Полежаевская / Polezhaevskaya
타간스코-크라스노프레스넨스카야선 Таганско-Краснопресненская линия | 개업일 : 1972년 12월 30일 | ||||
플라네르나야 방면 Планерная 옥탸브르스코예 폴레 Октябрьское Поле | ◀ | 폴레자예프스카야 Полежаевская | ▶ | 비히노 방면 Выхино 베고바야 Беговая |
모스크바 지하철 7호선 타간스코-크라스노프레스넨스카야선의 역. 역명은 1940~50년대에 본 역의 기둥 디자인을 맡았던 건설자 바실리 데멘티예비치 폴레자예프(Василий Дементьевич Полежаев)의 성을 딴 것이다.
메트로 2033
다른 역들에 비해 비교적 사람이 적은 역이다. 한 때 1905 연합에 소속된 역이었으나 아래와 같은 사건으로 인해 폐쇄됐다. 국내에 번역된 소설에선 폴레샤예프라고 잘못 적혀있다.
어느 날 폴레자예프스카야역의 정찰대가 차례대로 한 명씩 사라졌는데, 터널에 들어가면 돌아오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정찰대가 계속 사라지기 시작했으며 몇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순찰대를 동원해서 주위를 샅샅이 수색했으나 사라진 정찰대의 흔적조차 없었다. 아무런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결국 이들이 도망쳤다고 결론을 내렸으나 일 주일 뒤에 또 다른 정찰대가 사라졌다. 이전 정찰대는 역에서 1km 떨어진 곳에서 사라졌으나 이 정찰대는 역에서 5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일 주일 사이에 정찰대가 두 번씩 사라지자 역의 사람들이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300m 지점에 바리케이트를 세운 다음 방어를 강화했고 이 사실을 알려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동맹을 맺은 역인 베고바야에 전령을 급파했다. 그런데 전령이 도착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외곽초소에 있던 수비군이 총 한 발 쏘지도 못한 채 누군가에 의해 모두 찔려죽었다.
결국 베고바야에 있던 사람들도 그대로 있다간 같은 꼴을 겪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100명으로 구성된 돌격대를 투입했다. 하지만 돌격대가 폴레자예프스카역에 도착했을 때엔 아무도 없었다. 시체조차 없었다. 조사를 마친 돌격대는 폴레자예프스카야와 베고바야 사이의 터널을 폭파시켜 출입을 막았다. 터널은 40m쯤 주저앉았다고 한다. 결국 누구에 의해서 이런 참사가 발생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폴레자예프스카야역의 괴담은 온 메트로로 퍼져나갔다. 이 이야기는 아르티옴이 예전에 떠돌이 상인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었으나 그가 베데엔하역의 북쪽 터널에서 경계근무를 서 있을 때 표트르라는 동료가 잠깐 폴레자예프스카야 얘길 꺼내자 그 괴담을 다시 듣고 싶어서 그에게 그 역에 있었던 일을 물어본다. 아르티옴은 이 괴담을 다 듣기도 전에 등골이 오싹해져서 표트르에게 이야기를 해달라는 것을 후회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