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dro Álvares Cabral
(1467 또는 1468 ~ 1520)
포르투갈의 군인, 탐험가.
포르투갈의 귀족 출신으로 페르낭 카브랄과 이사벨 데 고베이아 사이에서 태어나 1497년에는 수당 지급, 국왕의 고문, 그리스도 기사단 의복 착용 등의 다양한 특권을 부여받았다.
바스코 다 가마의 뒤를 이어 32세에 제2차 인도 탐험대 선단의 총사령관이 되었으며, 13척의 함선을 이끌고 1500년 3월 9일에 항해를 떠나 인도의 희망봉을 향해 항해했다.
그러나 항해 도중에 풍랑을 만나 남서쪽으로 표류하다가 4월 22일에 브라질에 도착하여 지금의 바이아 주의 포르투 세구루 해안에 해당하는 곳에서 그 곳의 언덕을 몽치 파스코알(부활절 언덕)이라 명명하고 포르투갈의 문장이 그려진 나무 십자가를 해변에 세워 일랴 지 베라 크루스(진정한 십자가의 섬)라 명명하고 포르투갈의 영토임을 선언하며 이 해안을 탐사했다.
그러다가 카브랄이 실수한 것이 뒤를 이어 브라질에 온 탐험가들이 알게 되어 테하 지 베라 크루스(진정한 십자가의 땅)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으며, 5월 2일에는 동쪽으로 출발해 희망봉을 돌다가 5월 29일에 배 4척이 침몰했다.[1] 9월 13일에 캘리컷에 도착해 통치자 자모린으로부터 교역소를 짓도록 허락받았지만 포르투갈 인과 이슬람 상인들 간에 분쟁이 일어났는데, 포르투갈 수비대의 대부분이 전사하자 캘리컷 시를 포격하면서 이슬람 선박 10척을 나포해 그 승무원들을 모두 처형했다.
코친으로 가서 정중한 대접을 받다가 비단, 고급 목재, 향로, 향신로 등 뿐만 아니라 많은 보물 등을 6척의 배에 실었으며, 카랑골로스, 카나노르 등에도 입항해 화물을 실어 1501년 1월 16일에 포르투갈로 출발했다. 그러나 도중에 2척의 배가 침몰해 배 4척만 남은 상태로 6월 23일에 포르투갈의 타구스 강 어귀를 통해 귀환했다.
브라질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 전에도 브라질에 도달한 사람이 많은데, 1500년 이전에 독일의 항해사인 마르팀 베아임이 탐험했다.
또한 스페인의 항해사로는 알론소 데 오헤다, 비센테 야녜스 핀손, 디에고 데 레페, 알론소 데 멘도사, 포르투갈의 항해사로는 두알테 파셰코 페레이라가 1498년에 탐험했다고 한다.
그가 최초로 브라질을 탐험한 인물로 알려진 것은 브라질을 탐험한 사람 중에서 왕실에 공식적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며, 이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각각 자신들이 발견한 영토에 대해 확정하는 조약인 토르데시야스 조약 이후 브라질이 포르투갈의 영토임을 확정짓기 위해 보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