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로즈 1세

사산 왕조의 역대 황제
16대 호르미즈드 3세17대 페로즈 1세18대 발라시

사산 왕조 제 16대 황제. 즉위기간 459 - 484년

1 개요

야즈데게르드 2세의 장남이다. 네스토리우스파의 지지자였으며, 칼케돈 공의회를 박해하였다. 호르미즈드 3세를 살해하고 집권한다.

2 대기근

신은 막장 드라마나 찍어대는 사산 왕조에게 재앙을 내리는데...

역사가들의 기록에 의하면, 464년에서 471년에 이르는 7년동안 작물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은 대기근이 발생하였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기후는 건조하였으며,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에서 물이 흘러내려오지 않아 작황이 좋지않아 수천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페로즈는 이러한 현실속에서도 지혜로 대처하고, 그러한 역경에 직면해 엄격한 모습을 보여주어 대기근을 극복하게 된다.

3 아르메니아와의 분쟁

481년에 카프카스에 독립을 외치는 반란이 일어났다. 페로즈는 아르메니아에 페르시아인 총독을 보내 반란을 진압하게 하였다. 하지만 그가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아, 반란은 거세졌으며 한 기독교인이 아르메니아의 왕으로 추대되었다.

페르시아인 총독은 이베리아에서 페르시아의 지배력을 되찾기 위해 반란을 진압하려 하였지만 실패하였다. 그 후 페로즈는 군대를 보내는 것으로 대응하였다.

결국 아르메니아의 왕은 살해당했으며, 미흐란 가문은 페르시아에서 큰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페로즈는 미흐란 가문의 인물을 신임하여 지휘자로 보내는 실수를 범한다. 결국 그는 아르메니아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몇 달뒤 송환된다. 이러한 지위자를 곧바로 바꾸는 정책은, 이 시기동안 아르메니아는 페르시아인들의 지배에서 자유롭게 된다.

4 에프탈과의 싸움

대기근에서 회복된지 얼마되지 않아, 북부에서 에프탈과 전쟁이 일어났다. 에프탈의 왕에게 모욕당한 것이 발단이었으며, 페로즈는 에프탈의 영토로 침범하여 퇴각하는 그들을 뒤쫓았다. 하지만 페로즈 1세가 에프탈을 언덕으로 몰아붙였을 때, 페로즈 1세는 참담한 패배와 함께 항복하게 되고 배상금을 지불하게 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황태자인 카바드 1세를 인질로 잡히게 되었다.

이 굴욕을 갚아주기 위해 페로즈 1세는 집권 말기에 5만 내지 10만의 병력을 모으고 동생 발라시를 크테시폰의 총독으로 임명하고 에프탈 정벌에 나선다. 페로즈 1세는 박트라에 도달하였으며, 에프탈의 왕이 제안한 평화 조약을 거절하였다.

마지막 결전을 앞둔 페르시아군의 분주함을 타, 에프탈의 왕은 소수의 부대를 페로즈로 향하게 해서 매복을 준비하였다. 결국 작전은 성공하였으며, 페르시아군은 대패하고 페로즈 1세는 전사한다.

하지만 에프탈의 왕은 페로즈의 시신을 존엄히 대하였으며, 성대하게 장례를 치뤄 페르시아에 보냈다. 오오 대인배 오오 그 후 사산 왕조에서는 발라시가 집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