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어

언어유형학과 언어계통학에서 서로 다르게 쓰임에 유의. 예를 들어 한국어는 언어계통학으로는 고립어지만, 언어유형학에서는 고립어가 아니라 교착어이다.

1 고립어 (언어유형학)

언어유형학
교착어굴절어고립어포합어


Isolating Language

그 문법적 특성으로 인해 위치어라고도 한다.

언어유형학(linguistic typology)에는 언어를 분류하는 데 사용하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어절의 형태론적 구조(morphological structure)에 따른 언어의 분류이다. 형태론적 구조에 따라 언어를 분류하면 세계 언어는 교착어, 굴절어, 고립어, 포합어의 네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단어 자체가 문법적 기능에 따라 변화하는 굴절어나 단어에 접사가 결합되어 문법적 기능을 나타내는 교착어와는 달리, 단어가 변화하지 않고 각 단어의 문법적 기능이 어순에 따라 결정되는 언어가 고립어다. 대표적인 고립어들은 다음과 같다.[1]

예를 들어 굴절어는 단어의 형태를 보는 것만으로 그 단어가 주어로 쓰였는지 목적어로 쓰였는지 파악할 수 있고, 교착어는 단어 뒤의 접사를 통해 이를 파악할 수 있지만 고립어의 단어들은 그 자체로는 문법적 기능을 나타내지 않기 때문에 어순을 통해서 문법적 기능을 파악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굴절어나 교착어보다 배우기 쉬운 면이 있다. 단어 자체는 형태 변화를 하지 않기 때문에 어순만 익히면 되기 때문이다. 또한 가상언어를 만들기 쉬운 편에 속한다. 단어를 만드는 방식에 대한 약간의 아이디어만 있어도 참신하게 보이는 타 유형에 비해, 제대로 된 고립어는 문법적으로 참신해볼 영역이 통사론밖에 없기 때문에 실제로는 가상의 언어로 인기가 별로 없는 유형이다. 나비어, 퀘냐, 클링온어, 신다린 등 유명한 가상언어 중에 고립어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칼라니어 정도가 고립어인 가상언어에 속한다.[2]

영어는 일반적인 구분으로도 계통적으로도 굴절어에 속한다. 그러나 영어는 고대중세를 거치면서 굴절성을 많이 잃었다. 현대 영어에서 굴절어의 특성을 지닌 부분은 be 동사, 대명사의 변화, 동사의 3인칭 단수밖에 없다며 고립어라 보는 학자들도 있다. 가장 큰 예시로, 영어를 배우면서 '문장의 5형식'을 지겹게 배우는데, 이런 고정된 어순은 고립어의 특성이다. 결국 영어중국어와 비슷해진 것이다. 중국인들이 영어를 일반적으로 수월하게 배우는 것도 이런 면에 기인한 바 크다. 그리고 영어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영문법 시간에 '구문'과 같은 말이 자주 나오고, 또한 툭하면 'A + B ~ C' 이런 식으로 특정한 요소의 배열에 신경을 쓰는 것이다. 교착어나 굴절어에서는 이와 달리 '형'이나 '형태'와 같은 말을 자주 쓴다. 스페인어만 보더라도 '1인칭 직설법 현재형'과 같이 형태론적 측면이 중시된다.

또한 교착어는 여러 접사가 붙기 때문에 가상의 접사를 말버릇처럼 붙이는 게 매우 쉽다. 흔히 일본 애니메이션의 일부 캐릭터가 말끝마다 별 뜻 없는 '~냥'이나 '~뽀이' 등의 요소를 붙이는 것을 접할 수 있으며, 한국어로도 이는 얼마든지 표현되는데, 이는 한국어와 일본어가 모두 교착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영어로는 그 표현의 맛(...)을 살리기가 쉽지 않은데, 영어가 사실상 이런 형태소의 부가와는 거리가 먼 고립어이기 때문이다.[3]

한국어는 계통학적으로는 고립어지만 유형학적으로는 교착어이며, 중국어는 계통학적으로 고립어가 아니지만 유형학적으로는 고립어이다.

2 고립어 (언어계통학)

Language Isolate

비교언어학에서, 같은 조어에서 갈라져 나온 "친척" 언어가 발견되지 않은 언어를 고립어라고 한다. 친연관계로 밝혀진 언어가 없기 때문에 고립어가 속한 어족은 언어가 하나뿐이다. 대표적인 특징으로는 기본어휘 중에서 다른 언어와의 동원어의 음운 대응규칙이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유형학 상의 고립어와는 전혀 관계없는 개념이기에, 둘의 구별을 위해 계통학 상의 고립어를 '고립 언어'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간혹 가족 혹은 친족이 없다 하여 고아(orphan language)(!)라 부르는 경우도 있다.

한국인, 일본인들처럼 모국어가 고립어인 사람들은 쉽게 배울 수 있는 외국어가 거의 없다. 반대로 유럽인은 저 멀리 있는 국가의 언어도 언어계통적으로는 친척이라 가까운 국가의 말이라면 쉽게 배우는 경우가 많다. 유럽인 위인들을 보면 그의 능력을 나타내기 위해 "n개 국어를 할 수 있다"는 서술이 많은데, 물론 그의 능력도 대단하기는 하나 유럽의 많은 언어들이 계통학적으로 비슷하기 때문이기도 하다.[4]

대부분의 고립어들이 이미 사멸하였거나 1만 명 이하의 적은 화자만이 생존해 있는 것에 비해, 한국어는 8천만 명에 이르는 화자 수에도 불구하고 주변 언어들과의 미싱링크 계통 관계가 증명되지 않았기에 고립어일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는 것. 일본어를 고립어로 보지 않고 일본어족의 일종으로 본다면, 한국어의 화자 수는 나머지 모든 고립어들의 화자 수를 합친 것보다 더 크다.

한국어가 고립어라면 한국어는 '한국어족(Koreanic languages)'라는 현존하는 언어가 하나뿐인 어족에 속하게 된다. 학자에 따라서는 제주어를 별도의 언어로 판단하여 한국어족에 속한 언어가 두 개라고 설정하기도 하고, 현재는 사멸한 삼국시대 언어 등의 고어까지 포함하기도 하는데, 이런 접근 방식의 경우 한국어족 내부의 언어들을 부여어파와 한어파(韓語派)로 나눈 뒤 다시 세부적으로 분류하는 식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부여어파는 현재 소멸됐으며 현대 한국어는 한어파에 속한다. 제주어를 별개의 언어로 설정하는 견해가 대다수는 아니지만 유네스코가 실제 이 입장에 따라 제주어를 소멸 위기 언어로 지정한 바 있다. 물론 이는 한국 국어학계의 주류 시각은 아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제주어가 별개의 언어냐는 질문에 일부 학계의 의견이라는 의견을 낸 적이 있다. 사실 제주어와 한국어 사이에 소통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학자는 물론,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제주어를 한국어와 별개의 언어로 볼 것이냐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기도 한다.

논란이 있는 제주어를 제외하고 일반적인 지역 방언의 경우,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들은 오랜 시간 동안 정치적으로 통일된 채[5] 살아왔기 때문에 방언 간 격차가 있다 해도 다른 언어라고 여기지 않는다. 심지어 남북으로 분단되어 문화어표준어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벌어진 지금에도 한국어 화자들은 둘을 별개의 언어라고 인식하지는 않는다.

한편 일본어는 한국어와 함께 알타이어족이라는 가상의 어족에 속한다는 가설이 한때 설득력을 얻었으나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알타이어족 설은 폐기되었다. 현재는 고립된 언어로 보기도 하고, 류큐어(또는 분류 방식에 따라서 류큐어파)를 일본어와 구분되는 언어로 취급하여 함께 일본어족(Japonic languages)이라는 별도의 어족을 이루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중국어는 사정이 다르다. 일단 중국어부터가 말이 하나의 언어지 실질적으로는 베이징어, 상하이어, 광둥어 등 여러 언어로 나뉘고, 그 외에도 티베트어, 미얀마어 등의 수많은 언어로 이루어진 중국티베트어족(Sino-Tibetan languages)이 있다. 중국 14억이 한 언어를 쓰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일본(일본어를 고립어로 본다면) 및 스페인의 바스크 지방은 고립어로 분류된 언어를 쓰는 국가 혹은 지역치고는 그래도 경제적 혹은 정치적, 외교적 힘이 꽤 되는 편이다. 북한 빼고 나머지는 그저 안습(...) 한국어를 제외한 고립어 중 가장 인구가 많은 언어들은 다음과 같다.

지역언어인구(만 명)
스페인바스크어72
칠레마푸체어[6]26
아르헨티나
멕시코푸레페차어12
파키스탄부루샤스키어8
탄자니아산다웨어3~9
베네수엘라와라오어2.8
멕시코와베어1.8

그 밖의 언어는 화자수가 많으면 네 자리 수에서 적으면 한 명에 불과한 수준. 보다시피 이들 고립어 사용자 수를 합한 것보다 한국어 사용자 수(약 7700만)가 더 많다. 비율로 따지면 고립어 사용자의 거의 95% 이상이 한국어를 사용하는 꼴. 물론 일본어도 고립된 언어로 취급하면다면 한국어 사용자의 비율은 급감하겠지만...

2.1 대표적인 고립어

  1. 영어위키백과의 고립어항목 참조. 그런데 티베트어는 문법적으로는 고립어에 속하지만 조사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교착어적인 면도 강하기 때문에 고립어라고 무조건 어순만 장땡인 것은 아니다.
  2. 독립된 단어 사이의 배치와 연결을 다루는 통사론은 형태론에 비해 상당히 추상적인 경향이 있어서, 의외로 제대로 만드려면 상당히 정교한 지식이 필요하다. 이 영역에서 참신함을 보여줬다면 그 사람은 이론언어학에 대해 좋은 감각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3. 다만 영어는 각운, 즉 라임을 만들기는 무척 쉽다.
  4. 다만 유럽 언어들은 이를 감안하더라도 대개 명사의 성별과 동사 변화 및 복잡한 시제 등 다른 내용이 많아서 형편이 무조건 나은 것은 아니다.
  5. 이런 점은 넓은 땅덩이와 비교적 다양한 민족구성으로 인해 아예 다른 언어 수준의 방언들이 공존하다 20세기 이후에 들어서야 표준어의 정립과 보급이 이루어진 중국과도,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봉건 연방국가 체제를 근대 이전까지 이루고 살아왔던 일본과도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구한말 기독교 선교사들도 나머지 두 나라와 달리 조선에서의 성경 번역이 가장 쉬웠다고 했을 정도이다.
  6. 윌리체어를 마푸체어의 방언으로 보기도 하고 독립된 언어로 봐 마푸체어와 윌리체어를 아라우칸어족으로 묶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