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스 번역

1 개요

번역일의 한 형태.

번역가라 하면 대개 외국의 문학작품이나 만화 같은 서적류를 번역하거나, 또는 극장영화나 방송 프로그램 등 영상소프트의 현지화를 맡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외서를 번역하여 국내에 출판하거나 극장에 걸리는 외화에 자막을 다는 사람들은 사실 번역계에서 웬만큼 알아주는 거물(?)급들이 많고, 당신이 어느날 "나도 외국어에 자신있으니 번역서나 극장자막 제작을 해 봐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이 바닥에 뛰어들려 해도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론 번역가의 유무명을 따지지 않고 번역물의 품질만 좋으면 책을 출판해 주는 출판사들도 있다.)

때문에 처음 번역을 시작하는 사람은 대개 현지화 작업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의 하청을 받아 번역을 하는 프리랜스 번역가, 소위 "벤더"(vendor)로 일하게 된다.

2 벤더가 되는 방법

좀 큰 현지화 전문회사는 외국 회사의 한국 지사인 라이언브리지와 SDL을 비롯한 소수의 기업들이 있으며, 특정 분야 작업을 전문으로 하는 소규모 전문회사들은 부지기수로 많다. 또 현지화 전문회사는 아니지만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등 IT 대기업들도 프리랜스 번역가들에게 일을 맡기곤 한다.

  • SDL CAT 프로그램인 트래도스의 제작사이지만 다양한 기업 클라이언트에게 현지화 서비스 역시 제공하고 있다. 사용하는 툴은 물론 트래도스.
  • 한국 라이온브리지 국내 최대규모의 현지화 서비스 제공회사. 국내 여러 대기업들을 클라이언트로 확보하고 있으며, 번역 보수를 미국 본사에서 지불하기 때문에 절대 떼먹는 일이(...) 없어 프리랜서 번역가들에게 인기가 있다. 사용하는 툴은 주로 자사 툴인 트랜스레이션 워크스페이스(TW)지만, 클라이언트의 필요에 따라 트래도스나 XTM 클라우드같은 다른 툴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여러 소규모 회사들이 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런 회사들을 찾아서 그 회사 인터넷 웹사이트에 가 보면, 대개 프리랜서 지원을 위한 전용 메뉴가 마련되어 있다(작은 회사인 경우 직접 전화를 해야 할 수도 있다). 물론 지원만 한다고 다 받아주는 것은 아니고, 대개 테스트를 통해 자격을 심사한다. 이를 통해 당신의 실력과 적성을 판단하여 적합하다고 결정이 날 경우, 간단한 벤더 계약서를 쓰고 향후 그 회사로부터 일거리를 받게 된다.

테스트를 빙자하여 실제 일감을 맡기는 악랄한 사례도 존재한다. 판별법은 테스트의 기한과 분량을 생각해 보면 된다.[1]

3 벤더로서의 생활

보수는 경력과 분야에 따라 정해진다. 경험 많고 실력이 받쳐주는 번역자의 경우 벌이가 좋다. 대개 단어당 얼마, 시간당 얼마 하는 식의 요율이 정해지며 (계약서를 쓴다), 이 요율을 작업량(단어나 시간)에 곱한 만큼의 보수를 받는다.[2] 전문분야가 없는 초보자일 경우 단어당 10원~30원 정도를 받는 것이 고작이지만, 그럴 경우에도 하루에 3,000단어 이상의 결과물을 내놓으면 한 달에 200만원~300만원 정도의 월수입을 올릴 수도 있다.

문제는 시간. 프리랜서 특성상 한 회사에 소속되어 일하는 것이 아니므로 일거리가 여기저기서 들어오는데, 마감이 겹치는 경우 스케쥴을 조율하기가 매우 힘들다. 심지어는 큰 회사의 경우 서로 다른 팀들이 일정이 겹치는 작업을 보내오기도 한다. 때문에 정말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일해야 하는 때도 많다. 따라서 일이 폭풍처럼 몰아친다고 해서 전부 받을 필요는 없다. 무리라고 생각되면 확실하게 거절하는 게 좋다. 억지로 받았다가 끝내지 못했을 경우, 시간을 잡아먹는데다 새로운 번역자를 알아봐야 하므로 서로 손해가 된다.

그런가 하면 어떨 때는 아무도 작업을 보내지 않아 일주일 내내 놀기도 한다. 게다가 언제 바쁘고 언제 한가한지를 미리 알 수도 없다는 게 지옥이다.

여담으로, 프리랜스 번역을 오래 하다 보면 다른 번역가들이 작업한 결과물을 검수하는 작업도 들어오기 시작한다. 경력이 많고 실력이 있는 벤더의 경우 사실상 번역은 하나도 없고 검수만 줄창 하게 되는 수도 있다. 그런데 검수라는 것이 남이 한 작업에서 잘못된 것만 골라내는 일이다 보니, 알게 모르게 정신적인 대미지가 쌓인다. 물론 잘못을 지적받는 작업자도 기분이 좋지 않겠지만, 남을 끊임없이 타박해야 하는 검수자 역시 지옥이다!

프리랜서는 자영업이기 때문에 국민건강보험 등의 사회보험을 당연히 전부 본인이 알아서 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회사들이 보수를 지급할 때 아예 소득세를 제하고 주기 때문에 직장인과 똑같은 유리 지갑이다. 게다가 직장인들처럼 출퇴근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단 일을 맡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마감시간까지는 완료해서 납품을 해야 한다. 또 한 회사에서만 일감을 맡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개의 작업이 마감이 겹치는 경우도 많으며, 때문에 철야를 하거나 주말 내내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3] 이러다보니 자칫하면 생활 패턴이 엉망이 되기 쉬우며, 스스로 규칙적인 생활패턴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할 경우 건강을 해치기 쉽다.

모든 프리랜서가 그렇듯 프리랜스 번역가는 자기 건강을 자기가 챙겨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직장인은 몸이 아플 경우 병가를 낼 수도 있으며 자신의 빈 자리를 잠시 동안 메꿔줄 동료들이 있고, 병가를 내고 치료나 요양을 하는 중에도 월급은 나온다. 게다가 직장인은 각종 복리후생 제도를 통해 질병에 대해 어느 정도 추가적인 보호를 받는다. 그러나 프리랜서는 이런 것이 하나도 없다. 아파서 일을 못하면 그냥 돈을 못 버는 것이다. 게다가 아파서 몇 주 쉬고 나면 고객 다 떨어져 나간다. 때문에 프리랜스 번역가는 자신의 건강 상태를 매의 눈으로 감시하며 항상 몸 관리에 주의해야 하는 것이다.

4 갖추어야 할 역량

4.1 외국어

외국어 구사능력이 높아야 한다. 공인 외국어 시험 점수를 보는 것은 아니지만, 읽기-쓰기 능력이 요구된다. 영어의 경우, 번역 일 중에서 가장 요율이 낮은 축에 속하는 것들이 토익 책에 나올만한 일상적인 비즈니스 서신들이다. 공부해가면서 해내려고 해도 유럽언어기준 B2를 넘겨야 간신히 사전 찾아가면서 해낼 수 있고, 직업적으로 해내려면 유럽언어기준 C1을 넘겨야 한다. 실력이 A1~B1 같은 상태에서는 초벌번역 일자리를 찾고 있을 것이 아니라 공부부터 끝내야 한다. 초벌번역이라는 것은 직업을 부르는 말이 아니라 번역자가 번역 중간에 하는 작업 과정을 가리키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으로 돈을 버는 것이 어렵다. 다른 프리랜서 번역가에게 하청을 받아보려 하더라도, 유럽언어기준 B1 미만의 실력으로는 하청조차 수행해낼 수 없다.

외국어의 종류도 중요한 문제이다. 한-일-영-중 등 여러 외국어를 동시에 하는 사람들의 경우 특수한 수요로 인해 일자리가 많아진다. [4] 특히 러시아어, 아랍어, 스페인어 등 '잘 하는 사람은 드문데 수요는 많은' 외국어가 있는데 이 경우 가격이 매우 올라간다. 반대로, 한-중의 경우 정상적인 가격을 받기 어렵다. 조선족을 동원한 저가 공세를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4.2 한국어

한국어 작문 실력이 뛰어나야 한다. 공인 한국어 시험 점수를 보는 것은 아니지만, 읽기-쓰기 능력이 요구된다. 평소에 책을 많이 읽어 다양한 어휘와 문장을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유리하다. 조기유학생, 교포 2~3세 등은 외국어는 잘 하는데 우리말 번역을 맡겨보면 황당한 결과물을 납품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수능 국어 실력이 4등급 이하이면 번역한 결과를 우리말로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생긴다.

"나는 한국 사람인데 당연히 우리말 잘 하지?"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일 수도 있다. 특히 우리말의 띄어쓰기는 수많은 예외와 허용으로 점철되어 국어학자도 실수를 할 때가 있을 정도로 골치아프며, 경어의 올바른 사용법 역시 완전히 제대로 구사하는 이가 많지 않다.

다행히도(?) 외국인 입장에서는 한국어 작문을 배우기 더욱 어렵다. 구조론적으로는 주요 언어 중 터키어, 일본어, 핀란드어 정도밖에 없는 교착어인데다 비교언어학적으로 고립어이기까지 한 우리말의 특성상 기계 번역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소위 번역기로 불리는 번역개그(…)를 생각해 보자). 그렇기 때문에 한국어와 외국어를 동시에 잘 구사한다면 프리랜스 번역가로 활동할 기회가 있는 것이다.

4.3 전문적인 지식

당신이 전문적인 지식이 있다면 그 방면의 일거리가 꾸준하게 들어오게 된다.

일거리에는 외국 기업과 한국 기업간에 주고받는 각종 문서의 번역, 기업 제품의 설명서나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현지화, 웹페이지 번역, 게임에 나오는 텍스트의 번역 등이 있다. 전문지식이 요구되지 않아 아무나 번역할 수 있는 문서는 요율이 낮지만, 많은 돈이 걸린 분야인데다 전문지식이 없으면 번역할 수 없는 분야라면 요율이 3배 이상으로 올라간다. 쉬운 용어가 쓰이는 '일반 대중을 위한 사용 설명서' 수준이 아니라, 논문이나 전문 기술자를 위한 사용 설명서 등 어려운 용어가 쓰이는 번역을 맡길 것이며 몸값이 높아질 것이다.

IT, 의학/약학, 전자/기계 (사용설명서 등), 건축 등이 비싸게 먹힌다.

4.4 기타

긴 경력을 가지고 신뢰를 얻을수록 귀한 취급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단시간에 많은 분량의 작업을 오류 없이 처리해 준다는 평판을 얻으면 지식의 폭이 좁더라도 일거리가 계속 들어온다. (현지화 전문회사들도 클라이언트에게는 을의 입장이기 때문에, 항상 마감시간에 쫓기고 있다.) 반대로 말하자면, 초짜는 일거리를 받는 것이 엄청나게 힘든 분야이고, 한 번 받았다 하더라도 넘칠 때까지 받을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5 도구

  • 대형 듀얼 모니터 : 한 화면에 띄울 수 있는 글자 수가 늘어나서 유리
  • 음성인식 프로그램 : 손으로 치고 있는 것보다 속도가 빠름

5.1 컴퓨터 보조 번역 프로그램

아주 소규모인 회사일 경우 그냥 워드 프로세서를 사용해서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컴퓨터 보조 번역용 프로그램(CAT)을 사용해 작업할 것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CAT로 작업하지 않은 문서는 제삼자가 원본과 대조해 가며 품질검수를 하기가 매우 어렵고, 또 CAT 없이 작업할 경우 (특히 작업 분량이 많을 경우) 다양한 오류가 발생하기 쉽기 때문이다.

CAT 프로그램은 다양한 종류가 있긴 한데, 그 중에서 어느것이 가장 널리 쓰인다- 라고 말해봐야 큰 의미가 없다. 시장 점유율로 따지면 SDL의 "트래도스(Trados)"가 가장 널리 쓰이지만, 그와는 관계없이 당신이 어느 회사로부터 하청을 받느냐에 따라 사용해야 하는 CAT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구글은 구글 번역자 킷이란 것이 있으며 마이크로소프트는 트랜스툴즈, 라이온브리지는 트랜슬레이션 워크스페이스(TW, 구 로고포트)를 사용한다.

다행히 아무거나 한 종류의 CAT에 익숙해지면 다른 CAT도 쉽게 사용할 수 있으니, 프로그램 숙련도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CAT 프로그램들 중 몇몇은 상당히 고가라는 점. 예를 들어 트래도스는 백만원 정도 한다. 반면 구매하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는 CAT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라이온브리지의 TW라든지, XTM 클라우드 같은 프로그램 등은 프로그램을 구매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들은 사용료가 있어서(...), 한달에 얼마씩 정액제 요금을 내거나 작업한 단어 수에 비례하는 정량제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참고로 트래도스는 체험판을 다운로드 받아 한달동안 무료로 사용해 볼 수 있다. (체험판이라고는 하지만 기능의 차이는 전혀 없고 단지 한달동안의 사용기간 제한이 있을 뿐이다.) 만약 트래도스를 사용해야만 하는 작업을 수주받았는데 트래도스가 없을 경우, 이 점을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1. 특히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번역가들에게 잘 써먹는 수법 중 하나로 "요 테스트를 받아봐서 잘 하면 커~다란 프로젝트를 맡기겠다"고 꼬시는데, 테스트랍시고 보내 온 문서를 보면 절대 테스트가 아닌 것이 뻔히 보이는 내용이다. 이런 경우 답장도 보낼 필요 없이 씹으면 된다.
  2. 페이지 등 전체 분량을 기준으로 번역료를 책정했을 때는 분량의 배분 때문에 가격이 달라지기 쉽다. 그러므로 MS워드 등으로 단어의 갯수를 파악하고 번역료 책정의 기준을 정하는 게 좋다.
  3. 여담이지만 다른 직종 중에 프리랜스 번역가와 가장 비슷한 생활/업무패턴을 가진 것이 만화가라고 한다.
  4. 한-영, 한-일 번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미국 회사의 신뢰를 얻을 경우, 원어민이 아니지만 영-일 번역도 이 사람에게 맡기는 경우가 있다. 미국 회사에서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번역을 맡길 때 영한/영일 2명을 고용하는 것보다 1명을 고용해서 맡기는 게 더 믿음직스럽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