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루이 다비드가 1807년에 그린 그림. 610×931㎝
1 개요
1804년 스스로 황제를 선포하고 제위에 오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대관식 장면을 그린 그림.
원래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문서에 있던 내용인데, 그림 자체에 얽힌 이야깃거리가 너무 많아 각주가 다섯 개씩 연속으로 달리는 바람에 가독성을 위해 문서를 분리했다.
왕관을 쓰는 조제핀 드 보아르네 부분
2 상세
원래 다비드는 나폴레옹이 스스로 관을 쓰는 장면을 그리려다가 교황 측의 항의에 조제핀 드 보아르네에게 씌워주는 것으로 바꿨다고 한다. 또 원래 다비드는 교황이 맥없이 손을 떨구고 나폴레옹을 바라보는 것으로 그리려고 했으나, 이 초안을 본 나폴레옹이 "대관식 구경이나 시키자고 짐이 교황을 로마에서 여기까지 모셔왔단 말이냐"며 버럭 하는 바람에, 교황이 손을 들어 축복하는 모습으로 바뀌기도 했다. 어쨌든 그 그림의 배경에 있는 교황청 사람들의 뭐 씹은 표정은 당연한 셈이다. 그림에 나온 교황은 비오 7세로, 나폴레옹에 의해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여러 번 감금당하는 수난을 겪은 교황이기도 하다. 하지만 비오 7세는 수도회 출신의 거룩한 성품과 인격을 구비한 사람이었으며, 결국 나폴레옹의 최후의 순간에 절해고도에 고해 사제를 파견하여 나폴레옹의 마지막을 지켜주도록 함으로써, 원수를 은혜로 갚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그림에 관해서는 이야기가 몇 개 더 있는데, 조제핀과 나폴레옹 가족들의 관계는 지극히 나빠서 실제 대관식에서는 나폴레옹의 어머니와 누이들 전부 참석하지 않았지만, 그림에서는 화목한 가정을 원했던 나폴레옹의 요청으로 근엄하게 즉위식에 참석한 가족들의 모습이 새로 그려졌다. 그리고 조제핀에 대해서도 역시 나폴레옹의 요청에 따라, 필요 이상으로 성녀 이미지로 미화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그에 다비드가 한마디 하길 "불만 있으면 황제한테 직접 가서 따지세요."
실제로 나폴레옹은 조아생 뮈라와는 정말 둘도 없는 절친이었고, 뮈라는 당시 유럽 전체에서 최고로 용맹스러운 인물이었다. 뮈라는 자신의 그 가공할만한 용맹으로 나폴레옹을 위기에서 여러 차례 구해냈고, 특히 아일라우 전투에서는 나폴레옹 군대의 전멸 위기를 뮈라 혼자 싹 뒤집고 무승부로 만들어 놓을 정도로 나폴레옹에게는 정말 소중한 인적자원이었다. 그래서 나폴레옹은 자신의 여동생 카롤린을 뮈라에게 시집보내기까지 했으나, 카롤린은 라이프치히 전투가 시작되자 뮈라에게 자기 오빠의 뒷통수를 치라고 시켰다.
그 밖에도 이 그림에서 실제로 대관식에 참석한 프랑스 주재 오스만 제국 대사인 무함마드 에펜디의 모습이 사라졌다. 무슬림인 자신이 황제를 우상숭배하는 것처럼 그려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다비드에게 요청하여, 그를 스케치하던 걸 지웠다고 한다.
참고로 이 그림은 두 가지 버전이 있다. 루브르에 걸려있는 것과 베르사이유에 걸려있는 것이 있는데, 두 그림의 차이는 하나, 그림에 있는 나폴레옹의 여동생 중 한명의 드레스가 베르사이유 버전에선 핑크색으로 칠해져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비드가 그녀를 짝사랑했기에 그렇게 몰래 그렸다는 얘기가 있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div></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