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 후드

http://fotos.starmedia.com/imagenes/2014/04/fort_hood_texas.jpg부대 정문

미국 텍사스주 킬린에 위치한 미 육군부대. 웨이코의 남서쪽, 주도 오스틴에서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미국내에 건립된 미 육군부대들 중 최대규모를 자랑한다. 부대명은 남북전쟁 당시 아메리카 연합국 텍사스 여단 지휘관이었던 존 벨 후드{John Bell Hood} 장군의 이름이다.

1 부대 역사

제 2차 세계대전 참전을 하면서 독일기갑부대 소속 전차들과의 대결을 위해 대전차 차량훈련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당연히 이러한 공터부지가 풍부한 텍사스 주가 선정되고 당시 휴스턴 대학교 총장이던 앤서니 데이비스 브루스{Anthony Davis Bruce}가 '대전차 차량 전술및 화력 센터'를 조직하고 킬린을 부지로 선정한다. 미 육군성은 1942년 1월 15일 부지선정 결과를 발표했으며 10만 8천 에이커(437 제곱 킬로미터)의 부지가 첫 매입되고 관련시설 건립비용으로 2천 2백 80만 달러의 견적이 나오게 된다. 이렇게해서 건설이 시작되어 7개월후인 1942년 8월15일 완공을 목표로 박차를 가하게 된다. 해당부지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이주를 해야하는 상황까지 몰렸으나 이주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부대관련 부지 얼마를 삯을 받고 방목지로 대여하는 방안을 내놓게 되며 이것은 현재도 발효중이다.

결국 건설은 순조롭게 마치고 신설된 부대시설로 군인과 군 관련부서들이 들어서게 되었고 1942년 9월18 정식 개관식을 갖게되었다. 처음에는 3만 8천여명의 병사들의 훈련및 거주지가 제공되었으며 1943년 1월 벨 카운티 소재의 부지 1만 6천 에이커(65 제곱 킬로미터)와 게이츠빌 근처에 위치한 코르옐 카운티 소재 의 3만 4천 943에이커(141 제곱 킬로미터)의 부지가 추가로 매입되었다. 이 코르옐 카운티 부지는 전시 중 4만명의 병력의 거주지및 4천명의 전쟁포로를 수용하는 미 군사 징계병영으로 이용되었다. 1942년 말에는 4만 5천명의 병력이 거주및 훈련을 하게 되었고 1943년말 부대의 총 인원은 9만 5천에 육박하게 된다.
이 인원은 1944년까지 그대로 유지된다. 1944년부터 대탱크 차량대대 소속 부대원들의 급속한 감소가 시작되면서 1944년 3월 야전포병대대들과 보병교환훈련센터로 신속전환 되어진다. 그러던 것이 2차 세계대전 말기에 들어와서는 캠프 후드의 부대존속 목적과 아울러 발생한 인원감소로 인해 변화의 중요성이 강조되었고 종전이 되면서 부대의 훈련횟수도 현저히 줄어들게 되어 군수품 회수와 동원해제등이 주요업무로 대신되었다. 이로서 1945년 9월 제대센터가 건립되어지고 부대부속 영창에 수용된 전쟁포로의 수가 1천 807명으로, 부대주둔 병력의 1만 1천명으로 감소된다.

이 와중에 1954년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했던 3군단이 이전해 오면서 부대소속 전투부대와 미 제 4육군의 훈련 감수를 1954년부터 군단이 해체되던 1959년
까지 계속되게된다. 아울러 이 시기에 제 4 기갑사단이 재소집되면서 독일로 파병되어졌다. 이후 1951년, 포트 후드는 또다시 3군단 본부가 되었으며 1962년 2월, 3군단은 미 육군 전략 육군단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1963년 6월 15일에는 킬린기지가 미 육군에 의해 회수되어 지고, 1969년 10월 서부 포트 후드와 비행장을 1942년 본 지역 출신으로 둘리틀 특공대의 둘리틀 공습에 참여헀으며 전쟁작전 비행 중 전사한 로버트 그레이의 이름을 딴 로버트 그레이 비행장으로 개칭된다. 이후 1971년 베트남으로 파병되었던 제 1 기병사단이 돌아오면서 제 1기갑사단이 독일에 주둔하던 제 4 기갑사단의 순환부대격으로 독일로 파병되어진다.

현재 15만 8천 706 에이커(6만4천 226 헥타르)의 부지에 6천 7명의 장교들과 8만2천 610명의 사병들을 위한 숙소가 설치되었으며 2010년 센서스 기준으로 미국내 군부대 주둔 최다인원을 기록하였고 2014년 4월 기준으로 주둔 병력 4만 5천 414명과 관련 민간인 군무원 8천 9백명이 근무 중이며 현 부지는 총 21만 4천 에이커(8만 7천 헥타르)이다.

2 소속부대

  • 미 육군 3군단
  • 제 1 미 육군
  • 제 1 기병사단
  • 제 36 공병여단
  • 제 13 전투지속유지 사령부
  • 제 3 기병연대
  • 제 41 화력여단 [1]
  • 제 504 전투지역 감시여단
  • 제 89 헌병여단
  • 제 85 민사작전 여단
  • 제 1 의료여단
  • 작전시험 사령부
  • 제 13 재정관리센터
  • 제 403 육군 야전지원 여단
  • 제 48 화학전 여단
  • 제 69 방공포병여단
  • 제 57 과 제 62 원정통신여단

3 여담

  • 엘비스 프레슬리가 이 곳에서 훈련을 받았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엄청난 수의 편지를 받는 것 외엔 일반사병과 마찬가지로 대우를 받았으며 1958년 10월, 독일로 파병되었었다.
  • ADX 플로렌스 교도소에 복무중인 전 팔레스타인계 미 육군 일병 나세르 제이슨 아브도가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피하기 위한 탈영후 이곳 인근의 군인들이 많이 모일 레스토랑을 압력솥 폭탄으로 테러하려 했으나 저지되었다.
  • 2009년 11월 5일 총 13명이 사망하고 33명이 부상을 당한 총기 난사 사고가 일어나 흑역사를 갖게 된 부대이기도 하다. 정신과 군의관이자 미 육군 소령이었던 니달 말릭 하산 소령이 범인이었으며 그는 2013년 8월 23일 유죄가 선고되고 사형이 언도되었다. 범인은 범행전부터 FN Five-seveN과 여분의 탄창 및 탄약을 구입하는 등 치밀한 준비를 했었다.
  • 2014년 4월 2일 또 다시 총기 난사 사고가 발생했다. 범인은 당시 34살의 미 육군 상병(Specialist/SPC)인 이반 로페즈로 .45ACP를 사용하는 Smith & Wesson M&P 권총을 사용했다. 이 사건으로 범인을 포함하여 총 4명이 사망하고, 14명이 부상당했다.
  1. 야전포병 부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