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fare economics.
후생경제학은 미시경제학적인 테크닉을 사용하여 경제 전체의 후생(well-being)을 평가하는 경제학의 분과학문이다. 말하자면 거시경제와 미시경제 사이의 다리 같은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후생경제학의 기본 정리에 따르면 특정 조건 하에서 시장은 파레토 최적의 결과를 낳으며, 그리고 모든 파레토 최적 결과는 시장에 의해 지탱이 가능하다고 한다.[1] 후생경제학은 이를 바탕으로 사회가 얼마나 효율적인지 평가하고 또 어떻게 하면 효율적이 될 수 있는가를 평가한다.[2] 즉 사회가 파레토 최적에 얼마나 가까운가, 무엇이 파레토 최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하는가 등에 대한 연구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후생경제학에서 논하는 또 다른 중요한 주제는 어떤 분배상태가 사회적으로 가장 바람직한가를 연구하는 것이다. 파레토 최적을 달성하는 수많은 분배 체제 중 무엇이 가장 좋은가[3] , 또 사회의 구성원들이 원하는 다른 목표가 있을 때 파레토 최적을 달성하면서 그 목표 또한 달성할 수 있는가[4], 그리고 사회의 구성원들이 원하는 목표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실현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등을 분석한다. 실질적으로 진보 좌파에서 가장 열심히 배워야 할 법한 학문이다. 어떻게 보면 어떻게 사회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학문이므로...
- ↑ 아담 스미스가 말했던 보이지 않는 손의 논리적 증명이다.
- ↑ 단, 이 때 말하는 '효율'이란 흔히 경제학과 효율성을 떠올릴때 느끼는 승자독식의 경쟁사회라고 보기 어렵다. 파레토 최적이란 개념(다른 사람에게서 뭔가 빼앗지 않는 선에서 최선의 선택이 이루어진 상태)을 생각해볼 것. 돈을 벌기 위해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권리마저 빼앗기는 사회는 파레토 최적(즉 효율적)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 ↑ 1대 99 분배도, 50대 50 분배도 파레토 최적은 달성할 수 있다. 즉 파레토 최적은 좋은 사회의 필요조건일 뿐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
- ↑ 특정 목표, 예를 들어 완전한 평등함을 목표로 삼는 경우 파레토 최적과는 대치된다. 이런 다양한 목표들을 어떻게 가능한 최대로 만족시키는가 또한 후생경제학의 연구범주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