河璿
(1583 ~ 1652)
조선의 인물. 자는 사윤(士潤). 호는 송대(松臺). 하락의 손자.
하홍도와 친했고 1613년에 생원에 합격하면서 천거되자 침랑에 제수되어 전중주부로 상소해 시정의 잘못을 알렸는데, 거의 5천언이었다고 한다. 상소가 들어가 광해군이 특별히 잘 대우하는 답을 내렸고 이어서 상소를 조정에 내렸으며, 문집으로는 송대문집이 있다.
경남 하동의 쌍계사에 있는 18현 창주유적비가 있는데, 이 비석에 하선은 다른 17명과 함께 시를 지어 비석에 새겼다. 그 비석에는 하선의 시가 10번째에 있다.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는 이 인물에서 이름만 따서 등장해 신분은 천민에 해당하는 광대로 광해군이 자신을 대신해 위협을 노출할 대역을 찾으면서 광해군과 얼굴이 똑같아 광해군에게 끌려가는데, 갑자기 광해군이 쓰러지는 일이 발생하자 허균의 지시로 광해군 행세를 하는 교육을 받고 그 행세를 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