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강장황후 퉁기야씨

생몰년도1640년 ~ 1663년
시호효강자화장의공혜온목단정숭문육성장황후
(孝康慈和莊懿恭惠溫穆端靖崇文育聖章皇后)
별명자화황태후(慈和皇太后)
배우자청세조 순치제 아이신기오로 풀린

孝康章皇后 佟佳氏

순치제후궁으로, 강희제의 어머니.

만주족의 양황기(鑲黃旗) 출신. 아버지인 동도뢰(Tong Tulai, 佟 圖賴)는 한족 쪽의 가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일찍부터 만주로 이주하였고, 청태조 아이신기오로 누르하치의 편에서 싸웠으며, 그로 인해 효강장황후 퉁기야씨의 가문은 한족 출신이지만 만주인 대우를 받는 명문가로 통하는 가문이었다. 그녀는 순치제후궁이 되어 서비(庶妃)의 작위를 받고 서비 동씨(庶妃 佟氏)라 불리며 자금성의 경인궁(景仁宮)을 거처로 삼았다.

1654년, 아들 아이신기오로 히오완예이(강희제)가 태어난다. 이후 강비(康妃)로 높여진다. 즉, 서비 동씨와 효강장황후 퉁기야씨, 강비 퉁기야씨(康妃 佟佳氏)는 동일인물이다. 이 당시 효강장황후 퉁기야씨는 승건궁(承乾宮)의 현비 동고씨[1]와 대립하고 있었는데 현비 동고씨가 1660년 천연두로 죽고, 곧 순치제도 죽어 히오완예이가 황제에 등극하게 된다.

그러나 본래 그녀는 몸이 약한 편이었고, 강희제 즉위 4개월만에 시름시름 앓더니 고작 24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말았다.

아버지의 성씨는 한족식인 동씨인데 왜 황후의 성씨가 퉁기야씨냐 하면, 강희제가 즉위한 후에 동국유의 요청에 따라[2] 동씨 를 한족 정람기에서 만주족 양황기로 옮기면서 만주식 성을 주었기 때문이다. [3]

어룬타이(鄂倫岱)[4], 효의인황후 퉁기야씨(孝懿仁皇后 佟佳氏)[5], 각혜황귀비 퉁기야씨(慤惠皇貴妃 佟佳氏)[6], 롱코도(Longkodo, 隆科多)[7]가 모두 그녀의 친정 조카들이다.
  1. 죽은 뒤의 추서로 효헌단경황후 동고씨가 된다.
  2. 일가 전체를 편입시켜달라 했는데 직계 50명만 만주양황기로 옮겼다. 만주양황기는 황제가 속한 팔기다.
  3. 이후에도 다른 한족 출신 후궁들은 입궁하면 만주인식으로 성을 개조했다. 원칙상 만주인은 한족과 통혼할 수 없기 때문.
  4. 동국강의 아들. 강희 연간에 2황자 윤잉이 폐태자되었을 때 아령아, 규서, 왕홍서 등과 함께 8황자 윤사를 지지했다.
  5. 동국유의 딸이자 강희제의 세 번째 황후. 옹정제를 각별히 아껴 친어머니처럼 양육해주었다.
  6. 동국유의 딸이자 효의인황후의 친동생. 강희제의 후궁이었고 효의인황후 사후 후궁의 수장으로서 육궁을 통솔했다.
  7. 동국유의 아들이자 효의인황후, 각혜황귀비의 남동생. 옹정제의 최측근으로서 옹정제 등극을 도왔고 권세를 누렸으나 결국 옹정제에 의해 숙청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