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소카와 하루모토

細川晴元(세천청원)[1]

무로마치 막부의 간레이. [2]

전대 간레이 호소카와 타카쿠니와 맞서던 즈미모토의 아들이다.[3] 즈미모토 사후 아버지의 세력을 물려받아 타카쿠니와 싸웠다. 이 때 타카쿠니가 쇼군 아시카가 요시하루를 옹립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모토 측도 요시하루의 동생을 옹립하였다.[4][5]

1527년, 타카쿠니 군과 싸워 승리를 거두었고 타카쿠니는 요시하루를 데리고 오오미로 도주하였다. 하루모토는 그 뒤 사카이에 임시 막부를 열었다 이는 중신 미요시 모토나가의 공이 컸다. 그러나 2년 뒤 모토나가와 하루모토가 갈등을 빚고 끝내 모토나가가 낙향해버리며 하루모토 측의 군사력은 급감하였다.

이 기회를 노리고 타카쿠니가 역습을 가하지만, 하루모토는 긴급히 모토나가와 화해하여 다시 승리를 거두고 타카쿠니를 자결시켰다. 이로서 하루모토는 아버지 즈미모토의 원수를 갚고 타카쿠니를 멸망시켰다.

그 뒤 권력기반 확보를 위해 혼간지를 통해 잇코잇키를 획책, 미요시 모토나가를 그를 통해 제거하였다. 이 뒤로는 끊임없는 반란과 그의 진압의 기록(...)

모토나가의 죽음 이후 미요시 가문 내에서의 분쟁, 타카쿠니의 양자 호소카와 우지츠나의 반란과 그 편을 들어 롯가쿠 가문의 지원을 받아 일어난 요시하루 쇼군 등 연달아 악재가 닥쳤다. 하루모토는 이를 모토나가의 아들 미요시 나가요시의 편을 들고, 우지츠나 군과 싸워 겨우 승리하여 자리를 지켰다. 요시하루 쇼군[6]과도 화해하여 잘되나 싶었는데....

1548년 우지츠나의 편을 들었던 가신을 숙청한 것으로 인하여 가문 내의 지지를 상당히 잃어버리고, 그 사이 우지츠나가 다시 반란하였다. 또다시 일어난 미요시의 분쟁에 이번에는 나가요시의 편을 들지 않았다가 나가요시가 우지츠나의 편을 들어버리는(...) 상황이 일어나고, 1549년에는 아예 져버려서 요시하루 오고쇼, 요시후지 쇼군과 함께 오오미로 도주하였다. 이거 위에서 본 것 같은데

그 뒤에는 요시후지 쇼군과 함께 활동하나, 1552년 요시후지 쇼군이 나가요시와 화해한 것 때문에 그와도 결별했다가, 1553년 요시후지가 나가요시와 결별하며 다시 손잡았다. 그 뒤에는 미요시의 공세에 의하여 몰락하고 1561년에는 유폐까지 되었다. 2년 뒤 사망했다.

이래저래 험난한 인생을 산 인물. 모토나가를 안죽였다면 더 편해질 수도 있었을까.....?[7]

노부나가의 야망에서는 능력치가 좋지 않다.
  1. 하루(晴)는 아시카가 요시하루 쇼군에게 받은 것이라서, 그와 적대할 때는 호소카와 로쿠(細川六郎)라는 이름을 썼다.
  2. 허나 여기에 이설도 있다.
  3. 타카쿠니와 즈미모토는 선대 간레이이던 호소카와 마사모토의 계승권을 두고 대립하였다. 결과는 오우치 요시오키와 손잡은 타카쿠니의 승리.
  4. 그러나 공인된 쇼군은 아니다.
  5. 그 이전 타카쿠니와 갈등을 빚다 밀려나 쇼군에서 퇴위한 아시카가 요시타네가 하루모토를 찾아왔었지만, 그 때 하루모토는 너무 어렸고, 이로 인해 실망한 요시타네는 얼마 안가 죽었다.
  6. 정확히 말하면, 이 당시에는 쇼군이 아니었다. 이미 아들인 아시카가 요시후지에게 자리를 넘겨준 뒤였기 때문. 그리고 그 요시후지가...
  7. 실제로 모토나가 사후 악재가 겹친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