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足利義晴
1511 ~ 1550
무로마치 막부 12대 쇼군으로 아시카가 요시테루,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아버지. 태어나기 전에 오우치 요시오키가 요시하루의 아버지인 요시즈미를 쫓아내고 10대 쇼군인 요시타네를 옹립하는 대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에, 교토가 아닌 오오미에서 태어났다. 게다가 태어난지 얼마 안지나서 아버지 요시즈미가 사망한다. 2살 때인 1513년 양 세력간에 합의가 이루어지고 요시타네의 쇼군 직이 확정되자 하리마로 가서 아카마츠 가문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하였다.
1521년 요시타네가 간레이 호소카와 다카쿠니와의 갈등으로 인해 교토를 떠나버리고, 이로 인해 덴노의 즉위식에 불참하여 덴노의 신임을 잃자, 다카쿠니에 의해 쇼군으로 발탁되어 상경하였다.
1526년 호소카와 가 내부에서 내전이 발발하자 요시하루는 다카쿠니와 함께 움직여야 했다. 1527년 호소카와 하루모토가 교토를 점령하자 요시하루는 다카쿠니와 함께 오오미로 도망쳤다. 이후 1531년 패배한 다카쿠니가 자결하고 하루모토와 중신인 미요시 가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자 1532년 막부를 아예 오오미의 구와노미데라로 옮겨온다. 1534년 롯가쿠 사다요리, 롯가쿠 요시카타 부자의 도움으로 하루모토와 화해하고 겨우 다시 교토로 돌아왔다. 그러나 얼마 뒤 또 갈라서서(...) 1541년부터 1543년까지 계속 왔다갔다 하면서 살았다.
결국 1547년의 패배 이후 쇼군 직을 어린 아들 아시카가 요시테루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후견인으로 물러난다. 그 뒤 하루모토와 화해하고 다시 교토로 돌아오지만 1549년 하루모토와 미요시 나가요시의 싸움에서 하루모토가 지자 또 도망쳐서(...) 이듬해 피난처에서 죽었다.[1]
이렇게만 보면 그냥 왔다갔다만 반복한 무능한 쇼군같지만, 측근집단을 재편성하여 정권 중추에 두는 것으로 쇼군 친정권의 강화를 꾀하고, 제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 이래 지속되어온 히노 가문과의 혼인 관계를 청산하고 조정의 명문가 고노에 가문 출신을 정실로 맞이하여 조정과의 관계 강화를 꾀하는 등[2], 쇼군의 권위 회복에 힘썼다. 또 여러 대다이묘들에게 이름 한 글자를 주기도 했다.[3]하지만 결국 호소카와 가문의 내분으로 발발한 대규모의 쟁란으로 좌절되고 말았다. 안습.
여담으로, 일본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 된 안경이 이 사람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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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나가의 야망에서도 등장한다. 능력치는 좋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