, 이게 10%가 되어도 다른 구단들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한다. 중계권료 타협 이후에는 전체 계약 이후 레알과 바르셀로나가 35%를 가져가는 것이기 때문에 영향이 있겠지만, 이 격차 때문에 레알과 바르셀로나는 긴축재정이 불가피해져서 불만스러워하고 있고, 다른 구단들 역시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이라서 타협안이 실제로 시행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한쪽의 주장은 바르셀로나가 빠져나가도 괜찮을 것이란 입장. 현재 라 리가의 전체 중계권료는 EPL의 1/4 수준에 가까우며 세리에 A보다도 낮다. EPL이 값싼 중계권으로 균등하게 중계권료를 배부한다고 생각하지는 말자, 그만큼 중계권료를 많이 받으니 그런식으로 분배가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리그 전체 계약과 그에 따른 팀 전력의 균등화가 중계권료의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단적으로 세리에A가 그 예로, 중계권료 통합협상이 이뤄지게 된 이후로 세리에 A의 중계권료는 최소 1억 유로 이상 상승하였으며 일괄 타결협상이 이뤄진 2010년 이후로 중위권 팀들의 경쟁력이 상승한 것이 사실이다. 이후 세리에 B를 버림패로 쓰면서 명분을 날려버리고, 여전히 내부분배 다툼이 치열하긴 하지만, 세리에A구단들은 최소한 선수들 주급을 못 줘서 파업이 일어나거나 구단이 파산하는 일은 없다.
세계 최고의 양대 팀과 세계를 양분하는 매치가 있는 팀인데도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물론 그 세계를 양분하는 두 팀께서 너무 잘나신 탓에 단독으로 중계권을 계약하기 때문. 양 팀이 중계권료의 70%를 쓸어 간다. 11/12 시즌 기준으로 프리메라리가 중계권료의 총합은 4억 유로인데, 레알과 바르셀로나의 합이 2억 7천만 유로에 달한다. 70%라는 표현은 절대로 과장이 아니다. 그리고남은 중계권료로 인간계들이 근근히 버티는 이런 상태에선 그 두 팀을 제외한 어떤 팀도 성장할 수 없게 된다. 단적으로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를 제외한 다른 18개 구단만으로 리그를 결성할 수도 있다라는 협박이 구단 협의체에 의해서 등장했던 2011년 기준으로 1위 팀 레알 마드리드의 수익은 1억 4500만 유로였고, 최하위권 팀들은 1/14도 안되는 1천만 유로의 중계권 수익만 거뒀다. 경쟁이 될 수가 없다. 세계가 반으로 나뉘는 경기가 프리메라 리가를 죽이는 셈. 이런 상황을 타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물론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각자의 몫을 좀 양보해서 EPL처럼 리그 통합 중계권료 분배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지만 그런 짓을 해줄 리가. 이런 암울한 상황을 타개할 방법으로써 바르셀로나가 빠져나간 중계권을 나머지 팀이 분배받게 한다는 입장이다.
다른 쪽의 주장은 프리메라 리가는 몇 십년 동안 양강 체제가 굳혀진 상태라,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둘 중 하나 없으면 다른 유럽 빅 리그에서 한 팀이 없는 수준이랑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이다. 비슷한 예로, 남미 아르헨티나 리그에서 '리베르 플레이트'가 강등당해 '수페르클라시코'가 그 시즌에 사라지자, 다음 시즌 아르헨티나 리그의 중계권료는 판매 부진으로 중계권료가 대폭 떨어졌다.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남미 리그는 승부 조작 등의 원인 때문에 전부터 내리막이긴 했지만. 어쨌건 이미 두 클럽은 사이가 안좋더라도, 서로가 없으면 반쪽짜리 팀이 되어 버리는 셈. 괜히, 엘 클라시코를 세계가 반으로 나뉘는 경기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중계권도 그렇고,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는 바르셀로나가 빠져나간 자리를 다른 팀이 채울 수 없을 것이다. 레인저스가 사라지고 셀틱 FC만 남은 스코티시 프리미어 리그도 마찬가지 상황.
물론 FC 바르셀로나 역시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타국 리그에 출전하는 것도, 카탈루냐 자체 리그를 만드는 것도 수익성 면에서 현 상황보다는 좋지 않기 때문. 아마 타국 리그라면, 그나마 프랑스 르 샹피오나가 가능성이 높긴하지만... 과연 그 세금 폭탄을 감당 할 수 있을까? 아니 그 이전에 스페인 리그에선 안 된다면서 생판 연고 없는 프랑스 리그에는 붙는다는 발상에 당위성이 떨어진다. 리히텐슈타인 공국의 축구 클럽도 아니고 또한 EU차원에서 분리독립을 반대하고 있는 터에, EU 양강의 한 축인 프랑스가 바르셀로나를 받아줄 이유가 없다. 실제로 이 문제는 스페인기자들도 프랑스 축구협회에 물어본 전적이 있고, 결론부터 말하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무슨 결론이 나오건간에 르 샹피오나에서 뛸 수 있는 팀은 프랑스 국적의 팀과 모나코 국적 팀밖에 없다. 이것은 프랑스 축구협회 규약과 프랑스 법류의 문제이기 때문에, 협회규약은 그렇다고쳐도 프랑스 법률을 개정해야 받아줄 수 있다. 여기까지 오면 이미 정치의 문제다. 마뉘엘 발스 프랑스 총리[98]가 바르셀로나의 편입 가능성을 발언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오보로 드러났다. 무엇보다 카탈루냐를 모나코 취급[99]했다는 점에서 이 발언을 믿기에는 문제가 좀 많은 편이다.
카탈루냐 독립 리그를 만든다면 프리메라 리그에서 떨어져 나갈 팀은 FC 바르셀로나 이외에는 연고지상 RCD 에스파뇰 뿐, 2부 리그를 넣으면 FC 바르셀로나 B 팀, 지로나 FC, CE 사바델 정도. 다른 카탈루냐 연고지는 3부 리그로나 가야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에스파뇰은 성격상 카탈루냐 내부의 카스티야 계통 팀이기 때문에 연고지 이전이건 내부 존속이건 어떤 형태로든 프리메라 리가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사실상 바르셀로나만 '혼자서 신생 카탈루냐 리그의 생존을 책임져야 하는' 독박을 쓰게 될 것이다. 세리에B는 바르셀로나 하부팀 제외하면 연고지 이전할 가능성이 높고 결국 카탈루냐 독립 리그는 만들어져봤자 유럽에서 3류 리그 정도로 여겨지게 될 것 이다.
다만 바르셀로나가 떨어져 나가더라도 엘 클라시코가 소멸하지는 않을 수도 있는데, 챔피언스 리그에서 격돌하게 될 가능성은 남기 때문이다.그렇게 되면 거의 지구멸망 급 매치 물론 이 경우는 사실상 제로에 수렴할 것인데, 신생 카탈루냐 리그가 UEFA에 가입할 수 있겠느냐라는 정치적 문제는 차처한다고 쳐도, 카탈루냐 리그를 책임질 바르셀로나가 수익이 사실상 전무할 상황에서 팀을 유지할 재정이 될지 의문이다. 카탈루냐인들 입장에서는 카탈루냐 독립이 목표였잖아, 축구팀은 포기하면 편해 FC 바르셀로나의 위상을 고려하면 팀 자체는 유지될 가능성이 높지만 이전과 같은 세계 최고 수준 클럽으로서의 위상은 바랄 수 없고, 3류 리그로 전락한 카탈루냐 독립 리그에서 혼자 왕초 노릇하는 팀에 머물게 될 것이다.
후술하겠지만 일부 무개념 조선 꾸레 해축빠들이 스페인 수교 60주년 기념으로 벌어진 바르셀로나 방한 경기때 에스파냐어, 영어등으로 카탈루냐 독립을 지지한다는 정신나간 현수막를 걸겠다고 일방적으로 공지한 흑역사가 있다.
12.2 파브레가스를 둘러싼 논란
국내 해외축구 커뮤니티에서 바르셀로나 팬과 아스날 팬이 싸운다면 99% 얘 때문인데 간략히 말해 바르샤 팬들은 해적질이라는 주장을, 아스날팬 들은 문제없이 데려와서 우리가 키워서 쓴 거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판단은 개개인에게 맡기겠다. 참고로 스페인 노동법은 17세 이하 근로계약을 금지하고 있어서 유스팀 선수들의 정식 프로 계약이 불가능하고, 잉글랜드 클럽들이 스페인과 이탈리아 클럽들의 유소년 선수들을 보상없이 데려가는 일이 빈번하자 UEFA 차원에서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참고로 메시 역시 아스날의 감독인 아르센 웽거가 매의 눈(...)으로 노렸는데 본인이 거절했다는 얘기가 있다. 이 건에 대해서는 조금 더 얘기해보자면, 아스날 팬들은 바르셀로나에서도 남아메리카의 클럽들에게서 유망주 약탈을 자행하는 건 마찬가지라 주장하며[100], 이쪽은 아예 가족 전부를 이민시키는 방식이라 선수가 프로계약에 실패하면 곧바로 온가족이 거리에 나앉는 처지가 된다고 주장. 하지만, 애시당초 올적에 바르셀로나에서 직업알선을 해주기때문에 순식간에 그지꼴로 나앉는 경우는 없다. 프로계약 실패한다고 아버지까지 짤리는 계약이 아니란 소리.
그러나 유럽의 한 시민단체의 EU 의회 제출 보고서에 따르면 직업을 알선받는다고 해도 구단과의 관계가 사라지면 쉽게 해고되기때문에 길거리에 나앉는 사례가 상당히 많고 점점 유럽에서도 프로계약에 실패한 남미출신 유망주들이 문제가 되고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 팬들은 잉글랜드 클럽들은 스페인 이탈리아식의 완전 원석 빼오기 + 스페인 이탈리아에서 1차 가공한 원석도 빼가기까지 한다는 점을 공격. 그러나 잉글랜드 유스팀은 바르셀로나가 남미에서 데려오는 연령대의 유망주들은 클럽 연고지 주변에 살지 않는이상은 계약이 불가능하다. 데려오는 유망주들의 연령대가 높은 이유가 바르 그것때문. 뭐, 군소클럽 입장에서는 니들이나 쟤들이나 오십보 백보...긴 한데, 오십보와 백보가 같은지 다른지에 대해서는 개개인이 판단해볼 일이다. 스몰클럽 입장에서는 여기나 저기나 자기네 유망주 유혹해서 데려가는건 똑같다. 물론 한국의 해외축구팬이야 99% 빅클럽들의 팬이니 니 잘못 내 잘못 앞으로도 죽어라 싸울 건 분명하다.
문제는 이 사건이 세스크 하나로 끝난게 아니라는 점. 2011년에 들어서도 아스날은 카데테 A의 유망주 욘 토랄을 빼갔고 이에 바르셀로나 회장 산드로 로셀은 격노해서 아스날을 까버렸다.[101] 최근에는 엑토르 베예린을 빼내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2011년 실제로 아스날은 베예린을 데려갔다!
하지만 이는 세스크가 특이한 케이스일뿐이다. 바르샤 유스 출신으로 타 팀에서 가능성과 재능을 보인 선수는 여럿 있지만 이 중에 월드 클래스로 성장해서 다시 바르샤로 온 선수는 오직 세스크 뿐이다.[102] 반대로 그저 그런 선수가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대표적인 예로 세스크와 비슷하게 바르샤 유스에서 준수한 경력을 쌓고[103] 아스날로 이적했지만 성장이 더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한[104] 프란 메리다가 있다. 세스크에 비하면 존재감이 미미한 것은 사실이나, 아무도 이 선수의 DNA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이 선수 뿐 아니라 2011년에 빼간 욘 토랄의 경우도 아스날에서 여기저기 임대보내면서 성장을 유도하지만 막상 그만큼 성장하지 못하니 아스날에서는 데리고 있고 바르샤에서는 전혀 관심없는 선수중에 하나다.
결론을 내기 위해 다시 세스크 건으로 돌아온다면, 바르셀로나가 세스크를 노린 이유는 단순하다. 그 정도 클래스의 선수를 (홈 디스카운트를 포함해) 비교적 낮은 이적료[105]로 데려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DNA운운한 것은 아스날에게 부담을 주기 위한 술책이지 실제로는 관심도 별로 없다는 얘기.
덤으로 2016년 엑토르 베예린이 정상급 풀백으로 주목받게 되자, 또 기사가 나왔다. "베예린, 바르사 DNA있다" 부회장이 관심 인정.
12.3 매수셀로나?
08/09년도 챔피언스 리그 4강전의 첼시전.
유튜브에서 첼시 바르셀로나 오보레보라고 입력하면 관련 동영상이 수십개가 나온다. UEFA는 이 경기에서 판정에 대한 공식적인 대응을 금지했다. 그래서 결국 아무 조치 없이 넘어가게 되었다. 이러한 미심쩍은 UEFA의 대응으로 인해 과거 05-06 챔피언스리그 결승 때 처음으로 언급되었던[106][107] 매수셀로나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런 미심쩍은 상황들이 부각되어 심판 판정으로 말이 많은 팀이다. 이때 판정이 얼마나 장난 아니었냐면 피케 등이 손으로 공을 친게 한두번이 아닌데(...) 발락과 드록바 등이 고래고래 소리지르면서 따져도 당시 주심인 오보레보 주심은 아~주 관대히 패널티킥이고 뭐고 휙휙 넘어갔으며 심지어 경기가 끝난 후 드록바가 항의를 하자 웃으면서 옐로카드까지 주는 만행을 저질렀으므로 첼시가 바르셀로나 상대로 이길수 없었기에 수많은 첼시팬들은 바르셀로나와 오보레보에 이를갈면서 매수셀로나라고 욕을 하면서 까들은 매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잠깐만 반칙했다가 넘어가지기만 해도 매수셀로나라고 무조건 욕을 해댄다. 심지어는 현지 중계 중 바르셀로나의 포메이션은 4-3-3-3이라는 내용의 피켓이 포착되는 바람에 짤방으로 활용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 수비수 아비달이 드록바의 헐리웃 액션에의해서 퇴장당하는 등 그냥 심판의 자질이 의심되는 경기였다. 해외언론에서도 피케의 핸들링과 아비달의 퇴장만을 오심으로 언급했다. (당시 국내 중계를 맡았던 해설위원이 첼시팬으로 유명한 장지현이었기에 중계가 첼시위주로 흘러가면서 바르셀로나에 유리한 오심만이 부각되었다.)사실 그렇다고 보기엔 바르셀로나가 이득을 본 판정이 압도적으로 많다.
첼시팬들은 런던 더비인 아스날 FC 전에서도 그렇고 맥아리없는 응원과 귀족스러운 관람 태도로 종종 비웃음을 사는데 오보레보는 그런 첼시 팬들에게 살해 위협을 당할 정도였다. 공항에까지 경호원이 따라붙었다고.
다만 오브레보의 판정에서 바르셀로나만 득을 본 것도 아니었다. 첼시와의 챔스 4강에서 바르셀로나의 왼쪽 수비수 에릭 아비달은 그야말로 엉뚱한 오심으로 퇴장당했고, 그 덕에 바르셀로나의 수비 포메이션 전체가 꼬여버렸다.[108] 다른팀들도 그렇게 오심따지면 밑도 끝도 없다가 중론이긴한데, 그렇지만 그때 그 경기는 오보레보 주심이 정말 문제였던것은 사실이다. 09/10 챔피언스 리그 16강전의 바이에른 뮌헨과 피오렌티나와의 1차전에서도 그 띨띨한 눈 어디 안간다고(...) 결승골을 넣은 클로제가 자기 자신이 오프사이드라고 인정한 골을 인정함으로서(...) 결국 피오렌티나의 16강 탈락에 큰 공을 세웠다.(...) 덕분에 이 이후로 비디오 판독을 해야하는지 안해야 하는지 심각히 논의가 되었다.
주제 무리뉴는 첼시 시절부터 바르셀로나의 심판 판정에 의문을 제기했으며, 오브레보 사건 이후에는 "바르셀로나를 상대할 팀들은 10명으로 전략을 짜야 한다"라는 말까지 한 적이 있다. 다만 레알 마드리드 감독으로 부임한지 2년차에 치룬 수페르코파에서 "스페인 축구협회와 바르셀로나 간에 심판 판정에 관한 무언가가 있다"는 초강경발언으로 상당한 물의를 빚었고 동료 감독들에게 엄청 까이기도 했다.[109]
또한 이러한 이미지가 형성되는 것은 매번 챔피언스 리그마다 오심이나 논란이 있는 장면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09/10 시즌의 인테르와의 4강에서 부스케츠의 까꿍과 티아구 모따의 퇴장, 10/11 시즌의 반 페르시의 퇴장, 레알 마드리드와의 4강에서 페페의 퇴장과 호날두의 골 취소, 11/12 시즌 AC 밀란과의 경기에서 네스타의 PK등이 그것이다. 정확히 하면 규정상 주는 것은 가능하지만 일반적으로 심판이 그냥 넘어가는 상황이나, 경기 흐름을 끊어먹거나, 시뮬레이션 액션 등이 경합되어 쉽게 납득하기 힘든 판정이 매해 등장하기 때문이다.[110]
바르셀로나 팬들이 억울한 것은 바르셀로나가 매해 이런 오심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09/10 시즌에서는 인테르와의 4강 2차전에서는 피케의 오프사이드 골이 골로 인정 되어서 바르셀로나만 욕먹었지만 사실 1차전 밀리토의 골 또한 오프사이드 골이라 결국 퉁친 셈이다. 10/11 시즌 아스날과의 원정 경기에서는 메시의 온사이드 골이 오프 사이드 판정을 받으며 취소됐다. 결승에서는 루니의 오프사이드 골이 그대로 골로 인정 됐다. 11/12 시즌 밀란과의 경기도 산 시로에서 원정 경기에서 알렉시스 산체스의 PK가 선언되지 않았고 네스타가 부스케츠의 옷을 잡아 당긴 것도 논란의 여지가 있음에도 PK가 인정되지 않았다.[111] 12/13 시즌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에서 즐라탄의 골 또한 오프사이드였으나 부심이 보지 못하여 인정되었고, 결국 다음 경기에서 부상 중이었던 메시가 교체 출장을 하게 된다. 그리고 밀리던 팀이 갑자기 다른 팀이 되었다 또한 엘클라시코 때마다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이 '고의적인 폭력성'이 짙은 플레이를 해도[112] 거의 적절한 판정이나 추가징계를 받지 않는 경우도 있다.바르셀로나가 얌전하게 플레이하는것은 물론 아니지만 이런 결정적 장면에서 바르셀로나에게 불리한 판정에는 아무 말 없다가 홈에서 바르셀로나에게 유리하거나 애매한 판정이 내려지면 매수셀로나라고 까면서 덤으로 팬들에 대해 인신공격적 발언까지 수반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물론 이런 이미지가 각인된 것은 위의 첼시와의 4강전 오심이 워낙 레전드였던 탓도 있고, 바르셀로나에게 불리한 판정은 오심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오프사이드나 페널티 박스 안의 경합 상황이 많은 반면, 바르셀로나에게 유리한 판정은 누구나 이상하거나 문제가 있다고 할만한 상황에서 등장하는 탓도 있다. 물론 진짜 매수나 경기 조작이 있었다면 괜히 욕먹을 후자의 상황이 아니라 전자의 상황에서 유리한 판정을 하겠지만...상황상 바르셀로나가 판정상 이득을 본다고 여겨질 여지가 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스포츠계에서 승부 조작이라거나 매수라는 말은 결코 함부로 꺼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첼시 내부라고 쓰고 무리뉴라고 읽는다에서 제기된 매수설에 대해 당시 첼시 감독이었던 히딩크(무려 피해자 입장이다!)가 '그런 이야기는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중 아무도 그와 비슷한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라고 일침을 가한 데서도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이다.[113]
바르셀로나에 유리한 쪽으로 판정이 나오는 것에 대해선(사실 이 이야기는 바르셀로나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바르셀로나 특유의 볼을 점유하는 스타일에 고전하여, 상대하는 팀들이 유독 거칠게 나오는 경우가 많고 이에대해 바르셀로나는 상대의 파울을 유발시키고 카드를 수집하게 하며 대응하고 있으므로, 바르셀로나와 경기하는 팀들이 유독 퇴장이나 경고가 많은 것은 이유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12.4 주요 선수들의 탈세 혐의 논란
리오넬 메시가 탈세 혐의가 터진 뒤 계속 논란거리가 돤 것을 시작으로 마스체라노와 네이마르 그리고 아드리아누 코헤이아까지 탈세 혐의로 고발되었고, 마스체라노는 19억원 탈세혐의를 인정하였고 탈세에 대한 처벌로 벌금 10억원형을 선고받았다. 이제는 클라우디오 브라보까지 탈세 혐의를 받고 있다. 탈세레인저 다만 레알 소시에다드 시절에 탈세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최근 네이마르가 브라질 재무부에게 재산 573억원을 동결된 것에 이어 브라질 법원에게 유죄판결을 받아 벌금 589억원(!)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거기다 이러한 탈세 논란속에서 메시는 또 다른 탈세 논란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파나마의 회사를 이용해 재산을 숨긴 것으로, 기존에 진행되었던 것과는 별개의 혐의라고 한다. 더구나 앞선 탈세가 문제가 된 이후에 법정대리인을 바꾼 것이 문제의 모색 폰세카이고, 새로운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것은 스페인에서 한참 탈세 문제를 다루고 있던 도중이라고. 파나마 페이퍼즈 항목 참조.# 페이퍼 컴파니를 차릴 때 친필 사인이 스페인 언론에 의해서 공개되었다.
여담으로 위에 언급된 선수 모두가 남미 선수들이다.
리오넬 메시의 탈세 혐의에 대한 스페인 법원의 21개월형의 집행유예 선고 이후, 메시 부자에 대한 구단 차원에서의 공식적이며 무조건적인 지지를 선언하면서, SNS에 사진이나 메시지를 올릴 때 #WeAreAllLeoMessi 해시태그를 붙여서 메시에게 무조건적인 응원과 지지의 뜻을 보내달라는 캠페인을 시작하여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클럽 이상의 클럽"에서 "세법 이상의 클럽"으로 진화?)
12.5 K리그 올스타팀과의 친선경기
한국과 스페인 수교 60주년을 기념한다는 명분으로 8월 4일에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K리그 올스타 팀과의 경기가 예정되어 있다. 문제는 이번에도 맨유 때 처럼 사전에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경기 날짜를 통보했고 프로연맹이 이를 받아들여 당일 리그 일정을(서울vs제주) 무산 시켰다는 것이다. 서울 월드컵 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당사자인 FC 서울측은 처음에 바르셀로나가 경기 일자를 일방적으로 통보해오자, 자신들과 무관한 경기라고 맞섰지만 연맹의 리그 일정 무산 크리와 올스타전 카드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그로 인해 일각에서 연맹과 바르샤에 대한 비판 여론이 제기되었다.
그나마 이 경기에서도 스페인 선수들이 월드컵 휴가로 참여하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사람들도 어느 정도 예상하던 바였으나, 과르디올라 감독이 K리그 올스타전과의 경기에서 리오넬 메시, 다니엘 알베스까지 참가하지 않는다고 발언하면서 이제는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다. 감독 입장에서야 부상 위험이 있는 선수를 친선 경기에서 빼고 싶은건 당연하겠지만 엄연히 돈을 받고 뛰는 투어 경기에서 주축인 스페인 선수는 물론 메시까지 뛰게하지 않는다는 것은 답이 안나오는 상황이다. 이전 맨유도 리그 일정을 무산시키고 일방적으로 난입했지만 적어도 주전 선수들을 모두 출전시키며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성의를 보여주었고 국내 언론을 대할때도 성실하게 임했다.[114]
K리그팬들은 일제히 들고 일어나 바르셀로나와 연맹을 성토했다. 한바탕 논란끝에 메시의 출전은 확정되었지만...[115]제대로 뛸 지도 의문이고, 이미 바르셀로나에 대한 인식은 바닥을 쳤다.
어쨌건 이런 이유들로 인해 예매 취소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고 하며, 그로인해 주관사인 스포츠앤스토리는 이번 경기 주관으로 인한 적자를 넘어 부도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amp;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126889 # 사실, 누구 탓 할 것도 없이 애초에 계약을 엉터리로 했기 때문에 벌어진 자업자득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amp;mod=read&office_id=139&article_id=0001965706 # 4컷으로 보는 바르샤 방한
이런 저런 이유들로 인해 인터넷에서는 '경기 보러가지 말자'라든가,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고 가자'는 등의 여론이 들끓고 있으며, 특히 이 가운데 가장 압권은 '루이스 피구 마킹이 된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고 가자'는 주장.[116] 그리고 이를 실현한 용자들도 있었다.oid=311&aid=0000028118 123
게다가 국내 바르샤 팬클럽인 꾸레코리아에서 이런 걸개를 걸겠다는 말까지 해서 더욱 까이고 있다. 한국-스페인 수교 60주년 기념경기에 이 무슨... 리비아 사태 재현 조짐이 보인다. 할려면 카탈루냐어로 하지 영어와 스페인어로 한다.(...) 그렇다고 이건 티벳도 아니고 이뭐병.
이게 원래 별 말도 없이 있다가 갑자기 통보식으로 '이런 문구 걸개를 걸겠다.'는 식으로 일이 진행되어버려서 경악한 꾸레코리아 회원들은 당장 때려치우라고 운영진을 맹폭했고, 결국 반응이 안좋자 꾸레코리아의 운영진들은 '다음과 네이버 카페와 연동해서 만들다 보니 제대로 된 전달이 되지 않았으며 운영진의 책임이 아니다, 우리도 반대한다.'라며 걸개에 대한 반대의사를 밝히고, 상암에 가있는 사람들하고 연락이 안되니 직접 가서 반대의사를 밝히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심지어 이런 사람도 나타났다. 물론, 저런 팬이야 극소수일 뿐이고, 실제로 꾸레코리아 게시판에 걸개 찬성게시물이라고는 저 글 하나뿐이었으며, 저 글 밑에도 반대댓글들이 주루룩 달리고, 결국에는 삭제되기까지 했다. 그냥 어디에나 있는 극소수 무개념 팬의 행동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사람때문에 FC바르셀로나와 바르셀로나 팬들의 이미지가 나빠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보였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사건이 돌아가다 보니 다음 바르셀로나 팬카페 운영자가 꾸레코리아에 나타나서 걸개 관련글을 적으며 '다음넷에서는 일주일 전부터 관련 글이 올라와있었고, 찬성이 반대보다 많았었다.'며 '반대를 한다면 걸개를 걸지 않을수는 있지만, 그러려면 직접 상암에 와서 반대의견으로 납득시켜달라.'는 말을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웃사랑, 정의, 민주주의, 일제시대 드립을 치며 걸개를 정당화 시키고 있으니 한번도 보지못한 지구 반대편 클럽에 이렇게 감정이입 할 수 있다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꾸레코리아에서조차 벙쪄서 다음카페 운영자를 맹비난했다.
그리고 이게 문제의 다음 쪽에서 나온 글#. 그냥 까탈루냐 가서 사는게 낫지 않을까 싶은 글이다. 레알 왔으면 도시락 폭탄 던질기세 이러니 이번 방한으로 바르샤와 그 팬들의 이미지는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떨어졌다. 이 추태를 보다못한 사커라인 회원 몇명이 상암경기장과 외교통상부는 물론 스페인 대사관까지 연락해 걸개 압수에 나섰다.
한편, 이 일로 가뜩이나 해외축구판에서 이미지 안습이던 바르셀로나 팬들은 축구판 아닌데서도 가루가 되는중.
계속 커지는 논란에 국내 언론의 반응도 매우 안좋고, 배성재 캐스터의 경우 자신의 트위터에서 대놓고 바르샤를 까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친선경기 중에 바르샤팬이 경기장에 난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난입한 사람은 본항목 중에 외부 링크로 연결된 그 사람.(다음쪽 사람이 아니라 꾸레코리아에 글을 쓴 사람.)#1, #2
이날 경기에는 FC 서울 한경기 관중보다 적은 고작 3만의 관중이 들어왔다. 분노한 K리그 팬들은 바르셀로나를 5-0으로 쳐바르자며 항전결의를 불태웠지만...경기에서는 바르셀로나 2.5군에게 2-5로 참패하면서 K리그의 이미지는 이미지대로 까먹고 온갖 굴욕은 다 당한 K리그의 국치일이 되었다. 물론 원래 올스타 팀은 조직력이 떨어지기에 화려한 선수 구성과는 달리 실제 전력은 일반 클럽팀보다 떨어지지만 애초에 K리그를 까는 사람들이 그런걸 신경쓸리도 없고 해서 신나게 욕먹는 중.[117]
출전문제로 논란이 되었던 메시는 고작 15분만 뛰어서 지탄의 대상이 되었지만, 이 15분동안 혼자서 두 골을 몰아치는 바람에 K리그 팬들은 벙쪄서 속만 끓이게 되었다.[118]
돈도 바치고 망신까지 당한 K리그의 완벽한 흑역사로 프로축구연맹이 이례적으로 사과글을 올리고 축구관련 기자, 칼럼니스트들이 K리그의 잔치가 비극으로 변해버린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는등 일개 해외축구 클럽의 투어 이상의 심각한 사태가 되었다.
경기가 끝난 후 과르디올라는 한국 팬들을 생각해서 메시를 15분간 뛰게 했다, K리그의 수준에 놀랐다며 상처에 재를 뿌렸다. 그런데 중국에 가서 친선 축구를 할 때는 메시를 처음부터 뛰게 한다는 소식이 알려져 이미 바닥을 기던 바르샤와 과르디올라 감독의 이미지는 더욱 나빠졌다.
다만 비행시간의 차이를 생각하면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119] 거기다 메시는 고열에 시달리고 있던 상태였고, 경기장을 빠져 나가면서 구토까지 했다.
메시의 인터뷰도 조금 과장된 감이 있다. 메시의 인터뷰에서 문제 되는 부분은
Q. 방한 소감은?
A. 공항에 오자마자 바르셀로나와 아르헨티나 유니폼을 입은 팬들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휴식을 잘 취해서 경기에 나서겠다
Q. 시차 적응등 컨디션은 어떤가?
A. 지금 몇시인지 어딘지도 모르겠다. 최선을 다해서 연습을 통해 컨디션을 회복하겠다.
...였는데 이 때 메시는 친선경기, 아이티 자선 행사에 이어 바로 지구 반바퀴를 돌아온터라 빈말로도 컨디션이 좋다고 답할 상황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당장 컨디션은 좋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서 컨디션을 회복하겠다는 답변이라 딱히 한국을 무시하는 발언도 아니고, 크게 문제 될만한 답변도 아니었다. "지금 몇시? 여긴 어디?" 부분만 뽑아서 기사화 시킨게 컸다.
덤으로 언론은 이 경기에서 바르샤 유니폼이 블라우그라나(빨강/파랑 줄무니)도 아니고 주황색 원정 유니폼도 아닌 이상한 듣보잡 청록색 유니폼이라고 한국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까기도 했는데, 이 유니폼은 10/11 시즌 원정 유니폼이었다.
알베스는 입국시 사진의 표정 때문에 오해를 받았고 한국과 북한을 헷갈리는 대형 병크 때문에[120] 가루가 되도록 까였고 해축빠들, 아니 한국내 축구팬들 사이에서 비호감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다만 사인을 해주지 않고 지나갔다거나, 거만하게 팬들을 무시했다는 건 죄 헛소문이다. 버젓이 알베스에게 사인을 받고 같이 사진찍은 사람들도 있으니...
여기에 과르디올라는 원래 선수단 관리에 있어서는 무리뉴 못지 않은 지독한 원칙주의자로 유명한데, 이 때 메시 출장에는 의료진의 OK 사인이 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원칙주의자인 펩은 당연히 출전시키지 않겠다고 대답했는데 이러한 소개 없이 메시를 출장 시키지 않겠다는 발언만 부각시키면서 한국을 무시하는 이미지가 돼버렸다. 물론 계약이 있었던만큼 칭찬 받을만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딱히 한국 무시와 관련있는 사항도 아니었다. 결국 처음부터 바르샤 구단이나 팬들의 병크도 있었지만 이 정도로 욕을 먹을 것은 아니며 방한 태도 논란은 기레기들의 농간 때문에 과장된 면이 크다.
12.5.1 수원과의 친선
파일:Attachment/FC 바르셀로나/kf.jpg
이 경기를 단 한장으로 요약한 사진.
반도의 흔한 꾸레
앞의 올스타전에 비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사실 FC 바르셀로나는 그 전에도 한번 방한한 적이 있었다. 2004년 차범근 감독이 이끄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친선전이 그것인데 호나우딩요와 푸욜, 발데스 골키퍼 등 주축 선수들이 모두 출전한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후반 수원의 우르모프가 멋진 중거리 프리킥 골을 성공시키며 수원의 1:0 승리로 마무리 됐다. (물론 바르셀로나는 시차 적응이나 어웨이 경기의 불리한 점이 있었다고 말하나 따지고 보자면 수원에 비교해 선수단의 몸값이 다르다. K리그에서 강호에 속하는 수원 선수단의 연봉을 다 합쳐도 호나우지뉴 한 명의 연봉에 비할바 아니였으니... 게다가 당시 수원은 이운재를 비롯한 국가대표 선수들이 차출로 인해 경기에 출전하지 않은 상태였다.)
경기 결과도 결과지만, 사실 논란이 된 것은 정정당당하게 경기해서 승리를 따낸 수원 선수들을 향한 무개념한 바르셀로나빠들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이었다. 왜 타이트하게 경기를 해서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화려한 개인기를 못보게 하느냐? 라거나 어차피 골을 넣은 선수는 외국인 용병일 뿐, K리그가 잘 해서가 아니다. 와 같은 디스를 늘어놓았다. 그럼 설렁설렁 뛰어서 져주라고? 호나우지뉴와 헨릭 라르손이 스페인 사람이냐? 이러한 무개념한 행동은 인터넷 공간에서만이 아니라 경기 당일의 경기장에서도 행해졌는데, 특히 경기 후 수원 선수들을 향해서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고 경기장에 물병을 투척한 사건은 유명 언론기관인 Getty Image를 통해 전세계에 퍼져 나가며 그야말로 국제망신에 큰 공헌을 하였다.(...) 거기에다 바르셀로나 선수들도 경기 결과에 불만을 품고는 경기가 끝난 이후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경기장을 빠져나감[121]으로써 까일 거리를 제공했다.
12.6 유소년 영입에 관한 징계
다양한 국적의 선수들이 라 마시아에 소속되어 있지만 한국 국적의 선수로는 백승호를 시작으로 이승우와 장결희 등의 세 명이 바르셀로나 유스팀에 소속되어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스를 잘 키운다는 팀이고, 거기에 팀 자체도 세계 최강 수준의 팀이다보니 바르셀로나에 대한 동경도 있지만 그에 비례한 반감 또한 크다.
그런 영향이 극단적으로 발현된 모양인지, 익명의 고발이 접수되면서 18세 이하 선수 계약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FIFA의 징계를 받았다. 2016년 1월까지 선수 등록이 불가능하며 만 18세가 되기 전까지 공식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는 것이 주내용이다. 그리고 이후 징계가 강화되어 훈련조차 금지되었다. 바르셀로나에 대한 이번 징계는 세계 각국의 유망주들을 싹쓸이하는 라 마시아에 대한 견제구라고 보는 시선이 대체로 많다. 이 익명의 고발이 스페인의 스포츠지 문도 데포르티보에 따르면 한국의 축구협회 소속인물일 가능성도 크다고 한다. 축구하는 자식을 둔 축협 임원이 청소년 대표팀에서 자기 자식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을 막기위해서 수작을 부린 것이라는 소문이었으나, 결국 소문일 뿐 사실여부는 끝내 드러나지 않았다.
아무튼 18세 이하의 선수가 해외 이적을 하려면 부모가 해당 유소년 선수와 함께 거주하며 축구 외의 일에 종사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는데 한국 선수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아 결국 징계 대상자에 포함되었다. 여담으로 바르셀로나 유스출신인 리오넬 메시도 클럽의 제안으로 부모님이 스페인으로 직장을 옮겼던 적이 있다.
바르셀로나도 2014년 4월 2일에 FIFA에서 2014-15시즌 이적 활동 금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또한 45만 스위스프랑(약 5억3천8백만 원)의 벌금과 문제가 된 10명의 유스 선수들에 대한 조치도 취해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23일, 이적활동 금지가 1년간 유보되면서 클럽은 선수보강이 가능해졌다.
이 사건의 여파로 오랜 징계 기간을 감당할 수 없는 여러 유소년 선수가 결국 바르셀로나를 떠났다. 이중엔 일본의 유망주인 타케후사 쿠보 또한 포함. 쿠보의 경우 특례 취급을 받아 가족이 바르셀로나로 이주한다는 조건으로 12살 이하의 유스는 카탈루냐 태생만 뽑는다는 규칙을 깨고서 입단한 케이스였을 정도로 기대를 모았으나 만 18세가 되는 5년 후까지 기다린다는 것은 축구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였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해프닝에 그쳤지만 장결희를 비롯한 다섯 명의 선수들과의 계약을 해지했다는 보도가 나온 적도 있다. 단순히 경기만 출전할 수 없었던 이전의 징계를 더 강화하며 훈련하지도, 팀에 잔류도 불가능한 징계를 내려서 선수들의 입장에서는 클럽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상황. 그나마 만 18세를 넘은 백승호나 아직 18세가 되지는 않았으나 수원컵-칠레 U-17 월드컵 등의 일정을 통해서 한달 정도만 버티면 되는 이승우의 경우는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다른 선수들은 2016년 여름까지 기다리기는 너무 무리한 일이 되었다. 참고로 한국인 유스 뿐만이 아니라 벤 레더맨(미국)과 같이 자신이 바르셀로나 유스를 선택해서 들어간 케이스나 파트리스 수시아(카메룬)처럼 극도의 빈곤가정에서 태어나 기초적인 교육도 못 받던 케이스들 모두 클럽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선수의 기본권을 운운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선수의 기본권이 제약되는 결과가 나오니[122] 결과적으로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정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12.7 #WeAreAllLeoMessi 캠페인 논란
구단 차원에서 저지른 희대의 자폭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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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가 탈세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린 뒤 구단 웹사이트에 메시 지지 캠페인을 한 것이 논란이 됐다. 바르사는 구단 웹사이트를 통해 '#우리는 모두 메시다(WeAreAllLeoMessi)'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두 손을 펴고 있는 사진이나 메시지를 올려달라고 요청했다. 구단은 이같은 행위를 통해 메시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 동정심을 보여주고 메시가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알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캠페인은 여러 축구팬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물론 메시가 경기 안팎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탈세 범죄가 명백히 드러난 만큼 무슨 지지를 보내냐는 의견도 나왔다. 그리고 우리는 탈세 범죄자가 아니라며 #WeAreNotLeoMessi라는 태그까지 등장했다. 구단 측은 아직 비판에 대해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고 있다. 기사
구단의 상징성있는 선수가 논란에 휩싸여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WeAreAllLeoMessi 캠페인은 클럽과 선수를 위해 행한 캠페인이라고 보기엔 너무도 무모하고 앞뒤가 없는 뜬금없는 캠페인이였다. 팬과 클럽, 구단, 선수 모두가 힘든 시기인 것을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행했다고 하더라도 조금만 생각하면 후폭풍을 예상할 수 있을 캠페인이다. 한 구단이 선수와의 대화도 한마디 없이 행한 이 캠페인은 물의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스페인의 법무부 장관도 비판했다. 기사
13 같이 보기
순서 |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 | 국가 | 첫 우승연도 | 우승 횟수 | |||
1 | 레알 마드리드 (Real Madrid) | 40px | 1956년 | 11회 | |||
2 | 60px | 벤피카 (Benfica) | 40px | 1961년 | 2회 | ||
3 | 밀란 (Milan) | 40px | 1963년 | 7회 | |||
4 | 인테르나치오날레 (Internazionale) | 40px | 1964년 | 3회 | |||
5 | 48px | 셀틱 (Celtic) | 40px | 1967년 | 1회 | ||
6 | 50px | 맨유 (Manchester Utd.) | 40px | 1968년 | 3회 | ||
7 | 50px | 페예노르트 (Feyernoord) | 40px | 1970년 | 1회 | ||
8 | 54px | 아약스 (Ajax) | 40px | 1971년 | 4회 | ||
9 | 바이에른 뮌헨 (Bayern) | 40px | 1974년 | 5회 | |||
10 | 리버풀 (Liverpool) | 40px | 1977년 | 5회 | |||
11 | 35px | 노팅엄 포레스트 (Nottingham Forrest) | 40px | 1979년 | 2회 | ||
12 | 40px | 애스턴 빌라 (Aston Villa) | 40px | 1982년 | 1회 | ||
13 | 50px | 함부르크 (Hamburg) | 40px | 1983년 | 1회 | ||
14 | 37px | 유벤투스 (Juventus) | 40px | 1985년 | 2회 | ||
15 | 44px | 스테아우아 (Steaua) | 40px | 1986년 | 1회 | ||
16 | 40px | 포르투 (Porto) | 40px | 1987년 | 2회 | ||
17 | 50px | PSV (Eindhoven) | 40px | 1988년 | 1회 | ||
18 | 40px | 츠르베나 즈베즈다 (Crvena Zvezda) | 40px | 1991년 | 1회 | ||
19 | 바르셀로나 (Barcelona) | 40px | 1992년 | 5회 | |||
20 | 50px | 마르세유 (Marseille) | 40px | 1993년 | 1회 | ||
21 | 도르트문트 (Dortmund) | 40px | 1997년 | 1회 | |||
22 | 첼시 (Chelsea) | 40px | 2012년 | 1회 |
?width=20 ECA (European Club Association, 유럽 클럽 협회) 창립 회원 | |||
50px | 50px | ||
디나모 자그레브 (Dinamo Zagreb) | 레알 마드리드 (Real Madrid) | 레인저스 (Rangers) | 리옹 (Lyon) |
50px | |||
맨유 (Man Utd) | 밀란 (Milan) | 바르셀로나 (Barcelona) | 바이에른 (Bayern) |
35px | 50px | 50px | |
비르키르카라 (Birkirkara) | 아약스 (Ajax) | 안더레흐트 (Anderlecht) | 올림피아코스 (Olympiacos) |
30px | 50px | 35px | |
유벤투스 (Juventus) | 첼시 (Chelsea) | 쾨벤하운 (København) | 포르투 (Porto) |
- ↑ '엉덩이(Culo)를 내밀고 있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로. 이는 과거 바르셀로나 홈구장 담벼락에 걸터앉아 경기를 구경하던 사람들의 엉덩이가 지나가던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카탈루냐 어로는 Culers /kuˈlɛs(쿨레스)라고 발음한다. 여담으로 꾸레는 애칭이지만, 한국 한정으로는 어감이 좋지 않다보니 거의 욕처럼 쓰이고 있다. 일례로 네이버 스포츠에선 이 말을 필터링한다.
- ↑ 시민구단이기 때문에 구단주는 없고, 소시오 중에서 회장이 선출되는 방식이다.
- ↑ 누 캄프는 영어식 표기이다.
- ↑ 2016년 기준
- ↑ 네이마르의 실 이적료가 5700만 유로가 아닌 9500만 유로라는 설이 있다.
- ↑ 2016년 6월 기준 기록. 1987년생이고 2004년에 커리어를 시작했음에도 클럽 선배들의 득점 기록을 이미 아득히 뛰어넘었다. 게다가 현역이라 이 수치는 계속 늘어난다. 흠많무. 2014년 11월 22일 세비야와의 홈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라리가 역대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
-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의 전신
- ↑ UEFA 유로파 리그의 전신, 트로피 영구 보유
- ↑ AC 밀란과 타이.
- ↑ FC가 말 그대로 축구팀이라는 뜻임에도 이게 이 모든 종목에 다 들어가 있다. 축구 다음으로 스페인에서 인기가 많은 농구팀도 FC Barcelona Bàsquet(바스켓)팀이라고 부르며 다른 종목도 이렇게 아이스하키팀도 FC Barcelona Ice Hockey 부르듯이 이름에 FC가 들어가 있다...
- ↑ 바르셀로나는 2009년 프리메라리가, UEFA 챔피언스리그, 코파 델 레이,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UEFA 슈퍼컵, FIFA 클럽 월드컵을 우승했다. 즉, 한 해동안 우승할 수 있는 모든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얘기가 된다. 다른 말로는 전관왕. 물론 챔스 4강에서 첼시 상대로 역대급 오심의 버프를 받은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 ↑ 2008-09, 2014-15 시즌
- ↑ 바르샤로 많이 불려왔으나 카탈루냐어의 ç의 발음을 고려하면 바르싸가 맞고, 한국어 맞춤법을 감안하면 바르사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이 항목 또한 바르샤라고 치면 들어올 수 있다.
- ↑ 본 항목만 해도 기본적으로 해당 팀 팬이 주로 작성하는지라, 쓰인 지 얼마 안 되었다. 네이버와 '바르샤' 또는 '바르셀로나'가 금칙어로 지정된 아프리카TV에서 밖에 안 쓴다, 쓰지 좀 마라 등 팬들의 항변으로 차있었으나,
구글에서 바셀을 검색하는 과학적 방법을 거치니 '바셀 올스타' '바셀 첼시' '바셀 유니폼' '바셀 티키타카' 등의 연관검색어가 주르륵 달린 것 등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이 확인되어서 본문 내용으로 수정되었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바셀이라고 줄여 부르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지는 팬들도 상당하다. 애초에 현지에서도 쓰지 않는 한국식 줄임말. 바셀이 바르셀로나에 대한 멸칭이라는 글도 있는데, 추가적인 언급이 없다면 조작이 의심스러운 글이다. barca를 스페인어로 읽으면 '바르카'가 된다. 이 부분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바셀? 저 글을 제외하면 멸칭이란 근거를 찾지 못했다. 실제 스페인어 사용자나 스페인 문서중에서 해당 내용을 본 사람은 추가바람. - ↑ 단 티키타카라든가 숏패스, 압박의 축구는 바르셀로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스페인 축구 클럽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축구이다. 그것을 제일 잘 구현하는 팀이 바르셀로나이기에 특히 더 유명한 것일 뿐...
- ↑ 이는 카탈루냐어이며, 스페인어로는 'Más que un club'에 해당한다. 모토의 뜻이 한글로 번역되면서, 클럽 그 이상의 클럽 : '다른 축구 구단들보다 우위에 있는 구단'
Deutschland über alles??이라는 식으로 이상하게 해석하는 경우가 있는데, 원문의 뜻을 정확하게 번역하자면, '일반적인 축구 클럽을 벗어나서, 다른 사회적인 분야에서도 모범적이며, 상징적인 존재가 되는 클럽을 지향하자'라는 뜻이다. 실제로 까탈란들에게 FC 바르셀로나는 단순한 축구 클럽을 넘어 하나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 ↑ 메이저 타이틀만 계산해서 트레블이라고 표현하기는 하지만, 정확히 표현하자면 2009년 딸 수 있는 타이틀을 모두 딴 6관왕...하지만 일반적으로 메이저 타이틀이 아닌 잡다한 트로피는 계산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트레블이 맞다.
- ↑ 펩 과르디올라 감독 체제 출범 이후 엘클라시코 기록은 9승 3무 1패.
- ↑ 흔히 알려진 것처럼 바르샤가 아니다. 참고로 ç는 카탈루냐어(를 포함한 몇몇 서유럽 언어)에서 사용되는 문자로 스페인어에는 없지만 현지 언론에서도 Barça로 쓴다. Barca라고 하면 바르까가 되기 때문. 애초에 스페인어에 sh발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 ↑ 한스 캄페르(Hans Kamper). 초기 클럽을 만들 때 회장은 카탈루냐 식으로 이름을 등록했기 때문에 조안 감페르(Joan Gamper)라는 카탈루냐식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이 이름은 일반적으로 자기 마음대로 읽어서 조안 캄페르가 되기도 하고, 호안 감페르가 되기도 하고, 호안 캄페르가 되기도 한다. 다만 이게 카탈루냐 민족주의를 활용하기 의도인 것은 확실하지만 정말로 카탈루냐에 동화되어서 그렇다고 보기는 좀 애매한 것이 초대 회장인 영국인 월터 와일드 역시 회장 등록은 카탈루냐 세례명인 구얄테리라는 이름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와일드도 애정이 넘쳐서 그런 것 아니냐는 반문이 있을 수도 있지만, 와일드는 임기 끝난 다음에 영국으로 도로 돌아갔다. 이 문서에서는 카탈루냐식으로 조안 감페르로 기록한다.
- ↑ 바르셀로나 창립 멤버 12명 중에서 6몀이 외국인이었다. 초대 회장은 영국인, 주도자는 스위스인, 이사는 독일인에 네덜란드 인도 2명도 끼어 있었다. 이건 무슨 인테르도 아니고. 반면 우습게도 레알 마드리드의 실질적 창립을 주도한 후안 파드로스는 바르셀로나 출생의 카탈루냐 인이다.
- ↑ 조안 감페르는 FC 바젤의 주장을 역임했다. 동시에 취리히에서도 창립멤버로 뛰었기 때문에 SVB 엑셀시오르에서 따온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
- ↑ 다만 선수들간에 나이대는 각자 달라서 주전들 전부다가 유스시절 같은 팀에서 호흡을 맞춰본건 아니다. 이니에스타 사비등의 선수는 메시 피케 세스크로 이어지는 동갑내기 87라인이 청소년팀에서 뛸때 이미 1군의 후보선수가 되어있었다.
- ↑ 현 바르셀로나 감독인 펩 과르디올라 역시 자신들의 강함의 비결을 묻자 "우리는 DNA가 같다!"라고 하였다.
- ↑ 가사의 윗 자막은 카탈루냐어, 밑 자막은 스페인어이다. 기본적으로 카탈루냐 어로 작사되었기 때문에 따로 스페인어로의 번역이 필요하다
- ↑ 바르셀로나의 역대 주장이자 역대 감독이였으며 한 명의 위대한 축구선수 였던 요한 크루이프가 암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자, 그를 기리기 위해 그의 유니폼 번호 였던 14번과 Gràcies Johan'('감사해요 요한')이라는 카드 섹션을 엘 클라시코 열리는 캄프 누에서 행하였다..
- ↑ Coral은 스페인어로 여성 명사로 합창대나 성가대를 뜻하고, 위의 소개에 서술되어 있듯이 sant Jordi는 카탈루냐어로 "성 게오르기우스"를 의미하고 있으니 성 게오르기우스 성가대라고 해석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바르셀로나의 레프트 백인 조르디 알바의 조르디도 이 조르디가 맞다!
- ↑ Canto라고도 할 수 있고 Cant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는 남성명사와 여성 명사의 차이다.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다.
- ↑ 정작 스페인 내전기간 동안에 프리메라 리가는 당연히 진행이 중단되었다. 나라 전체가 전쟁중인데 축구리그를 진행할 정신이 있을리가 없다.
- ↑ 일단은 프랑코 세력이라고 추정하긴 하는데, 스페인 내전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라서 누가 죽였는지가 확실하지 않다. 일단은 프랑코 세력이라는 것이 정설.
- ↑ 원래는 여기에 좌익 성향도 더해져야 하지만, 소련이 붕괴되고 공산주의 패배가 확실해진 이후로 그런 드립 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 ↑ 단적으로 바르셀로나의 2대 회장이자 최초의 카탈루냐인 회장인 바르톨로메우 테라다스는 카탈루냐 축구협회장도 겸임하면서 사재를 동원해서 RCD 에스파뇰의 창단에 재정적 지원을 했다.
- ↑ 다만 이 시기의 바르셀로나는 좀 많이 골 때린다. 애초에 스페인 내전 자체가 골 때리지만, 특히 카탈루냐는 바르셀로나 내전까지 겪으면서 난리를 쳤다. 때문에 이 시기를 카탈루냐 민족주의의 발로로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무리이다. 진짜 민족주의 성향이 강했던 바스크 지역은 대놓고 왕따를 자처해서 남부와는 아무런 연대도 하지 않다가 각개격파되었다. 반면 바르셀로나는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를 봐도 알 수 있지만 이합집산의 극한을 보여줬다.
- ↑ 바스크를 제외한 것은 프랑코 이전에도 바스크는 저항세력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프랑코가 무너지게 된 것은 ETA를 비롯한 바스크 세력의 저항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히고 있다. FC 바르셀로나는 그에 비하면 영향이 없는거나 마찬가지이다.
- ↑ CF 레알 마드리드의 그 CF이기 때문에 레알 따라 바꿨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 ↑ 혹은 귀족명 라 메사데아스타 후작
- ↑ 프랑코 정권의 비호를 전면 부인하는 것을 어려우나 실제로 21년 무관까지 겪은 레알 마드리드가 잘 나가기 시작한 것은 프랑코보다는 회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의 활약이었으며, 스페인 내전 발발 시기 레알 마드리드 회장이었던 라파엘 산체스 게라는 대표적인 공화주의자라서 프랑코의 정적이었고(내전 이후 감옥살이-원래는 사형선고 였으나 내전중에 공화국 지역의 우익들을 숨겨줘서 사형은 면하고 종신형이 선고 되었다 -훗날 프랑스로 탈출했다가 다시 59년도에 돌아와서 64년도에 돌아가셨다)부회장과 재무 담당자도 같이 죽었고, 후임인 후안 호세 바예호와 안토니오 오르테가 역시 레알 마드리드 역사에 이름도 올리지 못했다. 특히 안토니오 오르테가는 이쪽도 바르셀로나의 수뇰 같은 공화주의 좌파라서(공화군 소령이었다)내전이후 군사재판에 넘겨져 처형당했다. 참고로 수뇰의 시체가 발견되는데는 50년의 세월과 '수뇰의 친구들'이라는 이름의 카탈루냐 민족주의 단체의 꾸준한 노력이 필요했다. 프랑코 독재가 가장 심했던 초기 시기 동안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는 런던으로 도망쳐서 변호사 생활을 해야 했다.
- ↑ 그런데 이게 진짜로 이 시기에도 심각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는 것이, 이 시기를 대표한 바르셀로나 선수라고 한다면 바르셀로나 골수팬들중에서 일부는 요한 크루이프보다도 사랑한다는 라슬로 쿠발라를 들어야 할 것인데, 쿠발라는 만년을 왕년의 라이벌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와 함께 에스파뇰에서 보냈다. 그리고 쿠발라는 에스파뇰에서 선수말년을 보낸 것과 별 상관없이 바르셀로나의 감독직을 지내기도 했다. 이 시기 레알과의 라이벌 의식이 진짜로 카탈루냐와 카스티야의 민족주의 의식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이전의 패권을 쥐고 있던 바르셀로나가 이 시기에 레알 마드리드에게 패권을 넘겨준 영향인지는 좀 심각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
- ↑ 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 고려를 해야할 것은 바르셀로나와 에스파뇰의 관계는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관계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카탈루냐의 카스티야에 대한 감정은 역사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쿠발라의 일화로만 이를 유추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여지가 있다. 반대의 예로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의 경우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로 남았으나 그의 영입 과정에서부터 레알 마드리드와의 대립이 있었다. 바르셀로나가 먼저 접근했으나 레알 마드리드의 개입으로 공유(...)를 하게 되었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서 바르셀로나측이 이를 포기하면서 그는 레알 마드리드로 넘어가게 되었다.
- ↑ 뭐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사건 이전이긴 하지만 주셉 사마르티노 같은 인물은 선수와 코칭스태프, 그리고 프런트 생활을 모두 레알과 바르셀로나를 오가면서 하기도 했다. 바르셀로나 선수 - 레알 선수 - 바르셀로나 코치 - 레알코치 - 바르셀로나 이사 뭐 이런 식으로 살았다. 그래서 별명이 왕복 비행기였다.
- ↑ 당시 주장은 전 바르셀로나 감독이었고 현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인 펩 과르디올라.
- ↑ 16년 여름시작에 파리 생제르맹으로 이적한 헤세 로드리게스에게도 이 조항이 적용되어 있다.
- ↑ 물론 경기 전에는 서로 악수도 하고 포옹도 하고 격려도 하지만 10년도의 5-0 대승 당시에 라모스가 돌아버려 메시와 푸욜, 챠비 에르난데스를 밟고 때렸던 것처럼 승부에서 지면 난폭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 ↑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1900년 바르셀로나 대학교 공대생 앙헬 로드리게스 루이스가 창설
- ↑ [3]
- ↑ 유니세프에 한하여 지원 받는 것이 아닌 오히려 구단 차원에서 후원한다.
- ↑ 이것은 구단주 체제가 아닌, 카탈루냐 지방의 시민들의 주식구매 형태로 운영되는 시민팀이라는 개념으로 바르셀로나가 운영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구단주와 단장은(물론, 구단주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시민주들의 경선대회를 통해 선출된다.
- ↑ 라 마시아 = 단어 자체는 '농장'이라는 뜻이지만 클럽의 훈련 시설 및 유스 아카데미를 지칭한다.
- ↑ 레알이 버린 선수들이 타팀에서 활약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알려져있지만 09 시즌 이후로만 해도 로벤, 스네이더, VDV...
다 네덜란드산이네? - ↑ ...마스체라노가 인터뷰에서 자신은 서브로 만족한다며, 부스케츠에게 많이 배우고 있다, 부스케츠는 위대한 선수다...등의 멘트를 날렸다. 야야 투레 또한 부스케츠는 대단한 선수다...는 식의 멘트를 날린 바 있고. 립서비스인 점을 감안한다 치더라도 이런 소리를 들을 정도면 수미 톱클래스라는 점은 아무도 부인 못할듯.
- ↑ 레알도 유스를 잘 키워낸다. 단지 안 쓸 뿐이지.
- ↑ 이 쪽도 바르샤에 꿇리지 않는 유스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 일단 람이나 슈바인슈타이거, 뮐러, 크로스, 알라바 등등..
- ↑ 사실 이 부분에는 비화가 있다. 레알 마드리드의 레전드인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는 레알과 바르셀로나 사이에서 복잡한 이적진통을 겪었고 결국 레알 입성이 확정되면서 50년대 마드리드의 전성기를 연다. 이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이적도 프랑코 독재 드립만큼이나 레알 바르셀로나 사이의 복잡한 이야기가 얽혀있을 정도. 자세한건 해당항목 참고. 이후 바르셀로나는 크루이프의 영입을 하면서 이런 상황이 재개될 것을 우려해 농기계로 등록해서 영입을 하게 되었다.
- ↑ 하지만 이 이적료들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너무 쓸모없이 이적료를 낭비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 문제이다. 저기서 괜찮은 영입이었던 즐라탄, 비야 등은 전술 사정상 전 소속팀에 비해 약간 부족한 활약을 하였고 네이마르는 메시가 재계약 이전에는 메시보다 주급을 많이 받는 것이 알려져 문제가 되었고 엔리케, 카세레스, 케이리송, 치그린스키는 아예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헐값으로 재이적하거나 임대를 전전하다 바르셀로나가 계약만료로 선수를 풀어주는 경우가 대다수여서 바르셀로나가 유스는 잘 키우지만 영입은 잘 못한다는 이미지가 생기게 되었다.
- ↑ 참고로 유럽 축구클럽의 주된 선수영입 자금줄은 갑부 구단주, 아니면 은행에 담보 잡아놓고 대출받는 거, 이도 저도 아니면 선수 판 돈이다. 즉 갑부 구단주가 없는데 빚도 없는 구단은 극히 드물다. 바르셀로나와 바이에른 뮌헨, 그리고 글레이저 가문이 인수하기 전 맨유 정도뿐. 글레이저가 은행빚 내서 인수하는 바람에 맨유는 세계에서 제일 부채 규모가 큰 클럽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프리미어리그는 최근에 돈을 상당히 잘 벌어서 각 클럽에게 배당하는 상금 및 배당금이 엄청나서 꾸준히 우승권 성적을 내주는 맨유는 당장 저 빚에 흔들릴 일은 거의 없긴하다. 게다가 맨유가 또 돈을 워낙 잘버는 구단이기도 하고.
- ↑ 사실 가장 중요한게 빠졌는데 TV 중계권료가 제일 크다. 특히 바르셀로나같은 인기구단은 방송사에서 우선적으로 중계하기를 원하는 클럽이라 중계권료도 비쌀 수 밖에 없고, 게다가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면 또 거기서 들어오는 상금이랑 중계권료가 또 엄청나서 그 돈만으로도 충분히 운영 가능한 수준이다. 다만 여기에는 반드시 성적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우린 아마
안될거야잘될거야 라는 심정으로 챔스진출을 미리 가정하고 돈을 미리 땡겨서 팍팍 썼다가 진출실패로 한순간에 안습된 대표적인 팀들이 바로 리즈시절의 그 리즈와 도르트문트가 있다. - ↑ 앞서 언급된 중계권료 비중이 막대하다. 프리메라 리가는 중계권료를 구단마다 별도로 계약하는 시스템이어서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중계권료 수입이 다른 구단들과는 넘사벽의 차이다. 오히려 두팀은 다른 하위 팀들까지 끼워팔기로 나가는 다른 리그들과는 달리 자기들만 홀가분하게 판매하기 때문에 중계권료 수입이 더 좋다는 이득까지 존재한다. 때문에 레알 마드리드의 중계권료 수입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1위. 그리고 그 뒤를 바르셀로나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추격하는 구조이다. 프리메라 리가의 중계권료 수입이 리게 앙에도 밀린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 두 구단만 성적이 나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
- ↑ 사실 야야 투레의 이적에는 투레 본인의 문제보다는 에이전트의 문제가 컸다. 부스케츠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출전 시간이 줄어들자 에이전트는 언론 플레이를 하였으나 당시 감독인 과르디올라는 그런 행위를 전혀 용납하지 않는 감독이었기 때문에...
- ↑ 단, 지금은 짤없는 세계 수미 톱클래스가 되어버렸다.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피케도 그렇고 부스케츠도 그렇고 페드로도 그렇고...이상하게 빨리 자란다?!
- ↑ 이 세스크 사가는 결국 11-12 시즌 개막 전에 영입에 성공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 ↑ 이는 즐라탄의 이적건과 함께 라포르타계와 로셀계의 정치 싸움이라는 의견이 많다.
- ↑
먹튀왕인테르의 아드리아누가 아니다!! - ↑ 09/10의 맥스웰은 원래 포지션이 풀백이 아니어서 오버래핑과 공격능력은 좋지만 수비는 별로라는 평가...그런데 오른쪽 풀백인 알베스도 마이콘에 버금가는 오버래핑으로 인해 부실한 수비능력이 비판 받는다.
- ↑ 단, 이는 10-11 시즌 시작 전의 이야기. 시작이후 수미는 위에서 얘기했듯이 부스케츠의 미칠듯한 성장으로 가볍게 해결되었다. 야야 투레와는 성향이 다르지만 현재는 정상급 수비형 미드필더.
- ↑ 페드로, 비야(or보얀), 메시, 사비, 이니에스타, 마스체라노, 아드리아누, 푸욜, 가브리엘 밀리토, 다니엘 알베스
- ↑ 팀 고유전술이라고 까지 말하는 티키타카도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 팀 고유전술이라고 함은 반대로 다른 팀에서는 잘 안쓰는 전술이라는 소리이기도 한 만큼 적응이 어려워 질수밖에 없다.
- ↑ 발표시점 기준 한화로는 약 4948억 원
- ↑ 위의 이야기보다 이전의 부채 금액이 더 늘었는데?
- ↑ 유소년 유망주 싹쓸이를 막기 위하여 일정 연령 미만의 유소년 영입 시 부모와 함께 거주하며 부모가 축구와 관계가 없는 직업에 종사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이 조항을 어겼다는 것. 사실 바르셀로나 입장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억울하다는 표현을 쓸 수 있는 것이 여타 다른 빅클럽도 종종 보이는 태도이며, 그다지 멀지 않은 과거에 FIFA에서 바르셀로나의 유소년 육성에 대해서 극찬을 했던 FIFA에게 뒤통수를 맞은 것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선수들 중에 대표적인 선수들이 이승우, 장결희같은 한국 유망주 선수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에 대해서 FIFA에 신고했던 사람들도 한국인이라고 알려져 있다.
- ↑ 따지고 보면 바르샤는 '티키타카' 특성상 안풀리기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이 안풀리므로 공만 돌리다가 뒷공간 털리고 멘탈 나가는 경우도 많다. 레알한테도 털린 적이 한 두 번도 아니고..
- ↑ 대표적으로 14/15시즌 파리 생제르망과의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경기와 15/16시즌 에이바르와의 라리가 28라운드 경기가 있다
- ↑ 실제로 이에 따른 넓은 뒷공간은 그야말로 점유율 축구의 최악의 단점으로 꼽히고 있다. 역습 축구에 약한 것은 물론이고 골키퍼가 이 뒷공간을 커버하기 위해 높은 집중력을 유지한 채로 뛰어다녀야 하기 때문에 골키퍼 실책에 의한 실점 가능성도 당연히 높아진다.
- ↑ 주심 포함
- ↑ 그러나 더 무서운건 첼시는 그런 찬스를 세 번이나 살렸다는 것.
- ↑ 여기에 티토 빌라노바 감독의 건강이 매우 좋지 않다는 점이 바르샤의 또 다른 패인이 되었다. 빌라노바 감독과 로우라 수석 코치간의 역량 차이는 엄청났기 때문이다.
- ↑ 09-10 챔스 4강에서 주세페 메아차에서 1경기가 있었는데 하필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로 인해 스페인에서 이탈리아를 버스로 가는 말도 안되는 강행군을 하는 바람에 바르셀로나의 컨디션 조절이 어려웠 것을 지적하는 요소...긴 하나 인테르의 조직력이 원채 좋았다.
- ↑ 항간에 의하면이라고 적혀있었는데 '실제로' 바르셀로나 팬들이 홈에서 열린 2차전 당시 폭죽 등으로 인테르 선수들이 머물던 호텔에서 난동을 부린 전적이 있다.
- ↑ 축구에서 위협적인 윙을 막는 방법으로, '풀백을 전진시켜 윙으로하여금 수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방법이 있는데, 알베스와 리베리,알바와 로벤이 이 반대의 예를 완벽하게 보여준 것이다.
- ↑ 사실 이 양반은 키만 컸지 공중볼 다툼에 능하지는 않다. 차라리 중앙 수비수로는 루저 중 루저에 속하는 푸욜이 공중볼에는 훨씬 강하다.
- ↑ 바르셀로나는 아니지만 06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그렇게나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던 스페인이 16강에서 프랑스에게 패배한 경기도 이 관점에서 볼 때 흥미롭다고 할 수 있다. 이니에스타와 메시가 없이 챠비 에르난데스, 사비 알론소, 파브레가스로 이뤄진 중원이었지만 지단, 마케렐레, 비에이라라는 무식한 피지컬에 준수한 테크닉의 3미들, 사뇰과 아비달이라는 우월한 풀백, 거기에 말루다와 리베리라는 빠르고 테크니컬한 윙플레이어들까지.
- ↑ 과르디올라는 케이타를 정말 신임하며 많은 출장기회를 주곤 했다.
- ↑ 상대편 중원 및 중앙수비진이 바르셀로나에 대항할 만한 테크닉 + 활동량에 바르셀로나를 압도하는 피지컬을 갖춘 조합을 가지고 있으면서 바르셀로나전에 문제없이 가동시킨다는 건 너무 어려운 조건이다. 모든 구성원이 모든 조건을 갖춘 게 아니라 하나 둘씩 결함이 있다고 해도.
- ↑ 바르셀로나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레알 마드리드와 함께 세계 1, 2위의 중계권료 수입을 거두고 있고, 투어를 통해서 돈을 벌려고 노력했다. 분요드코르와 제휴를 맺어야 했던 것도, 유니세프 대신에 카타르 항공을 달고 뛰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 파브레가스를 아스날 시기 처럼 뛰게 하면 기존의 전략전술을 갈아엎어야 한다. 이것은 즐라탄 때도 마찬가지였고, 즐라탄은 자신을 위한 전술이 되지 않는 것에 불만을 품고 떠났다.
- ↑ 연승, 무패 기록이 증명한다. 압도적으로 강한 것도 맞다.
- ↑ 다만 12-13시즌은 당시 감독이었던 故 티토 빌라노바의 투병으로 인하여 후반기 들어서 어수선하였던 것은 사실이다. 13-14시즌이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지만 이 시즌의 엘 클라시코 세 경기 중 두 경기를 잡아냈다. 잡지 못한 한 경기가 국왕컵 결승이라는 것이 함정.
- ↑ 1978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크루이프의 불참으로 네덜란드가 고전할 거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의외로 네스켄스가 크루이프의 역할을 충실히 잘 해주었다. 이 대회는 축구가 정치적으로 어떻게 이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교과서적인 대회였었고, 일방적인 편파판정에 대한 의혹과, 2차 토너먼트의 조 구성에 대해 말도 많았던 대회이다.
- ↑ 요한 크루이프는 바르셀로나에서 전설적인 존재이다. 현재 선수들이 보여줬던 입담과는 차원이 다른 말들로 레알 마드리드를 탈탈 털어왔는데, 입단과 동시에 레알 마드리드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독재자의 팀이라서"라는 말과, 이적 후 첫 엘 클라시코에서 5:0이라는 스코어를 기록한다. 또한 크루이프의 아들 요르디 크루이프는 카탈루냐의 수호성인의 이름에서 따왔다.
- ↑ 그 짱짱맨이라는 부츠케스마저 스포츠 헤르니아에 걸려 카카처럼 기량하략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게 얼마나 악독한 병이냐면 방지만이 가능하지 완치가 불가능하다.
- ↑ 무적이란 평가를 받던 09-12시즌까지 수비수 부족은 언제나 약점으로 지적받았지만 중앙압박이 너무 강해서 상대적으로 주목이 덜 되었다.
- ↑ 전 바이에른 감독인 루이스 반 할의 히바우두의 왼쪽 미드필더 기용 및 오렌지 커넥션의 무리한 구축, 억지스러운 전술, 막장운영이 환상의 하모니를 이루어 히바우두 혼자 힘으로 챔스를 진출하던 상황이였으나, 히바우두 또한 감독의 병크로 이적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외계인이 오게 되는데... - ↑ 핸들링 파울에 대한 미심쩍은 판정이 종종 일어나기도 하고, 2010 남아공 월드컵 예선 최종 플레이오프 프랑스 대 아일랜드의 경기에서 당시 바르셀로나 소속이던 앙리가 일명 신의 손으로 골을 넣어 승리한적도 있었다. 당연히 잔뜩 욕먹었다.
- ↑ 레알 마드리드는 1억 4000만 유로 정도.
- ↑ 레알 마드리드는 동시기 35%
- ↑ 세금 체납액만 해도 4500만 유로라는 보도도 있었다.
- ↑ 하지만 스페인 축구협회에서는 카탈루냐가 독립할 경우 카탈루냐 소속 클럽들은 자동으로 라리가 퇴출이라 천명했다. 애초에 리그에 남느냐 마느냐는 협회가 결정하는거지 클럽에겐 결정할 권리가 없다.
- ↑ 가끔 카탈루냐 지방이 스페인의 가장 부유한 지역이라 괜찮다는 의견이 있는데 애당초 EU가 분리반대를 하는 입장인데다 가입국 스페인에서 떨어져 나가면 카탈루냐를 좋게 받아들일리는 만무하고 이런 정치적 문제는 제쳐두더라도, 아무리 부유해도 리그 자체가 활성화되는게 거의 불가능하다. 활성화 된다 쳐도 경쟁력은 0에 가까운 독주에 챔스는 고사하고 UEFA 클럽 라이센스 발급조차 불분명한 과거의 명문클럽을 누가 가려하겠나?
- ↑ 카탈루냐 출신으로 전용기를 타고 바르셀로나 경기를 보러갔다가 엄청난 비난을 당한 전적이 있을 정도로 바르셀로나 팬이다.
- ↑ 모나코는 프랑스 내부 자치령이나 마찬가지다. 한 때는 모나코 공왕가가 끊어지면 프랑스에 합병한다는 협약까지 있었을 정도.
- ↑ 애초에 브라질에서 18세 미만의 축구선수의 이적을 포르투갈을 제외한 유럽으로 금지시키는 법안인 펠레법이 나온것 자체가 스페인 클럽들이 브라질 유망주들을 대량으로 데려가서 프로계약에 실패해 유럽에서 하류층으로 전락한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다.
- ↑ 욘토랄을 빼간 것은 임모랄이라면서 라임을 맞추면서 까지 깠다.
- ↑ 피케도 거론할 수 있겠지만 피케의 경우는 맨유에서 그다지 많은 기회를 받지 못해서 애매한 경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 ↑ 스페인 U-17대표팀부터 U-21까지 꾸준히 발탁된 경력이 있다.
- ↑ 24경기 1골 1어시에 그치며 자유계약임에도 최악의 영입에 꼽히며 현재는 SC 브라가로 임대가 있음.
- ↑ 깎고 깎았는데도, 앤디 캐롤과 동급의 이적료다(...)
- ↑ 옌스 레만 퇴장건으로 생긴 별명인데...그 때 레만이 다리를 잡는 파울을 했기 때문에 퇴장은 사실 할 말이 없었다.
- ↑ 결승 이전 4강전 AC밀란전에서 푸욜의 헐리웃으로 쉐브첸코의 득점이 무효화된적도 있다
- ↑ 그러나 수비1명과 PK최소 3번의 가치는 설명이 필요한지?? PK에 대한 보상판정이라 말하는건 그야말로 코메디.
아니 그 이상으로 좋게 해석할 수가 없잖아 - ↑ 다만 무리뉴가 매수설을 주장한 팀은 바르샤뿐만이 아니다. 퍼거슨 시절의 맨유에 대해서도 비슷한 발언을 몇차례 한 바 있다. 대체로 '내 팀이 가장 강하며, 내 팀에게 이기는 팀은 비열한 수단을 쓰고 있다'식의 사고방식. 다만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 정략적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맨유, 바르샤의 뒤를 있는 이시대 최강팀 바이에른 뮌헨에 대해서도 동일한 주장을 할 것인지도 관심사.
- ↑ 예컨대 부스케츠의 까꿍은 티아구 모따의 가격상황이 맞고, 반 페르시의 경우는 규정을 칼같이적용하면 경고 누적으로 퇴장이 가능한 장면이다. 네스타의 PK도 김동완, 퍼디난드, 굴리트 등은 정당한 PK라고 코멘트 했다. 현직 K리그 심판도 규정상 PK가 맞다고 한다. 물론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장면이고, 일반적으로 PK를 불지 않는 상황인 것도 사실이다. 이 상황은 모두 당시 상황대로라면 바르셀로나가 탈락하는 상황에서 나왔던 것도 논란에 기름을 끼얹는다.
- ↑ 덤으로 이 장면에서 바르셀로나 언론에서 뭇매를 때렸기 때문에, 캄프 누에서는 네스타가 잡아끈 장면에서 PK가 선언된 것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 ↑ 예를 들어서 넘어져 있던 메시의 손을 페페가 발로 밟고 간다거나, 메시를 일으켜 세우는 것 같던 코엔트랑이 도로 밀어버린다거나...
- ↑ 하지만 히딩크는 다른 건 몰라도 심판 판정에 대해서는 그렇게 코멘트를 자주하는 편이 아닌 감독인지라 그냥 넘어갔다고 주장하는 의견도 간혹 있다.
- ↑ 다만 프리시즌 투어에 주요 선수들을 내보내지 않는 것을 두고 성의 없는 모습이니 뭐니 하는 것은 정말 우스운 일이다. 한국에만 2군 선수들을 죄 출전시켰다면 모를까...
- ↑ 위약금 때문이라기 보다는 악화되는 여론 수습의 의도가 강해보인다. 메시가 출전하지 않는다고 해서 바르사가 내야하는 위약금은 3억 정도밖에 안된다.
- ↑ 피구는 바르셀로나에서 뛰다가 레알로 이적했으며, 이적 당시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바르셀로나에 계속 남겠다고 발언했었기 때문에 그 충격이 컸다(...). 바르사 팬들에게는 두고두고 까이는 선수.
- ↑ 역시 2군과 어린선수들로 구성된 맨유가 MLS 올스타를 5-2로 바르고, 1군이 포함된 맨유가 아일랜드 올스타를 7-1로 바르는 등 올스타팀의 실제 전력은 그다지 높지 않다.
- ↑ 메시, 즐라탄, 알베스 등은 전반에만 잠깐 뛰었고, 그나마 이때는 K리그 올스타가 두 골이라도 넣었다. 그런데 바르셀로나의 유소년들만이 출전한 후반에는 0-2로 완벽하게 압살당했다.(...)
- ↑ 물론 다른 클럽과 비교되기는 하지만 이 해에는 시즌 오프 기간에 월드컵이 있었고, 메시는 아르헨티나에서 친선경기를 뛰고 스페인에 도착한 뒤 바로 비행기로 한국까지 왔다. 돈 받고 15분 뛴거야 화날만 하지만 메시가 공항에서 "솔직히 지금이 몇 시인지도 모르겠다"라는 발언은 정말 피곤해서 나온 말일 가능성이 크다.
- ↑ 사실 이 부분도 악의적으로 왜곡된 부분이다. 실제로는 당시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브라질은 북한과 경기한 적이 있으며, 알베스는 이를 언급하며 "나는 브라질대표팀의 일원으로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한국과 경기를 치른 바 있다"면서 "최근에 한국축구의 경기력이 매우 높아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K리그 올스타전이) 매우 좋은 경기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 경기 종료 후 중앙선에서 상대팀 및 심판진과 악수하고 관중들에게 인사하는 게 관례인데 그냥 라커룸으로 갔다.
- ↑ 한국인 선수들은 그나마 낫지만, 앞서 언급된 파트리스 수시아 같은 경우는 모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극빈층의 생활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