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왕사

< 부여

이 항목은 부여의 역대 들에 대한 정보입니다.

1 개요

불행히도 부여의 역사에 대한 기록은 상당히 적은 편이다. 때문에 부여의 역대 왕들이 누구였으며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불확실하다.

중국의 삼국지의 동이전에는 부여의 위치나 지리, 풍속 등에 대하여 기록해놓았을 뿐이며 삼국사기삼국유사 등을 비롯한 국내 사료에도 부여의 초기 건국사만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부여의 역대 왕사를 정리함에 있어서는 큰 공백기가 생기고 만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에는 부여의 시조인 해모수로부터 그 후손인 대소왕 까지의 기록은 남아 있으나 그 뒤의 기록은 부분부분 끊겨 있어 제대로 알기 힘들기 때문이다.

2 역대 왕

2.1 부여

동명왕(?~?): 부여의 시조.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국내의 기록에는 부여의 시조를 해모수라 하였으나, 중국 측의 기록인 <후한서>에는 동명을 부여의 시조로 기록하였다. 동명은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 주몽과 동일인물로 여겨지기도 하며 해모수와의 관계는 불분명하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조.

2.2 북부여

해모수(?~?): 삼국유사에 따르면 해부루왕이 재상 아란불의 말을 듣고 가섭원으로 천도하자 기원전 59년 음력 4월 8일에 그 옛 터에 북부여를 건국하였다. 주몽의 아버지로도 알려져 있으나 기록 상 모순이 보인다.

2.3 동부여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이 나라를 동부여라고 기록하고 있으나, 뒷부분에 동일한 나라를 북부여라고 기록하는 등 혼란이 있다. 게다가 광개토왕비에서도 주몽이 도망쳐 나온 나라를 동부여가 아닌 북부여라고 기록하고 있기에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나라를 동부여가 아닌 북부여라고 여기고 있다. 또한, 서기 285년 선비족이 침입해 의려왕이 자결하고 백성들이 동쪽으로 피난을 갔을 때 옥저로 피난갔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곳에서 나라를 세운 것이 동부여라고 보고 있다. 광개토왕비에 '동부여는 예전부터 우리(고구려)의 속국이었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주몽이 북옥저를 정벌한 적이 있기 때문. 하지만 정확한 건 아무도 모른다.

이름재위기간비고
해부루왕? ~ ?가섭원 천도, 동부여 건국
금와왕? ~ ?
대소왕? ~ 22정확한 계보가 끊김(이후 왕위의 계보가 불확실)[1]

2.4 중국 사서에 나오는 부여

이름재위기간비고
?1세기[2]
시왕1~2세기[3]
위구태왕2세기아래의 위구태왕과는 다른 인물. 시왕의 태자.
부태왕2세기167년에 현토를 공격함.
위구태왕2세기위의 위구태왕과는 다른 인물. 공손도 가문의 여자와 혼인함.
간위거왕2 ~ 3세기
마여왕3세기간위거왕의 서자. 간위거왕이 적자를 남기지 못하고 죽자 뒤를 이음.
의려왕? ~ 285마여왕의 아들. 6세에 즉위함.
의라왕286 ~ ?
현왕? ~ 346마지막 왕?

현왕 이후 부여는 494년에야 완전히 멸망하였으나, 현왕 이후로 세력이 급속히 쇠약해져[4] 현왕을 사실상 마지막 왕으로 친다. 이후 여울(餘蔚)[5], 잔왕(孱王)[6] 등이 기록에 보이나 계보가 확실하지 않다.

3 기타

  • 112년에 부여의 왕이 낙랑을 공격했다.
  • 121년에는 태조왕이 마한과 예맥의 수천 기병을 인솔해 현토를 포위할 때 부여왕의 아들인 위구태를 보내 2만여 명을 거느리고 주와 군과 힘을 합쳐 그들을 격파했다.
  • 220-226년 연간에 읍루가 부여의 지배에서 벗어났는데, 부여가 여러 차례 공격했으나 복속시킬 수 없었다.
  • 167년에 부여왕 부태가 현토를 공격했다가 공손역에게 격파되었다.
  • 285년에 모용부가 동쪽으로 부여를 공격하자 의려왕이 자살했고 그의 자제들은 도망가 옥저로 들어갔다.
  1. 주몽과 동년배인 걸 생각해 보면 죽을 때 80대 노인이었다!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긴 수명 때문에 학자들 사이에서 여러 설이 존재한다.
  2. 서기 49년에 한나라에 조공을 바친 기록이 있다.
  3. 여러 사서에 등장하는 '夫余王始'라는 구절이 '부여의 왕 시'라고 해석될 수도 있고, '부여의 왕이 비로소(처음으로)'라고 해석될 수도 있기에 논란이 있다.
  4. 왕을 포함한 왕족들이 모두 중국으로 끌려간다.
  5. 현왕이 끌려간 뒤에 낳은 아들로 보인다. 서기 384년에 전연의 멸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6. 잔(孱)의 뜻은 '잔약하다, 나약하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