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OS

만약 BeOS를 계승한 오픈 소스 운영체제 하이쿠를 찾고 계신다면 하이쿠 문서를 참조해 주십시오.

[2]

BeOS에 관한 PR 비디오. 20분 가량 되며,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멀티 프로세서 활용 등 여러 가지에 대해 소개를 해준다. 다 볼 것까진 없고 조금씩 돌려가며 흥미로운 부분만 보면 된다.

1 개요

홈페이지는 이곳. 2004년 이후 한동안 관리가 안되었지만 2016년 새로 개편했다.

Be 사에서 만든 운영체제로 당시 애플에서 매킨토시 개발을 총괄하던 장 루이 가세가 애플 사에서 쫒겨난 후 만든 운영체제다. 처음 시작부터 이렇고 나중에도 애플의 차세대 운영체제의 후보로 BeOS가 선택되는 등 여러 가지로 애플하고 엮이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이 OS의 역사를 설명하다 보면 꼭 애플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애플이 코플랜드 OS로 미칠 때의 얘기를 하다 보면 또 꼭 이 운영체제가 나온다.

처음 개발부터 최신 하드웨어를 타깃으로 개발하다 보니까 용량도 덜 먹으면서 속도도 빨랐던 개념 운영체제다.[1] 특히 멀티미디어 환경에 상당히 특화되어 있다. 그러나 제대로 실력 발휘도 못 해본 채, 애플이 차세대 OS로 BeOS냐, 넥스트냐로 고민하다 잡스의 넥스트를 선택한 이후로 하락세를 타다 결국 Palm에게 먹혔다. 그래서 이때 BeOS의 멀티미디어 기술은 당시 팜이 만들고 있던 코발트 OS에 적용하려고 했으나 코발트 OS가 취소되면서 BeOS는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나중에 이 운영체제를 오픈 소스로 완전히 재창조하려는 프로젝트가 생겼다. (하이쿠 참조)

2 역사

1990년, 존 스컬리의 오른팔로 불리며 애플의 제품 개발을 총괄하던 장 루이 가세 (Jean-Louis Gassée)는 확실히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갑자기 애플 사에서 퇴사[2]했는데, 다음 해인 1991년 Be Inc.라는 회사를 세워서 BeBox라는 컴퓨터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컴퓨터에 들어가는 OS가 바로 BeOS였다. 하지만 나중에 하드웨어 사업을 접고, 그 이후 BeBox가 아니더라도 PowerPC 프로세서만 달려있으면 어디서든지 BeOS를 쓸 수 있도록 했다. 당시 매킨토시도 파워PC 프로세서를 장착했으니 BeOS를 물론 구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매킨토시 클론을 제작하던 회사인 파워 컴퓨팅도 번들로 BeOS를 끼워줘서 맥 OS와 듀얼 부팅할 수 있도록 해줬다.[3][4]

여기서 애플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윈텔 진영에서 상당히 빠르게 애플을 추격해오고 있던 시절에 애플은 낡아빠진 맥 OS에서 늘어나는 안정성 결함을 참지 못하고 코플랜드 OS 등의 새로운 운영체제를 시도해보지만 현실은... 해당 글을 참조하라. 때문에 애플은 새로운 운영체제를 내부적으로 만드는 것을 포기하고, 차세대 맥 OS를 결국 다른 회사에서 사오기로 한다. 그래서 맨 처음 찾았던 게 바로 BeOS였다. 근데 애플에서 쫒겨난 장 루이 가세가 샘이 난 건진 몰라도 2억 달러라는 꽤 큰 돈을 요구했고, 당시 1억 2500만 달러 이상 쓰기 싫었던 길 아멜리오 애플 CEO는 일단 BeOS를 제쳐두고 다른 회사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만난 게 스티브 잡스넥스트스텝이었고, 결국 애플은 4억 2900만 달러를 주고 넥스트 사를 사온다. 어? 1억 2500만 달러 이상 쓰기 싫었다는 아멜리오가 2억 달러를 내팽겨치고 4억 2900만 달러짜리를 선택한 이유는 잡스의 말빨이라는 의견이 가장 유력하다. 잡스 말로는 그냥 BeOS 사지 말라고 설득하러 갔는데 어쩌다가 애플이 넥스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거다... 라고 하지만 분명 잡스는 그때부터 그 이상을 기대하고 갔던 게 분명하다. 역시 굇수.

한편, 아무도 예상치 못한 넥스트 사의 인수에 Be 사는 가뜩이나 돈도 잘 안 벌리는데 돈줄마저 굿바이라 결국 직격탄을 맞고, 결국 BeOS R3부터 더 수요자가 많은 인텔 x86 프로세서로 포팅하기로 전략을 바꾼다. 하지만 그곳에는 Microsoft Windows가 있었고. 운영체제 자체의 퀄리티는 윈도보다 좋지만 어플리케이션 호환성이나 인지도 등에서 처참히 K.O 였다.

하지만 등장시기에 비하면 유저인터페이스나 아이콘 디자인은 정말로 미려했고[5][6], 그 미려함에 반한 이들이 BeOS의 유저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윈도용으로 포팅한 테마를 만들거나, BeOS의 아이콘을 윈도용으로 쓰기 위해 따로 추출되어 아이콘 패키지화 되기도 했고, 당시 PC통신이나 인터넷 상에 제법 돌아다녔다. 그리고 촌스러운 윈도우 95/98의 아이콘을 BeOS 아이콘으로 바꾸고.

그 이후 BeOS Personal Edition을 공짜로 뿌려서 윈도에서 원클릭으로 설치할 수 있게 하는 등 여러 시도를 많이 했지만 다 그저 그랬고 2001년 팜에 1100만 달러에 먹혔다. 2억 달러랑 비교해보면 그저 지못미. 인수 이후 팜이 BeOS의 멀티미디어 기술을 적용해서 코발트 OS라는 걸 만들려고 했으나 이 역시 취소되어서 결국 BeOS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인수 이후 BeOS R5.1 Dano 버전이 유출되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Be 사는 죽어서 Dano를 남긴다. 그리고 아이콘도.

이후 BeOS를 그리워하던 많은 사람들이 직접 맨땅에서부터 BeOS를 만들기 위해 여러 프로젝트가 만들어졌는데... 대부분 오래가지 못했으나 오픈 소스 운영체제인 Haiku(구 OpenBeOS)는 몇 년 째 계속 개발되어 오고 있으며, 아직도 개발이 잘 되고 있다. 다만 아무래도 운영체제다 보니 맨땅에서 시작하려면 개발 완성에 한참이 걸리며, 그래서 아직도 알파 4다.

현재는 일부 컴덕후들이 하이쿠 프로젝트를 통해서 개인용 컴퓨터에 설치해서 사용하기도 하고, BeOS가 멀티미디어 기능에 특화되어 있다는 점을 이용해 전문 녹음기, 방송 장비, 동영상 편집 도구 등에 일부 사용되기도 한다.

3 특징

  • 선점형 멀티태스킹
  • Be File System (BFS나 BeFS로 알려짐)이라는 이름의 64비트 파일 시스템
  • 대칭형 다중 처리 (SMP)
  • 일부 POSIX 호환. C++ API.
  • 유닉스 기반의 운영체제도 아니면서 터미널(Windows의 '도스창, cmd'나 리눅스나 유닉스의 '터미널'과 같은)을 지원했는데 Bash쉘등도 사용할수 있다. (다만 유닉스 기반이 아니므로 Windows 9x의 '도스모드'나 리눅스나 유닉스의 '싱글모드'등은 지원되지 않는 다.)
  1. BeOS R5는 펜티엄2 초기 모델만 되어도 펜티엄2 급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른 부팅속도와 반응속도를 자랑한다.
  2. 그가 쫓겨난 건 존 스컬리가 애플에서 퇴사하기 훨씬 이전이다. 애플에 있을 때 존 스컬리의 오른팔이라 불릴 정도의 위치에 있던 그가 왜 존 스컬리와 불화하게 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존 스컬리가 경영 부진의 책임을 물어 좀 더 하위직으로 옮길 것을 제안하자 받아들이지 않고 바로 퇴사했다는 소문도 있고 가세 자신이 애플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근데 애플에 환멸을 느낀거 치곤 21세기까지 애플 팬질을 계속하고 있다. [1] 여기서 확인 가능.
  3. 여기서 "매킨토시 클론은 불법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애플은 점유율을 높이기 위하여 라이선스를 받은 회사에 한해서 맥 OS를 설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파워 컴퓨팅은 물론 라이선스를 받았다. 하지만 그 해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들어오면서 클론 프로그램은 보기좋게 취소되었다.
  4. 사실 BeOS를 번들로 끼워준 것도 나중에 새 맥 OS가 이쪽 계통으로 나올 거 같으니까 끼워준 것으로 보인다. 관련 내용은 몇 줄 더 훑어보면 나오니 잠깐 기다리시길.
  5. BeOS의 유저 인터페이스 디자인은 DR1이나 5.0이나 크게 차이가 안 났는데, 최초 버젼인 DR1은 무려 윈도우 95와 같은 해인 1995년에 나왔으면서도 윈도우 Me, 2000 및 고전 테마의 XP와 비슷한 유저 인터페이스 색상을 사용했고, 활성화된 창의 타이틀 바를 노란색으로 강조 처리한 건 당시로써는 상당히 참신했다.
  6. 동시대 OS인 윈도우 95나 NT 4.0이 기본적으로 16컬러에 평면적인 디자인의 아이콘을 썼지만 BeOS는 256색 이상에 입체적인 아이콘 디자인을 썼다. 아이콘의 형태 뿐만 아니라 색감도 지금봐도 상당히 미려한 편.