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색화약

黑色火藥, Black Gunpowder.

1 소개

화약의 시작이자 대표적인 저속폭약. 흑색화약이란 명칭이 붙은 이유는 보통 흑색의 분말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1]

2 원리

조성은 초석[2]+(탄소)+[3]이 일정 비율로 혼합된 형태이며, 황의 비율에 따라서 폭연(deflagration) 속도가 조절된다. 복합화약이므로 장전법이나 장전밀도에 따라 다르지만 폭연 속도는 수백m/s 정도이다. 위력계수는 0.55[4] 각 조성비가 화약의 폭발에 작용하는 부문은 다음과 같다.

  • 질산칼륨(KNO3)의 질산염(NO3)은 반응시 산소를 공급한다. 또한 화약의 폭발력의 근원이다.
  • 숯(목탄)은 연소 반응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한다.
  • 황은 낮은 온도에서도 발화하며 폭발을 증가시킨다.

이 구성물들 중에서 질산염이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화약의 폭발력이 질산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 또한 질산에 의한 지속적인 산소의 공급이 다른 구성물들의 연소와 폭발을 촉진한다.

반대로 가장 중요도가 낮은 것은 황으로, 황이 없더라도 목탄 비율만 잘 조절하면 생각보다 꽤 괜찮은 화력의 흑색화약을 만들 수 있기 때문. 황이 없는 흑색화약은 위력은 좀 줄어들어도 연기가 덜 나는 장점이 있다. 무연화약이 개발되기 직전에 무연화약 비슷한 개념으로 황이 없는 저연 흑색화약을 개발한 적도 있을 정도. 다만 점화 온도가 100도 정도 올라간다는 문제가 있어서 플린트락 총기에 쓰기는 껄끄럽다. 하지만 캡락 총기에서는 별 상관 없는 문제점이다.

연소의 실질적인 연료는 목탄(숯)이 담당한다. 그런데 숯 대신에 순수한 탄소를 쓰면 안 된다! 순수한 탄소는 숯에 비해 점화 온도가 훨씬 높기 때문에, 순수한 탄소를 조합해서 만들면 화약이 아닌 성냥대가리마냥 느린 속도로 불타오를 뿐이다. 목질에 따라 숯의 특성도 달라지기 때문에 어떤 목탄이 좋은지에 대해서 저마다 레시피가 존재했다.

현대의 흑색화약은 정전기로 인한 폭발을 방지하기 위해 알갱이에 흑연을 도포한다.

3 조성비

현재 사용되고 있는 흑색 화약은 1780년대에 불꽃 제조사들이 발명한 것으로 질산칼륨 75%, 숯(탄소) 15%, 황 10%의 조성비로 이루어져 있다.

참고로 과거에는 각국마다 이러한 구성비가 달라서 조선시대에는 중국과 일본의 화약을 각각 '명화약', '왜약'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유럽 역시 각국이 흑색화약 조성비와 위력이 달라서, 대영제국제 화약이 더 성능이 좋았다 같은 기록이 있다. 한마디로 만든 시대와 만든 나라에 따라 다 성분비가 달랐다.

조합비를 달리 하면 조금 다른 용도로 쓸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목탄의 탄화가 덜 된 것을 조합해서 만든 경우 갈색으로 보이기 때문에 갈색화약이라고 부르는데, 연소 속도가 느려 대포의 추진제로 적합하다.

현대에도 과거와 조합비만 다르지 흑색화약은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블라스팅 파우더라고 부르는, 바위를 깨트리는 등의 광산용으로 사용하는 흑색화약은 질산염 70%, 목탄 14%, 황 16% 비율을 사용한다. 질산칼륨보다 더 싼 질산나트륨을 사용하는 블라스팅 파우더의 경우, 질산염 40%, 목탄 30%, 황 30% 비율로도 만든다.

흑색화약은 그레인(알갱이의 굵음)으로 다시 용도가 나뉜다. F가 제일 굵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고와진다.

  • F: 포탄 장약용. 느리게 탄다.
  • FF: 산탄총, 머스킷 등 대구경 총기에 사용. F보다 조금 빠르게 탄다.
  • FFF: 권총 등에 사용한다. FF보다 조금 빠르게 탄다.
  • FFFF: 점화용 화약으로 사용한다. 제일 빠르게 탄다.

같은 화약으로도 알갱이 굵기에 따라 연소 속도와 용도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흑색화약의 대표적인 장점 중 하나다.

4 단점

하지만 흑색화약은 만들어질 당시부터 문제가 많았으며 특히 취급과 보관에 상당한 신경을 써야 했다.

  • 발화시 금속을 부식시키는 연소생성물(특히 수산화칼륨)이 엄청나게 생성된다. 그래서 화기를 사용한 다음에는 구석구석 청소를 해주어야 하며 심지어 전투중에 몇 발만 쏘더라도 재사용을 위해 간략한 청소를 해주어야 동작한다. 이는 흑색화약을 사용하는 화기가 자동사격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었다. 만약 이걸 현용 돌격소총이나 기관총 같은 가스압이나 반동을 이용한 자동화기에 적용한다면 잘 해봐야 10-20발 쏘고 총열을 포함해서 가스통로 등이 다 찌거기로 막혀버려 작동을 못 한다.[5] 게다가 현장에서 수리가 거의 불가능하고 심하면 병기창에 총을 후송해야 한다.
  • 연소시에 많은 연기를 만든다. 덕분에 흑색화약을 쓴 화승총같은 무기를 2-3발만 발사해도 사수 주변이 흑색과 회색의 연기로 휩싸이며 대포나 화차 등의 무기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이 연기는 화기 내부에도 탄매로 낄 뿐만 아니라 시야를 막아서 조준사격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심지어 질식을 일으키는 성분도 있어서 호흡기에 이상이 일어나게 만든다. 이 역시 화기 내부에 불순물이 끼는 문제와 함께 자동사격을 못하게 된 원인이었다. 설령 기술의 발전으로 화기 내부의 탄매 문제를 해결해 자동화기처럼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봤자 허구한 날 연기가 피어올라 폐를 끼친다면 다 소용없는 일일 것이다.
흑색화약 머스킷의 발사 장면. 프라이버시 보존의 새로운 지평 연막탄
  • 물에 매우 취약해서 비가 오면 사실상 사용이 불가능하다. 질산염이 스스로 물기를 끌어모으는 성격이 있어서다. 맑더라도 습기 찬 곳에서는 질산나트륨을 베이스로 한 흑색화약이 덩어리로 뭉치는 경향이 있어서 난감해진다.[6] 질산칼륨을 베이스로 만든 흑색화약은 습기정도는 문제가 없지만 사용하기 힘들어지는 것은 마찬가지. 덩어리가 된 흑색화약은 반드시 폐기해야 하는데 사용해보겠다고 두들겨서 가루로 다시 만들다가 까딱하면 터져서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명나라 말기 이렇게 굳어버린 화약을 명나라 군인들이 다시 사용해 보겠다고 도끼로 쳐보다가 오히려 폭발해서 도끼로 친 사람과 근처 사람들이 몽땅 날아가버린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 그러다보니 흑색화약을 관리하는것이 보통 힘든게 아니다.
  • 분말형태이므로 질산염 + 탄소 + 황이 진동에 의해 서로 분리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곧 불발될 확률이 있다는 의미이며 기본적인 성능 또한 아주 저질이다. 브라질 땅콩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막기 위해 흑색화약은 코닝(corning)이란 작업을 거쳐 만든다. 잘 갈아서 한데 섞어준 혼합물에 적당한 분량의 물을 뿌려 흡수시키고 일정한 틀에 넣어 굳힌 후 다시 분쇄시켜 적절한 굵기의 체로 걸러주는 작업으로, 이를 통해 물에 녹은 질산염이 다공질 숯 속으로 파고들어가 재결정화되고 이후 분쇄된 가루를 체에 쳐서 적당한 크기의 입자로 모아 연소속도를 일정한 수준으로 보장할 수 있게 되므로 대포용 장약과 소총용 장약을 구분해서 사용할 수 있게 해 준다. 덤으로 보관성이 좋아져서 안전성도 올라간다. 하지만 이래도 질산나트륨을 베이스로한 흑색화약의 습기먹는 문제는 어쩔 수 없다.
  • 화력 자체는 무연화약보다 낮은데도 밀폐 공간에서 통 크기로 모아서 불을 붙이면 폭발하는 습성이 있다.[7] 그에 반해 무연화약은 많이 모아서 태워도 폭발이 아닌 연소에 가까운 결과가 나온다. 때문에 소용량 통으로 취급할 때 무연화약보다 훨씬 위험하다. 미국에서는 리로딩을 위해 화약을 통으로도 판매하는데 무연화약보다는 흑색화약을 더 위험물로 간주한다.
이건 취급이 위험해지는 단점이지만 관점을 바꾸면 장점이기도 한데, 밀폐공간에서 폭발하는 성질 때문에 폭발물로 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광산업계나 벌목업계 등지에서 흑색화약을 바위 쪼개는 용도로 아직 사용하긴 한다. 본격적인 고폭약에 비해 싸기도 하고(!). 쇼미더 머니
  • 정전기에 많이 취약하다. 상당히 민감해서 잘못하면 화약 플라스크 상태로도 펑 터지는 수가 있고, 코닝을 하더라도 이리저리 통을 내돌리다보면 알갱이가 부스러져서 더욱 민감한 작은 가루가 생기게 된다. 요샌 흑연을 도포해서 정전기 점화는 거의 막았는데, 그러지 못했던 옛날엔 그래서 나무나 뿔로 된 플라스크에 화약을 담아 다녔다.(미국 초창기 이민시대 사냥꾼들이 뿔 플라스크를 차고 다니는 걸 매체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또한 흑색화약 관련 금속 부품(계량컵, 금속제 파우더 플라스크 등)은 과거에는 황동, 현재는 황동이나 플라스틱을 고집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일반 쇠통이나 쇠컵을 썼다가 정전기가 내부에 전도하며 폭발할 위험이 커서.

5 사용분야

이렇듯 취급과 보관이 까다롭고 성능도 떨어진다는 이유 때문에 21세기 현재에는 군용으로도 산업용으로도 잘 사용되지 않는다. 무연화약이 개발되자 대부분 그쪽으로 갈아탔고, 특히 개인화기류에서는 무연화약의 개발로 인해 엄폐와 속사가 가능해져 전술상의 이유로도 흑색화약은 버려졌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무연화약의 부족을 이유로 판처파우스트의 추진제를 흑색화약으로 만든 기록이 있다. 지금도 중동이나 아프리카 등지에서 만드는 사제 RPG-7 추진제는 흑색화약이 흔히 쓰인다.

현대의 대표적인 사용처는 불꽃놀이. 함유한 불순물을 조절해서 불꽃의 색상을 조절한다.

요즘에는 대체 흑색화약(또는 유사 흑색화약)이란 것도 있다. 현대 전장식 총기에 사용하기 위해 흑색화약과 비슷한 성질을 띠게 조합한 화약이다. 부피당 화력을 일부러 흑색화약과 비슷하게 조성하고[8] 대신에 무연화약처럼 깨끗하게 타게 만들었다. 점화가 어렵지만 현대 전장식 총기는 산탄 뇌관으로 점화하니까 별 문제 없다.
  1. 다만 무연화약이라고 백색이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 대개의 무연화약 역시 검은 색.
  2. 질산염. 일반적으로는 질산칼륨이 주로 쓰이는데, 질산암모늄이나 질산나트륨도 사용가능하다. 과거에는 자연에서 초석을 캐다 썼는데, 자원이 유한하여 여기저기서 초석을 찾아 헤매다 공중질소고정법을 발견하고부터는 이제 만들어 사용한다.
  3. 산화철, 그러니까 녹으로도 대체가 가능하다고 한다.
  4. 위력계수가 0.55 임을 주의하자. 단순계산으로 TNT 1kg 보다 흑색화약 2kg의 위력이 더 세다. 폭연 또는 폭굉 속도가 낮다고 우습게 보면 안 된다.
  5. 맥심 기관총 초기형(마티니-헨리 소총탄: 흑색화약)처럼 잘만 작동하는 케이스도 있지만, 무연화약에 비해 불리한 요소인 건 건 확실하다.
  6. 물론 이정도 상황이라면 현대의 무연화약도 사용할 수 없긴 하다. 그렇지만 무연화약은 대개 총탄 형태로 만들어져 어느정도 방수성이 있는 반면 흑색화약은 그대로 사용하는 경향이 큰 탓에 영향을 쉽게 받는 것이다.
  7. 무연화약과 흑색화약을 동시에 불을 붙여보면 흑색화약이 훨씬 빨리 타오른다. 무연화약은 연소시 만들어내는 압력이 강한 것이지 연소가 전이되는 속도가 빠른 것은 아니기 때문. 서부영화나 해적 영화 같은 데서 흑색화약을 한줄로 뿌려서 기폭시키려고 할때 화약이 천천히 타들어가는 것은 순 거짓말이다. 실제론 무연화약이 그정도 속도로 타야 정상이다.
  8. 위력이 너무 강하거나 계량 부피가 달라지면 흑색화약용 장비를 써서 재래식 전장총에 화약을 쟀다가는 총이 터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