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왕

부여의 역대 국왕
??대 의라왕??대 현왕부여 멸망(?)

玄王. 생몰년 미상. 부여의 실질적인 마지막 왕으로 평가받고 있다. 의라왕과의 관계도 알 수 없다.

생애

대부분의 부여왕이 그렇지만 현왕의 즉위 및 재위기간은 알려지지 않았다. 한편 부여는 285년 모용선비의 침공으로 나라를 잃은 후 286년에 복국을 성공하지만, 되려 백제[1]에 밀려 서쪽 연나라와 가까운 곳으로 수도를 옮겨야 해서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346년, 전연모용황은 세자 모용준을 앞세운 17000명의 대군으로 부여를 공격해 현왕과 부여 백성 5만여명을 끌고와 부여를 사실상 멸망시킨다. 그리고 현왕에게 진군장군의 직위를 주고 사위로 삼았는데, 부여 유민들을 회유하려는 목적이었던 걸로 보인다.
이후에도 부여는 494년까지 존속되지만 사실상 명맥만 유지했고 결국 고구려에 흡수된다.

연왕 (모용)황이 세자 (모용)준을 보내 모용각, 모용군, 모용근 등 세 장군과 17,000 기병을 보내 부여를 습격하였다. (모용)준은 지시를 내리고 군사들은 모두 (모용)각이 맡아 공략하여 그 (부여)왕 현과 부락민 5만여명을 포로로 잡고 귀환했다. (모용)황이 (부여왕) 현을 진군장군으로 삼고, 딸을 처로 삼게 했다.-<자치통감>-

燕王皝遣世子儁帥慕容軍·慕容恪·慕輿根三將軍·萬七千騎襲夫餘. 帥, 讀曰率. 儁居中指授, 軍事皆以任恪, 遂拔夫餘, 虜其王玄及部落五萬餘口而還. 皝以玄爲鎭軍將軍, 妻以女.

아들로 '옛 부여왕' 또는 '부여 왕자'로 기록된 여울(부여)을 그의 아들로 추정하나 확실치 않다.
  1. 자치통감은 백제로 기록했지만, 정황상 배후에 있는 고구려 또는 숙신이 부여를 밀어냈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