表鐵柱
생몰년도 미상
검계의 일원으로 영조가 임금이 되기 전에 세자궁의 별감을 지내면서 늘 황금색 바지를 입었는데, 비가 와서 옷이 젖으면 새 바지로 갈아입을 정도로 깔끔하면서도 사치스러운 사람이었다. 용감하고 날래면서 사람들을 잘 쳤고 날마다 기생을 끼고 몇 말의 술을 마셨는데, 장붕익이 검계를 대대적으로 토벌하자 외지로 몸을 피했다가 장붕익이 죽은 후에야 한양으로 돌아왔다.
그가 70여세가 되어서는 귀가 먹고 이가 빠졌으며, 등이 굽고 쇠로 만든 삽을 지팡이로 삼아 짚고 다녔다. 이규상에게 검계에 대한 자료를 제공해 이규상은 장대장전을 통해 검계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그외에도 박지원의 광문자전에서 달문과 대화하는 모습으로 볼 때 달문과 친했던 것으로 보이며, 과거에는 사람을 잘 때리기로 유명해 표망동(表望同)이라는 별호를 가졌다고 한다. 젊은 시절에 살림이 여러 만금이라 황금투구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갑부였지만 늙어서는 장붕익의 단속으로 인해 몰락해 부동산 중개인으로 먹고 살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