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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하계올림픽 (Citius, Altius, Fortiu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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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 아테네 올림픽 | → | 1900 파리 올림픽 | → | 1904 세인트루이스 올림픽 |
1 개요
개최날짜 : 1900년 5월 14일 ~ 10월 28일
개최장소 : 프랑스 파리
1900년에 파리에서 열린 제 2회 올림픽이자 올림픽 대회 역사상 최악의 실패작.
2 개최
전 대회인 아테네 올림픽에서 생각외로 이득을 봤는지(?) 그리스 측에서는 계속 아테네에서 올림픽을 개최하고 싶었지만, 그들의 바람과 다르게 IOC에서는 다음 올림픽은 1900년 파리에서 개최된다고 하였다.[1]
같은 해에 열린 파리 만국 박람회(엑스포)의 부속 행사로 열리었다.대회가 엑스포 일정에 맞추어 무려 6개월동안 종목별로 분산개최가 되었다. 그 때문에 이 대회는 올림픽이라는 이름이 아닌 국제경연대회라는 이름으로 개최되었다.
대회기간은 1900년 5월 14일(개회식) ~ 10월 28일(폐회식)
3 망했어요
간단히 말하면 엑스포 관람객들을 위한 보너스 볼거리(요새로 치면 가수들 행사?) 정도로 취급했다. 따라서 관람객 중 일부가 즉석 참가하기도...이 참가자들은 자신들이 올림픽에 출천하고 있는 줄도 모르는 정도의 막장운영이었다. 종목별 시상과 기록도 몇달후에나 이루어지고 종합적인 대회 보고서 따위는 당연히 없다.
엑스포의 부속행사로 치루어지다보니 각종 예술 경연(에를 들면 조각과 각국의 민속춤 등...)이 대회 종목으로 포함되고 실제 시상도 이루어졌다. 이부분은 현재 IOC에선 인정하지 않고 별도 행사로 표기하고 있다.[2]
별도의 올림픽 대회 조직위원회가 구성되지 않고 엑스포 주최측이 행사를 주도하면서 별 관심을 두지 않아서 벌어진 해프닝이다.
4 이모저모
여성이 최초로 참가한 대회이기도 하다. 아마 그리스에서 계속 개최되었으면 상당히 늦게나 여성이 참가했을것으로 보인다.[3] 하지만 쿠베르탱 남작은 여성이 참가하는 걸 무척 싫어해 반대해왔는데 그는 여성은 남성 메달리스트에게 메달을 건네주면 된다(...)라고 자주 말해왔다. 결국 열불터진 여성 스포츠계가 아예 올림픽과 무관한 여성 스포츠 대회를 만드는데 이게 의외로 올림픽 못지않게 흥행에 성공하면서 결국 IOC와 쿠베르탱 남작이 여성 스포츠도 올림픽에 포함시키고 다시는 제외시키지 않겠다고 애원하여 합쳐지면서 여성 스포츠 대회는 사라진다.
전 대회에서 레슬링과 역도가 제외되었으며, 2016년 올림픽에 부활하는 골프와 럭비를 포함하며 13개의 종목(그외에 양궁 / 크리켓 / 경마 / 축구 / 펠로타 / 폴로 / 조정 / 요트 / 줄다리기 / 수구가 채택되었다.)가 새로 신설이 되었다. 그리고 1896 아테네 올림픽에 써져있는대로 종목은 남아있지만 좀 이상한 몇몇 종목은 제외가 되었다.
다국적 혼성팀이 본격적으로 힘을 쓰는 대회였다. 줄다리기에서 덴마크와 스웨덴으로 이루어진 다국적 혼성팀이 줄다리기에서 우승을 하였으며, 폴로도 영국/미국으로 구성된 팀이 1,2위를 했으며 영국/프랑스로 이루어진 팀이 3위를 했을정도.
5 폐막 이후
올림픽운동의 주창자 쿠베르탱 남작은 자신의 모국에서 열린 이 막장 올림픽을 두고두고 창피해하다가 명예회복을 위해 결국 1924년 다시 한번 파리에 개최권을 주었다. 그리고 노력한 보람이 있어서 1924 파리 올림픽은 그럭저럭 성공적인 대회가 된다.
1904 세인트루이스 올림픽도 박람회와 함께 열리긴 했지만 쿠베르탱 남작과 IOC의 개입으로 철저하게 별도 행사로 치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