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총격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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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11월2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처음으로 양 측 경비병력 간에 총격전이 벌어진 사건.

2016년 현재까지 판문점에서 벌어진 교전 사건 중 피해 규모로만 봐서는 최대의 사건이다.

소련 사람인 "바실리 야코블레비치 마투조크" 라는 남자의 갑작스러운 월남으로 인한 총격전상황이다. 일명 “마쓰작 판문점 망명사건”이다.

1984년 11월 23일 11시 30분 경 당시 소련 관광안내원 1명인 바 군사정전위원회 회담장면을 찍고 있었는데 갑자기 건물과 건물사이의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한국 육군 경비병력들은 그를 대피시키게 되었으며 이에 당황한 북한 육군 병력이 그의 월남을 저지하고자 권총을 발사하며 경고하였으나, 실패하게 되자 곧바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 150m까지 침범, 자유의 집 앞 연못(현재는 정원)까지 내려왔다.

이때 군사분계선을 침범한 북한 병력은 총 17명이었으며 연못을 중심으로 30여분간의 총격전이 이루어졌다.

북한군의 총격에도 불구하고 마투조크는 무사하였으나 이 총격전으로 인해 한국 육군 카투사 장명기 일병(순직으로 상병)이 순직하고 미 육군 1명 부상, 인민군 3명 전사 5명 부상의 피해를 입었다.(확실치는 않음)[1]

총격전이 끝난 후 UN의 양해 아래 북한측에서는 군사분계선을 다시 넘어와 사망자와 중상자들을 모두 후송해 돌아갔다.

이후 마투조크는 11월 30일 이탈리아 로마로 떠났고 로마 에있는 UN 난민 수용소에서 지내다가 정치적 망명자격을 얻어 미국으로 망명을했다.

한편, UN군 사령부 경비대대에서는 당시 교전 중 순직한 “고” 장명기 상병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당시 전투현장에 비석을 세워 넋을 위로하고 캠프 보니파스 내 당시 거주했던 막사를 “장 막사”(Barrack Jang)로 명명하여 그 뜻을 기리고 있다.
  1. 이때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의 주범인 북한군 박철 중위가 우리측의 사격으로 사망했다는 소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